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 이는 장강의 물결
이때 강동에 자리잡고 있던 손권은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착실하게 키워가고 있었다.
널리 어진 선비를 받아들이는데
오회땅에 손님을 맞아들이는 큰집을 지어
고웅과 장굉으로 하여금
사방에서 모여드는 인재를 받아들이게 힘과 아울러
서로 숨은 인물들을 추천케 했다.
회계땅의 감택, 팽성의 엄준, 패현의 설종, 여남의 정병,
오군의 주환과 육적, 오의 자온, 회계의 능통, 오정의 오찬 같은 수많은 인재들을
손권 밑으로 모여들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손권은 그들을
하나같이 두터운 예로 받아들여 공경했다.
그 밖에 또 손권은 좋은 장수까지 여럿 얻게 되었는데
여양 땅에서 온 여몽, 오군의 육손, 냥야의 서성, 동군의 반장, 여강의 정봉 같은
빼어난 무장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문무의 인재들이
한가지로 손권을 도와 힘을 아끼지 않으니 강동의 성세는 드높아졌다.
손견, 손책의 시절과는 이제 비교도 안될 지경이었다.
그러자 그 같은 강동의 번성이 조조에게 결코 달가울 리 없었다.
☆☆☆
일찍 이 건안 7년 조조는 원소를 깨뜨린 기세에 힘입어
손권에 사신을 보내고 그 아들을 보내라는 것 이였다.
마다하면 금세 군사를 동오로 몰고 올 듯한 엄포와 함께였다.
사신을 통해 명을 전해들은 손권은
얼른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들어주자니 그날로 자신의 아들은 인질이 되어
자신까지 조조에게 매인 몸이 될 것이고,
거절하자니 그토록 강성하던 원소를 꺾은 여세를 몰아
조조가 강동으로 쳐들어올 게 두려웠다.
손권이 이래저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조조가 사자를 보내 인질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손권의 어머니 오태부인의 귀에 들어갔다.
오태부인은 주유와 장소를 불러들여 의견을 물었다.
장소가 대답했다.
"조조가 우리에게 자식을 조정에 들여보내라고 하는 것은
예로부터 제후들을 견제하는 법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군주께서 아드님을 보내지 않는다면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강동으로 내려올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강동은 실로 위태로워진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문신이라 그런지 장소의 의견은 회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무장인 주유는 달랐다.
장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라듯 받았다.
"우리 주군께서는 부형의 기업을 물려받아
여섯 군의 백성을 거느린 데다 군사는 많고 양식은 넉넉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사람을 보내 볼모로 잡히게 한단 말입니까?
한번 인질을 보낸다면 조씨와 회친 하지 않을 수 없고,
저쪽에서 명을 내려 부르면 이쪽에서 아니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는 바로 다른 사람의 억누름과 부림을 받게 되는 길입니다.
결코 인질을 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인질을 보내지 말고 천천히 서쪽의 변화를 보다가 좋은 계책을 세워 막는 게 낫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조조와 한바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이는 의견이었다.
☆☆☆
듣고 있던 오태부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근의 말이 옳다. 결코 인질을 들여보내서는 안되니라"
그러고는 곧 손권을 불러 뜻을 전했다.
맹장 손견의 아내요, 강동의 소패왕이라 불리는 손책의 어머니다운 간섭이었다.
그때 것 뜻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손권도 어머니가 그렇게 권하자 흔연히 따랐다.
조조가 보낸 사자를 겉으로는 융숭히 대접했으나
끝내 아들을 조정에 들여보내지는 않았다.
그 일로 손권의 결의를 짐작한 조조는
그때부터 강남으로 내려갈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북방이 완전히 평정되지 않은 때라
남쪽으로 군사를 낼 틈이 없었다.
원소를 깨뜨렸다 해도
그 아들들이 오랜 기반에 의지해 만만찮게 재기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조조가 군사를 몰고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손권도 조조의 속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조조가 내려오기 전에
강동의 기반을 더욱 든든히 해둔다는 뜻으로 황조 토벌에 나섰다.
