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툭털고 일어나 왔던길을 다시 나오고....
계속 계속 걸어가다가 문득 들려오는 종소리....
크리스 마스 마켓이 잔뜩 들어서 있는 마르크트 광장.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선 성령교회.
바삐 오가는 사람들 틈에 혼자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에 혼이 쏙 빠질 지경.
저 멀리 보이는 하이델베르그 성을 올라가보리라.
걸어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아주 잠깐 갈등하다가,
이 따뜻한 햇살이 아까워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인적드문 고즈넉한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길.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았던 성. 입구를 찾을 수 없다.
내려갈땐 반드시 버스를 타리라. --;;;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없이 나타나는 계단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
성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독특한 건물.
어떤 역사가 있는지, 지금은 무엇으로 사용되는지, 누구의 소유인지
아무것도 모른채. 단지 예뻐서 셔터를 누르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 아주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신다.
물론 독일어로... 흐어어...
모순되게도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딱 한마디의 독일어는
"Ich kann kein Dustch.(저는 독일어를 못합니다.)"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신다며, 미안하다하시고는 서둘러 발길을 돌리신다.
서로 민망한 이 상황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성에 올라오자마자 가장 먼저 전망대를 내려다보니,
시내는 물론 네카강과 알테브뤼케, 저 멀리 철학자의 길까지 훤히 보인다.
하이델베르그 카드로 입장료를 얻어 성으로 들어가니
입장권 만으로 볼 수 있는 시설물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성내 관람에는 가이드 투어가 포함되어 있다하여 다시 입장권을 받아들고 보니,
투어까지는 시간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와인통도 보고,
여러가지 약초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약학박물관까지 둘러봤는데도 남은 시간은 20여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조용한 성내를 배회하다가 정원으로 나가보니
곱게 정돈된 산책로엔 제법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산책하는 노부부들과 데이트중인 젊은 남녀에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까지
모두들 그늘을 피해 '해바라기'중. 식물만 광합성을 하는 것은 아닌 모양.
성위에서 내려다본 하이델베르그 시내.
사진으로 보면 그냥 그런 와인통.
이래뵈도 저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통이란다.
모질고, 매정한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단단한 잎새와 형형한 빛을 뽐내며 꼿꼿이 서 있던 이름모를 나무.
나도 딱 너만큼만 선명한 색깔을 갖고 싶구나.
시간이 되어 서둘러 성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불어난 사람들때문에 당혹스럽다.
일본인 단체 관광단이었군. 이래서 일본어 가이드 투어가 있는 모양.
내가 신청한 영어 가이드 투어는 대략 11명.
연세 지긋하신 노부부 두커플과 영국에서 왔다는 할머니 한 분.
나머지는 쾌활한 젊은이들인데 미국에서 왔단다.
모두들 단하나의 동양인인 내가 꽤나 신기한지 이런 저런 질문이 아주 많으시다.
가이드는 온화한 인상의 할아버지.
감기에 걸리셔서 연신 코를 푸시면서도
아주 또렷하고 그리고 천천히 이런저런 설명을 열심히 하시고,
듣는이들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아주 학구적인 가이드 투어. --;;;
하이델베르그 성은 원래 중세시대에 지어진 것이나,
30년 전쟁과 폭풍, 낙뢰로 파괴된 것을 후대에 복구한 것이란다.
성의 원래 모습은 정확히 아는 바가 없고, 다만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란다.
정원의 기하학적인 문양은 세계 몇대(잊었다. --;;;)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정원에 있는 문은 블라블라 왕이 그의 아내를 기쁘게 하기위해
단 그녀의 생일 전날, 단 하루밤만에 만든 것이란다.
수첩에 열심히 적어가며 들을 것을...
꽤나 열심히 들었는데, 기억나는 바가 별로 없다니 안타깝다.
특히 숫자는 거의 기억이 안난다. 몇년도, 몇번째 왕, 몇명... 등등...
여튼 성루, 예배당, 연회장, 역대 왕들이 사용했다는 방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아주 작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는 길.
호주에서 오셨다는 노부부 뒤를 따라가는데,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신지 아주 조심조심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고,
덩치 좋으신 할머니는 숨을 고르며 더 느릿느릿.
추월할 수도 없고, 굳이 그러고픈 마음도 없는 나는 그 뒤를 따라 더더욱 느릿느릿.
마침내 실내에 들어서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조금전 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쾌활했던 영국인 할머니의 따가운 눈총에 쭈뼛.
어쩌란 말이냐. 내탓이 아니란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 언제나 그랬듯이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다시 마르크트 광장, 중앙역, 그리고 기차안....
그냥 집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찾아간 프랑크 푸르트 시청사.
이곳에도 광장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득 들어서 있고,
발디딜틈 없이 가득찬 사람들.
이들의 웅성거림을 압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해질 무렵의 Hauptstrasse.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별처럼 총총히 밝히는 예쁜 가로등들.
크리스마스 마켓의 장식용 소품처럼 아기자기한 시청사는
대형 트리 뒤에 숨어 사진촬영을 거부하시고.
삼삼오오 모여서 소시지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저들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알듯도.
아기자기한 트리장식과 장난감들이 한가득.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모두들 너무 예뻐서 만져볼 엄두도 나질 않았다.
언니와의 마지막 만찬. 저 하얀 소시지가 프랑크푸르트소시지란다.
물론 쫄깃쫄깃하고 맛도 아주 좋아서 대만족!
첫댓글 분홍색 열매가 달린 식물 : 피라칸사스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의 수목들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합니다.
영어 가이드 설명을 모두 알아 들으셨나봐요?부러워요ㅠㅠ
아카시아가 : 그렇군요. 이외에도 예쁜 나무와 꽃들이 많아서 궁금했었는데, 알고 본다면 더 좋았을 것을요. 펭귄공주 : 절대로 모두 알아듣지 못합니다. --;;;; 일부는 알아듣고 일부는 갸우뚱하면서 넘어가는것이지요. 그냥 영어공부하는셈치고 열심히 들어본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