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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일제에 의한 식민지근대화론 및 조선 스스로의 개혁 가능성이 적었다는 말은....
TheBules 추천 0 조회 544 11.10.18 19:49 댓글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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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1.10.19 09:13

    제가 광무개혁을 예로 든것은, 그 개혁이 완벽한 개혁이었다가 아닌, 조선도 충분히 자주 근대화를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말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라는 말처럼, 전제 독재주의를 단기간에 철폐하기에는 상당히 힘들었겠죠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계속 언급하시는 그런 정치적인 부분을 일단 차치하고 농상공업 등 경제적인 부분을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많은 논문들과 역사서에도, 광무개혁은 조금씩 경제적 성과가 드러났던 개혁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제의 침략때문에 좌절되긴 했으나....

  • 11.10.19 13:57

    다스라니스키// 뭐 광무개혁이 그닥 큰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전제왕정'이라서 후진적이라는 것은 좀 재론의 여지가 있군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정치형태가 전제왕정 -> 입헌군주정 -> 공화정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매우 단선적인 입장인 겁니다. 당장 '왕정'이라는 것으로만 보더라도, 1차대전까지 세계에서 꼴랑 2개였던 공화제의 미국-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온존했어요. 게다가 각국의 정치형태는 그 나라의 특성을 반영하는 겁니다. 전근대적 국가관과 근대적 국가관이 혼재하던 당시 대한제국의 경우, 러시아 [차르체제]를 모방한 정치형태도 이전에 비하면 '발전'입니다...^^;

  • 11.10.19 13:59

    또한 독립협회 및 그 중핵인물인 필립 제이슨(서재필)의 경우는 '친일적 행보'가 여러차례 지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들이 선진적 체제를 주장했다는 점에만 주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 11.10.19 16:28

    서재필은 친일맞습니다. 일본과 연계된 쿠데타였던 갑신정변의 주모급중 하나였고 이후 갑신정변의 다른 주모자급인 윤치호, 박영호 등과 함께 일본의 도움으로 해외로 피신합니다. 후일 미국국적을 취득한 것은 국내복귀를 위해서였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1.10.19 09:17

    그럼 그런 정치적인 부분들을 왜 제껴놓고 생각하느냐 라고 생각하실겁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선 다른 문제를 다 떠나서, 일단 나라 그 자체가 생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왕조가 곧 국가다 라는 개념은 없구요, 일단은 한국인들의 국가가 생존해야 하는게 가장 큰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무슨말이냐면, 세계 어느국가를 봐도 구시대적인 체제를 입헌군주제 혹은 공화정으로 전환하는데에는
    실로 크나큰 대가를 치렀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그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으므로, 일제강점기가 그다지 나쁘게만 볼것도 아니다
    라는것은 매우 지나친 시각입니다

  • 작성자 11.10.19 09:20

    국민들을 무시하는 지배계층은 언젠가는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된다는 것은 역사의 오랜 진리입니다.
    비록 여러가지 개혁들로 인해 조선 백성들의 인식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는 했으나 아직까진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고, 대대적으로 구체제를 뒤엎자 라는 생각이 나오기엔 무리가 있었죠
    그렇다면, 어찌됐든 대한제국이 더 생존하면서 자주개혁을 보다더 진행시키다보면 결국엔 국민들의 인식에도
    조금씩조금씩 변화가 찾아왔을거라는 겁니다.
    교육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 작성자 11.10.19 09:23

    단적으로 말해서, 배가 고프면 다른 생각이 안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다른 쪽으로도 관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점에서, 구시대적인 체제야어쨌든 일단 한국 스스로의 개혁이 계속 진행이 되었다면
    결국 제가 말씀드린 쪽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을것이라고 봅니다.
    입헌군주제로 만들던, 아예 황실을 없애서 공화정을 만들던 했을겁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일제강점기보다 그래도 우리들만의 국가가 계속 존재했어야했습니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얻은 상처와 피해는 식근론의 일부 긍정적 효과보다 엄청나게 많았으니까요...

