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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스크랩 [경북영양여행/경북영양관광지] 산촌의 삶과 문화를 엿볼수 있는 "영양산촌생활박물관"
★곰탱이쉬리★ 추천 3 조회 273 15.02.24 07:5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경북영양여행/경북영양관광지/경북영양가족여행지]

 

우연한 기회에 고추로 유명한 경북 영양을 찾았습니다.

경북 영양은  국내 3대 민간 연못 중 하나인 서석지가 있는 곳이고,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과 지훈문학관이 있는 아담한 주실마을이 자리한 곳입니다.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의 입장료나 주차요금은 없습니다.

 

 

 

 

전통문화공원으로 들어가봅니다.

 

호랑이가 구해준 효자 ~ 영양군 석보면 소계리에서 태어난 김두행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구하러 다니다가 그만 밤이 되어 험한 산길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표범이 나타나 위협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큰 호랑이가 멀리 쫏아 버리고 효자를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까마귀가 감동한 효자 ~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에서 태어난 황경걸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천식으로 16년간 병석에 누워 있던 부친이 괴질에 걸려서 위독하자

이른 새벽에 고개를 넘어 약을 지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효성에 감동한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귀한 약제인 오소리를 구해서 부친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좋은형제 ~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 주는 사이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한 뒤 집으로 간 형님은 아우를 생각해서 밤에 몰래 자신의 볏단을 아우의 나락가리에 옮겨 놓았고,

 그것을 몰랐던 아우도 역시 형님을 생각해서 자신의 볏단을 형님의 나락가리에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랑이와곶감 ~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마을로 내려왔다가 할머니가 아이를 어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울지 마라 아가야! 울면 무서운 곶감이 잡아 간단다!’

 그때 도둑이 담을 넘다가 그만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되었는데  

‘아이쿠! 무서운 곶감이구나! 호랑이 살려~’

호랑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부와놀부 ~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고운 동생 흥부와 마음씨 나쁜 형 놀부가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놀부는 전 재산을 다 차지하고 흥부를 쫓아냈는데

 어느 날 착한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박씨 하나를 얻어 키웠더니 박 속에서 보물이 나와서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샘이 난 놀부는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 후 치료해주었고

그 역시 제비에게 박씨를 얻어서 키웠지만, 그 속에서는 보물이 아니라, 벌레, 오물, 도깨비가 나왔고

 뒤늦게 후회를 한 놀부는 흥부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석조유물

 

 

해와달 ~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간 오누이는 옥황상제님께 살려달라고 빌자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옥황상제는 동생을 낮을 밝혀 주는 해님의 정령, 오빠는 밤을 밝혀 주는 달님의 정령으로 만들었습니다.

 욕심쟁이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오다가 그만 떨어져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꽃단지안엔 효녀심청, 별주부와토끼가 있답니다.

 

효녀심청 ~ 효녀였던 심청이는 봉사였던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300석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인당수에 자신의 목숨을 버린 심청이의 효성에 감동을 한 용왕님은 심청이를 살려주기로 했고,

 용왕님의 배려로 아름다운 연꽃을 타고 다시 태어나게 된 심청이는

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별주부와토끼 ~ 어느 날 용왕님이 우연히 병에 걸려서 낫지를 않자,

도사가 나타나 토끼의 간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용궁의 신하였던 별주부가 나서서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아뢰고 육지로 갔고,

 별주부는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먹을거리가 넘치는 용궁으로 가자고 속여서

토끼를 등에 태우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양산촌생활박물관 본관으로 들어가봅니다.

 

 

용화사 물레방아확 ~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일월면 용화리의 용화사에 있었던 물레방아의 돌확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래와 자갈로 된 역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산나물다듬기 ~ 산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집은 [사랑방-안방-정지]로 된 3칸 집이며,

 큰 솥과 작은 솥에 국과 밥을 하면 자연히 난방이 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때를 맞추어 채취한 곰취, 우산대, 고사리 등의 다양한 산나물을

잘 손질한 후 살짝 데쳐서 발이나 멍석에 널어 말렸고,

 잘 말린 산나물은 한 해 동안 일상식은 물론 제사나 잔치 등에 사용되는 중요한 부식이었습니다.

 

 

보리타작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봄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대부분의 가정은 죽을 끓여서 하루를 넘겨야 했습니다.

따라서 보리를 수확하는 날은 하루 종일 베고, 나르고, 터는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답니다.

그만큼 보릿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일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부잣집 보리타작을 해주고 받은 겉보리 한 말로 가족을 먹여 살렸답니다.

 

 

일월산 미륵동굴 ~ 해와 달의 정기가 어린 일월산의 미륵동굴은 세상이 극도로 혼란할 때에

 극락세상을 열어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륵불을 모신 동굴기도처입니다.

특히 일월산의 기가 강하게 응집된 혈자리에 놓여 있어서

선녀의 전설이 어린 선녀탕과 더불어 해마다 수많은 무속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멍석말이 ~ 산촌의 각 마을에는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한 제재관행이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윤리나 도덕을 위반할 경우 가벼운 훈계에서부터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하였는데

 이 가운데 멍석말이는 불효 등 비교적 무거운 죄를 범한 사람에게 내렸으며,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다시 올바른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석지 모형도에서 ~

서석지는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으로 손꼽히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여유와 교류 그리고 그들만의 생활상을 알게 해주는 정원유적입니다.