☆☆☆
건안 8년 11월의 일이었다.
손권은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대강에서 황조와 싸웠다.
황조는 잇달아 싸움에 졌으나 곧 손권에게도 이롭지 못한 일이 생겼다.
손권의 부장 중에 능조란 이가 있었다.
손권이 잇달아 싸움에 이기자 기세가 오른 능조는
가벼운 배로 앞장서서 황조의 군사들이 지키는 하구로 쳐들어갔다.
이때 하구를 지키던 황조의 장수는 감녕이란 부장이었는데
능조를 한 화살로 쏘아 죽여 버렸다.
장수를 잃은 손권의 군사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능조의 아들 능통이
열 여덟의 나이로 아비 곁에 있다가 힘을 다해 싸워 아비의 시체를 빼앗아 돌아왔다.
하지만 손권의 군사는 그 일로 예봉이 꺾인 셈이었다.
거기다가 바람의 방향까지 이롭지 못해 손권은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동오로 되돌렸다.
그런데 동오에 돌아와서도 또다시 손권에게 좋지 못한 일이 터졌다.
다름 아닌 아우 손익의 일이었다.
손익은 그때 단양의 태수로 나가 있었는데 사람됨이 모질고 술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술에 취하면
자주 사졸 들에게 매질을 해 적잖이 미움을 사고 있었다.
태수 손익이 사졸 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는 걸 본
독장 규람과 군승 대원은 슬그머니 딴마음이 생겼다.
손익을 죽이고 자기들이 단양을 차지하고 싶어진 것이었다.
이에 규람과 대원은 손익 곁에서 일하는 변홍까지 끌어들여 손익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
때마침 고을의 여러 장수와 현령들이 모두 단양으로 모일 일이 있었다.
손익은 크게 잔치를 열고 그들을 대접하려 했다.
태수로서 아랫사람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질탕히 술이나 즐기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손익의 사람됨에 비해 그의 아내 서씨는 아름답고도 슬기로웠다.
거기다가 또 점을 매우 잘 쳤는데
그 날도 남편을 위해 점괘를 빼보니 몹시 불길했다.
이에 서씨는 손익에게 밖에 나가 술자리를 벌리지 않도록 권했다.
그러나 손익은 그 같은 아내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기어이 술자리를 벌였다.
밤이 오래되어 자리가 파할 무렵이었다.
규람 대원과 한패가 된 변홍이 미리 칼을 품고 문 밖에 나가 숨어 있다가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나오는 손익을 한칼에 베어 죽여버렸다.
그러자 규람과 대원은 변홍과 남몰래 했던 약조를 저버리고 변홍을 묶은 뒤
다음날 태수를 죽인 죄를 물어 저자거리에서 목베어 버렸다.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더니
실로 교활하면서도 비열한 위인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규람과 대원은
거기서 한술 더 떠 손익의 재산과 시첩(侍妾)까지 모두 차지했다.
변홍 혼자 손익을 죽였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두 사람의 행동이었다.
그 중에서도 규람은
손익의 아내 서씨의 아름다움이 탐나 한층 뻔뻔스런 수작을 벌였다.
"나는 그대 남편의 원수를 갚아주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나를 따라야 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집안에 들어앉아 있어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일이 돌아가는 것으로 내막을 대강 어림잡고 있던 서씨는 그 말에 기가 막혔다.
도적이 남편을 흉계로 죽이고
이제는 자기까지 욕보이려 들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슬기로운 그녀는
낯빛이 변해 규람을 꾸짖는 대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지아비를 잃은 지 오래되지 않아 급히 장군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삭망이 되기를 기다려 제사를 올리고 상복을 벗은 뒤에
장군을 가까이 모셔도 늦지 않을 것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규람이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말이었다.
거기다가 서씨의 아름다움에 이미 반이나 얼이 빠져 있던 그라
두말 않고 서씨의 말을 따랐다.
