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출애굽기 34:1-9
제목 : 두 돌판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
우리가 지난 새해 첫 주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교회"라는 주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들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5주 동안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 은혜로 평안히 잘 지내셨는지요?
네, 잘 지내셨어요? 네, 우리가 "하나님 은혜로 잘 지냈다"라는 이 표현은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나를 도와주시는 것을 생각하고 또 의지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 알아가고 있다라는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아갈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더 굳건하게 세워지는 줄 믿습니다.
지난 주에 시편 139편을 나누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나누었는데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네,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 - 우리를 만드신 분,
그래서 "우리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나눴습니다.
"다 아신다" - 여기서 '안다'라는 표현은, 우리의 머리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관계 시간 속에서 관계를 통해 아신다라는 표현을 쓴다라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즉, 아침에 일어나서 "새 날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 호흡 주신 하나님 찬송합니다." 하고 시작하고요.
식사를 하면서도 "귀한 음식 잘 먹고 하나님을 위해 사랑하게 해주세요." 기도하시는 거죠.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내게 말씀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저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해 주세요." 기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내 삶 속에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누리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렇게 나와 항상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느낄 때
기쁘다 즐겁다라는 표현을 하고 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하나님을 알아가는, 누리는 기쁨이 있으신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경험한다 이런 분들은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감정이 업 다운하면서 어떤 때는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안 계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히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허락해 주셨잖아요.
이 말씀을 펴서 읽고 들으면서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내 삶 속에서 누려가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모세가 다시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오르는 장면입니다.
오늘의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본문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한번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의 말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판에 쓰리니" 아멘!
이 이 말씀은요, "모세야 처음 것과 같이 돌판 둘을 다듬어 만들어 가지고 올라와라
그러면 내가 처음에 썼던 그 말씀을 다시 이 판에 쓰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미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 십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에, 한 달이 지나고 40일이 되는 동안에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산 밑에 있었던 백성들은 두려움에 가득 찼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이 모세가 죽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두려움 속에 그들이 애굽에서 섬겼던 보았던 황소 모양을 한 금 송아지를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출애굽 하도록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라고 절하며 춤추었던 것이지요.
이 모습을 모세가 내려와서 봤을 때, 거룩한 의분에 가득 찬 모세가 하나님의 십계명 두 돌판을 내리쳐 깨트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십계명을 받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십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십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을 통해서
"이 말씀을 지킬 때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라는 약속의 말씀이 담긴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을 받기도 전에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게 되었어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 이 상황 속에서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다시금,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다시 십계명을 주시려고 모세를 시내산 위로 올려 보내신 것입니다.
바로 실패한 모든 인생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달라고 해서 먼 나라에 가서 다 써버렸어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하면서 마을 밖에까지 항상 나와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 아들이 멀리서 등장했을 때에,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달려가 끌어안고 입 맞추고 아들의 옷을 다시 입히고, 금가락지를 손에 끼우고 아들로 삼았지요.
송아지를 잡아서 함께 즐거워하는 잔치를 벌인 것이 바로 다시 살아갈 인생의 기회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또, 이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에게 찾아갔던 예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실 그때에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저주하고 그렇게 도망갔던 인생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도, 그렇게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제자의 마음 인생이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본래의 직업인 어부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실의에 빠져 있고 실망에 빠져 있는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았느냐?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라"
이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내렸더니, 많은 물고기를 잡았어요.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예수님 앞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었기 때문이죠.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새로운 사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실의에 빠져서 좌절한 그 베드로에게 다시금 살아갈 수 있는 사명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 이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오늘 실패한 인생,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다시금 십계명을 허락해 주셔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는 인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게 능력 출신인지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혹, 절망의 자리 실망의 자리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에게 오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망하고 실패하는 그 일이 있을지라도, 이것이 나의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과정이다라는 것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어려운 시간 이 시간들을 통해서 정금과 같이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굳세어질 때,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더해질 때,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여 주시는 주의 은혜가 넘쳐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흙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 손에 붙들린 존재이지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그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위기의 순간, 힘겨운 순간, 눈물의 시간 속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그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금 일으켜 세우시는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함께 나눌 내용인데요.
그 하나님은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처럼 이제 모세를 통해서 두 번째 돌판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나온 모세에게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아멘!
모세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이 '여호와'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어떤 뜻입니까? "스스로 있는 자" -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며 신을 만들어 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낸 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신 분, 그분께서 온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지요.
이것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7절에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이다"라고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 많으신 분", "진실하셔서 변함이 없으신 그런 분이시다"라고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이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이 장면이 어떠한 장면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죄를 저질렀어요.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하나님께 멸망을 받을 만한 그런 장면에서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멸망시키실 이때 "나는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이 이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었을 때조차도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그 희생양으로 삼으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만드셨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한다라는 확증이라는 것이지요.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그 하나님은요,
모세의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어갈 때,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줄 아세요.
