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 마지막 대목이 계속 제 마음 안에서 메아리 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치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치르도록 내버려 두라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궤변이 다 있나? 대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가? 죽은 이들은 더 이상 육체도 없는데 염은 누가 하고, 상여는 누가 들고? 조문객 접대는 누가 하고, 음식은 누가 만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죽은 이 안에는 육체적으로 죽은 이도 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이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죽은 이도 있고 심리적으로 죽은 이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니 빛이요 진리이신 예수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요 구원의 보루로 오신 예수님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역시 죽은 이들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길을 뒤로 하고 어둠과 죽음의 길을 선택한 이들 역시 죽은 이들입니다.
돌아보니 저도 한때 죽은 이처럼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숨은 쉬고 있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영혼 없는 얼굴, 총기가 사라진 눈동자,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던 죽은 이의 나날이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은 붙어 있지만 죽은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당신도 죽은 이처럼 존재하던 순간이 있었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대단히 황폐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매우 황폐한 시기, 어둠의 때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제가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해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패배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견디기 쉽지 않았던 시기에 저는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출구를 일러줍니다.”
죽음 전문가셨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께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십시오. 삶에서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닙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십시오.”
그리 길지 않은 우리네 삶이기에 매일 되풀이해야 할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질에 대한 지속적 반성과 성찰입니다. 오늘 나는 참으로 살아 있었는가? 열심히 숨 쉬고 삼시 세끼 제때 밥 먹으며, 분명히 살아있었지만, 이미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육체는 버젓이 살아있지만, 영혼이나 정신이 이미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지고 소멸되겠지만, 우리들의 영혼과 정신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아무리 열악하고 비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또 일어서고 또 넘어서겠노라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정신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주님 안에, 그분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4년 나해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말을 하는 게 좋은가, 하지 않는 게 좋은가?>
복음: 마태오 8,18-2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이들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하십니다. 편안함이나 돈, 명예 따위를 보고 당신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장례를 먼저 치르게 해 달라는 다른 사람에게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하십니다. 세상 애착을 끊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길이 절대 쉽지 않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기도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며 십일조도 내야 한다고 예비자에게 미리 말을 하면 그들은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차근차근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오늘 복음은 아예 처음부터 말해주는 게 낫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정원 씨의 일가족이 유영철에게 몰살당한 후 고정원 씨는 아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범인이 잡히면 자살하겠다는 그에게 예비자 교리를 받아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게 쉬울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서 고정원 씨는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고 유영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체조 유망주였던 이승복 박사가 척추가 망가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때 어떤 선교사가 와서 이것도 다 하느님의 계획 일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었으면 주먹이 날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해주었습니다. 이승복 박사는 그 말을 믿고 운동을 포기하고 의사가 되기로 하여 유명한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용기 있게 주님을 따르는 법을 알려준 은인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자기 힘만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이야기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의 반대와 비판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결국엔 말을 합니다. 그때는 욕을 먹더라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해주는 편이 더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씨가 진행하는 골목상권 살리기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전문가로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가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문가들 처지에서는 100% 망할 수밖에 없는 가게들입니다. 그리고 백종원 씨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그렇게 할 거면 장사를 집어치우라고 합니다. 자신이 처음 장사를 할 때는 명확한 기본규정을 알려준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 규정들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백종원 대표는 그들에게서 자기 사진이나 이름을 지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이미지가 그렇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일수록 자신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합니다.
김유신 장군은 18세 때 이미 삼국통일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그 꿈을 퍼뜨립니다. 어머니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무슨 통일을 이루겠느냐고 나무랍니다. 이에 김유신은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술을 마시고 말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난 곳이 기생집이었을 때 김유신은 자기가 이끼는 말의 목을 칩니다.
