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0 수요예배 / 이은경 목사
말씀 : 시편 25:5
제목 :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의 의미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
하나님, 오직 우리는 주님만 예배합니다.
우리 주사랑 찬양대의 귀한 찬양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올려졌습니다.
함께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도 아버지께서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이 수요일 오전 아침에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 성령님 함께하시고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하나님을 기다리오니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옵소서.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시간은 사람에게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진 것 같지만, 사실 느낌은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가족의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서
조직 검사를 하고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그 며칠, 또는 그 몇 주가 얼마나 더디게 흘러가는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것을 마감 전에 마쳐야 하고, 입금 마감일이 가까워 올 때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정말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기대어 있는 인생이구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될 것인가?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면 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그때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읽은 이 시편 25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표현했는데, 그에게도 그의 상황 속에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시간들과 환경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25편의 5절만 읽었지만,
25편 전체를 보면 이 시는 다윗의 인생의 노년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7절에 보면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죄,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의 죄, 여러 가지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깊이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또, 이 시 편의 전후 문맥을 볼 때에, 다윗은 지금 많은 힘듦과 고생 중에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절에, "내 마음에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여러분, 오늘 새벽에 이런 기도 하신 분 계세요" 이만큼은 아니시죠..
이렇게까지 사면초가이고, 이렇게까지 외롭고,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고,
웬만큼 우리가 살고 있지만, 또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아, 목사님 말씀도 마세요.
난 다윗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 고난이 심해요. 내가 이렇게 예배 현장에 오는 것
내가 정말 내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거예요." 하는 분도 계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 시편 말씀에서 다윗의 기도와 그리고 다윗을 불러 하나님 앞에 이 고백을 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다윗이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 밖에 찾을 수 없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를 기다리게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나요?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게 되면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면서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한번 따라 해 보시겠어요... [하나님을 향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서 청중은 사실 하나님 한 분입니다.
평상시에는 우리가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기뻤다가 슬펐다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지만,
인생의 어려운 때가 되고 정말 하나님만 향해서 부르짖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코람데오'-Coram Deo
정말 하나님의 눈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 앞에서 삶을 다시 살게 되면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의 청중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다렸다면, 그가 정말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삶에 그 누구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독일의 한 여 가수가 '마를렌 디트리히', 아마 제가 알기로 그녀는 20세기 초의 독일 가수입니다.
그는 노래를 잘 했고 많은 음반도 냈다 그래요. 그런데 제가 어떤 책을 읽다 보니까
그가 한 번은 자신이 노래한 노래를 녹음을 한 게 아니라
어떠한 음반을 만들 때, 자신이 사람들에게 받았던 박수, 박수갈채 온통 그것을 모아서 음반을 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가끔 그걸 틀어 놓고, 아, 저건 언제 들었던 박수이고, 언제 들었던 박수이고,
그렇게 그 박수 소리에 취해서 기뻐하던 그런 모습이 있었다고 기록된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오늘 우리 또 주사랑 찬양대 찬양을 들으면서 굉장한 섬김이거든요.
우리에게 단 1, 2분의 그 노래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 지휘자는 곡을 고르고 반주자는 곡을 준비하고
찬양대는 모여서 그 곡을 준비하고 연습하면서 우리 앞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찬양 올려드렸는데, 굉장한 섬김이거든요.
그런데 지나가지요. 이렇게 붙잡아둘 수 없지요. 정말 그래서 더 소중하죠.
그런데 이 찬양을 듣고 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가사가 우리 마음에 남아서 또 우리 인생에 우리도 같이 흥얼거리면서
조금 전에 우리 찬양팀 로고스팀 찬양한 가사들도 오늘 따라 마음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지요?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이렇게 찬양 부르면서
하나님이 내 귓가에 말씀하고 계시구나. 우리 이게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막상 우리가 어떤 봉사를 하거나 섬김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평가를 했느냐, 설교자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오늘 이렇게 설교하러 올라오면 저를 사랑하시는 몇몇 분들은 어제부터 문자가 와요.
