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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西省南昌이공대학과 순천향대학교와 자매결연!
언제 : 2008년 06월 30일 오후 16시
무엇 : 남창이공대학과 순천향대학교 자매결연
학교 : 남창이공대학에서
누가 : 조성혜교수의 소개로
방법 : 페심(유학반)한국어, 3+2 내년부터.
남창시(南昌市)인구 : 500 만, 학교 2만명 학생, 항공학 과 우수
역사 : 1999년 개교~ 학생 50,000 학생.
인생 4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고향을 떠나지 못했던 작은 촌민이 고향을 떠난다.
그 고향을 떠난 것이 타국이라는 먼 나라 대륙의 땅, 2200 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찬란한 땅,
安徽省“허패이시”(合肥市)에 한 가족이 정착한지 언 12년 동안 다른 지역을 떠나지 않고 선 그
자리를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처음 황산로(黃山路)에 있던 합비연합대학에서 왕대화(汪大貨)교수를 좁다란 북문의 입구에서 만
나게 된다. 지금 "왕" 교수가 69세이니 부부가 길에서 만난 그 때의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내가 5학년 2반 그 시절에 그를 만난 것이다.
누각앞에서 순천향국제부 이 본부장과 남창이공대 왕 교수와 군천향 예우교수 조 교수
2008-06-30
“왕”교수의 키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작은 키였지만 이목구비가 확실한 미남형이었다.
눈썹이 진한데다가 오뚝하게 선코와 큰 눈과 입 그리고 건강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 외국친구~! 표라우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왕”교수를 찾으라는 그분의 말씀을 하면서 명암을 주는데 명암에
이름이 꽉 차게 만들어진 명암을 준다. 아주 특색이 있는 큰 이름, 아주 뒤 늦게 알게 됐지만
당시 연합대학 모든 직원교사교수들의 평점을 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는 당당히 말하기를 외사판주임이 우리 친구“박”교수부부에게 잘 못 아니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살짝 말해 달라고 한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아울러 텔레비전에 첫 데뷔케 했던 중재자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후 한동안 서로 만나지 못한 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TV에 신문에서 보도
되는 내용을 접하면서 우리 부부를 무척 많이 생각을 했단다.
당시에 주고받았던 명암의 전화는 모두가 바꾸어지고 결국 추적을 학교에 연락을 하여 폰 번호
를 알아낸 후 신문에서 봤다, TV에서 봤다면서 아주 기쁘게 소식을 준다.
강서성(江西省)에 아주 좋은 사립대학이 있는데 韓國에있는 大學校를 소개 해 달란다.
이는 1년 넘게 부탁을 받고 있던 중, 순천향대학교 대우교수인“조성혜”교수가 남창(南昌)과
순천향대학교를 양쪽에 소개하기에 이른다.
남창이공대학은 땅 만해도 7천모(1모200평)가 된단다. 이 정도의 소개를 받은“조”교수는
순천향대학교 국제교류본부"이춘세" 본부장에게
계속 연락이 되면서 교류학교 방문 중 2008년07월 30일"강서성남창이공대학"을 방문하여 자매
결연 사인을 하기에 이른다. 이날의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우리 일행이 남창공항(南昌空港)에 도착하자“왕”교수가 손을 흔들어 맞이하여 주었다.
특히“왕”교수의 비서와 외사반에서“모”부주임이 우리 4명의 이행을 맞이해 주면서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조”교수에게 전하여 주었다.
어! 본부장께 꽃다발을 먼저 전해 주어야 될 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에 스치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려“왕”교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되겠지!
그간 50 여개의 기관과 학교 등을 소개 자매결연을 주선해 줬지만 소개와 보도들의 내용
들을 보면 자기들의 성적을 내기위한 대표 황제로 등장을 하지 않았던가? 하하 하지만
이런 것도 작은 나라 한국의 정치풍토 권력이 보여주는 위세의 흔적으로 생각을 한다.
아무리 그러할지라도 대륙의 나라 중국, 이곳은 아님을 난 보아 왔다.
합비시(合肥市)를 비롯하여 각 기관 및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청,
신문사 등에 이르기 까지 중재자의 고마움과 그 내용이 상세히 보관이 됨은 물론 첫 결연
의 인사 말 속에도 오늘의 이 자리가 있기까지는 한국인 ~~~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꼭 말 하면서 이런 자리를 통하여 감사 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앞에서 조금 밝혔듯이 한국은 아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시 와 시”우호도시 체결을 하고 회견을 하는데 대조적인
모습을 봤다.