‘중간 정도만 해도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중간 정도는 해를 입힙니다. 명화에 일반인이 덧칠하면 명화를 망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죽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가지려는 이들에게 돈과 육욕과 교만을 끊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아예 미리 포기하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하고 이도 저도 아니고 미지근한 신자가 많이 생기는 것보다 적더라도 신자다운 신자들이 있는 교회가 건강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완전한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미리부터 알려주라고 권하고 계십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8,18-22: 제자 됨의 본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신다. 제자들에게 현세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속된 것에서 거룩한 것으로,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건너가라고 명령하신다. 나 자신으로부터의 끝없는 탈출이다. 그때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율법 학자는 그분이 가시는 곳을 알지 못했다. 막연한 짐작뿐이었다. 예수님은 최후의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고 계셨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20절). 그분은 차림새도 수수했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 나라에 대해 알고 계셨지만, 임금이 되기를 마다하셨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주십시오.”(21절) 이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섬기려면,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다른 모든 것보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카인처럼 둘째가는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과 함께 있는 이들을 위하여“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어머니다.”(마태 12,50)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족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22절) 이 말씀은 죽은 것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콜로 3,5) 이런 것들은 죽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던져버려야 한다. 몸 전체에 병이 옮지 않도록 베어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당신의 것을 모두 포기하신 분이다. 당신이 하느님이심까지도 모두 버리시고 당신을 낮추신 분이시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곳에 즉 아버지의 뜻 안에 당신의 거처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자신도 주님을 따른다고 할 때, 철저히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삶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뜻 안에 머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자녀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건강을 위해 유명 축구선수가 운영하는 축구교실에 등록시켰습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볼을 차는데, 자기 아이는 구석에 쭈그려서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된장찌개도 처음 먹으면 맛이 없잖아. 그런데 자꾸 먹으니까 맛있어지지? 축구도 그래. 자꾸 하다 보면 좋아져.”
이 말에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약 먹으면 쓰지? 그런데 계속 먹으면 달아? 나에게는 축구가 그래.”
그날로 축구를 그만두게 했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축구는 쓴 약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있는 반면,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각자의 몫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몫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남들처럼 살려는 마음에서 우리는 즐거운 된장찌개 대신 쓴 약을 힘들어도 선택합니다. 즐겁지 않은 노력만을 기울이면서 말이지요.
고 이어령 선생님께서 생전에 강의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천재로 태어났고,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예요. 360명이 한 방향으로 경주하면 1등부터 360등까지 있겠지만, 내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각자가 뛰면 360명이 다 1등이 될 수 있어요. 베스트 원이 될 생각을 말고, 온리 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밖에 없는 ‘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모두 다르게 창조하신 이유는 자기의 삶을 살라는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명성 높은 율법 학자를 찾아가 함께 머물면서 제자로 사는 것이 그 시대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당신께서 머무시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어떤 이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달라는 청을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하시지요. 즉, 세상의 관습과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나만의 길을 살라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사는 삶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만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만이 인생에서 유의미하다(재키 로빈슨).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여우들이나
새들도
저녁이 되면
제 몸을 뉘일 곳을 찾아 간다네.
그러나
주님의 보금자리는 하늘에 있기에
지상에는
당신의 머리를 기댈 곳이 없었고
우리의 보금자리도 하늘에 있기에
세상 어디에도
우리 영혼이
맘 편히 쉴 곳이 없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가끔 제 스스로가 나약해지고,
나태해지고 한없이 게을러져
현실에 안주하고픈 유혹에 시달릴 때...
내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며 무디어질 때마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세상을 사랑하는 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저를 다그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합리화하려고 하는 제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게
다그쳐 주시는 엄마의 잔소리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선한 영으로 둔갑한
악한 영의 속삭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적인 것에 치우치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로만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변명과 합리화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음을...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복음
제1독서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았다.>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6-10.13-16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8 제단마다 그 옆에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드러눕고
벌금으로 사들인 포도주를 저희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 댄다.
9 그런데 나는 그들 앞에서 아모리인들을 없애 주었다.
그 아모리인들은 향백나무처럼 키가 크고 참나무처럼 강하였지만
위로는 그 열매를, 아래로는 그 뿌리를 없애 주었다.
10 그리고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이끈 다음 아모리인들의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
13 이제 나는 곡식 단으로 가득 차 짓눌리는 수레처럼
너희를 짓눌러 버리리라.
14 날랜 자도 달아날 길 없고 강한 자도 힘을 쓰지 못하며
용사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
15 활을 든 자도 버틸 수 없고 발 빠른 자도 자신을 구하지 못하며
말 탄 자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
16 용사들 가운데 심장이 강한 자도 그날에는 알몸으로 도망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말씀
<나를 따라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