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에는 1부 주인공 국희가 문둥병에 걸려 합천의 개벼리에 있는 문촌(문둥이 촌)에 들어가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새로운 삶을 엮어갑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국희가 또 사랑과 고뇌에 빠져 살아가는 인생역정을 극화 시켰습니다. (현재 미완임)
1부
『소 영웅과 겁 없는 애들』
이 헌 진
<시놉시스> (synopsis)
이 작품은 레제드라마 형식이다. 동시에 무대 실연을 가능하게 썼다.
1. 제목 : 소영웅과 대동 팀
2. 기획 의도
이 희곡은 해방을 전후하여 6.25동란 직후까지 한 반도에서 일어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대구와 합천의 인물 몇몇이 벌이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항일과 좌우 갈등으로 점철된 삶의 흔적을 그려낸 창작물이다.
원래는 소설 ‘개비리에 뜰어진 한송이 들국화’(이미 인터넷이나 지역신문에 게재된바있음)을 써가는 도중 ‘합천연극회’를 창단하게 되어, 그 기념공연을 기획하였고 그 공연의 배경을 합천으로 하여 찾다보니 위 미완의 소설을 각색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소설의 시대 순으로 예기를 엮다보니 아직 소설에 씌어 지지 않은 부분이『소영웅과 겁 없는 애들』이란 제목으로 된 4막의 본 희곡이 꾸며지게 되고, 그렇다보니 작품은 연작으로 쓸 수밖에 없어 부득이 2부 희곡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3. 나오는 사람
구식. 남 주인공, 1940년 전 후 식민지 조선 당시 중학 6년(지금 고등3년)의 당찬 소 영웅
국희. 여 주인공, 위 당시 여중 5년, 민경수씨의 딸로 구식의 연인
소희. 명랑한 소녀로 국희의 의 동생.
대구역장. 국희 외삼촌
민규호. 대구 약종거리 대동한약종상, 국희 아바지
메가다1세. 대구 메가다의 아들, 일본인 학생으로 국희를 짝사랑함.
메가다. 대구에 있는 악질 부자
똘만이. 매가다의 심복
국희 친구들. 여학생 1,2,3.
메가다1세 친구. 요시다 및 남학생 1,2,3.
재선. 구식이 세 의형제 중 둘째
임용. 구식이 세 의형제 중 막내
고주임. 일 고등계 한인 형사주임.
모친. 구식이 모친, 옛 기생 홍화.
미나미 지로. 당시 조선총독.
정무총감. 총독부 2인자.
부감. 기무라, 정무부총감.
감찰과장. 총독수하.
정보과장 요다, 총독수하.
헌병다께미아. 대구지역 헌병대대장.
경북도경국장. 오노.
김 하네꼬. 금차회장
기타인. 등
4. 참고. 대본 중 ‘ --- 기록 --- ’ 된 부분은 실재적 역사 배경임.
제1부 『소 영웅과 겁 없는 애들』
1막 제 1장
때. 1930년대 후반 일제 말경
장소. 달성 공원 앞 광장
무대. 공원 정문 앞에 잡화 물과 과자들이 진열된 두 칸 쯤 되는 제법 큰 가게가 있다. 처마에서 달아낸 차양 막 아래 간이 의자와 탁상 몇 쌍이 놓여 있고, 그 곳에 중학 5, 6학년(현재 고2-3년) 쯤 되는 여학생 3-4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고급 천으로 된 산뜻한 교복을 차려입은 말쑥한 여학생이 들어서자, 반가워한다.
여학1. 국희야, 니는 우째 맨날 꽁뱅이고.
국희. 오래 기다렸지, 춘원 이광수선생의 강연을 듣다가 거만.
여학2. 소설나부랭이를 쓴다는 왜놈 앞잡인--, 그 분 말이지--.
국희. 그래, ‘의무교육과 우리의 각오’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데 우리 조선 사람도 하루 빨리 신학문을 깨우쳐야한다는 애정이 깔려있어 느낀바가 컸어. .
