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성애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2남 4녀중 세 번째 딸로 출생. 소식을 들은 시골 할아버지께서 “또 가시내여?” 딱 한마디 하셨다고 함
공무원이시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니다가 5학년말쯤에 광주 문화초등학교로 전학, 졸업함
초등학교 3학년때 함평군 백일장에서 <라디오>란 제목으로 산문을 써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희한하게도 상품이 남학생 가방이었음. 때마침 내 바로 위에 오빠가 학교에서 친구랑 싸우다 가방이 찢어져서 보자기에 책을 담아 다니고 있던터라(형편이 어려워 가방 사주는 걸 미루고 있었던 듯) 식구들한테 엄청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남. 이 사건으로 내가 글을 잘쓰는 걸로 착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쭈욱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됨.
1980년, 전남대학교 인문사회계열 입학
민주화의 열망이 절정에 이른 5월, 공부는 않고 거의 매일 학교에서 도청 앞까지 왔다갔다 함. 17일까지 도청 앞 시위에 참가하다, 18일부터 학교도 못가고, 집안에 갇혀서 살았음. 며칠 후에 2년 선배였던 둘째 오빠와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무안으로 끌려가서 광주가 완전히 조용해진 다음에야 다시 광주로 돌아옴.
학교신문에 시와 산문을 몇 차례 발표한 적이 있음,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너덜너덜한 앨범속에 다행히도 스크랩되어 있는 글을 발견하였기에 유치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이것도 하나의 추억거리란 핑계로 올려본다
어항 속의 푸념
눈이 시린 형광불빛으로
투명한 유리상자 속
줄무늬 고기
빨간 금붕어
얼룩무늬 열대어
피부색깔은 달라도 좋소
우린 한 우리에 모였으니
고향이 어디오
출생지가 어디오
조상은 달라도 좋소
이젠 어차피 한 식구니까
길고 긴 나날을
무얼하고 보낼테요
검은 바위에 앉아도 보고
울창한 숲 사이를 누벼도 보자꾸나
내 고향은 햇살이 부서지는 광활한 大洋
조무래기들이 헤엄치던 시내였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오
지금의 내 안식처는
사방이 꽉 막힌 유리관인걸
밤낮으로 뿜어대는 공기만 삼키고 살란말이오
蓮香이 감도는 水宮이 아니면 어떻소
추억을 이야기 할 동무가 있으면 그뿐이오
평온한 내집에 어쩌다
짖궂은 魔手의 침입으로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서로를 부둥켜안고 발버둥을 쳤었다오
검은 바위에 푸른 옷이 입혀지고
가녀린 해초가 고목 되는 날
그땐, 우리도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으련만
<1980. 9. 전대신문>
* 어느 비오는 날 학교 앞 음악다방이었을 것이다. 구석에 놓여있던 어항 속 물고기가 바로 우리들 같다는 발상은 좋았는데 표현이 어색함. 이후 이념써클에서 가입을 하도 적극적으로 권유해와 피해다니느라 곤혹을 치르기도 했음.
대학 4년동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지금껏 후회됨.
공부 대신 뭘 열심히 했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밝히기 어려움.
학교때 별명은 양파였는데, 이유인즉, 자꾸 벗겨내도 그 속이 다 보이질 않아 자꾸만 벗겨보고 싶은 사람이라나? 나름대로 내숭쟁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됨.
