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3]대사大事, (출판기념) 잔치는 끝나고……
지난 2월 27일 그리고 3월 15일, 서울과 전주에서 내가 호스트host가 되어 치른 생활글 작가 최영록의 『어머니』 출판기념잔치. 제법 신경이 쓰였지만, 날짜를 잡아놓으니 시간은 가고 닥쳐온 행사가 무사히, 성황리에 끝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났다. 아아-, 잔치는 끝나더라. 서울의 경우, 내 인생의 길동무(도반道伴)들인 강호江湖의 난다긴다하는 사회 선후배(대체 불가능한 인간들)와 동료지인들이 중심이 된 반면, 전주의 경우, 나의 고향인 만큼, 꾀복쟁이 친구들과 중고교 친구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아무튼, 70여명과 110여명이 나의 초대를 받고 모여들던 '두 날two day의 초저녁', 나는 마냥 행복하고, 어쩌면 최고의 기쁜 날이었다.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제가 누군지 다들 아시죠?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모르는 분들도 많지요. 제가 공통분모이니, 오늘은 흥겹게 먹고 즐기는 날입니다. 자, 술잔을 높이 듭시다. 제가 ‘그렇다면?’이라고 선창하면 모두 ‘마시자’로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창작이 아닌 저작권이 있는 건배사입니다. 그렇다면?”라고 하자 일제히 “마시자”로 답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39]봄이 오는 길목, 어느 출판기념회 풍경 - Daum 카페
작가는 오늘의 영광을 일주일 전 마침내 요양원에 입주하신 아버지께 돌린다며 신문기사(문화일보 ‘고맙습니다’ 코너 게재)를 낭독, 울컥했다. 사연인즉슨. 15살 중2때 오일장(오수)에 처음 생긴 서점에 데리고 맘껏 고르라해 15권(박종화의 삼국지, 자고가는 저구름아, 김교신의 광복20년)을 다 사줘 십리길을 낑낑대며 혼자힘으로 갖고 왔던 일화. 그것이 결국 오늘날 시인, 소설가, 수필가는 못됐지만 생활글작가(생활칼럼니스트)가 되었으니, 그 공을 아버지께 돌려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아아-. 좋은 일이다. 기쁜 날이다. 올해 아흔(1935년생)이신 고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택시 타고 오신다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오시기만 했다면 어제 행사의 백미白眉였으련만, 날짜를 착각했다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미웠다. 하하. 스페셜 게스트를 초대했다. 22살 때 군대에서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인간승리’ 주인공, 송경태(62) 사회학박사. 그는 사하라-고비 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마라톤을 완주한 불굴의 인간이다. 안나푸르나, 킬리만자로, 그랜드캐년 등을 등정하고 2015년 에베레스트에 도전, 해발 6100m에서 네팔 대지진으로 눈물을 머금고 철수했다. 저술가이기도 하고 사회에 재능기부도 많이 한 한국판 ‘남자 헬렌켈러’라 할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간잡지 <전라도닷컴>의 발행인(황풍년)과 기자 4명(총인원)이 아예 사무실을 옮겼다. 찐팬의 성의에 보답하는 것으로는 과분했다.
