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조선상고사)
아!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조선상고사/박기봉 옮김/비봉출판사>, 이 책을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은 단 이 한마디뿐이다. 신채호선생은 우리를 너무 사랑했는데 우리가 신채호선생을 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신채호선생을 다시 찾아보게 된 것은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세운 분이 신채호선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알게 된 신채호선생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천재이자 문학가였으며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애국지사였다.
우리 기억 속의 단재선생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다. 일제에 대한 항거의 표현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고 세수를 하였다든지, 아나키스트로서 무정부주의를 주장했다는 것 그리고 조선상고사를 지었다는 정도의 파편화된 기억 밖에 없다. 그리고 몇 년 전 해방이 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호적이 없어서 2009년에 호적을 회복하였다는 정도의 기억이 전부이다. 이런 기억들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왜 이런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조선상고사>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던가. 그러니 한사군이 조선반도 내에 없었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학자라는 것은 더욱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단재선생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은 선생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선생은 남한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분이다. 정치적으로도 외면을 받았고 역사학자로서도 식민사관에 찌든 주류사학계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은 분이다. 뉴라이트들로부터 국부로 모셔야 한다는 이승만과는 독립운동 당시 대립하였기 때문에 단재선생은 남한에서 존재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2009년에 이르러서야 호적이 회복되었을까.
한사군이 한반도내에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단재선생이 처음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나조차 한사군漢四郡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처음 주장한 분이 선생이라는 것을 김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에서 알게 되었다. 한반도내에 한사군이 없었다고 주장하여 남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윤내현도 그의 저서 <고조선 연구/1994>에서도 단재선생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김상태는 그의 책에서 이런 주장의 계보를 신채호-리지진(북한사학자)-윤내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내현은 왜 단재선생을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상고사>는 1931년(6월10일-10월14일) 조선일보에 103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것을 모아서 낸 책이다. 이 글이 분명 단재선생의 연구 성과이기는 하지만 학자의 관점에서 연구서硏究書로서 인정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있다. 내가 한국건축을 배운 스승인 신영훈선생도 우리 한국전통 건축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책도 많이 쓰신 분이지만 그가 쓴 책 중에서 인용되는 책은 초기에 쓴 <한국의 살림집>이라는 책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타 책은 대부분 대중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보니 각주 등과 같은 학문적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였다. 이런 이유로 신영훈 선생은 다작多作과 능력에 비해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이 성과를 발전시켰던 것은 남한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대립할 여지가 적고 또한 단재선생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분들이 이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조선상고사> 부록에 있는 ‘단재선생에 대한 기록’을 남긴 분 중에 이극로라는 분은 북에서 1982년까지 활동하였다. 이런 상황들이 때문에 북한에서 단재선생에 대한 후속 연구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단재선생은 1880년에 태어나 6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형도 열두 살 때 만 20살을 일기도 돌아가셨다. 이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일곱 살부터 한학漢學을 공부하면서 공부한지 1년 만에 <통감通鑑>을 해독할 만큼 영민함을 보였다고 한다. 15세 때 결혼하고 18살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1905년 교수직인 정7품인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선생은 일찍부터 독립협회, 신민회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 하였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 논설 등을 게재하여 일본에 대한 반제국주의 활동을 계속해왔다. 1910년 합방될 것이라 판단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에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여 임시정부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0년에는 베이징에서 옌징의과대학에 유학 중인 박자혜와 재혼하였다. 1922년에는 비밀결사조직인 의열단의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1927년에는 새로운 독립투쟁의 방편으로 무정부주의 연맹에 가입하였다. 1929년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찍어낸 위폐를 환전하려다 일경에게 잡혀 1930년 10년형이 확정되어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중 1396년 2월21일 57세의 나이에 뇌일혈로 감옥에서 서거하였다.
신채호선생은 '파란만장했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삶을 살았다.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이가 죽자 이혼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와중에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아 저작활동과 역사연구에 매진하였다. 한학자인 단재선생이 역사가로의 변신한 것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자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아를 잃어버리는 민족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이 단재선생으로 하여금 역사에 매진하게 한 것이다.
이 책에 말미에는 단재선생을 아시는 분들이 쓴 단재선생에 대한 단상을 모아놓았다. 이 글을 보면 단재선생은 천재였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재선생은 한번 책에 빠지면 몇날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냥 책장을 넘기듯 매우 빨리 읽었음에도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는 증언들이 있다.
또한 어학에도 매우 뛰어난 자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어도 독학을 하여 기본Gibbon이 쓴 로마사를 자유롭게 송독誦讀하였다고 한다. 또한 1925년에 동아일보에 <이두문 명사해석법>, <조선고래의 문자와 시가의 변천>등을 연재했다고 하는데 이런 연구는 어학에 대한 자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조선상고사>를 보면 우리 언어가 이두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지명이나 인명에 대한 이두에 의한 해석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사이 대동강으로 하고 있는 패수浿水 및 기타 지명 및 이름 등에 대한 고증도 이두에 근거하고 있다.
어쨌든 학자로서의 단재선생은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깊이뿐만 아니라 넓이도 대단한 분이었다. <조선상고사> 서문이나 <조선혁명선언>을 보면 독서량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글을 읽다보면 동양의 상황뿐만 아니라 서구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몇날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을 읽을 만큼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재선생은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게 살았기 때문에 책을 살 수 없어 서점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필요한 책은 서점에서 며칠을 걸쳐서라도 읽을 만큼 지식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던 분이다.