<시와색 동인시집에 쓴 강정숙 선생님의 글>
우리의 은순이, 유성애를 소개합니다. 그가 ‘은순이’가 된 것은 은은한 향내와 함께 은근한 고집도 한몫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보기에도 그는 참 고운 사람입니다. 그의 시도 그러하지요. 반듯한 외모와 잔잔한 미소가 매력인 사람이며 우리 중 가장 속 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말씨도 조용조용하지요. 그러던 그가 최근의 글에서는 관능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관능성마저도 은은하게 품어져 나오지요. 그는 영락없이 은순이 입니다. 그의 시는 주변적인 사소함에 깊이 천착됨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의 사소함은 우리네 삶의 본질적 측면을 아우르고 있는 사소함입니다. 그가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도 거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베어있고 일탈에 대한 꿈을 가장 많이 꾸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은순이로서의 기질이 서서히 발동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들뜸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기도 하는 그는 우리들 중 가장 오랫동안 시를 붙들고 씨름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기찻길 옆 그 방
계림동, 철길 옆에 산 적이 있지 부엌문 열면 쇠 비린내 훅 달려드는 방, 순전히 방 값이
싸다는 이유로 덜컥 이사를 하고 그래도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아니라며 나를 위로하던
언니의 방, 철길 옆 펌프 샘은 지금도 거기 있는지 몰라 무더운 여름밤 미적지근한 수돗
물이 성에 안차 길어다 쓰던 작두 물, 온몸에 쫘악 소름이 돋아 이히히,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 나던, 가시내들은 양손에 바께쓰를 들고 시커먼 철둑길을 겁도 없이 걸었을까 발을
헛디딘 쥐새끼가 비명을 지르며 낙상할 때면 잠 속의 우리들이 질러댄 비명소리에 천장이
다 들썩거리던 그 방, 기적 소리 삑삑대는 새벽녘 언니는 서울 가는 기차를 타고, 나는 엄마
에게로 가는 꿈을 꾸던,
<동인시집 수록 10편중>
호텔 썬 크루즈 *
"어디를 가시려고 과속하십니까"
구불구불 고갯길 옆 팻말에
픽, 웃음난다
굳이 빨리 가야 할 까닭없는
당신과 나
중년의 아슬한 고개를 넘듯
한계령을 넘고 또 넘는다
설악의 풍광에나 흠씬 취해서
어슬렁어슬렁, 낮 깊어 도착한
정동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 꼭대기에
질주본능을 접고 산으로 간
배 한척 정박해 있다
달려야 할 때 달리지 못한
멈추고 싶을 때 멈추지 못한
내게, 약속처럼 달려든 싯푸른 물살
육중한 배는 오르가즘의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 한바탕 휘청한다
으윽, 옆방에서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정동진에 있는 배 모양의 호텔 이름
렌즈 둘
이젠 내가 너를 찍어주마 내 몸속에서 필름 감기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네 핏발 선 눈을,
엉덩이를 까고 앉은 앳된 여자의 오줌발에 헐떡이는 숨결을, 탈의실의 벌거벗은 아낙을
훔쳐보며 낄낄대다 일그러진 광대뼈를, 밤마다 바지속에 갇혀 꿈틀대는 짐승의 뿌리 그
태초의 울음소리를, 가끔씩 지퍼를 열고 나와 시위하는 정액들을, 그리고 네 어미만 아는
불알 밑 속점까지도
나는 날개를 거세당한 나방, 너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나를 들여다보지 다 보았다며 웃지만
넌 모르는 것이 있지 죽은 척 엎드린 내 심장에 내장된 600만 화소 최신형 렌즈를, 축축해
진 허벅지 사이 네 고장난 렌즈를 비웃다가 후끈 더워져서 흔들리는 내 더듬이를,
아이타 페아 페아 *1
달나라는 지나치게 환상적이죠
처음이자 마지막일 지도 모를
당신과 나의 휴가엔
꽃섬에나 갈까요
사철 이름모를 들꽃이 수다를 떠는 꽃섬엔
텅 비운 가슴 하나만 가져가면 되죠
어렵게 구한 달나라행 티켓이 마음에 걸린다면
투자할 땅을 물색중인 부자에게 비싼 값에 팔아
타히티로 가요
다 식은 줄 알았던 심장이 마구 요동쳐요
우리가 한때 연인이었던 것
부부가 아닌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요
멀리 바다가 보이는 야자수 그늘에서
운 좋게도 늙은 화가와 마주친다면
당신과 나의 지갑을 털어 그 중 가장 비싼 그림을 사고
그의 젊고 아름다운 연인을 위로하겠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밤낮으로 미사일이 날아다는 거
아프리카 어디에선 수만명의 아이들이 굶어죽는 거
우리에겐 그저 슬픈 뉴스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 기행문 곳곳에 주문처럼 적혀 있는
아이타 페아 페아, 아이타 페아 페아
온 세계에 이름을 날린 화가가
영양실조로 죽고 태평양을 건너 온
타히티의 여인들 *2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박힌
아, 꽃섬......