 

 

물대기 ~ 모를 심고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관리가 한 해의 농사에 있어서

 풍작과 흉작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동력 양수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관개방법은 낙차를 이용한 보와 인력을 이용한 두레나 맞두레가 전부였고,

 큰 보의 경우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순번을 정해서 물을 체계적으로 이용하였답니다.

그에 비해서 두레나 맞두레는 웅덩이의 물을 필요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풀 때 사용했답니다.

 

 

 

불놓기 ~ 화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농사짓기에 적당한 경사를 가진 장소를 찾은 후

 여름부터 가을까지 짬이 나는 틈틈이 올라가서 큰 나무를 벌목을 했답니다.

 이렇게 한 해 전에 벌목을 해 놓아야 햇빛에 잘 말라서 다음해 봄에 불을 놓을 때 고르게 잘 타기 때문이랍니다.

 다음해 농사철이 시작되면 바람이 자는 이른 새벽을 이용해서 가족 혹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불놓기를 했고,

 불놓기는 아랫불과 더불어 산 정상에 윗불을 놓아서 불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답니다.

 

파종하기 ~ 불을 놓아서 밭을 마련한 뒤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먼저 타다가 남은 나무의 밑둥이나 뿌리를 파내고,

 바닥에 널린 돌이나 자갈을 괭이와 삼태기를 이용해서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표면을 잘 정리한 뒤에 경사에 따라서 괭이나 훅쟁이(작은 쟁기)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골을 지었으며,

 조-피-메밀-기장 등을 줄뿌림이나 점뿌림을 파종했습니다.

화전은 불을 지른 첫 해에는 수확이 좋지만, 해마다 급격히 떨어져 3~5년 경작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답니다.

 

 

수확하기 ~ 파종을 한 후 곡식을 수확하기까지 산돼지나 노루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짐승쫏기를 제외하고 별도로 농작물을 관리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화전의 수확은 대체로 이른 새벽에 올라가서 낫으로 베어 지게를 사용해서 집으로 운반했고,

 운반한 곡식은 알곡이 잘 분리되도록 일정기간 말린 뒤 훑이나 도리깨 등을 사용해서 탈곡을 했답니다.

 

 

원놀음 ~ 영양지역에서 원놀음은 주로 겨울철 농한기에

동네 사랑방에 모인 남성들이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자 놀았던 모의제판놀이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원놀음은 조선 중기 양주지역에서

 시집을 가지 못한 세 명의 처녀가 역할을 나누어 원님놀이를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합니다.

이것이 안동을 통해서 영양으로 전해짐으로써 영양원놀음이 형성되었고,

 19세기 말 군수의 지시에 의해서 지역축제로 변모되었다고합니다.

 

 

전통생활체험장으로 들어가봅니다.

 

굴피집 ~ 본채의 앞과 뒤를 판자와 흙으로 벽을 쌓고

지붕을 ‘굴피’라고 부르는 굴참나무껍질로 덮었다고 해서 굴피집이라고 합니다.

산골에서는 희소한 6칸 겹집의 대형 주택으로 일반적으로 산골의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건너방을 비롯하여 3칸의 방과 마루, 그리고 정지 등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투방집 ~ 통나무를 사각형으로 쌓아서 짧은 시간에 만든 집으로

‘통나무집’ 또는 ‘귀틀집’이라고도 하며,

지붕은 짚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억새나 굴피 등으로 덮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으로

 3칸 홑집의 본채와 디딜방앗간, 그리고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쟁기질 ~

인걸이 쟁기질 : 소가 없거나 경사가 심한 곳, 그리고 깊이 갈 필요가 없는 작업 등에

는 한 두 명의 사람이 직접 쟁기를 끌었답니다.

사람이 직접 쟁기를 끄는 모습은 주로 소가 부족한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호리 쟁기질 : 경사가 심하지 않고 돌과 자갈이 비교적 적은 곳, 그리고 깊이 갈 필요가 있는 작업 등에는

소를 한 마리 매어서 쟁기를 끌었습니다. 한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모습은 중부 이남의 평야지역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겨리 쟁기질 : 경사가 심하지 않고 돌과 자갈이 비교적 많은 곳, 그리고 깊이 갈 필요가 있는 작업 등에는

 소를 두 마리 매어서 쟁기를 끌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모습은 토양이 거친 중부 이북의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너와집 ~ 흙벽과 판자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너와’라고 부르는 소나무 조각으로 덮었다고 해서

‘느에집’ 또는 ‘능애집’이라고도 합니다.

이집 역시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던 6칸 겹집으로 대체적인 공간구성은 비슷하지만,

여성공간인 안방과 공용공간인 마루를 상대적으로 넓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너와집에있는 강아쥐

 

민속놀이장 ~ 공기놀이,굴렁쇠,땅따먹기,지게목발,비석치기,윷놀이,장치기,제기차기,팽이치기를 할수있는 공간입니다.

 

 

산촌의 삶과 문화를 엿 볼수있고, 전통문화 이야기 공원이 있어

가족여행지로 아주 제격일것 같습니다.

★ 영양산촌생활박물관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2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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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2.24 10:27

    첫댓글 좋은곳에 여행 하셨네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 15.02.25 13:54

    박물관 소개 감사합니다~~~

  • 15.03.02 23:39

    잘보고갑니당...호~ 이제는 안가본 곳이 하나씩 보입니당..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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