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토) 10시,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지하1층 다리소극장에서 “어린이 해방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2022년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심포지엄이 열렸다.
김기전과 방정환 선생이 1923년 5월 1일, 어린이 권리와 해방을 선언한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공표한 지 100년이 지났다. 문학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지, 낡은 제도와 규범에 도전하고 당당히 맞서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지, 성장과 해방하는 힘을 보여주고 성취하게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하였다.
김영주 이사장의 개회사를 김인숙 사무총장이 대신 읽으며 심포지엄의 문을 열었다.
김영주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 살고 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으며, 시대를 담고 있는 문학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임서영 님(초4)과 제이든 님(중2), 백호영 님(중3)이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노래하는꿈틀이들’로 활동하고 있는 박우진, 정혜심 님이 어린이 해방을 담은 노래를 했다.
어린이를 향한 방정환의 마음을 담은 곡을 심포지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렀다.
이어서 우리 회 자문위원장이면서 어린이문화연대 대표인 이주영 님이 기조강연을 했다. ‘어린이 해방 선언’은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나침반이 되고, 인류 역사가 나갈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어린이 해방 선언문의 의미를 다시 짚었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어린이를 한 사람의 권리를 가진 사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새 사람, 자기 삶을 스스로 서로 도우며 기쁨으로 자라는 사람, 어떤 도전과 억압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이겨내며 성장하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는 작품과 작가를 찾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학 속 어린이·청소년은 해방되었나?”라는 주제로 그림책, 동화책, 청소년책 발제자들이 발표를 했다.
먼저 어린이도서연구회 그림책 목록위원 김현정 님이 “그림책에 어린이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근 그림책 출판경향을 짚으며 그림책 독자층이 확대되면서 어른 독자에게 치중되어 어린이가 조금씩 소외되어 간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괴물들의 나라를 선택하며 독립적인 어린이 세계를 보여주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를 잘 버무려 스스로 슬픔을 극복해 가는 어린이를 그린 《눈물바다》, 권위적인 선생님에 맞서는 어린이를 그린 《지각대장 존》, 아빠의 보살핌을 받는 나약한 존재가 아닌 단단하고 건강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 달에는》을 중심으로 그림책 속 어린이를 이야기했다. 더불어 재미와 놀이가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였다.
김현정 회원은 국내 창작 그림책 중에서 어린이가 존중받고 해방하는 그림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어린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할 책, 어린이의 마음을 담은 책, 상상력이 넘치는 그림책이 많이 출간되어 어린이가 책 속에서 존중받고 해방의 즐거움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동화책 목록위원 김인숙 님이 “동화에 등장하는 어린이 인물과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영웅의 면모를 갖춘 인물로 〈동생을 찾으러〉의 창호와 〈칠칠단의 비밀〉의 상호를 소개하며 어린 인물들이 자신들의 의지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는 오늘날의 어린이 문학에서 보기 어려운 서사라고 했다. 분노의 힘으로 성장하는 인물로는 《싸우는 아이》의 찬수를 꼽았다. 찬수의 선한 분노가 스스로를 서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나쁜 어린이 표》의 건우는 선생님의 부당한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로 부각했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망만 남은 인물로 그려졌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의 민구를 새로움에 대한 열망으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인물로 꼽으면서 개척자 민구와 민구를 응원하는 친구 은결이가 어른과 사회가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인숙 회원은 어린이가 해방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문학에 관계된 어른들도 해방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며 어린이도 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질 때 해방하는 어린이도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이면서 문학평론가인 오세란 님이 “청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나요?”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청소년 해방을 방해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로 청소년 노동을 꼽고, 청소년 노동을 다룬 청소년문학으로 청소년 인물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청소년 노동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1929년 발표한 방정환의 〈금시계〉를 소개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동의 자리로 위치를 옮긴 주인공 고학생이 얼마나 쉽게 불량한 청소년으로 인식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노동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정당한 권리를 얻지 못한다며 〈헬멧〉과 《나는 무늬》를 예로 들며 청소년이 새롭게 심화된 노동 환경에서 어떤 위험과 고민에 빠지게 되는지 이야기했다. 또 특성화고 학생이 겪는 문제를 담고 있는 〈일요일〉을 통해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 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철학의 부재와 어른들의 도덕적 방임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오세란 회원은 청소년 해방은 청소년 주체가 스스로의 생각을 말로 드러내어 진정한 인격을 가질 수 있도록 성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데 그것은 청소년소설 속 인물들의 아주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발제자들의 발표가 끝나고 네 명의 토론 패널이 무대에 올랐다. 토론 패널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채움 활동가 제이든 님과 백호영 님, 그리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진숙 회원(성동지회)과 박미란 회원(대전지회)이다.