한편 거짓말로 급한 자리를 면한 서씨는
가만히 사람을 보내 죽은 남편의 심복인 손고와 부영 두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불려오자 서씨는 울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돌아가신 남편께서 살아 계실 때
항상 두 분께서 충성스럽고 의롭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제 규람과 대원 두 도적이 우리 남편을 모살(謀殺)하고
그 죄는 변홍에게 엎어 씌운 뒤 우리 집의 재산과 노복을
모두 나누어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손고와 부영을 바라보는 서씨의 눈길에는 푸른 불길이 이는 듯 했다.
대강 짐작은 했으나
증거가 없어 일이 되가는 꼴만 살피고 있던 손고와 부영도
그 말을 듣자 긴장한 얼굴로 서씨를 쳐다보았다.
☆☆☆
서씨는 그런 둘에게 매달리듯 얘기를 계속했다.
"규람 그놈은 또 이 몸까지 차지하려 덤벼들었습니다.
첩은 거짓으로 허락하는 체하며 그놈을 안심시켜 놓았습니다만
첩이 욕을 면하고
선부의 원수를 갚느냐 못 갚느냐는 오직 두 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두 분께서는 오늘밤으로 사람을 뽑아 시 아주머님 되는 오후께
두 도적의 일을 알리시는 한편 가만히 계책을 꾸며 두 도적을 죽이도록 하십시오.
이 욕과 한을 씻어주신다면 그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아니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문득 몸을 일으켜 손고와 부영에게 두 번 절을 했다.
☆☆☆
두 사람도 함께 울며 맹세하듯 말했다.
"우리들은 평소 돌아가신 태수님의 은의를 두텁게 입었으면서도
오늘까지 죽지 않고 있는 것은 다만 그 분의 원수를 갚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부인께서 명하시는데
어찌 있는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그날 밤으로 믿는 사람을 뽑아
손권에게로 보내는 한편 규람과 대원을 죽일 계책까지 마련했다.
☆☆☆
며칠 안 돼 삭망이 되었다.
서씨는 미리 짠 대로 손고와 부영을 불러
밀실 휘장 뒤에 숨긴 후 남편의 빈소 앞에 제물을 차렸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기 바쁘게
상복을 벗어 던지고는 곧 단장하기 시작했다.
데운 물로 깨끗이 씻은 몸에 고운 옷을 골라 입었는데
얼굴에는 제법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서씨 부근에 숨겨둔 제 사람으로부터
그 같은 소문을 들은 규람도 몹시 기뻤다.
오늘밤에는 드디어 아리따운 서씨를 품어보는구나 싶어
황홀하게 기다리는데 오래잖아 서씨에게 사람이 왔다.
"장군께서는 안으로 드시랍니다"
그 말을 들은 규람은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한달음에 달려갔다.
서씨는 이미 술상을 보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곱게 단장한 서씨에게 넋을 잃은 규람은
서씨가 내미는 대로 넙죽넙죽 술을 받아 마셨다.
제아무리 장사라 해도 마신 술이 어디 갈까,
규람은 곧 취해 버렸다.
"이제는 밀실로 드시지요"
서씨는 이미 취한 규람에게 한층 고혹적으로 속살거렸다.
☆☆☆
취한 중에도 규람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비척비척 밀실로 따라 들어갔다.
"손, 부 두 장군은 어디 계시오?"
갑자기 서씨가 휘장 쪽을 보며 소리쳤다.
손고와 부영이 휘장 뒤에서 칼을 빼들고 기다리듯 달려나왔다.
놀란 규람이 어찌 막아보려 했으나
손발 한번 제대로 놀려보지 못하고 두 사람의 칼에 찔려 나동그라졌다.
손고와 부영은 다시 한 칼질을 더해
규람의 숨통을 온전히 끓어 버린 뒤에야 칼을 거두었다.
서씨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원까지 불러들여 죽여 버렸다.