먼저 손님을 맞이한 측에서 아주 여유 있게 진심의 환영과 함께 중재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
하면서 시(市)를 소개하고 오늘의 이 결연으로 멋진 친구로 영원히 남자고 하는 반면, 방문한
방문자의 대표에게는 목에 말에 힘만 들어가 있었고, 고향 인에 대한 고마움은 고사하고
08-05-12의 지진에 대한 위로의 말 한마디 표현을 못하는 그런 자리에서 카메라가 녹화
되고 있지만 국제적인 일, 하는 수 없이 중재한 자가 일어나 방문자 비서에게 알려 단장
에게 이런 말을 하시라고 알려준다. 하하하~!
이번 강서성(江西省)남창이공대학(南昌理工大學)을 방문함에 있어서“왕”교수는 당당하게 중재
자인“조”교수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내가 순천향대학교를 어찌 알랴!“조”교수를 통하여
알게 됐으니 이분에게 확실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볼 때 당연“조”교수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주는 것은 당연치 않냐? 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부 맡아 정착을 시켜달란다. 이러한 왕 교수의 뜻을 생각하면서 안내를 받아 차에
오르게 된다. 봉고 차에 오른 다음 창밖을 내다보는 나의 감애는 또한 더 컸다.
27개의 성중에서 꼭 안휘성에서만 꽉 밖혀 살아온 우리부부의 삶속에서“강서성”의 땅을 밟게
된 것이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한국 고향의 산과같이 굽이굽이 물결치는 녹색의 산과 길 등이 꼭
고향 경천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았다. 학교가 얼마나 큰지 호텔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고 남쪽캠
퍼스, 북쪽캠퍼스 7천모의 땅이라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큰 대학이었다.
우리 일행을 학교의 호텔로 안내를 하여 짐을 놓고 바로 내려와 양자강 변에 자리를 잡은 누각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는누각 안 5층에서는 민속노래와 악기로 흥겨운 발표
여기서 옛날 음악을 들으면서 술과 음식을 나누던 귀빈 연회장~~~! 생각만 해도 ~~!
누각 앞에서 본 양자강 모습
중국 어느 곳을 가 봐도 문화제 관리는 정말 너무 잘 되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아는 바라
하겠다. 이곳 남창시(南昌市)역시 확실하게 잘 보전되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5층의 누각에서는 전통 악기를 이용한 연주와 노래가 이어지는데 하루에 4차례 연출이 된단다.
옛날에는 이런 연출의 음악 그리고 눈의 즐거움과 함께 술과 음식을 즐겼던 관료들의 자리가 연상
되곤 했다.
역시 물을 끼고 있는 도시가 부유와 함께 그 문하도 다양함을 누가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일행 모두가 피곤도 했지만 특별히 어제 밤을 그냥 지새운“조”교수가 피곤이
오고 역시 배고픔도 함께 겹치고 있었다.
누각 정문 앞에서
특별히 양자강 강북과 남남을 잊는 다리의 교각 끝엔 검은 사자상과
백색의 사자 상으로 되어 있었다. 양자강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고 그 멋이 이만 저만 아니었
으니 옛날을 생각하면 더 그 상상에 넋이 빠지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을 하고 시내 중심 식당가에서 점심을 대접을 받는다.
점심은 합비에서도 가끔 맛보는 음식이지만 일반적으로 대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맵고 짠 음식이다.
한국의 청양고추 같이 매운 고추를 잘게 설어 그 속에 미꾸라지, 혹은 붕어를 토막을 내어 넣어 기름
에 볶은 음식이다. 우리 일행 중 남자 3명은 문제가 없었지만 여자인“조”교수가 걱정이 되어 왔다.
밀려오는 피곤과 졸음 속에 들어가는 음식이 어떻게 될지 이렇게 음식을 먹고 학교의 호텔로 오면서
4시에 다시 만나 행사장으로 가 사인을 하고 학교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호텔방에 들어서면서 역시 쏟아지는 졸음에 침대에 눈꺼풀이 무거워오는데, 문제는 남경에서
잠을 못 이루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조”교수가 호텔 방안에 들어서면서 죽는 신음을 하면서 화장
실을 향한다. 어! 급채를 한 모양이다.