얼굴이 좀 예쁜가요? 잘 나셨나요? 키가 크신가요? 돈이 많으신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예뻐서, 그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신 거죠.
오히려 우리는요, 너무나도 더러운 죄인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의 말씀이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새번역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속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멘!
"이 세상에 어떤 만물보다도 썩어서 거짓되고 냄새나는 것이 우리의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 더럽고 냄새나는 추한 나를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는 거예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썩어가는 그 몸과 마음을 끌어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안으셨기에 오늘도 허물 많은 우리이지만,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 덕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많고 허물 많고 실수 많아서 여전히 헤매이고 있는 저이지만,
하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안아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그 깨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노력한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들, 봉사를 많이 한들, 하나님과 깨어져 버린 그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 회복의 은혜는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두 팔 벌려 안으시는 그 사랑 많으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두 손 두 발 다 비벼서 "하나님, 다시는 죄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한들 우리가 어떻게 그약속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 줍니까?
그냥 믿어주는 거지요. 그냥 받아주고 다시 사랑해 주는 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하는 아이를 그렇게 받아주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받아주셨기 때문에 여전히 허물 많고 실수 많아서 찌르고 쪼개고 갈라지는 우리이건만,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내가 의인이 된 것도 아니고, 의인이 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진실하셔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두 팔 벌려 계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정말로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과 9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8절과 9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아멘!
잘못했을 때에는요, 무조건 엎드려 비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 목이 뻣뻣하고 곧아서 하나님 앞에 굽힐 줄 모르고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아가는 이 어리석은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내가 용서받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를 품에 안으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그러한 용서를 받은 내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음받은 내가
옆에 있는 형제 자매의 손을 잡고, 용서의 마음 화해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많으시고 변함이 없으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서
우리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들을 그렇게 용서하며 화해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앞서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분이시고요.
또,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눴어요.
그런데 하나님은요,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죄를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벌을 주신다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새번역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며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가지 아니한다.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삼 사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이 7절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 때문에 삼 사대, 그 자녀와 자녀에까지 벌을 주신다라는 것을 정말로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때문에 '가계에 흐름 저주를 끊는다'라는 잘못된 말이 나왔어요.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버지 때문에 그 자녀를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행동들, 죄악의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보고 배운다라는 죄의 영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부모가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답습하고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이러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이러한 모습이다."
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가는 우리의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 신호등을 만들고, 자동차가 다니는 스피드 리밋을 정해 놓았어요.
왜 그런 것입니까? 티켓을 끊어서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지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런 벌을 내려주시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혼내고, 지옥에 떨어트리려는 그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가라고 벌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지옥이 있으니, 천국의 영원한 생명이 더 아름답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벌이 있으니,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분,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시고,
또 동시에 공의로우셔서 죄를 미워하시고 죄값 징계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 벌을 받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뭔가 이상한 겁니다. 이건 두 가지 중에 하나예요.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그냥 놔 두신다, 그것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특별한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그러하기에 자녀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의 말씀을 새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자녀가 받은 징계를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 아멘!
모든 자녀는요, 아버지의 훈계, 채찍을 맡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라는 여인을 취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서 죽게 만들었죠.
하나님께 다윗은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지만, 불의한 그 죄악 가운데 낳은 아이가 죽었어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녀는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에 있어요.
그래서 때때로 징계를 허락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 오히려 기뻐할 것은,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고, 사단과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 멀리해야 할 나의 죄의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더 돌아가기 위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듣고 우리가 함께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만 보고 듣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외우기까지 했어요. 성인이 될 때에, 모세오경을 달달 다 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지만, 그들이 가졌던 성경 말씀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눴던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이 되는 것은 다시금 일어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내 삶에서 붙드는 것입니다.
실패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다시 일으키실 하나님을 경험하길 소원합니다.
또, "자비롭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내 삶 속에 그 사랑을 베푸셔서 내가 그 사랑을 알고 깨달아서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칭찬해 주고 세워주고 용서해 주고 화해해 주는 나의 삶이 되게 해 주세요.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 내가 죄를 멀리하고 오늘도 거룩하게 하나님 말씀 따라 세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고 정결하게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게 해 주세요"라고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그 말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경험되길 원합니다.
살아계신 그 하나님을 누리시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집에 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오늘 가정예배 순서지를 보시면서 내 삶에 적용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기억하시고
함께 나누시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https://youtu.be/bwBuhWAFmyA?si=rhkm_mACHxBb8l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