뱃머리에 한 발을 올려놓고
내릴까? 망설이는
*1. aita pea pea '걱정 말라'는 뜻의 타히티 말
*2. 폴 고갱의 그림 제목
<문학과 비평 2004, 겨울호>
* 1984년 1월, 졸업을 앞두고 취업도 안되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일 때, 취직시험 치러 서울왔다가 한 남자를 만나 2년 연애, 가난한 공무원인 그 남자의 월급이 거진 다 날아가는 데이트비용이 아까워 덜컥 결혼하자고 함.
그 남자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때, 한집에서 살던 고 1 자취생이었음
내가 중 1땐가 서로 이사를 가서 헤어졌다가, 한 10 년만에 어찌어찌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땐, 헤어진 오빠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음. 그 이상은 절대 아니었는데 ...나중에 이 남자가 자꾸 그걸 운명쪽으로 몰고 가는 바람에 그만.. 암튼 결혼식 올리고. 홀어머니, 시동생 하나와 방 두 칸짜리 셋집에서 고단한 신혼생활이 시작됨. 어찌어찌, 날 닮은 딸 하나 그 남자 닮은 아들 하나 별 힘도 안들이고 낳아서, 지금은 엄마 아빠보다 훨씬 커버렸음.
그 노을 속으로
나 아직 세상모를 적에
노을보다 고운 것 천하에 없을 적에
초롱한 눈빛의 너, 쭈뼛쭈뼛
강 건너 노을 가까이 가보지 않을래?
작고 허름한 쪽배와 삿대
생각할 틈도 없이 난 고개를 내저었네
도망도 가지 않고 머뭇대고 있는
나를, 말없이 넌 잡아끌었네
행여 배 갈앉을까
가진 것 다 강물에 던지고도
함께 바라보는 노을은 황홀했네
강은 곳곳에 여울을 숨겨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살을 일으켰네
가도 가도 노을엔 닿을 수 없었네
한여름 땡볕과 살여울은 무섭지 않았네
사과빛 노을 속으로 차르륵 숨고만 싶었네
몇년을 더 살다가 붉디 붉은 아기를 낳고 싶었네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는 유독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 3년전 너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신 후로 더욱 더 그렇다. 늘 나를 믿어주시고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못해도 한없는 사랑을 주신 분, 내 가족사가 있는 시 몇 편 가운데, 한편을 적는다
아홉 살 고개
그날, 동네 아이들과 난 머릴 맞대고 민화투를 치고 있었다
퇴근해 돌아온 아버지는 마루에 걸린 빗자루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 년아,
어디 본 볼 것 없어 화투짓이여
아버진 내 머리채를 잡고 방바닥에 패대기쳤다
뽕뽕다리 건너 화투방에 가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찾아낸 엄마얼굴은 늘 흙빛이었다
주머니 속, 종이돈 한 장에 질질 끌려
집으로 오는 길은 캄캄했다, 멀었다
핏기없는 얼굴로 큰언니가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우리 집엔 해가 들지 않았다
사흘 걸러 빚쟁이가 찾아들었다
학교가 파해도 집밖을 빙빙 돌며 밤이 되길 기다렸다
열아홉 큰언니는 열 두살 더 먹은 면서기한테 바득바득 시집 갔다
모든것이 고래심줄처럼 질겼다
열 살로 가는 길이었다