드나드는 화장실을 서너 번 반복을 하고 있는데, 그냥 누워 있기가 부담이 되어 감기는 눈, 무거운 머
리와 움직여 지지 않는 몸을 간신히 정신력으로“조”교수에게 다가 가 등을 문질러 주고 비상 바늘로
양 손을 땄더니 검은 피가 나온다, 이제 됐어! 조금의 혈색이 도는 것이 위기를 면한 듯싶었다.
피곤한 몸에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자 그것이 급체를 한 것이다.
조금 덜한 것 같았지만 아! 소화제 지금 소화제를 먹으면 되는데, 안절부절 하다가“왕”교수 비서에게
말하니 병원으로 가자고 차를 부른다. 5분정도 흐른 후에 1층 로비에서 차가 기다린다고 병원으로 가자
고 한다, 이때 막 다른 방에서“이”본부장과“박”교수가 나온다. 아니 본부장님 혹시 가지고 있는 비
상 소화제 있으면 좀 빨리 부탁 합니다.
왜 그러세요! 아 조“조”교수가 급채를 한 모양입니다. 소화제 가지고 있는 것 있으면 빨리 좀 주세요,
점잔하게 있다면서 들어가 소화제를 한번 먹을 것을 가지고와 준다.
위를 안정시키는 약이기에 자로 괜찮을 것입니다.
얼른“조”약을 먹이고 조금 5분 간 휴식의 안정을 갖도록 했다. 역시 바로 좋아 졌고 4시가 좀 넘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왕”교수 일행의 안내를 받으면서 도서관에 있는 회의실로 향하였다.
역시 도서관 회의실에 들어가자 양국의 오성기와 태극기가 보이는데 태극기를 거꾸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정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을 누가 알랴 만, 이것이 중재자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이상장과 명암을~
양교의 학교를 소개한다!
순천향 국제교 본부장 남창이공대 교장
사인 후 남창이공대학에서 로케트 발사모형을 선물로~
원숭이 네마리가 같은 상에 있었다니! 하!
국제 원숭이와 함께 찍자는 이사장 조 교수를 부른다.
중국 강서성 남창이공대학 교장과 이사장, 그리고 왕대화 교수와 비서 그리고 외사반의 모 부주
임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바로 명암을 주고받고 자리에 않게 된다. 그리고 이어 순천향대학교를
먼저 소개를 하고, 남창이공대학 소개를 받는데, 1999년에 개교를 했다는 말에 우리 일행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짧은 역사에 5만의 학생, 7천모의 땅, 3개 구에 캠퍼스를 남, 동, 서로 분류되어 있고,
4성호텔 까지 겸하여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립대학으로서 동사장 역시 젊은데 추진력이 강했다.
항공학과가 아주 대단했고 우주선 연구 까지 말이다.
이런 설명이 오간 후 사인을 하고 학교를 참관 했다.
항공 하늘의 아씨를 훈련하는 국제모형항공
양 학교의 소개를 마치고 바로 실제적인 대화는 박형춘 교수와 조성혜 교수가 직접 실무의 내용
을 의논 하라고 본주장이 말하자. 박 교수가 2+2, 3+2를 제안 한다.
아울러 조 교수는 남창이공대학에 순순향대학교 유학반 폐심을 즉각 시작을 하자고 한다.
이에 내년에는 3+2 학생을 모집을 하겠다고 남창이공대학 교장이 답을 하면서 한국부 관련 정착을
도와 달라고 한다. 이는 조교수가 돕기로 하고, 한국어 교사는 순천향대학교에서 파송을 해 주기로
하였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왕대화 교수와 이후 다시 합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상호 준비된 결연서에
사인식을 하고, 결연 선물로 남창이공대학에서는 순천향대학교에 우주선 모형을 선물로 전해주었고,
순천향대학교에서는 30주면 기념품인 명암 집을 선물로 전해주었다.
저녁은 학교의 호텔식당에서 동사자의 스승(민항연구가)부부도 참석을 했는데, 국제항공 대형을 연
구진에서 일하는데 2020년 생산이 된단다. 그리고 이자라엔 원숭이 4마리가 같이 하고 있었는데
함께 사진을 역시 남창이공대학교 원장이 제일큰 따그였다. 2008년 7월 3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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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서성의 성도 남창시(南昌市)500만이 사는 도시로 한국과 같이 산이 많았고 남녀 모두 짜리몽땅~짜고 매운음식!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