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친구와 함께 도봉산둘레길을 걸었다. 작년 봄에 다녀온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산소 씨의 배낭이 꽤 무거워 보인다.
손수 만든 우리 네 명의 점심을 짊어지고 온 것이다.
일인분도 아닌 4인분의 밥을? 우리는 각각의 배낭에 산소의 짐을 나누어 담았다.
둘레길 목표 지점은 4km쯤, 해발 130m 높이의 정자까지다.
평일이어서 산은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 이 시간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걷다가 쉬다가 하는 모습이 모두 힘들어 보인다. 몸이 그렇게밖에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마린과 산소는 지팡이까지 꺼내들고 완전무장을 했다. 나는 산행을 해본 지 하도 오래되었는지라
자팡이도 깜빡 잊어 버리고 왔다.
출발하여 몇 발자국밖에 걷지 않았는데 발걸음이 예전 같지 않게 무거워진다.
앞서가는 저 노인들이나 뒤따르는 이 노인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숨은 가쁘지 않는데 허벅지 오금쟁이가 자꾸 땡긴다. 작년만 해도 괜찮았는데
세월이 내 근육을 야금야금 도둑질한 것일 게다. 정자까지는 점심 전까지는 올라야할 텐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자꾸 쉬는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린과 시환은 대감걸음이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이바구하며 웃는 소리가 우리들보다 앞서 간다.
산소는 여전사처럼 잘도 걷는다. 저처럼 잘 걷는 여자를 누가 8순의 노인이라고 할까.
나마저 산소에게 뒤처진다면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여 남자의 자존심과 오기로
산소 뒤를 열심히 따라붙었다. 산소와 발을 맞추다 보니 뒷팀과의 거리가 자꾸 멀어진다.
앞서가다 기다리다를 반복하며 보조를 맞추다 보니 토끼팀 거북이팀이 되었다.
토끼팀이 낮잠을 네 번 자고서야 드디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정자가 하늘로 시원하게 올라 있다.
원형계단을 걸어 오르니 도봉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은 이제야 오느냐며 우리들을 반긴다.작년 가을에도 노란 단풍잎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지난 겨울에는 숲길 고랑고랑에 하얀 눈 뿌려 마중을 나갔다고.
이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지기 전에는 꼭 오겠지 가슴 조리며 기다렸다고.
우리는 정자에 올랐다.
도봉산 정상이나 오른 것처럼 네 명이서 어께동무하며 인증사진을 찍고,
포즈를 잡는대로 찰칵찰칵 카메라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앵글의 구도를 잡기 위해 앞으로 뒤로 자리를 옮기는데, 기우뚱하고 느끼는 순간,
아차! 나는 중심을 잃고 계단 뒤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뒷걸음 치며, 손폰을 쥔 왼팔을 계단난간에 기대어 미끄러지며,
무언가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허우적대다가, 오른 손으로 계단 난간을 나꿔챘다.
무위식적인 동작이었다. 놀란 친구들은 계단을 잡으라고 소리쳤지만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계단을 올라 섰는데 친구들이 사색이 되어 괜찮느냐며 내 몸을 더듬는다.
팔 다리 허리를 흔들어 본다. 괜찮다. 왼쪽 팔이 따끔거려 옷을 걷어보니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다.
천만다행이다. 나딩굴어 떨어졌더라면! 머리라도 다쳤더나면! 아찔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한바탕 소동을 거치고 나니 배가 고프다.
우리는 정자 아래 마루에 둘러앉아 배낭속 물건들을 끄집어 내놓았다.
준비한 것이란 대부분 산소가 만들어온 밥과 반찬이다. 그런데 만들어 온 음식이 작난이 아니다.
콩 넣은 찹쌀밥에, 더덕무침에, 황태무침 오이무침 나나스끼 마늘쫑 등,
그밖에 커피 떡과 과일 과자까지 진수성찬이다. 산소가 만들어 온 음식이 짜지도 맵지도 달지도 않고
입맛에 딱맞다. 대단한 음식솜씨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산소가 어머니 같고 누님 같은 생각이 번뜩 든다.