'목사님, 내일 설교하시네요. 제가 기도할게요' 이렇게 격려하는 문자를 해주죠
그럼 너무 감사하죠. 그러나 사실 끝나고 난 다음에 정말 우리가 집중해야 될 분은 하나님이셔요.
하나님이 우리의 섬김을 어떻게 받으셨나, 하나님이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어떻게 보시는가,
여기 있는 권사님들 중에는 우리 조정희 권사님처럼 정말 전도 많이 하시고,
저는 조 권사님의 생애를 제가 기억해요. 어떻게 사셨는지를 알거든요. 제가 교구장일 때 지역장이셨어요.
총동원을 할 때 교역자는 월요일이라고 쉬라고 하시고 권사님은 총동원을 마치고 또 그 다음 날 새벽에 또 길로 나가셨어요.
그렇게 살아온 생애가 여러분의 생애이실 거예요.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고, 박수를 쳐 주고, 또 공로를 인정해 줄 때도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더 많은 수고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해요. 그건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 하나님이 중요해요.
하나님이 내 청중이시고,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게 중요해요.. 그런데, 이것이 평상시에는 잘 안 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만 향해서 집중하게 하실 때,
다시 그 유일한 청중을 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 내가 잘해도 욕을 먹을 수 있구나, 내가 잘 못해도 사람들은 날 칭찬할 수 있구나.
그러므로, 진짜 중요한 건 하나님의 평가다.' 이게 우리 삶에 남게 되는 거지요.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그의 삶에 유일한 청중이요,
그의 삶에 유일한 평가하실 분이라는 것을 그가 붙들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잡게 합니다.
내 삶에서 지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요.
우리 한 사람에게 붙여진 역할과 이름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또,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중요하다 여기셔서
내가 사명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살아가고 있는 영역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 하나님을 더 향해서 집중하는 시간이 되면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만큼 우리 자신의 삶에도 우선순위가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산만하고 얼마나 많이 다른 곳으로 흩어져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해서 했는데, 문득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보니
아, 내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구나 그걸 우리가 붙들게 되는 겁니다.
CCC 창립자인 빌 브라이트 박사가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모든 일에 우선순위를 지상 대위임명령에 비추어 정합니다."
지상 대위임명령을 암송하시는 분.... 지상 대위임명령이 어디 몇 장 몇 장인지 아시는 분...
어머나! 지상대위임명령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가 '미셔널 라이프' - '선교적 삶'을 우리가 많이 얘기하지만,
미션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단지 선한 일 몇 가지 하고,
교회가 좋은 이미지를 주고, 단지 어려운 사람들 몇 가지 돕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상 대위임 명령이 있는데, 그것은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는 거예요.
이 빌 브라이트 박사는 그가 수많은 일들을 하고, 수천 명 수만 명 앞에서 말씀도 전하고, 컨퍼런스도 하고,
수많은 집회도 하지만,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는 항상 예수님의 [지상대위임 명령]에 있다.
그래서 어느 날, 그의 삶을 목격한 사람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빌 브라이트가 수백 명 수천 명 앞에서 설교하고 도전하는 집회가 있던 그 날,
나는 그날 밤에 많은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두툼한 후원금을 들고 그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선 것을 보았다.
빌 브라이트 사역에는 언제나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는 당연히 그 빌 브라이트 박사가 만찬 후에
그 재정적 지원자를 만나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브라이트 박사는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구원의 대상인 한 사람을 찾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려 1시간 15분 동안 그와 대화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바치도록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그 후로도 그는 종종 큰 집회를 떠나 어떤 개인의 구원을 향해서 자신의 시간을 주는 것들을 보았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아무리 목사라 할지라도, 그가 정말 중요한 첫 번째를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한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다 중요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성도로서의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에게 주신 여러 가지 역할들,
그 속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이 찾는 은혜와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우리 힘으론 잘 안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우리의 손을 펴게 만드시고, 집착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체해서 내 앞에 커져 있던 우상들을 모조리 깨뜨려 부수시면서 하나님만이 중요해지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맡겨주신 그 사명에 집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024년도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까? 또, 많이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지금 청지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은혜의 현장을,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성령 임재 속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도 시간적인 형편 때문에 가시지 못했어도
아마 똑같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뜨겁게 구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새해에, 어느 누구보다 여러분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하나님을 향해서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큰 기대를 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더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을 더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부드러워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나이가 많아서 저 사람은 완고해졌어' 그렇게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청년기에 있어도, 중년기에 있어도 하나님을 향해서 경직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삶에서 하나님이 중요해지고,
자신의 삶에 사명의 우선순위에 집중하면서 다른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드럽고 온유해져요.