여학2. 그 사람 조선문인협회 회장이라는 자리도 일본 놈이 시켜 줬다더라.
여학1. 뭐든 듣고 배워서 손해 볼끼 오딧노 예, 그 분이 처음 쓴 ‘무정’이란 소설 있째, 내사마 밤 샘치며 읽은 었는데 그 여주인공 기생 영채가 국희 니하고 얼굴 맵시가 꼭 닮았다고 생각한기라.
여학3. 야, 이 문둥아, 나도 보았는데, 국희가 선영이를 닮았지, 우째 기생이 된 영채를 와 닮았다 카노.
국희는 춘원선생이 반백이지만, 반듯한 코와 날카로운 눈매, 다소 갸름하게 균형이 잡혀 있는 얼굴이 ‘무정’ 소설의 주인공 이형식이와 닮았다고 생각되어 바로 작가 자신을 모델로 쓴 소설이지 싶었다. 그 예기 속의 영채가 되었던 선영이 가 되었던 간에 남자 주인공 형식이 같은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솟구치자 쓸데 없는 망상을 한다 싶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다 지운다.
국희. 니네들이 형식이 같은 애인 하나 소개시켜주지 못하면서 시끄럽기는.
이 때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는 소녀(소희)가 떡 바구니를 들고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소희. 언니들 인절미 좀 사주이소 예. (하고 다가선다)
국희는 그 소녀를 유심히 본다. 흰 저고리와 짧은 치마는 광목천으로 낡아 있지만 깨끗이 빨아 풀을 먹여 보기 좋았고, 눈은 초롱초롱하고, 영리해 보인다.
국희. 예야! 너 이름이 뭐꼬.
소희. 소희라 케요.
국희. 이름이 예쁘구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 떡 전부다 얼만데--.
소희. 언니 다 산다카면, 싸게 해 드릴께요, 5원주이소.
국희. 그래 전부 다 다오, (떡 바구니 채 탁자에 내려놓고) 예들아 떡 먹자.
여학1. 국희만 만나면 내 목구멍은 침이 끓어 활동이 왕성해 진다니까.(모두 떡을 집어 먹는다)
국희. 소희야, 니도 같이 먹자. 부모님이나 형제가 있니--,
소희. 엄마만---. 몸이 불편해요.(어머니가 아픈데도 티 없이 명랑하다)
국희. 학교는
소희. 쉬고 있어요.
국희. 돈 받어 (국희는 치마 춤에서 지갑을 꺼내 10원짜리 두 장을 소희 손에 쥐어 준다)
소희. (십 원짜리가 둘인 것을 보고) 어마! 언니 왜 케요.(돈을 받았다가 국희에게 도로 주려 한다)
국희. 오늘이 내 생일이야, 용돈은 충분해, 고아원이나 양노원에 가려고 했는데--, 니 어머니가 아프다며--,
소희. 그래도 예.
국희. 소희야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 조용히 할 예기가 있어. 약속하지 (새끼 손 까락을 내어민다. 소희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걸었다, 학생 모두 박수를 친다)
국희는 소희를 동생으로 삼겠다고 생각했다.
여학1. (국희가 예쁜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소희는 이제 복 터졌다 정말 좋은 언니를 만난거야
소희. 언니 내일 꼭 봐요, 집으로 빨리 가서 엄마를 동산병원에 모시고 가야지--, 언니들 안녕, (소희는 퇴장한다)
이 때, 소희가 퇴장한 쪽에서 중학 5-6년 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4-5명이 들어서며, 국희 일행 쪽으로 다가간다. 소희는 다시 들어와 남학생들이 국희 일행에게 수작을 거는 것을 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삐 퇴장한다.
요시다. (국희를 가리키며) 조 계집애 만 놔두고 모두 쫓아버려
다른 남학생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국희 친구들을 발길로 차고, 손으로 후리처서 모두다 쫓아버린다. 국희는 다라나지 못하게 막아선다.