하여 "산소 누님,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감사한 마음을 큰소리로 일갈했다.
그런데 산소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잘못됐나?
산소는 허리에 손을 얹고 "58년 개띠 보고 누님이 뭐예요?"하고 쏘아 부치지 않는가.
아하, 누님이란 소리에 기분이 상했나 보다. 눈을 흘기며 뽀르통하게 토라진 그 모습이 더 재밋고 귀엽다.
우리는 서로 58년 개띠라커니, 45년 닭띠라커니 말을 건네며 맛있는 오찬을 즐겼다.
늙다리 네 사람이 농담을 섞어가며 벌이는 식사자리가 재미있게 보였던가 보다.
옆자리 마루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저도 58년 개띤데 갑장이군요."하며 말을 거든다.
그 말에 "거봐, 저 아저씨가 58년 개띠라잖아. 산소는 좋겠다. 58년 개띠라서."하고 분위기를 띄었더니
산소가 그 남자를 보고 정색을 한다. 45년 동갑네기라고. 산소의 정색에 그 사람은 당황해 하며
"정말 45년생이세요? 그런데 너무 젊어 보여요."하고 사과한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부인도 너무 젊어 보인다며 의아해한다.
1년만에 갖은 도봉산둘레길 산행은 이렇게 끝났다.
예전보다는 좀 버거운 산행이었지만, 토끼걸음 거북이걸음이었지만, 기쁨과 즐거움은 두 배였다.
오늘의 산행 의미는 아직도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음이요, 여친으로부터 맛있는 성찬의 자리를 받았음이요,
무엇보다 대형사고를 비껴 무사하게 끝난 친교의 자리였음이다.
시환의 배려로 통닭에 뒤풀이생맥주가 온몸이 몽롱해 진다.
하여 산소가 또 이런 맛있을 점심을 마련해 준다면 일주일에 한번씩 갖는 것도 괜찮겠다 했더니,
산소 왈, 그도 좋은데 다음부터는 김밥 한 줄씩 사서 앵기겠단다. 말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석양빛에 검게 탄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우리 늘 건강하자.
첫댓글 4인방 산행의 에피소드를 잼나게 엮어주셨네요 산소랑님 4인분 점심 준비하신 정성이 대단합니다
4인방에 대한 애정의 크기로 가눔합니다
젊은 저도 이제 산행은 포기했습니다
발목이 시원치 않고 무엇보다 발목 삐끗이 제일 겁나 살얼음판 걷듯 다니지요
네분의 이런저런 얘기로 읽는 우리가 즐겁습니다
우리의 산행날 크게 다치지 않은것에
감사 감사를 연발해도 감사한 날이었지요
후기글이 참으로 예쁘게 표현하셨네요
가을 노란 단풍잎부터
겨울의 하얀 눈 뿌려 마중을 나갔다고
이 봄꽃이 지기전에 꼭오겠지
기다림의 표현에서
여고생의 감성까지 자극 할정도로 아름답게 쓰셨네요
만남이 이루어 지면서
편하고 즐겁게 체력도 다지며
값진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래요
나도 사진 찍다 넘어져서 20여일 입원했는데 조심하이소~
천만다행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여 어디까지 올랐다가
어디로 하산했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참 잘 쓴 산행후기 인데 그것이 옥의 티라면...ㅎㅎ
범부님 많이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四人幇의 움직임엔 어딜 가나 행복해 보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그 우정 오래도록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범부 친구 님 의 글속에 그날 하루 일상 이 고즈넉이 녹아 있습니다
늙은이 의 북한산 둘레길 중 18길 도봉옛길 과 19길 방학동길 완주 가 그리 쉽지는 않았는데
이제 점점 ㅎㅎ 내년에는 올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소 어짜요 이일 을 ㅎㅎ
아무턴 우리 욕심 은 모두 내려 놓고 좋은 마음 으로 지내 봅시더
보문 능선을 올라서 방학동으로 내려왔나봐요...?
@不死鳥(박우락) 도봉산 역에서 시작해 정의공주능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녹음이 우거져 걷기 좋은 코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