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면서 옷차림이나 타고 다니는 차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수없이 되새기고 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끔씩 그 말에 의문이 들 때가 있게 됩니다.
조금 어둑어둑해질 무렵, 에들레이드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출발지에서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한 듯한
중년의 남자가 마침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른 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대중교통, 특히 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유난히 인도, 베트남,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언제 어느 시간에 버스를 타고 꼭 한 두명의 중국인들이 있더군요.
그 날도 세 명의 중국인(남자 둘, 여자 하나)이 버스에 있었는데 이 사람들 그냥 평상시 자기네
하던 습관대로 자기네들끼리 중국말로 대화에 열중했습니다.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에도 우렁차게 중국말로 응답하고...
그러나 버스 안의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던가 중국말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술이 거나해 보이고 다소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던 이 중년의
남자가 중국아이들 앞에 앉더니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호주땅에서 살려고 왔으면 영어를 사용해라, 지금 네가 사용하는 말이 일본어냐
아님 어느 나라 말이냐 하면서 계속 태클을 걸었습니다. 간간히 강하게 에프로
시작하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중국아이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소 목소리를 낮추어서
자기들끼리 계속 대화를 나누었는데 술취한 아이가 계속 태클을 걸자
제 뒤에 앉아 있던 젊은 호주 여자 아이가 일어서서 항의를 했습니다.
"아찌, 조용히 할 수 없어? 저 사람들이 아찌가 말하는데 대꾸도 안하잖어.
아찌 말이 듣기 싫다는 거야. 그냥 저 사람들 자기들 끼리 이야기하게 놔둬.
저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피해 준것 없잖아. 그냥 좀 조용히 해!"
그랬더니 이 양반 더 언성을 높이면서 자기는 러시아계 호주인이고 이곳에
온지 10년 되었는데 영어로만 이야기한다면서 어쨌든 호주땅에 살려고 왔으면
영어를 써야 마땅하다면서 마치 남자 폴리 핸슨인양 주장하더군요.
그래도 주위의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않으니까 중국인들에게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으면
호주 여자랑 연애를 하라고 말하면서 팔을 사용해서 불유쾌한 동작을 재연을 했습니다.
그때 버스 기사가 차를 멈추더니 그 양반에게 와서 지금까지 네가 한 행동을
모두 보았다, 지금 당장 이 버스에서 내려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하고
야단을 치더군요. 결국 몇 정거장 지나서 그 정신나간 양반은 버스에서 내렸지만
그 해프닝으로 인해 참 착찹한 생각이 들더군요.
씨티가 마지막 종착역이었는데 중국아이들이 내리면서 조금 전에 응원을
해 주었던 호주 아가씨에게 고맙고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나 전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고맙다고만 이야기했으면
되었을 것을 동양인의 사고로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자기네에게 있는 것인양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여기 애들 웬만해선 어느 경우에서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물론 길가다가 부딪히거나 양보를 구할 경우등 의례적으로 '쏘리'를 입에 달고 있지만
막상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기면 절대로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아직 몸과 머리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 너무 많네요.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한 마디 안 할수도 없어서 저는 그냥
"얘, 아까 너 참 용감하더라"하고 웃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호주 여자애 왈 "저 사람 호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잖니.
대 다수의 호주사람들은 저렇지 않아" 하더군요.
결국 그 러시아계 호주 아저씨는 이곳에서 10년을 살았지만
호주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도 본인은 호주사람이라고
굳게 착각하고...
첫댓글 오랫만이네요. 그렇군요. 전 영원히 호주인이 못되겠지만.
저는 예전에 힛트했던 노래 ""버스안에서"" 분위기인줄 알고 읽었느데.. 으스스~~무셔~~~
저도 기차안에서 그런 경험 있는데 동유럽 출신들이 그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사람 역시 러시아 출신이였고
발레리아님의 영어실력에 감탄합니다...그런 말을 어떻게 다 들으시는 지...그런데 잊을 만 하면 글 쓰시고...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건강하시고요..
제가 하고픈말 경만님이 다 하셨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