여학2. 야! 깡패야! 너그들이 감히 대 낮에 약한 여학생에게 행패를 부리니--,(팔을 휘젓고 달려든다)
여학생2는 남학생1이 뺨을 후리치니 엎어진다. 다른 남학생이 일으켜 옷소매를 잡고 끌고 나간다. 외톨이가 된 국희는 남학생들에게 팔목을 잡혀 공원 뒤편으로 발버둥 치며 끌리어 가는데 이 때 어떤 준수하게 생긴 일본남학생 하나가 나타나서 행패부리는 남학생 일행을 덮치며
메가다. 고노 조센진 바가야로--
번개 같이 국희의 손목을 잡고 있는 학생의 윗도리 목깃을 잡자 어느새 둘러매고 뒤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겁을 먹고 사방으로 달아났다.
국희는 조선 학생에게 낭패를 당할 위기에서 일인 학생으로부터 구제된 것이다. 둘이는 가게 의자로 가서 앉았다.
메가다. 괜찮소까 (국희는 일본인이지만 고마웠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다소 호감이 갔다)
국희. 혹시 이름은 무엇 인가요
메가다. 와다구시와 메카다 겐진 데스요
국희. 메카다 라 했는 지요
메가다. 하이, 메카다데스요 (어시 되는 투다)
국희는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조양회관에서 서상일 선생의 강연을 듣던 중 그 내용에
-- 일본이 노일전쟁에서 연전연승하여 조선에서 힘의 우위를 확보한 후, 경쟁국인 청국과 러시아 등 제 세력을 몰아내고 우리조정을 압박하여 한일 간에 용빙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그 협약에 따라 일본 내각의 대장성국장 메가다 다네다로(目賀田種大郞)라는 사람이 한국 정부의 재정고문으로 부임하였고, 외교고문에는 스티븐스라는 미국인이 부임하였다. 그 때부터 우리나라는 국가 재정과 외교권이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가 사실상 그들의 속국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재정 고문 메가다가 제일 먼저 한국화폐개혁을 통해 조선의 금융과 통화를 일본이 장악토록한 후, 일본 은행으로부터 천삼백만 원이란 거금을 고율 차관으로 빌려와 관리의 채불 임금과 각종 공 기관의 운영 및 용역비에 충당했고, 한국 조정은 그 돈을 만져보지 못하고 빚만 떠안게 되었다. 당시 조선정부의 일 년 예산이 천만 원 정도였으니 천3백만 원은 너무나 큰 빚이다. 더하여 외국선박 항구 이용 세, 관세 등을 담보로 일본이 이익을 챙겼고, 철도부설권, 광산개발권 등 이권을 독점하여 한국을 착취하였던 것이다. 이런 경제 침탈의 최초 실무 원흉이 메가다란 재정 고문 이었다 --
라는 강연을 들은바 있었다. 그 이후 우연히 아버지로부터 재정고문 메가다의 아들이 대구 상공계에서 활동하며 세도를 부리고 있다는 예기를 들은 바도 있었던 것이다. 이 학생이 바로 악질 대구 메가다의 아들이리라 고 짐작했다.
그러나 국희는 깡패로부터 구제해준 그를 냉정하게 대할 수 없어 경계하며 세심하게 관찰 하였다. 메가다라는 이름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천박한 느낌이 들고, 진실 되지 못한 부랑기가 풍겨난다고 생각되었다. 국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사이다와 과자를 들고 나온다. 사이다 뚜껑을 열고 컵에 따르며,
국희. 오늘은 너무 감사했어요 (의례적 고마움을 표하자)
메가다. 무슨 그런 말씀을! 사실 나는 일 년 전부터 국희씨를 먼발치에서 눈여겨 보아왔고, 혼자 좋아 했습니다. (야릇한 미소를 띠며, 그는 사이다 잔을 입에 대고 한 목음 마신다)
가게 안에서 안익태씨가 근년에 작곡하였다는 애국가 리듬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조선 사람의 한이 녹아 흐르는 것 같다. 국희는 싸늘한 눈으로 메가다에게
국희. 가봐야 해요, 친구들이 걱정이 돼요. (국희가 일어서려는데)
메가다. 잠깐만, (국희는 잡힌 손을 빼고 의자에 앉자) 국희씨! 국희씨의 오도상(아버지)이 약정골목에서 한약종상을 경영하는 착실한 집안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다래
국희는 이 말을 듣고.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일 년이나 뒤를 쫒고, 아버지까지 알고 있다니, 우리 집이 독립 운동자의 비밀 아지 터인 것을,
메가다. 나는 일본에서도 귀족인 가문에서 태어났어 다래, 한말 한국정부의 재정고문 메카다씨가 와다구씨노(나의) 오지상(할아버지)이고 나의 오도상(아버지)와 다이큐(대구)에서 이름 있는 아주 아주 혼도노(정말) 부자 데쓰요(입니다).
