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주도하는 독서치료의 연구와 실천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의 활동을 중심으로-
독서치료는 비교적 근래의 현상이다. 새천년을 전후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문헌을 보면 70년대부터 개념이 소개되고 가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인 면에서 운만 뗀 상태에서 답보를 거듭하였다. 간혹 있는 논의는 주로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축으로 수십 년 간 맴돌기만 해온 느낌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석사 박사 논문과 단행본도 많이 나오고 있으며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실천은 주로 대학, 대학원, 평생교육원, 공공도서관, 사설의 학원, 봉사단체 등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와 치유 모임의 형태로 나타난다. 약간의 문제도 있어 보이지만 대체로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기여하는 면이 있고 참여자들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는 편이다. 이제 비로소 독서치료는 전체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이륙의 시기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도 웰빙시대의 징후가 아닌가 싶다.
이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도서관 영역에서는 독서치료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도서관 기반의 독서치료 연구는 어떤 것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천은 또한 어떻게 진행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대답을 내가 관계하고 있는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약칭: 책.정.연)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시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흠이 있지만 한편 구체성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연구 영역과 실천 영역을 나누어 설명한다. 부언하면, 책.정.연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연구와 실천 활동은 ‘사서 주도, 도서관 기반’의 모형을 지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우선 책.정.연 회원이 펴낸 단행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목록은 이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 책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직 사서들이 저자로 나서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실제 치유 모임의 진행자들이기도 하다.
신주영. 독서치료와 도서관의 역할. 한울, 2004.
송영임. 독서치료와 공공도서관 서비스. 한울, 2004.
김민주. 어린이의 상한 마음을 돌보기 위한 독서치료. 한울, 2004.
김경숙. 성인아이 문제와 독서치료. 한울, 2004.
김수진. 대학생의 ‘문제음주’와 독서치료. 한울, 2004.
다음으로, 책.정.연 회원이 생산한 박사 논문이 있다. 수준이 있는 실천적 연구물이 이 분야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구자는 현직의 사서이며 실제 치유 모임의 진행자이다.
김순화. 공공도서관의 독서치료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연구: 울산남부도서관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일반대학
원, 2005년 2월.
그 다음으로, 책.정.연 회원이 생산한 석사 논문이 여러 편 있다. 그 양으로 보아 특히 석사 수준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일부 연구자는 실제 치유 모임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정미. 독서요법을 통한 시설아동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에 관한 연구: 아동복지시설 S원 3,4 학년생 5명을
대상으로.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2년 2월.
송영임. 정신보건을 위한 공공도서관 역할 연구: 독서치료의 적용과 관련하여.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3년
2월.
신주영. 독서치료와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연구.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3년 8월.
김민주. 어린이의 상한 마음을 돌보기 위한 독서치료 서비스 방안 연구: 부산지역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을 중심
으로.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3년 8월.
정재희. 청소년의 상처난 마음을 돌보기 위한 독서치료 서비스 개발 방안 연구.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3
년 8월.
김경숙. ‘성인아이’(Adult Child) 문제와 독서치료.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8월.
김수진. 대학생의 ‘문제음주’와 독서치료.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8월.
이운우. 암환자와 가족을 위한 독서치료.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4년 2월.
김선혜. 저소득층 자기보호아동을 위한 독서치료.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5년 2월.
김은엽. 20대 여성의 상처와 독서를 통한 치유에 관한 연구: K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5년 2월.
염세영. 시설청소년을 위한 독서치료.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2005년 2월.
박인선. 학급경영에 적용한 독서치료 사례 연구.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년 2월.
실천은 어떤가? 독서치료의 적용은 어떤가? 독서치료와 관련하여 지역 사회의 도서관과 기관들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현재 내가 속한 지역에서 책.정.연 회원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독서치료 모임은 다음과 같다.
김정근 외 기획/진행.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독서요법사 과정.
김경숙 기획/진행. 부산연산도서관 성인 독서치료 과정.
김수경 기획/진행. 부산남구도서관 성인 독서치료 과정.
김수경 기획/진행. 부산진구 여성인력개발센터 성인 독서치료 과정.
김순화 기획/진행. 울산남부도서관 성인 독서치료 과정 및 어린이 독서치료 과정.
김선혜 기획/진행. 경남양산도서관 어린이 독서치료 과정.
염세영 기획/진행. 경남양산도서관 시설어린이 독서치료 과정.
이제 사서가 주도하는 독서치료 모임의 ‘내용’을 말할 차례이다. 모임의 컨텐츠는 무엇인가? 모임에서는 어떤 교육방향, 교육내용과 상황이 설정되며 매체는 무엇을 사용하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서 책.정.연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나와 주변의 젊은 연구자들이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지역의 한 평생교육원의 독서요법사 과정의 커리를 소개해본다. 대상은 주로 주부들이다. 이 과정은 두 학기에 걸쳐 30주 120시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서 여기서는 한 학기 15주 60시간 분량을 소개한다.