*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나 어쩌다 만나는 친정어머니와 대화하다 보면 말씀 하나하나가 다 시다. 그 이야기 속엔 어머니 개인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한 가정의 역사와 우리네 여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럴 때마다 놓치고 싶지 않아 쓰다 보니 여러 편 되었다. 아직도 못다쓴 얘기들이 많지만... 차차 쓰기로 한다
텃밭사내
새벽 어스름에 엄니는
늙은 암코양이처럼 살금
집을 빠져나간다
미끄러지듯 건너 간 미명의
울 안, 적막을 건드려
단잠에 빠진 사내
가만가만 깨운다
장딴지에 감기는 이슬을
툭 툭 털어내며
흘깃, 눈웃음 건넨다
내사 춘삼월 꽃구경도 재미없고
십 원 짜리 화투는 성질에 안맞는당께
선잠 깬 사내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자
휘이, 사방을 한 번 둘러 본 엄니
펑퍼짐한 엉덩이 들썩거린다
손놀림 덩달아 부산해진다
삼십 년 독수공방 일흔 넘어
벗어던지게 만든, 철철이
파릇한 자식들 푸지게 낳아준
그 사내
유월 땡볕 뜨거움도 잊고
살가운 수다에 신명난 어머니의 호미질
언제나 그칠까
해는 아직도 중천에 있으니
사랑이거나, 관심이거나
어머니의 기억력은 신기했다
고샅에 삼삼오오 마실 나온 닭을 보면
고창떡네 삥아리 그새 알 낳겄다이
창수네 장닭이 세 마릴 것인디이
쩌렁쩌렁 어머니는 당당했다
낫 놓고 기역자는 몰라도
일꾼들 품삯, 나락 찧은 외상값
어머니 셈은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신통한 어머니의 기억력은 제삿날 더 빛났다
꽃 그려진 접시는 덕구네
손잡이 떨어진 냄비는 복례네
빌려온 그릇이며 수저가 어머니 손을 거쳐
다음날 주인을 찾아갔다
해 떨어지자 일수 찍듯 전화기 앞에 앉은 어머니
수첩도 안 보고 자식들 전화번호 척 척 누른다
오늘 마지막 전송지는 한달 전 식당을 개업한 막내딸네
어쩌냐, 토요일이라 손님 좀 드냐!
거짓말
경동시장 약방골목에 가서 보았다 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를 것 같았던 우리네 어머니 속마음을, 조붓한 길 양 옆으로 쭈욱 늘어선 좌판엔 별의 별 건강식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뼛속에 구멍 숭숭 난 우리 엄니들 딱 한 달만 먹으면 펄펄 날아다니는 홍화씨 기름을 외쳐대는 사내, 저것 다 말짱 거짓말이여, 어머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약방엔 벌써 먼저 온 사람들이 대여섯 앉아 기다리고 있고 순서대로 한 사람씩 들어가서 침을 맞는데, 막 알 낳고 난 암탉맹키로 궁뎅이 힘을 차악 빼란 말이여, 늙은 의원이 버럭 화를 내면 이 눔의 몸뚱이가 어째 맘대로 안되까이, 진땀을 빼는 팔순의 어머니 허-, 허-, 쑥쓰러워 내는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하는 의원에게 꾸벅 인사까지 하고 나와선 젠장맞을, 그냥 저냥 살다 죽는 것이 수겄다, 뒤뚱뒤뚱 무거운 발걸음 옮기셨다 몇 발짝이나 걸었을까 봐라 에미야, 걷기가 원허니 보드라와야, 한 마디 하고는 어느새 아까 그 홍화씨 기름 좌판 앞에 턱 멈춰선 우리 여그서 잠깐 쉬어가자, 하시며 철푸덕 주저앉는 것이었다.
봄빛 때문에
노인정 문을 빼꼼히 열자
수십 발의 화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든다
닳고 닳아 뭉툭해진 화살촉에
살아 굼실거리는 호기심이라니!
아직도 기다릴 것이 많다는 듯
마알간 눈망울이라니!