국희. 메카다상 소래(그것과)와 나와는 관계가 나이데스요(없습니다)
하고 국희가 바로 일어서려는데, 방금 전의 떡팔이 소희와 대륜고등학교 뺏지를 단 당찬 학생이 국희 친구들에게 행패를 부리려던 서너 명의 학생을 끌고 그 곳으로 들이 닥친다. 이를 본 메가다는 얼굴색이 파랗게 질린다. 당찬 학생은 그 들을 국희 옆 좌석에 발길로 차서 강제로 앉게 한다.
구식. 야! 기다나이(더러운) 닛봉진, 니 이름이 메카다 갠진이지. (놀란 메가다는 대답도 하지 아니하고, 같이 끌려 온 학생들을 보며)
메가다. 아니, 너거들이 어찌 됐소까. (한 학생이 구식의 눈치를 보며)
요시다. 메가다쨩, 너에게 쫓겨 달아나는 데 이 학생에게 잡혔다 데쓰요
남학1. 저 분의 한 빤지에 요시다가 엎어지 길래 우리 셋이서 죽자고 달려들었는데---, 번개 같은 고시나게(엎어치기)를 당하여 눈 깜작 할 순간에 모두 길바닥에 쳐 박힌기라.
남학2. 저 학생이 니 이름을 물어 ‘메카다’라고 하였더니, 메카다--, 메카다라 했제 하며, 조용히 따라오지 않으면, 메카다를 내 햄마 빤지로 골통을 부셔버린다고 협박하기에 이렇게--.
이 소리를 들은 국희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메가다를 향해
국희. “못된 닛본진(일본인), 추잡스러운 연극을 꾸며 나를 속이다니--, 메카다라 할 때 알아 봤어”
이 때 방금 전 떡 파는 소녀 소희가 바구니를 든 채,
소희. 언니! 언니와 해어져 가다가, 먼발치에서 행패부리는 저 학생들을 보고 깡패학생임을 대번에 알았고, 언젠가도 어떤 언니에게 해코지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조양회관으로 들어가 저 오빠를 대리고 왔어요.
구식. 큰 일 날 번 하였습니다. 장구식입니다.
국희. 저는 민 국희입니다.
장내 불이 꺼지다 서서히 브랙등이 켜지며 소복을 한 처녀들 너 댓이 무대 한 편으로 나와서 ‘울밑에선 봉선화’(?)를 합창한다. 불이 꺼지며 사라진다.
제2장
장소. 달성공원 건너편 조양회관 옆 도로.
때. 메가다가 봉변을 당한 후 한 달 쯤 지나서
나오는 사람. 구식, 선재, 임용, 고주임(일고등계 형사주임), 구식의 모친(모친이라 약칭), 국희, 소희 등
무대. 조명이 밝아오자, 조양희관 정문을 보며 초조하게 살피는 품위가 있어 보이는 두루마기를 입은 한 4-50대 부인이 서성거린다. 이 때 당꾸쓰봉(발목이 잘록 한 기마복 바지)을 입은 인상이 고약한 사람이 부인에게 다가온다. 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 오던 소희는 어떤 입간판 뒤로 몸을 숨긴다.
고주임. 오--, 퇴기 할망구 여기서 뵙군요. 구식이 놈을 기다리고 있다 데스까.
