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0일(금) 8:39 [대전일보]
올림픽 정신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강병철(유구중 교사)<논 제>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13개를 따내 세계 7위의 쾌거를 이루었다. 올림픽이 끝나면서 일부 선수는 스포츠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지만, 4년간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하고도 입상하지 못하여 쓸쓸한 모습으로 지내는 선수들도 있다.
제시문을 읽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과 메달과 무관하게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시오조건1. 창의적이고 함축적인 제목을 붙일 것2. 맞춤법 표기에 유의하여 1000자 내외로 쓸 것제시문(가) 태극전사들은 대회 첫날 유도 60㎏급의 최민호(한국마사회)가 통쾌한 ‘한판’으로 첫 금메달을 따낸 뒤 둘째 날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이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는 신기원을 이룩했고 양궁에서는 남녀 단체전을 석권하며 메달 레이스에 박차를 가했다.
사격에서도 진종오(KT)가 황금 메달을 명중시킨 가운데 역도에서는 사재혁(강원도청)이 깜짝 금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고양시청)은 세계 신기록을 번쩍 들어올렸다.
대회 중반을 넘어서며 이용대-이효정(이상 삼성전기) 조가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빛 스매싱을 날렸고 국기인 태권도는 임수정(경희대)과 손태진(삼성에스원), 황경선, 차동민(이상 한국체대)이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네 체급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폐막 하루 전에는 이승엽과 국내 프로야구 올스타로 구성된 야구대표팀이 세계 최강 쿠바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야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출처 : 대전일보 2008-08-25. 1면>(나)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메달도 많다. 은메달을 딴 여자 펜싱 플뢰레의 남현희, 남자 체조 평행봉의 유원철은 한국 여자펜싱과 체조의 한줄기 빛이었다. 여자 핸드볼도 빼놓을 수 없다. 4년 전 결승전 패배의 아픔을 딛고 다시모인 여자 핸드볼은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눈물을 흘렸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39세인 ‘봉달이’ 이봉주는 마라톤에서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완주 자체만으로 틀림없는 인간승리다.
이제는 대회 성과에만 만족하지 말고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옳다. 스포츠에서도 성과는 심은 만큼 거두는 법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호성적은 스포츠 환경이 우수해서 나온 게 결코 아니다. 야구의 김경문 감독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동메달은 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선수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다.
다른 종목도 사정은 비슷하다. 선수 및 시설의 인프라 확충을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올림픽 등 국제경기의 효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메달 수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스포츠 인구의 저변확대와 시설개선 들을 통해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대전일보 2008-08-25. 23면기사><출제 의도 및 논제 분석>‘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처럼 올림픽의 메달 획득은 그 나라의 국력과 연관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과 소련을 비롯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가 그랬고, 이번 베이징올림픽 주최국 중국 또한 그 사례가 된다. 그래서일까? 올림픽 기간 내내 메달 획득 숫자판이 새롭게 바뀔 때마다 모든 나라의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스크린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몽골의 경우 최초의 금메달 하나가 온 나라의 축제로 이어졌고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에선 동메달 하나로 국경일에 버금가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반면에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눈물겹게 감동스러운 올림픽의 스냅도 보인다. 2004아테네 올림픽에서 아프카니스탄 여자 선수가 처음으로 단거리에 출천하였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사회 개혁 속에서 아프카니스탄 여자들이 비로소 올림픽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꼴찌로 들어온 이 여자 선수는 “아프카니스탄 최초의 여자 선수로 출전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라고 감회가 넘치는 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있다. 베이징 올림픽 여자 10km 수영마라톤에서는 한쪽 다리가 절단된 수영선수 나탈리 뒤투아가 출전하여 25명중 16위를 차지했다. 비장애인들과 경쟁한 소감을 묻자 “꿈을 현실로 만들 만큼 노력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다리 수는 문제가 안 된다." 고 말하여 감동을 주기도 했다. 지구촌 모두가 금메달 숫자에 집중되는 그 순간에도 이런 진한 사연이 스크린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이번 논술에서는 합리성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 명확히 서서 논리를 펼쳐주길 부탁하고 싶다. 입시 논술에 적응하려면 때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측면에서도 논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금메달로 국위도 선양하고 소외된 선수들도 잘 살피자’는 식의 양비론적 합리성을 지양하고 어느 한쪽 부분에 서서 분명한 관점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즉 이번에는 논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문장 공부라는 얘기다. 이는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과는 차이가 있으나 세상을 폭넓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려의 시선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한 논술 ․ 토론학습을 위한 연습 과정이기도 하다.