단재선생은 원래 <조선상고사>에서 끝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상고사>서문을 보면 고대로부터 조선까지 우리나라 역사 전부를 쓸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옥중에서 급사하시는 바람에 더 이상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책 끝에 있는 단재선생 연보에 의하면 생활이 궁핍하여 1년간 절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이 때 <조선사통론>, <문화편>, <사상변천편>, <강역고>, <인물고> 등의 원고를 썼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사색당쟁사>, <육가야사>를 집필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저작들이 제대로 남아 있었거나 집필되었다면 아마도 우리 사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간 우리에게 알려진 단재선생은 꼿꼿이 서서 세수하는 괴팍하고,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인 사람이고 다른 일상사에는 어둡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왔다. 사실 그러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면이 오히려 그를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독립투쟁을 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선생이 뤼순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건강이 악화되자 신분보장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가석방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나선 사람이 친일파였기 때문에 친일파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런 강직함이 그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매양 그렇게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술에 취할 줄도 알고 남이 어려울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인간적인 면이 있었던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혁명선언에서 보이는 계급없는 사회를 지향했던 것이 아닐까.
단재선생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고 <조선상고사>에 나타난 선생의 역사관에 대해 살펴보자.
단재선생이 역사는 “我와 非我와의 투쟁이다.”라고 했다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이며 그런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서문에 있는 단재선생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인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서 비아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역사 주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개인으로 보면 자기 외에는 모든 이가 비아이고, 나라로 본다면 한국 외에는 모두 비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아’라고 표기되려면 두 가지 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시간적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상속성相續性’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되는 ‘보편성普遍性’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둘 중 어는 것을 갖지 못해도 역사의 주체로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동물이나 식물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보편성’이 없기 때문이고 시간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나라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상속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재선생은 300년 전에 지전설을 주장한 김석문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은 브르노처럼 역사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재선생은 ‘아’와 ‘비아’의 관계를 선천적으로 본다면 ‘아’가 있은 후 ‘비아’가 있지만 사실상 ‘비아’가 있기 때문에 ‘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재선생은 정신의 확립으로 선천적인 것을 호위하고 환경에의 순응으로 후천적인 것을 유지하는데 둘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패망한다는 것이다. 즉 ‘아’에 대한 자존의 능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에 대해서 수직적 관점과 수평적 관점을 동시에 보아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역사는 시간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동시대를 사는 문화 간의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이라는 역사의 중 어느 시점을 본다면 누적된 문화를 바탕으로 동시대에 발생하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간적인 개념에 동시대에 일어난 문화적, 사회적 갈등, 대외적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성계가 불교를 탄압하는 유교세력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때 역사를 파편이 아닌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에서 시간은 문화의 누적을 의미하고 동시대 존재하는 문화 간의 뒤섞임은 새로운 누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단재선생은 역사를 제대로 쓰기 위해 다섯까지 조건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계통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고대사에 있어 우리만의 고유한 흐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전말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으로 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북선을 철갑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장갑선裝甲船이라고 해야 맞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시대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왕이 어느 왕으로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역사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계가 우왕을 신돈의 자식이라고 한 것은 신하가 자기임금을 죽였다는 불충의 죄를 벗기 위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이 사회를 주도한다는 식의 표현도 그리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개인의 역량이 발휘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 개인이 역사를 만든다는 식의 생각보다는 시대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재선생은 우리 역사서의 한계를 삼국사기 이후로 병화로 인한 소실보다는 우리의 역사서를 우리 손으로 없애버린 것이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역사를 축소 왜곡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김부식 등 유학자에 대해서는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과거 우리 역사의 주축이었던 화랑의 이야기가 전혀 없고 오히려 중국에서 유학하고 온 최치원의 이야기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원효나 의상과 같은 불교의 거철巨哲들이 불교국가인 고려에 미친 영향은 이야기하지 않고 최응의 <간불소諫佛䟽>만 올렸다는 것이다.
단재선생은 역사는 역사로서만 봐야 한다고 한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이런 것을 자기의 목적에 맞추어 역사를 개조하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영토까지 축소시켰다는 것이 단재선생의 주장이다.
단재선생은 역사가로서 충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당대 남아있는 자료를 최대한 많이 읽으려 노력했고, 읽은 자료를 나름대로 진위를 구별하여 정확한 기록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 한 점은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이전 역사서의 왜곡으로부터 우리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도출해 낸 것이다. 나는 단재선생의 노력 중에서 가장 남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이두로서 우리 역사를 살펴본 것이다. 우리글이 한문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함에도 그것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은 지금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재선생은<훈몽자회>, <처용가>, <훈민정음>, 향가 등에 있는 고어古語를 연구하면 역사에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 했다.
정확한 지적이 아닌가 한다. 고어를 연구하는 분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것을 역사에 접목하는 경우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더욱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재선생은 역사가들에 의한 역사 왜곡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였다. 그러나 과거에만 역사가 왜곡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역사는 왜곡되고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는 것부터가 역사 왜곡의 시작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알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역사가 제대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할 때만이 다른 민족보다 더 좋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목적 중 하나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라 본다면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아무리 조선이라는 나라를 사대事大에 찌들고 사색당파로 혼란스러운 나라라고 폄하한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만큼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어느 시대보다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직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조선을 事大의 나라, 사색당파의 나라로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차 역사기록에 열심이었는데 현재 더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우리를 돌아보면 과연 우리는 조선에 침을 뱉을 수 있는가 되묻고 싶다. 역대 대통령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 역대 대통령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생각한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보니 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서로 아전인수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아직 어느 대통령을 지지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좌, 우로 나뉘어(정말 좌판지 우판지도 모르면서) 서로를 헐뜯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시작은 기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충실히 남기는 것이다.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세대는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없는 세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첫댓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아직 짬을 내지 못했습니다..꼭 읽고싶고, 읽어야만 하는 독서목록에 잘 저장해두겠습니다...
Sollen이 아닌 Sein으로의 역사기술, 만고의 진리인데...
꼭 읽어 봐야 겟습니다..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