그것이 바꿔 말하면, 신앙의 성숙이지요.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노화로 인한 상실을 경험합니다.
중년까지는 현재에 좀 집중했었다 하지만, 중년이 지나면, 노년기가 가까워지면
제가 어저께도 들었는데, 어떤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요..
'이제는 그만 쉬겠습니다. 뭐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요. 이제는 지쳤습니다. 이제라도 나는 나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 수고했고, 지쳤고, 쉬고 싶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 인생의 노년기에도,
그리고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있어도, 하나님 중심성은 계속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내 건강이 예전만 하지 못한 것, 내가 시간과 체력과 그런 것들이 예전만 하지 못한 걸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노년기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일본의 '도야마 시게이코'라는 분이 쓴 책 중에 『자네 늙어 봤나? 난 젊어 봤네』 그런 책이 있어요.
92세 된 어른이 40세 이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쓴 책입니다.
그 책 안에 보면, 중국 청나라 시인인 '조익'의 시를 인용하는데, 그 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三分人事七分天(삼분인사칠분천)'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일을 할 때 3할은 사람의 몫이고, 7할은 하늘의 몫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10가운데 3 정도이고, 나머지 7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점점 더 하늘의 뜻이 중요해지고, 나이를 먹으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최선을 다하되 그냥 70프로도 하늘의 뜻이니까, 안 되는 건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 이런 뜻으로 썼어요.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신앙인들은 꼭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삶에 젊을 때는 내가 9 하나님이 1, 또는 나이 먹으면 내가 1 하나님이 9 그런 차원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모든 시간 모든 때에 모든 영역이 하나님이 100 이에요. 그런데 반면에 나도 100 이어야 해요.
누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하나님 앞의 헌신이 덜 해서야 되겠으며,
누가 시간이 더 지났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덜 뜨거워도 되겠으며,
누가 그 사랑의 정도를 나누거나 쇠약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이 젊을 때만 아름답고 늙어서는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병이 없어야 아름답고 장애가 있으면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왜곡해서 이해하지 않고, 사람은 육체가 어떠하든지 늘 존귀하며
그는 젊을 때도 아름답고 늙을 때도 아름답고, 장애가 있어도 아름답고,
지능이 낮아도 아름답고, 그는 태어날 때도 아름답고, 죽을 때도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백발을 가지신 분들을 보면 어른에게 "센 머리 앞에 일어나라"
그 말은 단지 오랜 세월을 살았으니까 존경해라 그런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이 아름답다 이거예요.
그래서 계속적인 성장과 성숙이 있는 장년기, 노년기로 가야 합니다.
시편에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의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시 116:1) 이런 고백 나오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집중하고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를 붙잡고
이제 모든 영역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흘러가게 하면 그 사람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MBTI 다르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성격이 급하다는 걸 여러 번 깨달았는데, 정말 많은 시간 동안 노력을 하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어떤 때는 새해가 바뀌면 리더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요.
"제가 권사님 마음이 나쁜 게 아니라 성격이 급해요.
그래서 제가 어떤 때 이렇게 하면 권사님 저한테 일러 주세요. 그리고 마음 상하지 마세요."
그렇게 미리 말했더니, 작년에 우리 63교구 리더들 제가 뭘 이렇게 하면
빙긋이 웃어주면서 손 이렇게 잡고, '목사님, 또 빨라졌어요'
그래서 사람이 성격은 잘 안 변해요. 그렇지만 태도는 계속 노력하면 달라져요.