기왕지사 이런 공부가 넉넉한 공동체를 꿈꾸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이 나라의 미래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있다면 공식화된 학습 이외의 올곧은 ‘마음의 눈’을 키우는 참교육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지난 계절의 자양분을 바탕으로 ‘바른 눈’을 성장시킨다면 우리들의 세상이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학생글>최고보다는 최선을이휘희(유구중학교 3학년)장미란 선수의 역도가 '세계'를 들어 올리고는 기도 세리머니를 보여주었을 때,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다. 24년 만에 육상 3관왕을 거머쥔 우사인 볼트 선수 역시 전 세계인을 기쁨과 놀라움에 빠뜨렸다. 더불어 한 편에서는 나이와 장애의 벽을 넘어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명분하에 우리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이 개최되는 이유는 메달을 목표로 경쟁해서가 아니라 그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첫째, 물질만능주의와 결과론적 사고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마린보이'라 불리며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박태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나서야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축구, 야구 등 시청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목은 승패 또는 승점이 전부다. 같은 메달이라도 차이는 크다.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본 것은 득점 장면이나 시상식뿐인데 금메달이면 칭찬이고 동메달이면 쓴웃음뿐이다. 올림픽에서마저 작은 금덩이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금메달이 전부다' . '끝이 좋으면 다 괜찮다'는 식의 사고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둘째, 주객전도(主客顚倒)현상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메달을 손에 넣고 귀국한 선수의 대부분이 방송사, 언론사로부터 엄청난 양의 출연 요청을 받았고, 연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과 엮어 인기를 끌기 위해 터무니없는 스캔들을 만들어낸다. 어떤 기술을 쓰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모르면서 국위선양을 했다는 것이 그들을 반기는 이유다. 왜 1936년도에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하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는가? 박완서의 수필 중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라는 제목처럼 이미 1등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하는 끈기와 열정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메달획득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체조선수들은 단 4분도 되지 않는 연기를 위해 4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한다. 그러나 그 단 몇 분 동안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그들을 '인형'이나 '요정'으로 불리게 할 정도로 크다. 또한 이번 올림픽 여자 마라톤 우승자인 콘스탄티나 토메스쿠 선수는 38살의 나이에도 열정과 투혼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애국심, 용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자아를 실현하는 계기이다. 메달을 차지하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승선에 들어오는 순간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의 짜릿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우리는 올림픽을 학수고대하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 속에서부터 탄성을 지르는가. '세계최강'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쪽 다리를 잃고도 수영을 포기하지 않는 선수, 내전과 협박을 이겨내고 경기장 위를 달리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살인적인 더위의 여름을 안방에서도 가슴 벅찬 희망과 자랑스러움 속에서 지낸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제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첨삭지도>최고보다는 최선을<서론> 장미란 선수의 역도가 '세계'를 들어 올리고는 기도 세리머니를 보여주었을 때,(장미란 선수의 역도 우승 직후 보여주었던 기도 세레모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다. 24년 만에 육상 3관왕을 거머쥔 (자메이카의)우사인 볼트 선수 역시 전 세계인을 기쁨과(기쁨은 주로 자메이카인의 몫임. 세계인의 기쁨을 인정하더라도 자국민과는 정도의 차이가 다름) 놀라움에 빠뜨렸다. 더불어 한편에서는 나이와 장애의 벽을 넘어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명분하에 우리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나이와 장애의 벽’과 메달 문제는 별개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시문은 어느 한 사례를 쓴 것이고요, 중요한 것은 메달을 따지 못한 보통 선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개최되는 이유는 메달을 목표로 경쟁해서가 아니라 그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림픽 개최 이유는 아니고요, 올림픽 개최 이유는 체육 행사를 통한 인류 화합입니다. ‘최고냐, 최선이냐’는 이 논술의 <서론>은 주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입니다. 올림픽의 정신 기원 등을 짧게 보여주고 ‘참가의 의미’와 ‘금메달의 가치’를 대비시켰으면 합니다. 서론부터 ‘장미란’ ‘우사인 볼트’ 등 올림픽 스타를 열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주제에서 요구하는 소외된 선수들은 나이, 장애 등 특별한 조건의 선수들이 아니라 흔히 이야기하는 무메달 선수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휘희 학생의 문장에는 힘과 자신이 넘칩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꽤 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 닿습니다. 주제일 뿐입니다.)<본론①> 그 이유로 첫째, 물질만능주의와(물질만능주의 영향으로) 결과론적 사고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마린보이'라 불리며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박태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나서야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축구, 야구 등 시청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목은 (오히려) 승패 또는 승점이 전부다. 같은 메달이라도 차이는 크다. (소요되는 노력의 차이는 크다.) 