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비닐봉지
윤명수
쓸모없다 버림받은 검정 비닐봉지가 쓸모없는
삶을 찾아 도로를 건너가고 있었다
신호등 따위야 버림받은 서러움을 알리 없지
그래도 한 발 한 발 조신하게 발을 들여놓았다
갑자기 달려드는 차에 그만 기겁을 하고 움칫
뒷걸음질을 쳤다
차가 지나갈 때 까지 납작 엎드려있다가
바람이 살살 꼬드기자 다시
꿈지럭꿈지럭 길 가운데로 들어서는 순간 이번엔
대형 덤프차와 맞부딪쳤다
생의 끝을 아는 듯 온몸으로 맞서 차바퀴를 휘감고
허공으로 치솟아 광대춤을 췄다
펄럭이는 검정 통치마 속에서 많은 것이 보였다
콩나물 양파 쪽파 상추 생선 이런 것들이 쏟아졌다
속을 비운 몸은 해산한 산모처럼 몸이 가벼워져
선녀가 되어 나풀나풀 하늘로 올라가며
비릿했던 한 생애를 허공에다 탈탈 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