한홍 목사님 책에 그런 말이 나와요.
"나는 길을 걸을 때, 교회에서 걸어 다닐 때 천천히 걸어 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인들이 나에게 와서 기도 제목을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한 교회 담임 목사님이 걸을 때 천천히 걸으시는 거예요. 교인들이 와서 자기한테 기도제목을 얘기할 수 있게...
제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성격이 급하다는 걸 또 한 번 알게 되었지요.
교회 안에서 대부분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생기는 줄 아세요? 그 사람의 특별한 행동 때문이 아니고 기질이 다르면 좀 부딪쳐요
그래서 예전에 아주 MBTI 에니어그램 이런 거 우리 교회에서 부교역자들도 한동안 이렇게 조사하고 그럴 때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부목사님들 다 교역자들이 그때는 화평홀이 있었는데, 거기에 모여서 다 같이 성격 유형 검사를 했거든요.
검사를 쭉 했는데, 나중에 검사 끝난 다음에 강사가 유형별로 이렇게 다 앉혔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서 저랑 같은 유형인 사람들하고 딱 앉고 보니까 제가 너무 웃음이 나왔다니깐요. 박장대소를 했어요.
왜냐, 평상시 저랑 불편했던 분들이 다 저쪽 테이블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평상시에 나하고 좀 얘기가 잘 통하고 내가 참 편안하다 좋다 했던 분들이 다 같은 테이블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 수준이 달라진 게 아니라 성격 유형이 달랐던 거예요.
한 번 이렇게 배우고 나니까, 그때부터 성도들을 대할 때 제가 굉장히 자유로워지더라구요. 유연해지더라구요.
예전엔 뭐가 안 맞으면 그걸 안 맞으면 그걸 갈등이라 여기고 맞을 때까지 경직돼 있었다면,
'아, 이제는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성격이 낫지 달라서 요런 거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실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중요하게 붙잡아야 될 우선순위를 가지고 살아도
삶의 모든 순간에는 하나님이 누구를 붙이시든, 나를 어느 자리에 넣든, 뭘 하게 하시든,
하나님 앞에서 유연하고 부드럽고, 그걸 바꿔 말하면 온유함이라고 하는 거예요.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오늘 시편에도 있겠지만), 온유하다는 말이
단지 우리가 생각할 때 성격이 부드러운 것만 말하는 건 아니고,
시편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부적격한 자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 드리는 태도를 말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귀하게 보셔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 마음껏 일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을 기다린다면서요, 그런데 왜 음성이 안 들릴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막 찾는데 왜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릴까요?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목말라 하는데, 왜 하나님의 뜻을 아직 잘 모를까요?
내가 너무 하나님 앞에 굳어 있어서 그래요.
이건 안 되고 저건 안 되고, 하나님 이런 방식이어야 되고, 지금이어야 하고
하나님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그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태도와 기도를 우리에게 배우라고 하셔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지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할 때 아버지의 뜻이 막힘없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연말에 이제 갑자기 교구가 바뀌게 됐어요.
그래서 송도 교구를 하고 있다가, 이제 갑자기 교구가 바뀌게 돼서 연말 특새 그 마지막 1주일 특별 새벽 기도를 하는데,
제가 송도에서 이렇게 이제 '주님, 내년 1월이면 제가 부평에 갈 텐데 주님 어떤 걸 주님이 계획하셨어요?'
여러분이 다 그렇듯이, 저도 특별 새벽 기도회 때 기도를 하면서
내년을 위해서(올해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요일도 안 잊어버려요.
수요일에 송도 예배처에서 이 부평 영상을 보면서 특별 새벽 기도를 하는데,
찬양팀이 앞에서 찬양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 가끔 그런 거 경험해 보세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 그게 육성으로 말하는 거하곤 다른데,
기도하고 있는 중에,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중에,
내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 바깥에서 주시는 음성이 있을 때가 있어요.
