•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도요새 둥지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스크랩 출수,과제물 문교과 1학년 (대중문화의 이해 과제물 )
내가 사는 세상 추천 0 조회 79 16.03.10 09: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과 제 명 :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졌던 사례를 분석해보시오

 

Ⅰ.서론

 

대중문화란 말 그대로 모든 일반 대중 즉 국민들의 일상의 문화이다

보고 부르고 즐기고 그래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길 수밖에 없는 지극히 서민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대중문화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낸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물론 공연예술에서 오페라 클래식 등의 고품격 예술분야도 대중문화라 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서 통용되는 대중문화는

문화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도 줄길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성싶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문화를 검열하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주체는 누구인가

또한 일정 부분 비판적인 여론과 저항을 무릅쓰고 대중문화를 검열할 수밖에 없었던 검열주체 세력들의 목적을 알아보자

아울러 이러한 검열은 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면 검열문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것 들이 있나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검열의 역사부터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풀어보기로 한다.

 

Ⅱ 본론

 

1, 내가 생각하는 검열의 역사

우선 나는 이 과제물을 작성하면서 특별히 참고문헌이나 인터넷 자료검색 등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 스스로 그 시대를 몸소 겪으며 살아왔고 일종의 피해자의 입장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긴 독재정권아래서 직간접적으로 피해자가 아닌 국민은 또 누구이겠는가.

그동안 소위 7080 암울했던 시대 대중문화의 당사자들이 수없이 많은 t v 프로에서의 증언도 많이 듣고 보았다.

해서 나는 그 기억을 살려 영화와 가요위주로 사례를 살펴보고자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중문화의 검열은 거슬러 올라가면 왕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체제를 비판하거나 비협조적인 서적, 민요 등의 보급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자 나라에서 발 벗고 나섰던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대표적인 영화 나운규의 아리랑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항일을 그린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인공 영진이 낫으로 살해하는 오기호가 일본인들의 앞잡이인 천(千)가의 심복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무성영화시대 변사의 말 한마디가 관중들에게는 절대적 영향을 끼치던 시절인지라 변사는 극적인 부분에서 한일관계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반일감정을 고취해 아리랑이 상영되는 곳에는 의례 일본형사들이 상주하며 감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나운규가 일본형사들의 감시대상이 되고 곤욕을 치룬 건 불을 보듯 빤한 사실이다.

 

해방이 되고 자유당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중문화에는 공권력이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을 하기 시작했고 국가홍보를 목적으로

다양한 방법의 통제와 교육이 시도되기도 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임화수라는 정치깡패가 영화 가요 등 을 모두 한손에 쥐고

대중문화를 정권을 찬양하고 권력의 시녀노릇을 강요하는 시대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승만 대통령>노래를 부르며 등하교를 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한 결 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북한의 김일성찬가와 다를 바 하나도 없던 이 노래를 우리는 감격해하며 부르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이 노래를 나는 지금도 부를 수가 있다 체제를 옹호하고 국민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대중문화가 지름길이라는 것을

자유당정권은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또한 그 시절에는 반공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때려잡자 공산당으로 하루해가 저물던 시절이었다.

 

<무찌르자 공산당 몇 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나가자 나가 승리의 길로 나가자 나가 승리에 길로>

 이 노래는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넘기를 하며 부르던 노래였다

이처럼 자유당시절에는 전쟁이 남긴 교훈으로 국민들이 잘 훈련되어있었고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지극히 낮아 검열에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시절이다

사실 이승만정권이 독재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가 독재자라는 인식조차 제대로 못하고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박정희 전두한 두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민중들의 정서와 국가통치개념이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수없이 많은 검열과 통제로 우리사회는 불균형의 대중문화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대중들의 욕구와 집권세력의 기준이 무한 충돌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역사이래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자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게 많은 법이다 흔한 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 이다

그 많은 사례 중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몇 가지는 다음페이지에 서술하기로 한다.

 

특이한 점은 박정희 시절에는 각종 구호나 행사들이 많았지만 전두한 시절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대형화되었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관심과 시선을 오락성프로에 맞추기 위해 각종 프로스포츠를 탄생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꿈도 꿀 수 없으리라 믿었던 올림픽도 치러낸 것이다.