함께 손익을 죽인 규람의 부름이라는 말에 의심 없이 왔던 대원 또한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손고와 부영의 칼에 목을 잃고 만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씨는 규람과 대원의 가솔들이며
그들을 따르던 졸개들까지 모조리 죽인 뒤에야
다시 상복을 입고 죽은 남편의 영전에 제사 지냈다.
제물들은 다름 아닌 규람과 대원의 목이었다.
실로 매서운 여자였다.
☆☆☆
규람과 대원이 손익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손권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단양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손권은 손고와 부영의 공을 높이 여겨
아문장으로 삼은 뒤 단양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서씨와 아우의 가솔들을 거두어 강동으로 돌아갔다.
손익이 죽은 일 뒤로 강동은 한동안 조용했다.
손권은 그 동안 각처의 산적들을 뿌리뽑아 백성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한편
대강에 있는 전선 7천여 척을 모두 수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세워
강동의 수륙 군마를 모두 거느리게 했다.
☆☆☆
그럭저럭 세월이 가 어느새 건안 12년이 되었다.
그해 12월이 되자 전부터 시름시름하던 오태부인의 병세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손견의 정실이요 손책과 손권 형제의 친어머니인 만큼 여느 아낙과는 달라
오태부인은 자신이 다시 일어나기 어려움을 깨닫자 주유와 장소를 불러 놓고 말했다.
"나는 원래 오(吳)나라 땅 사람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아우 오경과 더불어 월나라 땅으로 옮겨 살았다.
뒤에 손씨에게 시집와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가 바로 책이고 둘째가 권이다.
책을 낳을 때는 달을 가슴에 품는 꿈을 꾸었고
권을 낳을 때는 해를 품었는바,
점치는 이가 말하기를
달과 해를 품는 꿈을 꾸면 반드시 그 자식이 귀하게 되리라 했다.
그런데 불행 이도 책은 일직 죽고 이제 강동의 기업은 권에게 맡겨졌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마음을 합쳐 권을 돕도록 하라.
나는 죽어서도 그대들의 은공을 길이 잊지 않으리라"
그런 다음 손권을 불러 당부했다.
"너는 자포(장소)와 공근(주유)을 스승 섬기는 예로 하되
결코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
또 내 동생은 나와 함께 네 아버지에게로 시집왔으니
너에게는 바로 어머니가 된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동생을 이 어미 섬겼듯 하라.
그리고 그 소생인 네 어린 누이 또한 은혜로 기르고
뒷날 나이가 차거든 좋은 사윗감을 골라 짝지어 주도록 하라"
오태부인은 그렇게 일일이 죽은 뒤의 일을 당부한 뒤 곧 숨을 거두었다.
이에 손권은 슬피 울고 정성을 다해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
그럭저럭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어느 정도 안의 일을 수습한 손권은
다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황조를 칠 일을 의논했다.
여느 때처럼 매사에 온건한 장소가 나서서 말렸다.
"아직 상을 다 치르기도 전에 군사를 움직여서는 아니 됩니다"
주 무왕의 옛일이라도 떠올린 것이리라.
주유가 당치 않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원수를 갚고 한을 씻는 데 무슨 때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강온이 정면으로 부딪치니
손권은 뜻을 정할 수가 없었다.
그때 북평의 도위로 있던 여몽이 들어와 손권에게 알렸다.
"제가 용추의 수구를 지키고 있는데 황조의 부장 감녕이 항복해 왔습니다.
제가 자세히 물으니
감녕은 자를 흥패라 하며 파군 임강땅 사람이었는데,
서사에 두루 통달했으며, 기력도 대단했습니다.
일찍이 협행으로 노닐기를 좋아하다가
쫓기는 무리를 모아 대강으로 휘젓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 감녕은 허리에 구리로 된 방울을 차고 다녔는 바
사람들은 그 방울소리만 들어도 모두 몸을 피할 정도였습니다.