작가의 시간 10분을 마치자, 현소의 명인이 <옛시인의 노래> <봄날이 간다> 등을 10분 연주한 데 이어, 서울에서 내려온 7080 통기타밴드(가든파이브통기타, 약칭 가파통)가 식사 전 전주前奏를 시작했다. 윤도현밴드가 아닌 윤중현밴드, 사람을 감동시켜도 분수가 있지, 그렇게 만류했는데 5인조가 출동하다니, 거마비를 얼마나 줘야 할까? 흐흐. 6시 반부터 <하하호호, 띵까띵까, 불고기전골>시간인데, 여기저기서 <순희 막걸리>가 날아다닌다. 작가는 모임이 모임인만큼 나름 성의를 다했다. 3층 홀에 들어서기 전, 예쁜 이름과 덕담을 남겨달라는 방명록이 있고, 읽지 않으셨으면 꼭 읽으시라고 강추한다며 10여권의 책을 펼쳐놓았다. 다음은 <전라도닷컴> 과월호를 50여권 쌓아놓고 가져가셔도 된다고 써놓았다. 그 옆엔 작가가 20년 동안 펴낸 책 10여권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나는 휴머니스트다, 은행잎편지, 백수의 월요병, 어느 백수의 노래, 문집 세 권 등). 작가가 앉아있는 책상에 <복 짓는 함>이라는 통이 있다. 책값과 밥값을 내라는 무언無言의 표시. 일일이 붓펜으로 사인을 해주는 손길이 바쁘다. 그날의 사인 문구는 <일일신日日新>. 풀이하자면 “나날이 새로우소서”이다. 그 와중에 추천사를 써준 두 분과 서울에서 내려온 사진기자 그리고 책을 예쁘게 편집해 펴낸 출판사 대표와 전라도닷컴 식구도 단체로 소개했다. 천년의 멸절을 뛰어넘어 오수개 복원에 30년을 바친 ‘엉겅퀴 박사(심재석)’ 소개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의리’하면 깜빡 죽는 전라고생 30여명(무순無順: 유희택, 윤중현, 형관우, 김관수, 최주원, 오규진, 고원영, 김택수, 이종대, 황의찬, 김종진, 맹치덕, 유지상, 송기돈, 이수택, 신귀생, 오동영, 최영배, 김현준, 김종석, 장신국, 김승기, 전을석, 정정모, 박웅규, 빙강섭, 한종용, 송규하 등)이다. 동부인同夫人만도 8명, 그러니 어찌 ‘하하호호’가 아니겠는가. 졸업한 지 50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많았다. 봄맞이 동문회를 겸한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리고 버금 가는 하이라이트는 봉천국민핵교 친구 10여명(한제욱, 공흥규, 조계영, 김종두, 김종서, 하재기, 김일곤, 문진두, 문병연, 오순자, 박지순, 하분임 등)이다. 이른바 아무것도 흉될 것이 없는 꾀복쟁이 친구들. 6년을 같이 다닌 ‘죄’이다. 오지 못한 친구들은 소식을 들으면 약이 오를 터(정대신, 조운수, 하조남, 서인숙 등).
윤중현밴드는 <7080 노래> 선곡選曲도 완벽했다. 우리 동년배에 이런 노래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을까. 현소의 명인도 신이 나신 듯, 다시 무대에 나섰다. 주인공 부부에게 바치는 <칠갑산>. 애절한 곡조가 묻어나 분위기를 더욱 달아올랐다. 한 친구는 윤밴드에 봉투를 찔러주기도 했으니. 마지막, 주인공의 십팔번 노래가 마침내 터져나왔다. 나훈아의 <테스형>. 돼지 멱따는 소리로 불러제키는데도 앙코르 나오기는 처음이다. 기다렸다는 듯 <막걸리 한잔>이 귀청을 때린다. 우는 것인지, 악쓰는 것인지, 노래하고는 영 멀지만, 그래도 이런 모임에 그런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아-, 잔치는 끝이 났다. 서운했으나 갈 길이 모두 바쁘다. 대부분이 전주일 터이지만 서울, 오산, 광양, 순천, 광주, 부안, 고창, 익산, 정읍, 임실이니 모두 조심하여 가시라. 눈물겹게 고맙다. 큰절이라도 하고 싶다. 나이와 성별이 상관없이 나의 영원한 인생 길동무들이여!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것을. 행복한 되새김질, 나는 밥통이 네 개일까. 원고지 20장(4000자), 30장을 쓰고 싶지만, 10장 넘어가면 읽지 않은 인간들이 태반이라기에 줄여줄여 15장이다. 굿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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