이제 수요일이었는데, 찬양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데,
부평 화면이 이렇게 영상이 나오는데, 제 안에 또렷하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뭐라고 그러셨냐면, 하나님이
"ㅇㅇ아, 내가 너를 다시 송도에서 부평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어"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네? 주님?" 이제 그랬죠
그랬더니 주님이
"네가 내년 1년은 우리 성도들 많이 많이 손 좀 잡아주고, 많이 격려해 주고,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제 속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니깐요. 제가 그걸 계획했던 게 아니에요.
"성도들 손 많이 잡아주고, 성도들 많이 위로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면 좋겠다.
내가 계획이 있어서 너를 다시 부평으로 부르는 거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건 분명히 내 속에서 나온 생각은 아닌데, 주님이 말씀하시나?' 그러고 있었지요.
그리고서는 딱 새해가 됐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중보기도 사역을 맡기신 거예요.
여러분, 왜 이렇게 조용하세요? 이럴 때 같이 기뻐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제가 '아, 하나님 나를 기도 사역을 맡기시는 게 그게 하나님의 음성이 맞았구나' 이렇게 검증이 됐잖아요.
그런데 또 한 가지 질문이 남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성도들 많이 손 잡아주고 많이 격려하라 그러셨는데요?
저는 제가 안내팀인 걸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김정훈 목사님이 주일에 오셔서
'목사님, 안내팀 맡으신 거 아셔요?' 이러셔서 그래서 제가 또 한 번 깨달았어요.
'아,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앞에 부드럽고 유연하길 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내가 열려 있으면,
아버지께서 하시고 싶어하는 일들을 하시는 것이 맞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편 25편은 고난이 있고 외롭고 힘들었던 다윗이
자신의 소싯적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아주 부드럽고 연한 상태로 하는 기도입니다.
'원수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심판해 주시옵소서' 막 그런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향해서 굉장히 연하여져 있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그는 가장 큰 영적 싸움의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고난이 오면 그 영혼에도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문득 그는 자신의 일상에 감사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그때부터 건강이 최우선의 자리에 올라서면서 삶의 모든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 말씀보다 유튜브 환자들에 관한 걸 더 많이 볼 수 있고,
내 믿음이나 내 사명보다 내 건강이 제일 우선이 올 수 있고,
그때는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체보다 내 자신이 너무 중요해져서
그때부터 당장 구역예배도 그만두고 봉사도 그만두고 건강해지는 것에 집중, 집중, 집중하면서
그의 마음이 완고해지고, 좁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쟁의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하며, "하나님, 이 순간에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고 나아가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뜻 없는 고난이 없고,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땅에 그냥 떨어지지 않게 하시며
우리 인생에 쓴 것이 변하여서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되고 축복이 되게 하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슬픔도 과도하게 슬퍼하지 마시기 바라고,
어떠한 고통도 과도하게 그 고난에 집중하지 마시기 바라고,
어떠한 사별, 어떠한 이별, 어떠한 변화도 여러분이 과도하게 거기에 집중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을 향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찬송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붙들려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비뚤어지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너무 지나치게 어떤 것에 집중해 있으면,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지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다른 것을 많이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떠십니까?
하나님, 제게는 이러한 소망이 저러한 소망이 있고, 이것을 원하고 저것을 원합니다.
그것을 다 합쳐서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 한 가지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전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반응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능이나 우리의 지혜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의 발전, 성장에 성장을 해서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것은 하나님이 이미 다 준비하셨고, 그분의 진리는 영원하고 무궁하고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째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의지하며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있겠습니다.
내 영혼을 주께서 건져주시고, 내 영혼이 사망에 잠을 자지 않게 해 주시고,
내 눈이 너무 눈물에 많이 빠져있지 않게 하시고, 내 발이 너무 많은 곳에 가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나의 기도가 일관되게 하시고, 나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하시고
나의 복종이 하나님 앞에 늘 한결같게 하셔서 어떠한 혼란스러움 때문에 내 기도가 방해를 받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의심하여 내가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듣거나, 심지어 사단의 거짓말을 너무 많이 듣거나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하거나,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들을
내가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나이다.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하십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2024년,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