결국 국민들에게는 당근과 채찍의 법칙이 적용되고 그로인해 길 들여저가는 국민들은 프로스포츠 등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나 공 과 는 분명하고 군사독재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검열의 잣대는 대중문화에서 많은 부분 비켜서고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방송3사를 정권하에 두려는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목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론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심의 등급이 있고 검열에서 걸러지는 각종 대중매체물이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국민정서의 위해 여부와 저작권보호 차원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즉 국가권력과 대치되는 부분은 일반대중문화와는 다소 동떨어진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너무 부분별하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부분들이 여과되지 않은 체 쏟아져 나와 권력이 문화라는 고유영역에 대해 너무 방치

혹은 관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광수라는 사람을 참 싫어하는데 년 초에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서 그를 만나 썩 내키지 않는 그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가 자신이 검열의 희생자라고 억울함을 토로 하는걸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검열은 필요하오.>라고 말이다

그가 만든 작품(작품이라는 표현도 쓰기 싫지만)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등 모든 소설이 외설이다.

그가 아무리 강변과 항변을 늘어놓아도 독자가 외설로 느끼면 외설 인것이다.

만약 검열이 없거나 느슨했다면 그는 명문대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무슨 짓을했을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일이다 

솔직히 오히려 지금은 좀 더 엄격한 검열의 잣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도 일부 뜻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있는 현실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상업성에 철저하게 찌든 각종매체들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이다.

노래가사 하나하나에 코미디 같은 이유로 트집을 잡아 대중예술인들의 밥줄을 끊어버리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 이야기도 아닌데

격세지감을 느끼는 건 내가 그만큼 노쇠하다는 증거일까?

 

2 검열의 의미는 무엇이며 주체는 누구인가

검열의 주체는 재론의 여지없이 어떤 형태로 이던 국가권력이다

그리고 그들 세력은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으며 등급을 가렸는가를 우선 생각하고 알아보자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검열의 의미는 국가안보와 사회정화이며 맞는 말이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민생활을 건전하고 아름답게 하자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검열 본래의 의미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검열은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다 아무 여과장치 없이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우리 시는 세상은 그야말로 진흙탕의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각 분야별로 심의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 걸 로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검열이라는 명칭보다 심의라는 용어로 통용된다.

영화의 경우에도 등급을 두어 년 령 층에 따라 관람여부를 정하기도 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영화와 달리 음악은 가사에는 유연함을 보이지만 표절에 더 엄격한 기준을 두어 심의를 하고 있다.

도서또한 표절과 인용에 많은 비중을 두고 심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선정적인 부분은 이제 영상매체에 밀려 도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진정한 의미의 검열은 반드시 필요하며 예술과 창작이라는 이름을 빌려 대중정서에 해를 끼치는

모든 창작물(지나친 선정성, 폭력 살인묘사 비윤리성)등은 가려내야 할 것이며 느슨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검열이 참다운 검열의 본래목적을 다할 때 대중들의 눈과 귀가 좀 더 사람의 눈에 사람의 귀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최소한 국가권력이 대중들의 보고 듣는 것까지 일일이 사전검열 하는 세상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열의 주체 또한 공권력이 아닌 일반 심의 단체로 법이라는 개념보다 윤리와 개인의 지적재산권 차원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대다수의 대중정서에 반 하는가 아닌가의 잣대로 말이다

 

3 검열주체세력들의 목적과 검열이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

검열주체세력들의 검열목적은 시대상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면 결국 같은 맥락이다

검열의 첫째목적은 국가안보이다 둘째는 안정적인 체제유지이다

그런데 국가안보와 체재유지는 결국은 하나다 양날에 날개인 것이다

국가안보의 빌미 속에 권력자들의 체재유지가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검열당사자들의 미숙한 정신연령이 코미디보다 못한 검열사례들을 만들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군인들이었다.

 

여기 그 잘못된 목적으로 인한 몇 가지 검열사례를 대중가요를 통해 들어보자

잘 알다시피 우리 국민의 정서는 한 이라고 한다 한을 빼면 우리민족의 문화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국민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가수가 이미자 씨라고 모두 생각한다.

그런 이미자 씨 노래가 군사정권시절 수없이 많은 고초를 겪었다

대부분이 검열에서 걸려 금지곡이 되었다 그런데 검열에 걸린 이유가 가관이다

첫째는 비탄 적 이라는 것이다 바로 너무 한스럽다 는 말이다

둘째는 왜색 적 이라는 것이다 음악의 장르는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다는 것도 모르는 무지의 극치를 그대로 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다.