<독서요법사 과정 강의계획>
교육방향: 독서요법(bibliotherapy)은 ‘책읽기를 통한 마음 치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황에 맞는 책읽기를 통하여 마음 어딘가에 잠복해 있는 상처의 근원을 인식하고 그 상처가 완화되거나 치유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독서요법의 과정이다. 이 강좌는 독서요법에 대한 이론적 학습과 상황별 독서를 통하여 개인과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한다. 교육과정은 책읽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상황별로 주어진 매체를 읽고 상호토론을 할 수 있도록 편성되어 있다. 수업은 독서요법에 대한 이론적 학습과 병행하여 토론식으로 진행함으로써 참여자 모두 상호교감을 통하여 독서요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육내용: 독서요법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공유하기 위하여 체계적인 이론을 습득한다. 나아가서 우리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열다섯 가지 상황으로 구분하여 상황별로 두 개의 매체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독서를 한 뒤 독서요법의 역동적인 원리 즉 동일화, 투사, 카타르시스, 통찰을 경험함으로써 독서요법에 대한 마인드를 함양한다. 독서요법사 l 과정에서 다루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삶은 복잡하다, 성장의 아픔, 어른들의 무지와 몰이해, 자아찾기, 부모, 가부장사회, 정신건강의 이해, 가정폭력, 성인아이, 성폭력, 사랑, 우울증, 용서, 영원한 순환, 삶은 어렵다.
주별계획:
1주 오리엔테이션
상황: 삶은 복잡하다
매체: 홍소장의 가을(비디오 자료)
2주 상황: 성장의 아픔-유년기, 청소년기
매체: 니콜 파브르. 상처받은 아이들: 유년기의 상처를 말하고, 이해하고, 극복하기. 김주경 옮김. 동문선,
2003; 변영인. 우리 아이가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오늘의 책, 2002.
3주 상황: 어른들의 무지와 몰이해
매체: 이희경. 마음 속의 그림책. 미래M&B, 2000; 이훈구. 미안하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야
기, 2001.
4주 상황: 자아찾기
매체: 메리 파이퍼. 내 딸이 여자가 될 때: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딸과 여자들의 44가지 사례 연구.
김영재 옮김. 문학동네, 1999; 버지니아 M. 액슬린. 딥스. 주정일, 이원영 옮김. 샘터, 2002.
5주 상황: 부모
매체: 김정일. 이런 부모가 자식을 정신병자로 만든다. 박영률출판사, 2002; 수잔 포워드. 흔들리는 부모.
한창환 옮김. 사피엔티아, 2000.
6주 상황: 가부장사회
매체: 이하천. 나는 제사가 싫다: 삼십년 동안 가부장제와 맞서 싸운 한 여성작가의 외침. 이프, 2000; 전
인권. 남자의 탄생: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푸른숲, 2003.
7주 상황: 정신건강의 이해
매체: 최훈동.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정신의학 이야기. 한울, 2001; 김형경. 사람풍경. 아침바다, 2004.
8주 상황: 가정폭력
매체: 정희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또하나의문화, 2001; 돌로레스 클레이본(비디오 자료).
9주 상황: 성인아이(adult child)
매체: 최현주. 위장된 분노의 치유. 규장, 1995; C. L. 휘트필드. 잃어버린 자아의 발견과 치유: 역기능가
정에서 자란 성인아이의 발견과 치유를 위한 안내서. 김응교 외 옮김. 글샘, 1997.
10주 상황: 성폭력
매체: 사미라 벨릴. 나는 인생을 믿는다: 고통받는 소녀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용경식 옮김. 마음산책,
2003; 이금희. 유진과 유진. 푸른책들, 2004.
11주 상황: 사랑
매체: 배리 비셀, 조이스 비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전경자 옮김. 열린, 2002; 로빈 노우드.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 이미영 옮김. 한마음사, 1996.
12주 상황: 우울증
매체: 김혜남.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중앙M&B,2003; 베브 아이스베트.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
김은령 옮김. 명진출판, 2003.
13주 상황: 용서
매체: 프레드 러스킨. 용서: 나를 위한 용서, 그 아름다운 용서의 기술. 장현숙 옮김. 중앙M&B, 2003;달
라이 라마, 빅터 챈. 용서. 류시화 옮김. 오래된미래, 2004.
14주 상황: 영원한 순환
매체: 영원한 순환: 죽음 (BBC 비디오 자료); 최화숙.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 인생의 마감시간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서 만날 것인가. 월간조선사, 2004;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2002.
15주 상황: 삶은 어렵다
매체: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신승철 외 옮김. 열음사, 2004.
물론 다른 데서도 비슷한 활동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우며 더구나 구체성을 띄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내가 직접 관계를 가지면서 그 내용을 잘 아는 경우를 예시함으로써 현단계에서 사서가 주도하고 도서관이 기반이 되는 독서치료의 이론과 실천의 진전 상황을 살펴보았다. 독서치료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하려는 사람이나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처음 시도하는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쓴 김정근()은 도미니칸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토론토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교육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이며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의 지도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과 칼럼으로 <공공도서관의 독서치료 프로그램,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독서치료에서 상황이란 무엇인가>, <치유서란 무엇인가>, <치료사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