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천태문학상 응모 시(5편)
1. 달맞이
/이신경
오늘은 추석 명절
조상님 모시는 날이다
보름달 소나무 숲 위로 걸어온다
쪽 찐 머리 달빛 곱게 차려입고
어머님이 걸어오신다
넉넉하고 인자한 모습 매운 손맛
차례상 준비하며 따라 부르라 하셨던
어머니의 노래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 紅東白西,
생동숙서生東熟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이서頭東尾西,
고서비동考西비東, 반서갱동飯西羹東
차례상 풍년이다
손주들 부모 은중경 독송하며
조상님 음덕 기린다
며느리 앞세워 뜰에 나가
임자 없어 따라오신
고혼들께 축원 올리니
중천에 어머님이 환하게 웃고 계신다
2. 짚 베옷에 흘린 눈물
/이 신경
아버지 산소 밑
보리밭에 앉아
손녀와 냉이 달래
봄나물을 캐고 있다
남계천 남계수 위에
앉아 있는 학 한 마리
흰 수염 매만지며
어느새 곁에 날아와
딱새야 딱새야
부르는 소리 들린다
"춥다 어서 가자
우리 딱새 많이 캤구나 "
"아버지
우헌 이영순, 우리 아버지"
허공을 쪼는
공명 소리 딱딱
내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 먼 길 떠나실 적에
짚베옷에 흘린 눈물
상여 뒤 따르는 철부지 어린 딸
못 잊어 눈에 밢여
어찌 그 길 가셨습니까
남계천 푸르게 흐르는
이 봄날 보리밭에 앉아
부모은덕 못 다 갚는 불효 여식
흰 구름 한자락 끌어다 하늘길 내고
천도의 길 닦으오니 극락 왕생하옵소서
나무(南無)여
나무 나무여
나무불(南無佛)이여 나무불이여
훠이 훠이 훠어이
※.우헌(遇軒) 이영순(李永恂)(1882.2.10~1954.7.29) 한 의사 시조시인은 구한말 고흥군 남계리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 과거 준비하다가 갑오개혁(1894~1896)으로 과거 제도가 폐지되고 한일 합방으로 시국이 어수선해 지자 입신양명의 뜻을 꺾고 시를 지으며 명의 신의 구 한의사의 제자가 된다. 그 후 그는 고흥읍 봉황산 앞 남계천 언덕에 감초당(甘草堂) 한의원을 열고 일평생 가난한 향민들에게 청의 (淸醫)로 덕을 쌓으며, 1930년대부터 보성, 순천 등지의 문인들과 친교 하면서 '남계회'라는 시인 동아리를 결성하였다.
회원으로는 춘정 ,유성, 춘강 정석모, 봉산 김상천,백천 신태우, 운담 박노호, 서천 신문휴, 학산 김민수, 일농 김상희, 해사 정형래,벽소 이민영, 성암 김상유, 송천 신영규 등 20 여명이었고, 준회원으로는 이따금 고흥 방문시 시모임에 동참했던 보성의 문인, 소파 송명회, 설주 송운회, 순천 성석 이성규,서병규,진주 서예가 성파 하동주가 있다.
남계회 회원들은 주로 고흥의 람휘루(覽煇樓), 향로재,인근 수도암에서 자주 모여 한시를 짓고 시여아관 (是如我觀)이라는 문학, 시국, 사상, 담론용 서첩을 만들어 회독하며 남계회를 이끌었다.
저서로는 우헌집(遇軒集)이 있다.
3. 보랏빛 유혹/이신경
새벽 운동 나서는 산책길
칡꽃 향기 부스스 내 손을 잡는다
오늘은 뉘 손발 묶으려고
닥치는 대로 초목을 감고 죄는 힘센 줄기들
보랏빛으로 다가서서
자줏빛으로 유혹하고
슬그머니 목을 감는다
한번 휘감으면 끝장을 낸다
이제는 도로까지 내려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너의 끈질긴
생명력에 유혹 당한다
돌아오는 길에
칡꽃 한줌 따서 찻잔에 녹인다
보랏빛 유혹을 마신다
4. 삶의 여유/이신경
산 그늘에 앉아 푸성귀 뜯는다
보리밥
양푼에 비벼
허기 채우고 숲속을 걷는다
참 시원하다
여유는 내가 만드는 것
동쪽으로 십분쯤 걷다 보면
옹달샘이 그곳에 있다
다람쥐 기다리고 있겠지
노루 녀석 다녀갔을까
5. 바닥이 있어 일어설 수 있다/이신경
계단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 무겁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반지하 단칸방
눈이 부셔 눈을 떴다
빛 하나가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와
고양이 눈으로 얼굴을 핥고 있다
가시에 찔린 나의 삶
어쩔 수 없이 맺은 어두운 인연
그렇지만 내 몸에 맞게 재단해 입고 나니
위로의 안식처가 되었다
습기와 곰팡이 냄새도 익숙해졌다
힘 내자
내 마음에 불을 켜자
어둠 속에서 불빛은 더 밝게 빛나는 법
언젠가 내게도 꽃 피는 희망의 계절이 오겠지
더 높은 곳을 향해 기지개를 켜자
바닥이 있어 일어설 수 있다
ㅡ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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