어머닌 민화투 판에 끼어 계신다
온종일 새우처럼 누워
벽만 쳐다보는 쭈그렁 할매도
잔심부름 할 젊은 할멈 축에도 들지 않는
일흔 하고도 다섯
10원 짜리 몇 개 쩔렁대며
한 두 시간 재미나게 때울 수 있는 나이
-뉘집 며느리당가?
-빨리 안치고 뭐혀?
짜증스런 참견도 못들은 척
의기양양 손짓을 해 보인다
-팥죽 먹으러 가자고 왔구먼
묻는 사람도 없는데 생글거리며
노인정을 빠져 나간다
한 마리 나비처럼 사뿐사뿐
뒤꿈치 아른대는 한낮
봄빛 때문에, 나는
자꾸 뒤쳐지고
부적(符籍)
경오년 오월 윤달 놓치지 않고
울엄니, 큼직한 갈색상자 하나
몰래 장롱 위에 올리셨다
낯 설은 상자 속을 누구도 묻지 않았다
중국산이 아닌 안동포에
평생 입어 본 여느 옷보다
큰 돈 들여 마련한 입성을
오뉴월 햇살이 기웃기웃
소슬바람 심심찮게 들락거린
장롱 우엔 겹겹으로 시간이 눕고
한 점 바람 없이도 가랑잎
뚝 떨어지는 늦은 가을날
엄니는 낙엽을 쓸 듯 먼지를 닦아 내신다
이번엔 더 높은 데로 올리라신다
이태 전 큰 수술도 견뎌가며 간신간신
넘긴 세월 손가락으로 헤아리다
생각난 듯, 구불구불 파마머리에
옥색 깨끼 화사한 액자 사진을
젊은 아버님 사진 옆에 턱-
멋쩍은 웃음으로 선수를 치신다
저것들이 다 내 부적이랑께
회산 백련지*
연꽃 보고 싶다던 어머니는 연못 입구에 내리자
마자 앉을 자리부터 찾는다
꽃구경일랑다리짱짱할때나하는것이제, 마른
나무껍질 같은 손 설레설레 내젓는다
고장난다리부릴데라고는그저저승뿐이랑게, 불그죽죽
핏줄 도드라진 정강이며 쭈글한 장딴지가
영락없는 속 빈 홍두깨다
몇 남지 않은 신경세포들이 발광하듯
뼛속에 길을 내고 있는 거다 발설 못한
통증의 씨앗들이 그 허연 길을 뚫고 나와
막판에 붉은 꽃 터뜨린 거다
수려한 꽃잎에 탄성을 쏟아놓고 연못을
한 바퀴 휘이 돌아오는 사이
활짝 펼친 연잎 위에 쌔근 잠이 든
어머니, 못속에 구멍 숭숭한 연뿌리 하나
둥둥 떠 있다
*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 있는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
<제 7회 동서커피문학상 가작 입상작>
방백(傍白)
생전 말도 없는 영감탱이, 친목계에서 술 한 잔 걸치고 온 날 뜬금없는 소리를 허드랑게 만일에 다음 생이 있다믄 말이여 나는 당신이랑 또 살고자픈디 할멈은 어뗘?, 으이구 징글장글혀 젊어서 써빠지게 헌 고생 뭔 미련 있어서 또 산다요 그러고는 말아부렀는디 참말로, 그리 허망하게 갈라고 그랬능가 느닷없는 소리를 혀싸트란 말이여 내 참 생각도 없제, 뭔 돈 드는 말이라고.....