또 항상 서천에서 나는 좋은 비단으로 돛을 만들어 달고 다니니
사람들은 그의 패거리를 금범적이라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뒤에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
좋은 일을 하고자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유표가 큰 일을 할 만한 인물이 못 됨을 알고
다시 동오로 오려고 하다가 우연히 황조를 만나 하구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황조의 사람이 되어
우리와 창칼을 맞댔다가 지금에 와서야 오려는 까닭은 무엇이오?"
한편으로는 감녕이란 인물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아직 의심스런 데가 있는지 손권이 물었다.
여몽이 한층 열을 올려 대답했다.
"전에 우리 동오가 화조를 쳤을 때,
감녕의 힘을 입어 하구를 회복했음에도 황조는 감녕을 매우 박하게 대접했습니다.
도독인 소비가 여러 차례 그런 황조에게 감녕을 천거했지만
그때마다 황조는 말했습니다.
'감녕은 원래 강물 위에서 도적질이나 하던 자다. 어찌 무겁게 쓸 수 있는가?'
이에 감녕은 황조에게 한을 품게 된 것입니다.
소비는 감녕의 그런 마음을 알고
술을 가지고 감녕의 집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그대를 천거했으나 우리 주공께서는 쓰실 마음이 없는 듯하오.
해와 달은 쉬지 않고 뜨고 지니 우리 인생 길어야 얼마이겠소?
그대는 마땅히 먼 앞날을 두고 일을 꾀해 보도록 하는 게 좋겠소.
그대에게 악현의 장 자리를 얻어 줄 테니 그리로 가서 스스로 거취를 정해보시오'
따라서 소비 덕분에 감녕은
하구를 벗어나 강동으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로 이리로 오지 않고 공에게로 가 있소?"
손권이 다시 물었다.
여몽이 얼른 대답했다.
"주공께서는 감녕이 황조를 구해주기 위해
우리 장수 능조를 죽인 일을 잊으셨습니까?
감녕은 그게 두려워 바로 주공께로 오지 못하고
먼저 제게로 사람을 보내 물어온 것입니다.
저는 주공께서 어진 이 찾기를 목마른 자가 물 찾듯 하시며
지난날의 원한을 오래 기억하지 않음을 일러줌과 아울러
각기 그 주인을 위해 한 일인데
어찌 노여워하실 리 있겠냐고 감녕을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제야 감녕도 마음이 놓이는지 기꺼이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하기를 주공을 찾아 뵙고 한 번 더 뜻을 알아봐 달라 한 것입니다"
그제야 손권도 감녕의 투항이 진심임을 믿을 수 있었다.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홍패를 얻었으니 틀림없이 황조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몽에게 감녕을 데려 오라 일렀다.
☆☆☆
감녕이와 세 번 절하며 예를 마치자
손권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홍패가 이렇게 와 내 마음을 크게 사로잡으니
구태여 지난날의 한을 기억하고 안하고가 무슨 뜻이 있겠소?
바라건대 홍패는 조금도 의심치 마시고
내게 황조 깨칠 계책이나 좀 가르쳐 주시오"
손권의 그 같은 말에
감녕도 얼굴 가득 감격의 빛을 띠며 대답했다.
"지금 한실은 날로 위태로우니
조조가 마침내 찬역(簒逆)할 것임에 틀림없는 까닭입니다.
형남의 땅은 조조가 반드시 차지하려 들 땅으로,
그 주인인 유표는 멀리 헤아릴 줄 모르는 데다
그 아들들 또한 어리석고 못나
기업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할 것입니다.
명공께서는 때를 잃지 마시고 일찍 도모하시도록 하십시오.
만일 때를 늦췄다가는 조조가 먼저 차지하게 될 것이니
지금이 마땅히 황조를 깨뜨리고 형남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황조는 늙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재물 모으는 데만 힘을 써
심하게 그 백성을 쥐어짜니 그곳의 인심은 모두 황조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거기다가 싸울 무기도 갖추지 못하고 군사들에게는 지킬 법령도 없으니,
만약 명공께서 가서 들이치신다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황조를 깨뜨린 뒤에는
북을 티며 서쪽으로 나아가 초관에 터를 잡고 파족을 도모하도록 하십시오.