이 금 희라는 가수가 부른 키다리미스터 김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시에는 아주 볼륨 있고 건강해 보이는 가수가 율동에 맞춰 신나게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면을 많이 차지하니까 1절만 적어놓고 보자

 

③<키다리 미스터 김은 싱겁게 키는 크지만 그래도 미스터 김은 마음씨 그만이에요 세상에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그이는 그렇지 않아요 정말로 멋쟁이에요 건들건들 걸을 때는 매력이 흘러넘쳐요 키다리 미스터 김에게 나 홀랑 반했어요.>

 

밝고 경쾌한 노래다 가사 어디를 보아도 금지될만한 사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금지곡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요절복통할일이다

바로 박 정 희 씨가 단신이라는 것이다 분노를 넘어 허탈하고 웃음밖에는 안 나올 일이다

왕조시대에는 왕가에 혼인 날자가 잡히면 온 나라에는 금 혼 령 이 내려졌다,

그런데 키다리 미스터 김의 금지사유는 혼인 금지령이 왔다 울고 갈일이다.

전 두 한 시절 탤런트 박 용 식 씨가 대머리라는 이유로 출연을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 내 기준으로 보면 불후의 명곡이다

이 노래가 금지된 이유는 바로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이 구절이다

붉다는 곧 빨갱이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걸 상상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저 어이없고 놀라울 뿐이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그 시절에 국가에서 권장하고 키워주던 가요들이 있었다.

 

<제 7광구>라는 노래이다 나지도 않는 석유가 나온다고 불러댄 노래이다 가사한번 보자

④“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세털 구름 하늘높이 둥실 떠가듯 온 누리에 작은 꿈이 너를 찾는다. 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조용히 맞은 세울 월 몸을 숨겨 운 위대한 너의 숨결 귀 기울인다.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이 세상에 너의 모습 드러낼 때는 두 손 높이 하늘 향해 반겨 맞으며 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대한민국은 금방 부자가 되는 줄 알았고 박정희 대통령이 7광구에서 나온 기름을 맛보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을 때

국민들은 환호하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후 이 노래는 정부에 의해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일본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있다 월남파병 열풍이 불던 시절 김 추 자 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이다

급기야 정 수 라의 <아 대한민국>에 이르러서는 관제가요가 그 절정을 이루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정서를 모으는데 그만한 노래도 흔치 않았다

 

인간의 희 노 애 락을 노래하는 대중문화는 어느 선술집 어느 포장마차에서 쓸쓸히 세월을 낚고 이념과 정책의.

노래들이 대중매체를 장악하던 시절 이었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정권의 이익에 의해 마음대로 휘둘렸던 것이다 그리고 가수들 음반에도 건전가요라는 이름의 노래가

끝에 꼭 한 두곡 들어가야 음반을 낼 수 있었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자신의 생업차원에서 음반을 내는데 까지 국가가 통제를 하고 관여를 하는 세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머리길이까지 통제하고 치마길이까지 간섭하던 시절이었으니 어찌 보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나 역시 구로역 앞에서 머리를 잘린 경험이 있고

그때의 그 굴욕적인 감정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씁쓸함으로 남아있다.

결국 이처럼 잘못된 검열문화는 바로 대중문화의 암흑기를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많은 대중예술인들은 결국 나라를 떠나거나 지하에 숨어 그들 나름대로 언더그라운드 형식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것이다.

검열의 칼날이 매섭게 몰아치던 시절 진정한 대중예술은 사라지고 자조적인 호스티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Ⅲ. 결론

검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검열 아니 심의는 있어야한다  검열이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자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고 창작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가공할 만한 폭력물과 외설물이 세상을 뒤덮는것은 시간문제 일것이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것이다

또한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대중문화를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해서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삼는가도 통렬하게 겪은 사람들이다.

지금의 순수 심의과정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미비한 점을 보완해서 다양하고 참신한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는 그 중심에

정직한 검열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중예술의 사명이 어차피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면 바로 대중,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양질의 문화를 보호하고 타인의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었을 때 문화와 인간이

함께 숨 쉬는 검열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 이며 불량문화가 발 부치기 힘든 비교적 덜 오염된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예술경영과 예술행정>대학교제 김정락外

각주

①이승만 찬가

②승리의노래

③CBS 노컷뉴스

④문화일보2011.09.29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