  • 작성자 11.10.19 09:26

    마지막으로, 최근 사학계의 흐름이 재평가하는 쪽으로 가고 있듯이, 고종황제는 최선을 다한 왕이었습니다.
    다만 그 스스로가 어찌됐든 구체제의 뒤를 이은 사람이었으니 그 한계점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뿐이죠.
    그에 따라 고종과 그를 보좌하는 보수 집권층의 정치의식 자체가 아직은 전근대적인 생각이었겠죠
    그래서 대한국 국제따위가 나온거겠고요. 다만 고종황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명성황후시해이후로, 본인의 목숨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꿋꿋이 일본과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며
    조금씩조금씩 개혁을 추진했었습니다

  • 11.10.19 14:07

    다스라니스키// 뭐 <대한국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논쟁들이 상당히 많기에 할말은 많습니다만, <대한국제>는 이후로 이어질 여러 법률의 한 부분입니다. 물론 그런 [근대적 법체제]르 완성하기 전에 대한제국이 망했고요...-_-; 또한 <대한국제>의 반포 이후로도 국제가 정한 반역자들이 수두룩하게 나왔지만, 열강을 등에 업은 그들이 반역자로 처벌받은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정책은 각 열강의 영향을 받은 관료들에 의해 상당한 부침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ㅎㅎ;;

  • 작성자 11.10.19 19:15

    "모든 국가에서 지배계층이 민중에게 심판받은 건 아닙니다." 라고 하셨는데 저는 모든 국가라고는 한적이 없습니다만...
    다스라니스키님의 글을 보다보면 역사를 너무 결과론적으로만 보시는 듯 하네요
    그리고 왕정 자체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듯 합니다. 선진 사회라는 유럽만 보더라도 입헌 군주정 형태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설사 실패한 혁명이라할지라도, 거기에 큰 의의를 찾는 것처럼, 비록 구한말 우리나라가 나라를 빼앗기기는 했으나
    알게모르게 개화기때 자주독립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신 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 작성자 11.10.19 19:18

    아 그리고 "과연 국민의 의식이 조금씩 개선될 수 있었을지도 불투명합니다. 어디까지나 교육기관 설립의 주체는 정부인 만큼..." 이라고 하셨는데, 교육기관 설립의 주체는 정부라는 말부터가 오류네요. 정부 못지않게 민간에서도, 아니 오히려 더 많이 교육기관을 만들어냈고 거기서 근대의식을 가진 조선인들이 꽤 배출되었습니다.
    과연 국민의 의식이 조금씩 개선될 수 있었을지도 불투명합니다 라는 이 말씀은 너무나도 지나친 억측일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했음에도 결국 나라가 뺏기지 않았느냐라고 하실꺼같은데, 그것또한 결과론일 뿐입니다...
    저는 그 과정을 높게 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1.10.19 19:21

    그리고 의회 설립과 같이 주권이 국민들에게 고루 퍼졌다면 강제병합이라는 비참한 지경까지 안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라고 하셨는데,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이미 정한론이 널리 퍼진 상태였고, 아예 작정하고 조선을 먹으려는 녀석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정부가 민주적 정부던 왕정이던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민주적 정부가 들어서서 일제의 침탈을 막아낼 정도였다면 고종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였을 겁니다...
    그 당시 조선은 너무나도 힘이 없었고 외교력도 전무한 상태였으며, 개화에 필요한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겁니다

  • 11.10.19 22:36

    다스라니스키// 근대시기 '입헌군주정'이었던 나라들 이 공화정과 다른 부분이 없었다는 점은 좀 납득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입헌군주정은 대체로 국가원수인 왕과 왕실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꼴랑 2개 뿐이었던 공화제의 미-불과 입헌군주정이었던 영-독의 사례를 비교해도 상당히 차이가 날 뿐더러, 동아시아로 와서 일본이 가세하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죠...ㅋ

    그리고 좀 과장이 섞인 것이, 고종이 권력을 자기 손에 쥐고 있어서 일제에게 손쉽게 나라가 넘어갔다는 얘긴데- 사실 이 시기에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진국인 일본조차 [국민주권]의 개념이 희박했던 시기입니다.

  • 11.10.19 22:43

    이런 상황에서 "주권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얘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입니다. 이건 현대에도 실제로는 잘 안되는 일이에요...ㅋ 설사 국민주권이 가능했다 치더라손, 구한말은 약육강식의 근대시기입니다.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의 인민들도 누를만한 힘을 이미 확보한 상황이었는데- 제대로 가능하지도 않은 국민주권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요?! 대한제국은 [근대국민국가]도 아니었고, 그길로 가는 행보를 막 딛은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주장입니다~ 이건...ㅎㅎ;; 전근대-근대 혼재의 국가-왕에 대한 충성심을 앞세운 수차의 거국적 '의병운동'도 제압당한 상황입니다.