주섬주섬 막 내린
어머니의 일인극
텅 빈 객석에서
나는 듣는다
‘나도 그려’
아따 그년,
똥줄 꽤나 탈것이여 시방
지 서방 암인가 뭣인가 큰 수술 헌다니께
조막만한 애간장이 월매나 쫄아들 것이냐
팔자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헌다더니
옛말 그른 것 하나 업시야
딸 넷 중에 얼굴이 빠지냐
키가 작길 허냐, 그년이
속은 좀 유들유들허간디
꽃 같은 스물 둘에 잘 댕기던 직장 때려치고
니 앞질러 시집을 간다고 헐 때부터
틀어졌당께, 아암
첫 단추 잘못 끼워 뒤틀린 팔자
고쳐 끼워도 말짱 도루묵인갑다
사람 좋으니 괜챦을 것이라고 덜커덕
짝 지어주고는 이 눔의 영감탱이
나 몰라라 저세상으로 훌렁 안가부렀냐
애비같은 서방이 말이나 되냔 말이여
미쳤지, 아암
걸리적거릴 것 없는 두 화상
알콩달콩 잘 산다 싶더니만
하늘도 무심타, 엠병헐
뭔일이사 있겄냐
오살년 그년,
병원에서 끼니나 지때 찾아먹는가 모르겄다
<소망 하나>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난 사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친구도,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못할 고독이 시를 쓰게 한다
어머니, 남자, 사랑, 그리움, 그리고 내 주변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화두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러할 것이다
맘에 드는 옷 한 벌 사다가 옷장에 걸어두었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이제 시 한편 뽑아두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시를 잘 쓰고 싶다. 아니 맘에 드는 시를 쓰고 싶다
죽기 전에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집 한 권 엮을 수 있다면
내가 시를 쓴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2005년, 1월 11일>
첫댓글 에공~ 말도 잘든는 제비꽃님. 후다닥 잘도 쓰셨네요^^근디.. 처음부터 제속 다 드러내면 나중엔 뭐쓸낀가요(ㅎㅎ)
남보랏빛 제비꽃 살풋 고개숙인 모습과는 영 다릅니다. 일찍부터 기질이 대단하셨네요. 같은 소망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비는 역시 어려서도 양파였구나.........한결같은 사람은 인생 최고로 잘 살은거고 잘 살거라 믿는다요. 골 곧은 제비꽃을 언제까지나 지켜보며 행복하하고 싶다. 기대가 그만큼 크단 말인거 알고 있제이.홧팅.
음마,, 제비꽃님, 어쩌면 우리 몇번은 스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네요 계림동이면 84년부터 88년까지 열심히 그 골목을 쏘다녔당게요 거기서 보이는 무등산 백악관에서 데모 열심히 하는 형들에게 밥해주고 돌 날라다 주고 그랬어요 (물론 저는 무서움이 많은지라 도망다니고요ㅎㅎ) 제비꽃님, 역쉬 여장부 답당게요 고마,
손 한번 잡아주이소,,(원래,, 갑자기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잘못 가부럿네,,다시 턴,,) 사실은 지도 동서커피문학상에 글 냈거덩요(쉿, 비밀,,챙피스러버서 말 안하고 시치미 떼고 있어지라 ㅋㅋ) 맥심상 탔어요 상금도 음고 달랑 크리스탈 트로피 하나만 왔드만요 에고,,맥심 커피라도 부상으로 주지,,ㅎㅎ행복하세요~~^^*
요며칠 전 꽃제비 사진을 보고 제비꽃님 생각 많이 했어요. 글자 배열순에 따라 다른 엄청난 삶의 간격. 제비꽃님, 버젖하게 시방을 차리셨으니 이 어찌 행복타 아니하리요. 방문 화알짝 여시고 맘껏 시의 향기를 날리서요
가을님, 늦게나마 축하해요. 우리집 계림국민학교 후문쪽이었는데, 어쩐지 가을님 얼굴이 낯이 익드라니...우리 계림동에서 몇번은 마주쳤겠네요. 미소님, 저 아직 안보여준거 많아요, 칠부능선님, 시소리님, 편지님도 사랑합니다
요즘 제비꽃을 자주 바라봅니다. 꽃말이 겸양 성실이라고 나와 있던데 지금까지는 비슷한 것같습니다. 더 보여주지 마세요^-*
제비꽃님 반갑고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뵙고 인사드려야 하는 줄 압니다만 우선 여기서 먼저 꼬리말로 인사드립니다. 제비꽃님의 글을 보면서 하나의 소재(어머니)를 집중적으로 그려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여러 생각을 펼칠 경우 글의 선명성과, 산만해 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주제넘고 저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비꽃님이 사용하는 시어들이 약간씩은 어둡고, 조금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다가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부족한 느낌 이해 하시길.
