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의 의의와 보람
- 백금옥 여사를 추모하며 -
정만진
금옥장학생으로 선발된 여러분들에게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청소년인 만큼 사회 선배로서 예의상 권면의 말씀을 약간 덧붙여볼까 합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에 어떤 가치가 있나,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스스로 격상시킬 줄 아는 존중감尊重感(self-esteem)이 생성됩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할 줄 아는 자신감自信感(self-confidence)이 생겨납니다. 자칫 무심히 지나가면 별다른 비중이 없는 듯 여겨지는 일들도 사실은 제각각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고, 내가 귀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그 못지않게 귀하다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내가 싫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라)’의 인간애人間愛도 인식하게 됩니다.
오늘 금옥장학생에 뽑힌 일을 두고 생각해 봅니다.
첫째, 사회적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가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신력 있는 객관적 평가가 나를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재목이라면서, 더욱 분발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았거니 하고 무덤덤하게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나한테 좋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좋으며, 내가 앞으로 언젠가 장학금 받은 사람다운 일을 하면 세상 전체에도 좋은 일입니다. 대의大義와 소의少義가 어우러진 일이니 더한 나위 없이 큰 경사인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대인大人은 큰 것은 크게 보고 작은 것은 작게 보는 사람입니다. 소인小人은 자기에게 직접 이익이 되거나 직접 손해가 되는 일은 그 크기와 관계없이 무조건 크게 보고, 간접적으로 이익 또는 손해가 되는 일은 무조건 작게 보는 위인입니다.
둘째, 나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격려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내가 잘나서 받았다는 사고에 멈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장학금입니다. 금옥장학회가 주었습니다. 금옥장학회는 백금옥 여사가 설립했습니다.
백금옥 여사는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네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몸이 약해 많은 병을 앓았습니다. 백금옥 여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고, 배추밭 등 남의 농토에 가서 노동을 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는 백화점에 취직해서 야학을 다니기도 했지만 결핵에 걸려 본인 스스로도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죽도록 일을 하고 구두쇠 소리를 들으면서 절약을 한 끝에 상당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셨던 백금옥 여사는 장학회를 만들고 학교를 설립해서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1979년 금옥장학회를 설립해 46년 동안 9,348명 학생들에게 30억4730만5000원의 장학금을 수여하고, 서울에 금옥여자중고등학교를 세워 국가에 헌납하는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61세에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학교가 개교를 하는 광경은 보지도 못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사람 백금옥》을 통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말은 쉽지만, 가진 것 모두를 사회에 기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가짐이 어린 아이처럼 순박하지 않으면 결코 실천할 수 없는 선행입니다. 예수는 어린아이를 하나님처럼 섬기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하셨고, 석가는 어린아이를 천진天眞(하늘의 모습)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백금옥 여사와 같이 선량하고 천진난만한 분을, 비록 그대로 따라하지는 못할지라도 끝없이 존경하는 마음만은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는 그런 마음을 미처 가져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금옥장학금을 받는 오늘 하루만은 최소한, 최초로 그럴 수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가능하면 앞으로 영원히 그런 착한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갈 수 있어야겠지요.
셋째, 금옥장학회가 왜 나에게 장학금을 주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생각할 때)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단계가 개념을 정하는 일입니다. 이를 정의定義라 하지요. 장학獎學은 학學문을 장獎려한다는 뜻입니다. 학문은 새로운 진리를 창조하는 인간행위이므로 그것은 학자(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공부를 장려한다고 표현하면 적당하겠습니다.
공부를 왜 장려하는가? 어리고 젊을 때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습관으로 몸에 붙인 사람은 자라서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진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진리를 창조한 사람은 그만한 능력이 없는 일반 대중들에게 수많은 선물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창조해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고, 새로운 정치이념과 철학을 창조해 지나간 과거보다 훨씬 좋은 사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고, 새로운 예술작품을 창조해 삶의 수준을 높여줄 수 있습니니다. 그래서 지식기반사회라는 개념어가 생겼습니다.
지식기반사회라는 용어가 나왔으니 한번 정리를 해보고 넘어가볼까요? 우리나라에서 소牛를 이용해서 농작물을 경耕작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로, 서기 503년입니다. 사람 힘으로 농사를 짓는 것과 비교해 엄청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었지요. 당시 우경牛耕이라는 농사법을 창조한 학자는 일반 백성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사적 업적을 쌓았다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경운기가 국내에 생산된) 1962년까지 약 1460년 동안 농사짓는 방법에 별 변화가(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약 60년 흐른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 외에는 농토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농법을 변화시켰을까요? 무서울 정도의 초고속으로 발달한 첨단과학이 인류의 삶을 그토록 놀랍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을 지식기반사회라 부르는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역사를 주도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지식기반사회입니다.
(그에 견주면 농경사회는 일은 농사짓는 사람이 하지만 사회주도세력은 땅주인들이었고, 산업사회는 일은 노동자가 하지만 사회주도세력은 산업시설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시대이므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놈이 버는’ 불합리가 더 이상 횡행하지 못하도록 발전해 있습니다.) 그래서 금옥장학회는 여러분에게 공부를 장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요? 물론 앞에 잠깐 언급했듯이 ‘백금옥 여사 같은 사람이 한번 되어 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겠지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여 나 스스로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포부를 품고 공부를 해야겠지요.
옛날의 유명한 예를 통해 공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에 백아伯牙라는 최고의 거문고 연주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음악을 평가하는 데 놀라운 능력을 타고난 인물이었지요.
백아가 아무 사전 설명 없이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담은 음악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평했고, 백아가 큰 강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찬탄했습니다. 그러던 중 종자기가 죽었습니다. 이때부터 백아는 “이제는 내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는데, 흔히 자신을 알아주는 벗의 소중함, 또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관용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해서 백아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사회에서는 공부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입니다. 위기지학은 자기己 자신을 위爲한 학學문(공부)입니다. 물론 자기 개인 이익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격수양, 진리탐구 등을 도모하여 공부를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위기지학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할 뜻이 없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런가 하면, ‘기소불욕물시어인人’의 人이 ‘다른 사람’으로 해석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위인지학은 사람人(세상)을 위爲해 공부學한다는 뜻입니다. 위기지학을 출세를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보고 인격수양과 상반되는 철학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지만, 전통사회의 출세는 세상의 주인인 왕을 도와 백성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하는 것을 뜻했으므로 인격수양과 무관하다고 해석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즉 위인지학은 벼슬을 하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그런 경우 선비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살아서는 왕을 도와 선정善政을 할 수 있는 벼슬에 오르는 것이었고, 죽어서는 당대 사회 전체의 추천을 받아 사당祠堂에 모셔지는 것이었지요. 직업이 세분화한 현대사회에 적합하게 표현한다면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역사에 꽃다운 이름이 영원히 아로새겨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유방백세流芳百世).
그렇게 볼 때 백아절현의 백아는 위기지학도 위인지학도 아닌, 그저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은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심을 담은 발화發話는 물론이지만 농담의 내용 또한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남김없이 드러냅니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사람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헤아려보고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면서 살아가면 행복해집니다. 장학금을 받은 데서 떠올려볼 만한 의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가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 장학금을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 나도 그분과 같은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마음가짐, 나한테도 좋고 세상에도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식기반사회에 태어난 행운, 대략 그런 소주제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이 부족한 권면의 말씀이 여러분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백금옥 여사의 영원한 안식을 다시 한번 빌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