그곳마저 손에 넣으신다면
명공께서는 가히 폐업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공명처럼 세밀한 것은 아니나
감녕 또한 천하삼분의 형세를 대강은 짐작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만 각기 섬기는 주인이 달라
하나는 명쾌한 천하삼분책(天下三分策)으로 나오는 대신
하나는 쟁패에서 우위 확보를 위한 거점으로서만
서촉과 형주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실로 금옥같이 귀한 말씀이오"
☆☆☆
손권은 그렇게 감탄하고
그 날로 황조를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주유를 대도독으로 세워 수륙의 군사를 모두 다스리게 하고
여몽은 전부의 선봉에, 동습과 감녕은 부장으로 삼은 뒤
손권 스스로 10만 대군을 이끌고 나선 것이었다.
세작이 그 소문을 듣고 나는 듯 강하로 달려가 알렸다.
황조는 급히 무리를 모아 의논 끝에
소비를 대장으로 삼고 진취와 등룡을 전부의 선봉으로 앞세운 뒤
강하의 군사를 모조리 끌고 나가 적을 맞게 했다.
진취와 등룡은 각기 일대의 큰 싸움배를 이끌고
강을 내려가 면구를 막으러 갔다.
배 위에는 각기 천여 벌의 강한 활과 쇠뇌를 벌려 놓고
강물 가운데다 굵은 동아줄로 배들을 묶은 채 띄워 몰려오는 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동오의 군사들이 면구에 이르렀다.
진취와 등룡의 큰 싸움배에서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화살과 쇠뇌살이 한꺼번에 오군(吳軍)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에 오군은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리 물러났다.
감녕이 동습에게 말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더 나아갈 수가 없구려. 달리 꾀를 내야겠소"
그러고는 작은 배 백여 척을 끌러내 배마다 날랜 군사 쉰 명을 태웠다.
스무 명은 배를 저을 군사요, 서른 명은 갑옷을 받쳐입고 칼을 든 군사였다.
"가자!"
채비가 다 되자 감녕이 앞장선 뱃머리에서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거기 따라 백여 척의 작은 배는
개미 떼처럼 진취와 등룡의 큰 싸움배 쪽으로 몰려갔다.
진취와 등룡은 군사들을 재촉해
전처럼 활과 쇠뇌를 퍼부었으나 소용없었다.
감녕의 작은 배들은 화살을 무릅쓰고 똑바로 큰 싸움배 곁에 다가가
그들을 얽고 있는 동아줄을 끓어버렸다.
동아줄이 끓긴 큰 싸움배가 각기 흩어져 기우뚱거리는 걸 보자
감녕은 몸을 날려 뱃전으로 뛰어올라갔다.
마침 거기 있던 적장 등룡이 막아보려 했으나 애초부터 될 일이 아니었다.
감녕의 한칼에 쪼개지니 멀리서 그걸 본 진취는 놀라 배를 갈아타고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진취도 그리 멀리 갈 팔자는 못됐다.
진취가 배를 몰아 달아나는걸 본 여몽이 작은 배에 뛰어내리더니
스스로 노를 저어 진취의 배로 다가가 불을 질러 버렸다.
진취는 급히 배를 버리고 강 언덕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러나 여몽은 목숨을 내걸고 마침내 진취를 베어 죽여버렸다.
☆☆☆
그 무렵에야 황조의 대장 소비가
군사를 이끌고 강 언덕에 이르렀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기세가 오른 오군이 새까맣게 강 언덕으로 기어오르니
당해내지 못하고 황조의 군사는 크게 패했다.
소비는 낙담하고 황망히 급히 달아났다.
그러나 그 또한 등룡이나 진취보다 별로 나을 게 없었다.
동오의 반장을 만나 몇 합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끄럽게도 사로잡혀 버린 것이었다.