어떤 것은 브라운관에 나타난 득점 장면이나 시상식이 전부인데 (그나마) 금메달이면 칭찬이고 동메달이면 쓴웃음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금메달이 전부다' . '끝이 좋으면 다 괜찮다'는 식의 사고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인용문을 하나로 축소하면 주장이 더 명료해질 것 같습니다.)<본론①>에 해당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처리했군요. ‘물질만능주의’라는 표현보다는 금메달리스트나 올림픽 스타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비판해야 합니다. 박태환 선수를 인용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선수에게만 유독 스포트라이트 되는 매스컴의 몰입 현상을 비판해야 합니다. 동양권서 수영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게 자랑스러운 것은 당연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야구, 핸드볼 선수들의 인원수와 소요 시간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예를 들어 구기 종목의 경우 수영처럼 7관왕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본론②> 또한, 주객전도(主客顚倒)현상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메달을 손에 넣고 귀국한 선수의 대부분이 방송사, 언론사로부터 엄청난 양의 출연 요청을 받았고,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그들과 엮어 인기를 끌기 위해 터무니없는 스캔들을 만들어낸다.(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스타급 운동선수들의 연예인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과정으로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모르면서 국위선양을 했다는 것이(단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결과만으로) 그들을 반기는 이유다. 왜 1936년도에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하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는가?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라는 제목처럼 이미 1등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하는 끈기와 열정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본론②>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올림픽 스타 중 몇 선수에게만 편중된 방송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는 초점이 다릅니다. 손기정 선수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었음이 한스러운 것이므로 개인적으로 소외된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사격에 우승했던 대만 여자선수들을 사례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금메달의 시상대에서 적대국가인 중국 국기 아래에서 중국 국가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약소국이나 식민지 통치 국가의 문제입니다.
<본론③> 마지막으로 메달획득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메달획득만이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체조선수들은 단 4분도 되지 않는(못되는) 연기를 위해 4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한다. 그러나 (그리고) 그 단 몇 분 동안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그들을 '인형'이나 '요정'으로 불리게 할 정도로 크다. 또한 이번 올림픽 여자 마라톤 우승자인 콘스탄티나 토메스쿠 선수는 38살의 나이에도 열정과 투혼으로 1위을 차지했다.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애국심, 용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자아를 실현하는 계기이다. 메달을 차지하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승선에 들어오는 순간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의 짜릿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메달권에서 벗어난 선수들은 관중의 함성보다는 ‘자신 확인’이 더 큰 것 같습니다.)<본론③>에 해당되는 부분은 ‘결과보다 과정을’이라는 내용으로 이 논술의 제목 ‘최고보다는 최선을’과 맞물리는군요. 문장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시나브로 일정한 규칙이 보입니다. 다만 문단 뒷부분이 자칫 지루할 수 있으므로 한 줄 정도를 줄였으면 합니다. ‘언어의 경제성’이란 ‘최소의 단어로 최대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결승선의 함성 부분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마라톤의 경우, 관중들은 1위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조건의 아니면 함성을 지르지 않습니다.
<결론> 대체(생략) 우리는 왜 올림픽을 학수고대하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 속에서부터 탄성을 지르는가. (중요한 것은)'세계최강'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한쪽 다리를 잃고도 수영을 포기하지 않는 선수, 내전과 협박을 이겨내고 경기장 위를 달리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문장이 너무 길어서 두 개로 나누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우리들이) 살인적인 더위의 여름을 안방에서도(생략) 가슴 벅찬 희망과 자랑스러움 속에서 지낸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생략) 이제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결론> 부분에서는 요약, 정리 마무리의 형태가 적당합니다. ‘왜 최선을 다하는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제시문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인용문의 분량도 적당합니다. 장애와 악조건을 극복한 선수 이외의 평범한 올림픽 참가자들의 명암도 곁들이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글을 쓴 다음 불필요한 내용은 없는가에 대한 검토도 중요함을 말씀드립니다.
<총 평>주장이 명확하고 문장 연습의 흔적이 보이는 글입니다. 개요표 작성과 예시문 만들기에 고심한 노력도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글의 튼튼함’을 위하여 섬세한 부분이 반복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또한, 아주 소소한 부분의 감상은 허용될 수 있지만, 지나친 감상은 자칫 수필로 변질될 수 있음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바야흐로 맑은 하늘의 가을입니다. 푸른 숲 사이를 뚫고 나온 노랗고 빨간 빛깔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부지런한 독서와 부단한 글쓰기 정리를 통하여 풍요로운 ‘글의 몸’을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그릇된 배움은 사람을 부리는데 쓰이고, 올곧은 배움은 사람들을 섬기는데 사용됩니다. 바르게 배워서 남에게 베풉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