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부제가 붙었던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사춘기 시절 손에 땀을 쥐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셜록 홈즈를 등장시켰던 코난도일이 주는 흥미진진함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탐정 포와르의 활약상이 주를 이뤘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경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특히 인상깊었던 두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습니다.
영화 아이덴티티의 포스터를 접하고 제일 먼저 든 느낌은 스릴러물이겠구나 했습니다.
그 포스터에 찍혀진 손바닥 지문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건 영화를 보고난 후 알았습니다.
가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덴티티 또한 그러했던 것 같네요.
원작을 토대로 하여 뛰어나고 기발한 상상을 작품에 부여한 작가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어렵지 않게 관객으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준 트릭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공포 영화이면서도 정말 쿨한 느낌이 들었던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전날 비디오로 본 '주온'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극도의 긴장감으로 몸을 움츠러 들었지만,
'주온'이 시각적 공포감에만 몸서리쳐진데 반해
아이덴티티에는 그러한 공포는 없었습니다.
다만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머리 아픔으로 상영 내내 한컷도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범인이 누군지는 알겠는데, 마지막 순간 관객의 상상과 추리를 뒤집는 반전은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목줄기에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들이킨 것 마냥 '캬'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매번 난해하기만 했던 미스테리물의 결말과는 다른 신선함때문이라고나 할까?
왠지 상영시간내내 열심히 범인을 추출해내려 애쓴 관객의 입장에선 모독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겠지만,
관객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는 기발한 발상은 영화의 참 묘미를 맛보게 했습니다.
다중인격이라...내 안에 많인 인격체를 만들어내 그 인격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결국에 남은 하나의 인격은 과연 본인 자신의 인격으로 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 남아있는 내 안의 또하나의 인격인지...
그 제거되지 못한 하나의 인격을 토대로 2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잠깐 해보기도 했지만, 글쎄요...
주인공은 살았지만, 유사한 2편이 나온다면 지금 느낀 이 쿨함이 이어질 수 있을런지...
미국에서 제작비의 다섯 배를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짜임새있는 구성과 배우들의 의외의 호연이 잘 어우러진 재미난 미스테리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