소비는 곧 빠른 배에 실려 손권 앞으로 끌려갔다.
적의 대장이니 손권이 그리 곱게 볼 리 없었다.
한번 힐긋 노려보고는 곧 좌우에게 영을 내렸다.
"죄인을 싣는 수레에 가두어 두어라. 황조를 사로잡는 날 함께 목베어라!"
그러고는 3군을 재촉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조가 숨어 있는 강하를 들이쳤다.
황조는 암담했다.
믿던 장수들은 모조리 죽거나 사로잡히고
군사들도 모두 꺾여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어느 날 파수가 없는 걸 틈타
강하를 버리고 형주로 달아날 양으로 성문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게 바로 상대방의 계략에 빠진 것이었다.
감녕은 황조가 형주로 달아날 줄 미리 짐작하고 일부러 성문을 비워둔 채
형주로 가는 길목이 되는 동문밖에 군사들을 매복시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는 채 겨우 수십 기를 이끌고
동문으로 빠져 나온 황조는 무턱대고 형주로만 달렸다.
그러나 몇 리 가기도 전에 크게 함성이 일더니
감녕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황조가 그런 감녕을 보고 사정하듯 말했다.
"나는 지난날 그대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핍박하시오?"
감녕이 그 말을 받아 황조를 꾸짖었다.
"지난 날 내가 강하에 있을 때 쌓은 공이 적지 않았건만
너는 나를 한낱 강에서 도적질하는 수적으로만 대했다.
그래 놓고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그 말을 듣자 황조는 감녕에게 더 빌어봤자 소용없음을 알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감녕은 앞을 가로막는 황조의 졸개들을 흩어버리고
똑바로 황조를 뒤쫓았다.
한참을 쫓거니 쫓기더니 하며 달리는데
홀연 감녕의 등뒤에서 함성이 일었다.
감녕이 돌아보니 자기편인 정보였다.
감녕은 정보가 자기와 공을 다투려 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 잡은 황조를 정보에게 빼앗기기 싫어 얼른 화살을 빼내 살을 먹였다.
시위 소리와 함께 화살은 그대로 황조의 등판을 꿰뚫었다.
황조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감녕은 죽은 황조의 목을 베어 정보와 군사를 합친 뒤
뒤따라온 손권에게 그 목을 바쳤다.
"그 놈의 목을 나무상자에 넣어 잘 간수해 두어라.
강동으로 돌아가 선친의 영전에 제물로 바치리라"
그러고는 3군에 두터운 상을 내림과 아울러
감녕을 높여 도위로 삼았다.
☆☆☆
공을 논하고 상을 베푸는 일이 대강 끝나자
손권은 다시 새로 뺏은 강하 지킬 일을 의논했다.
군사를 나누어 남기고,
마땅한 대장을 세워 강하를 영구히 동호의 땅으로 삼으려 함이었다.
손권의 그 같은 뜻을 안 장소가 말렸다.
"외로운 성은 지키기 어려우니 우리에게는 바로 강하가 그러합니다.
차라리 이대로 강동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유표는 우리가 화조를 깨뜨린 걸 알면
반드시 그 원수갚음을 하러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강동에 편안히 있으면서
멀리서 오느라 수고로운 그들을 기다려 들이친다면
유표는 반드시 폐하고 말 것이니
그 승세를 타고 공격해 나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면 형, 양 두 주를 얻는 일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일껏 빼앗은 땅을 다시 내놓고 돌아서기 아깝기는 했지만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
이에 손권은 장소의 말에 따라 강하를 버리고
강동으로 군사를 되돌렸다.
한편 동오에 사로잡힌 바 된 황조의 대장 소비는
함거 안에 갇힌 채 가만히 사람을 보내 감녕에게 구해주기를 빌었다.
감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에게 말했다.
"설령 소비가 그대를 살려주기를 빌지 않는다 한들 내가 어찌 그를 잊겠는가?"
그러고는 알맞은 때를 기다렸다.