  • 11.10.19 22:47

    대한제국 대신들을 총칼로 겁박하고, 황제의 옥새를 가져다가 마음대로 찍으며, 황제의 서명을 위조하기까지 했던 일본이 '약소국'의 국민주권 따위를 날려버리는 것은 이미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_-;

    대한제국 멸망의 책임은 고종 뿐만 아니라, 시대를 살아간 조선사회와 민중이 함께 지고 가야할 문제입니다. 대원군의 개혁조차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거꾸러지는 보수적인 사회, 왕이 나서서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대다수 인민의 여론이 '위정척사'로 기울어 있었던 절망적인 상황... 부패의 만연과 사회전체의 이완이 대한제국 멸망의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후발근대국가들이 거치는 강력한 [집권적 정부]마저 여론을

  • 11.10.28 08:51

    뒤에 업은 보수세력에 의해서 번번히 뒤집어지던 이 절망스러운 나라에서, 개항 후 무려 30여년을 버텨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물론 고종이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위정척사적 분위기가 만연한 '국내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청국이나 일본에 기대는 악수를 두기는 했으나- 시대적 정황상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조선민중이 눈을 뜨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나라의 운명이 결판날 그때였어요. 개항시기 애초에 약소국이었던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도 부족했고요...-_-;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1.10.19 09:33

    제가 문명을 언급한건,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은지 분명히 아실텐데요....;;
    제가 아마존 오지, 아프리카에도 문명이 있엇다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시나요??
    아프리카의 여러 왕국들과 아메리카의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 등등... 모두 대단히 뛰어난 문명이었습니다.
    저는 특정 인종 우월론을 대단히 경멸하고 있으며, 모든 인종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봤을때 한중일 같은 한자문화권의 나라들은 대단히 오래전부터 발전을 했던 나라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것 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근대화를 하는 문제에서, 보다더 유리한 이점에 있었다 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제가 표현이 서툴러서요

  • 11.10.19 23:10

    TheBules// 한자문화권이라기 보다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네요...^^;

  • 11.10.19 18:03

    문제는 근대화를 할때까지 버틸수가 없었다는 점이죠. 길게 봐서, 외부 강대국의 침공만 없었다면야 말리인들 근대화를 못 했겠습니까?

  • 11.10.19 18:53

    ! 동방의 빛!?

  • 11.10.19 19:35

    적어도 말리에 비해서는 '초고속'으로 근대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11.10.22 22:40

    어째서 말리에 비해서 초고속 근대화가 가능했다고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침공 전까지만 해도 서아프리카 최강국 중 하나이던 말리의 송하이제국인데, 어째서 조선이 더 빠르다고 장담할 수 있죠?

  • 11.10.23 09:27

    동아시아의 조선은 전근대적이나마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와 정교한 [관료제]를 운용한 경험이 있는 나랍니다! 그 시기가 무려 천년에 가깝죠...ㅋ 이런 점은 근대화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소농층'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하게 받는 체제라는 점에서- 일단 '집권적 정부'가 들어서서 근대화를 시작하면 그 파급과 진행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얘깁니다. 같은 [동아시아 소농사회]였던 일본의 신속한 근대화 및 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작업이 좋은 예죠...^^; 다만 이런 "동아시아적 근대화"는 유교적 관존민비 의식 및 권위주의를 앞세우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는

  • 11.10.23 17:00

    좋은 얘기를 듣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직도 '부족사회'의 영향이 남아있던 말리같은 나라들은 이미 레베루 자체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유럽이 동아시아 수준의 중앙집권체제를 갖추는 것이 빠르게 잡아야 1700년대 프랑스가 처음이고, 이후 절대주의 등을 거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초부터 장기간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정교한 관료제를 성립시켰던 동아시아가, 훗날 이것을 근대적인 체제로 대체하면서 신속히 성장하는 점이 설명이 됩니다. 근데 이런 [전근대적 중앙집권체제]조차 성립시키지 못한 말리가 조선보다 빠른 근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겠느냐?! 저는 회의적으로 봅니다...^^;

  • 11.10.23 09:35

    아프리카 국가들을 굳이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근대는 물론이고 근대기까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레베루는 거의 하늘과 땅차입니다. 뭐 역갤 국까들이 설칠 때 보면 "조선은 아프리카나 마찬가지였다"면서 개드립질은 합니다만, 조선사회의 세부적인 부분, 즉 법률-행정체제의 운용 및 향촌사회의 형태나 지식인 계층의 동향 등의 여러 측면에서 아프리카와는 레베루 차이가 엄청나게 납니다...^^;

  • 11.10.22 14:10

    조선은 어차피 먹힐 운명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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