박미란 님은 《싸우는 아이》의 찬수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며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어린이 편에 서서 어린이 해방을 돕는 어른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고 질문했고 이에 김인숙 님은 동화 《마틸다》에 나오는 하니 선생님이 어린이를 이해해고 존중하는 어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림책 《다음 달에는》의 주인공은 잘 자란 아이가 아니고 그런 상황에 내몰려 웃자란 아이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목록위원인 이은숙 회원은 작품 속에서 가정 내 안전망은 아빠의 사랑이라며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아이를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은 학대이지만 작가가 이것을 가정 내 문제로 보지 않고 있어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제이든 님은 어린이 청소년이 해방이 되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그와 관련하여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청소년 인권 운동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이에 오세란 님은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와 본인의 평론집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를 추천했다. 그리고 지음이나 띵동 같은 청소년 활동가 모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활동이 가시화되고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덧붙여 청소년들이 발제를 하고 어른들이 함께 토론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어른들이 도울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백호영 님은 청소년 인권 문제를 쉽게 다루고 있는 책이 있는지 물었고 과거보다 청소년 인권이 보장되는 쪽으로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청소년들조차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청소년 인권 관련 이슈가 있을 때라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김현정 님은 청소년 현장실습 노동자의 죽음을 고발하는 그림책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김인숙 님은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을 키우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싸우는 아이》를, 오세란 님은 두발단속이 화제가 되었던 일을 언급하며 《열일곱 살의 털》을 권했다.
이진숙 님은 최저시급을 주지 못하는 〈헬멧〉의 박 사장이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드러내기보다 작품이 배달플랫폼의 문제를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발제자의 생각을 물었다. 오세란 님은 단편이다 보니 다 담지 못했을 거라며 배달플랫폼 문제는 꼭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나온 질문도 있었다. 어린이책 출판 관련 일을 하는 윤지원 님은 요즘 어린이책 출판 경향에 대한 그림책 발제자의 우려에 공감한다며 출판계에 요구하는 내용을 듣고 싶다고 했다. 김현정 님은 독자 연령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출판사는 상업적인 이유 등으로 그림책 출판 시 독자 연령을 대부분 4세~7세로 표기하는데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출판사에서 밝힌 독자 연령을 따르지 않고 책 평가 과정을 통해 다시 정한다고 했다. 출판사가 정한 연령보다 더 높게 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합 연령을 찾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숙 님은 어린이·청소년 책이 기술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그 안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서사가 과연 충분한가라는 고민이 있다며 어린이 청소년 문학을 하고 있는 우리 회는 얼마가 어린이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인숙 님은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문학 안에서 어린이 청소년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김인숙 님은 어린이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가가 오늘 심포지엄의 큰 방향이라고 하면서 어린이에게 양분이 되는 양질의 책이 많이 나와서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가 함께 읽고 같은 위치에서 활동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세란 님은 요즘 청소년문학에서 사건이 아닌 이미 일어났던 사연을 보여주면서 싸울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면서 청소년을 신뢰하는 작가가 사건을 만들고 청소년을 내세워 싸울 수 있게 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진행은 강미영 사무국장이 맡았으며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 “어린이 해방을 논하다”는 유튜브로도 생중계되었고, 전체 영상은 어린이도서연구회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