오래잖아 손권의 군사는 오회땅으로 돌아갔다.
손권은 돌아가기 바쁘게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소비의 목을 자르도록 했다.
황조의 목과 나란히 선부의 영전에 올리고자 함이었다.
그 말을 들은 감녕은 한달음에 손권에게 달려가 조아리고 울며 말했다.
"만약 지난날 소비가 없었더라면
제 몸은 벌써 죽어 개골창이나 구덩이를 메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찌 장군 휘하에 일하는 걸 바랄 수 있기나 하겠습니까?
이제 소비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지난날 그가 제게 베푼 은혜와 정을 생각하니 차마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제 모든 관작(官爵)을 돌리겠사오니
소비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
그 말에 손권이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가 이미 그대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다면 나는 그대를 위해 그를 용서해 주겠소.
하지만 그가 달아난다면 어쩌겠소?"
"죽을 목숨이 산 것만으로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는 터에
달아날 까닭이야 있겠습니까?
만약 소비가 달아난다면 제가 그 목을 잘라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감녕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
이에 손권은 소비를 용서하고 황조의 목만으로 손견의 영전에 제사지냈다.
손견이 죽은 지 16년, 손책, 손권 두 대에 걸친 복수였다.
그러나 죽은 황조로 보면 일찍이 유표의 사람이 되어
손견과 유표의 싸움에 말려든 죄밖에 없으니 억울할 수도 있었다.
죽은 아비를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 뒤
손권은 다시 크게 잔치를 열어 문무 관원들을 불러들이고 그 공을 치하했다.
그런데 한참 술자리가 흥겹게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장수 하나가 돌연 크게 소리내어 울더니
칼을 빼들고 감녕에게 덮쳐갔다.
감녕은 황망히 앉아 있던 의자를 들어 그의 칼을 막으려 했다.
손권이 놀라 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능통이었다.
감녕이 아직 강하에 있을 때
황조를 위해 죽인 동오의 장수 능조의 아들인데
감녕과 한자리에 마주앉게 되자
문득 아비 죽인 원한이 가슴에 복 바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손권이 아비의 원수 갚음을 위해 차린 떠들썩한 제사가
능통의 복수심을 더욱 자극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손권은 얼른 능통에게 달려가 그 손을 잡아끌며 달랬다.
"홍패가 경의 부친을 쏘아 죽이게 된 것은
그때는 각기 주인이 달라 그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네.
하지만 이제는 다르네.
홍패는 이미 한 집안 식구가 되었는데 어찌 지난날의 원수를 따질 수 있겠나?
모두 내 얼굴을 보아 덮어두게나"
그러나 능통은 더욱 슬피 목을 놓으며 말했다.
"아비를 죽인 자와는 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 하였거늘,
그 원수를 눈앞에 두고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권과 다른 권원들이 두 번 세 번 좋은 말로 달래도
끝내 성난 눈길로 감녕을 노려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손권은
그 날로 감녕에게 군사 5천과 배 백 척을 주어 하구로 가도록 했다.
명목이야 그곳을 지키라는 것이지만
사실인즉슨 감녕을 우선 능통의 눈에 띄지 않을 곳으로 숨긴 셈이었다.
감녕은 손권에게 절하여 감사한 뒤 군사들을 이끌고 하구로 떠났다.
손권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또 이번에는 능통의 벼슬을 높여 승펼도위로 삼았다.
그렇게 되자 능통도 한을 품은 채로나마
겉으로는 더 원수 갚음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안의 일을 대강 정리한 동오는
곧 형주와 양양을 겨냥한 싸움 준비에 들어갔다.
널리 사람과 제목을 모아 싸움배를 만들게 하고
한편으로는 군사를 나누어 대강 남쪽 곳곳을 지키게 했다.
뿐만 아니라 숙부 손정에게는 오희를 맡기고
손권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시상에 머물렀으며,
주유는 파양호에서 수군을 조련하여 곧 있을 싸움에 대비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