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수능강의에 출연 중인 현직 교사 출신 강사 14명이 사설 출판업체와 계약을 맺고 수능교재를 출판한 사실 때문에 EBS측과 강사들 간에 갈등이 발생, EBS수능강의가 파행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일부 강사들이 “EBS측이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강사들을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하고 있다”며 수능강의 녹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지난달 초 H출판사가 EBS 강사로 뛰고 있는 교사들에게 수능교재 집필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언어·수리·외국어·사회탐구·과학탐구 등 각 영역 교사 14명이 이에 응해 교재를 집필했다. 문제는 이달 초 H출판사가 모 홈쇼핑방송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부터 불거졌다. H출판사는 광고에서 “EBS수능강의 강사들이 뭉쳐 EBS수능강의를 요약한 교재를 출판했다” “하루 3시간씩 정상적 학습으로는 EBS수능강의를 다 듣는 데 800일 걸리지만, (요약된) 우리 교재와 CD로는 90일만 공부하면 된다”며 수험생들을 유혹했다.
이 광고를 본 EBS측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만들어진 EBS수능강의를 음해하는 행위”라며 “EBS강의 요약집을 낸 것은 저작권법 침해이고, 그에 가담한 교사는 비도덕적”이라고 반발했다. EBS 고석만 사장은 “교사들의 행위를 정밀조사해 ‘퇴출’ 등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말은 다르다. 이 사건과 관련된 한 교사는 “EBS교재가 아닌 교과서를 요약해 교재를 출판했다”며 “오히려 EBS 교재에 나온 문제들을 피하려 노력했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교사는 “EBS에 출연 중인 학원강사들은 책도 내고 학원홍보에도 나서는데, 교사들은 책도 못 펴내나”고 반발했다.
교사들은 “EBS가 우리를 매도해 자존심이 상한다”며 지난 10일쯤부터 EBS 강의 녹화를 거부하고 있다. EBS측은 현재 녹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과목은 언어·사회탐구·과학탐구 영역의 4개 과목이라고 밝혔다. 교사들과 EBS측의 대립이 계속될 경우 EBS수능강의 일부가 일정 기간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 EBS측이 이들 과목의 강사를 교체할 경우 강의 도중 강사가 바뀌어 강의 내용과 진도에 중복·생략 등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강의를 거부 중인 한 교사는 “수능강의 파행을 막기 위해서는 EBS 경영진측이 하루빨리 진상을 정확히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이 계속 늦어지고 있어 초조하다”고 말했다. EBS 내부에서도 “일부 교사는 출판사측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