동박새님, 말씀으로만 익히 들었습니다. 우선 반갑구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들켜버린듯 부끄럽습니다. 졸작들을 읽어주셨다니 감사하구요. 조언 잘 새겨듣겠습니다. 폴폴님, 저 더욱 겸손하고 성실한 제비꽃이 되렵니다
제비님도 과거의 한복판에서 살았군요. 우리들이 살아온 나날이 다 시입니다 지금도 부지런히 쓰고 계시지만 앞으로 더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흐흐~~누가 지었을까요. 양파!!
제비꽃님, 구서구석 핀 앙증스런 제비꽃속에 쉬었다 갑니다...고운 마음씨 곳곳에 발견하는 재미도 톡톡하군요 열심히 사시는 제비꽃님의 방 다녀 갑니다 다음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편하고 너그러운 여인 하나, 제비꽃으로 소박하게 피어나더니 이제는 장엄하게 꽃의 동산을 이루는 화원을 경영하게 되셨군요. 때로는 아름답고 떄로는 소박하고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꽃을 피우시길 기원합니다.
포른하늘 몽개구름 매화주 향기 그윽한 제비꽃방 , 시를 읊다 취한 길손 떠날 줄 모르네 ,아가야 서산에 해 기우느냐 내잔에 잔이 기우느냐 ,차라리 이대로 몸 기울어 하룻밤 거하고 가잤구나 .
NEW하고 반짝이길래 ... 방문 열고 들어왔더니 군데군데 물감 좀 뿌린거유? 젤 가까운 이웃이라 숨소리에도 관심이 가진다우 제비님.
며칠새 다녀가신 여러 님들! 손님맞이가 늦었습니다. 공한성님은 뭔 말씀을 그리 목에 힘을 딱 주고 하신다요? 목 아프게스리...말나리, 야생초,가을천, 길손님 오다가다 목마르면 들르세요. 그땐 차대접 제대로 할게요. 편지님, 전 인테리어기술자 불러다 꾸며야 할까봐요. 영 재주가 없으니...
바람소리만 나도 그 님인가? 반짝이는 불빛만 보아도 차 한잔 그리워 문 열어 봅니다.
몇년을 알고 지냈어도 잘 몰랐던 님의 구석구석을 오늘에야 살짝 엿보고 갑니다. 제비꽃이라는 닉 만큼이나 편안하고 따스한 여인 유성애, 알러뷰~~ .
데이지님, 소문도 없이 언제 다녀가셨나요? 건강하시죠? 시도 잊지않았구요? 보고싶네요.조만간 한번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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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발자국을 남기면 제비꽃님에게 마음이 전해질까요? 사람이 변변치 못해 오랜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른채하고 지내다가 뻔뻔하게 이렇게 나타나고 모든분께 미안해여. 특히 제비꽃님은 특히 저에게 잘해주셨는데...언제 시간이 되면 5년 동안 투병하고 있는 제 병명과 상태를 말씀드릴께여. 보고싶어용
하얀마음님, 제가 방청소를 게을리하다보니 이제야 봤네요. 이제라도 찾아주셔서 반갑고 고마울따름이지요. 언제한번 차분하게 만날날 있겠지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ㅎㅎㅎ 이제야 답장이 이제야 봅니다. 넘 좋아요. 진짜 소인 찍힌 신년카드를 받은 기분이랍니다.
안길근 인사드립니다 ,항상 기쁘시고 행복한 시간들이 꽉 채워지시길.. 기원합니다
누추한 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님 모습 볼때마다 중후한 무게를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가식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한다 절제된 당신의 모습이 좋다 순수한 자연 예술가의 삻을사는 제비꽃 님이 좋다 그냥 다 좋다
ㅎㅎ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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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님, 얼굴은 모르지만 반갑습니다. 자, 손 잡아주시지요! 우리 악수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