모친. 니놈이 조선의 피를 이어 받았거늘 어찌 같은 민족 같은 형제를 이렇게도 못 잡아먹어 발광하는가.
고주임. 그래, 말 한번 잘했다 다래, 나는 어릴 때 양반 댁 행랑채에 살면서 머리가 뽀야케 신 우리 아배가 세 살 먹은 꼬마를 보고 도련님, 도련님 하고 허리를 펴지 못하는 꼴을 보고 자란 놈이야, 그런데 조선의 피라고, 한 동족이라고, 그래 양반의 조선이 선비의 조선이 우리 평민과 쌍놈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었는데---, 이 할망구야, 조선 소리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 이가 갈려 알겠나.
모친. 그렇다면, 화적 같은 이놈아, 나도 니놈과 똑 같은 기생출신으로 쌍것이 분명한데, 왜 늙은 기생이니, 퇴기니 하며, 못살게 구는 거냐.
고주임. 그 말 한 번 잘 했다. 니나 내나 같은 쌍놈의 집안에 태어나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굶기를 밥 먹 듯 했고, 희망이라고는 귀 떨어진 싸레기 만큼도 없는 세상을 살아왔지 않았느냐 그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 천것들을 인간답게 살도록 해방 시켜 준 자가 누구냐 그 말이다. 바로 ‘아미다라스 오미가미’의 대 일본 재국이다 그 말이야, 안 그러냐.
모친. 그래 니놈이 미쳐도 보통으로 미친놈이 아니군.
고주임. 내말 듣기나 해라, 이 할망구야, 그래서 나는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본 사람을 괴롭힌 구식이를 꼭 잡아서 내 충성심을 한번 보여주겠다 그 말이지. 할망구 니도 구식이가 숨어있는 곳을 가르쳐주면, 내가 잘 처리하여 쉽게 풀어 줄 것이니 협조해 달란 말이야.
모친. 이 똥개 같은 놈아, 그 애는 단지 악질 메카다의 아들놈이 순결한 조선소녀를 짓밟아 노리개를 삼으려는 못된 수작질을 보고 그들 불한당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다, 그런대도 너희 경찰들이 구식이를 잡아 죄인으로 옭아매려고 눈에 불을 켜고 발버둥 치다니---,
고주임. 기생 년이 말솜씨는 있구먼,
모친. 듣기나 해라 이 불한당아, 니는 소위 경찰로서 질서를 담당하고 범죄를 방지해야하는 본연의 직분은 뒷전이고, 개다소리 요란한 왜놈 메카다의 꼬리치는 개가 되어 있다 그 말이다. 틀렸냐,
고주임. 저년이
모친. 니 행동은 너희 일제 관료들이 하늘 같이 떠받드는 천황에 대한 불경이다, 안 그러냐. (이 소리를 듣자 고주임은 다소 움추려 든다)
고주임은 회중시계를 꺼내 보더니
고주임. 급한 회의가 있어 오늘은 거만 간다. 구식이는 내 손으로 꼭 붙들 것이다. 그리 알라.
이런 광경을 저 쪽 간판 뒤에서 보고 있던 소희는 재빨리 사라지더니 구식이와 국희와 함께 등장한다. 구식이는 모자를 쓰고 턱에는 수염을 달았고, 너들 한 한복을 걸쳐 농 꾼처럼 변장하고 있다.
구식. (어머니를 덥석 안고) 어머니, 제가 불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모친. 그래, 어디에서 숨어 지내고 있니, 밥이나 제 때 먹는지 모르겠다.
구식. 소희 집에서 잘 피신해 있으니 염려하지 말아요.
국희가 모친 곁으로 다가서며
국희. 어머니, 처음 뵙습니다. 마음고생 심하시지요. 다 저 때문입니다.
모친. 아니야, 니가 민 선생의 외동딸이니, 정말 묘한 인연이다. 민선생께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이렇게 옥 같이 잘 다듬어진 소녀인줄은 미처 몰랐다.
소희. 어머니 저는 소희라 케요.
모친. 니가 인절미 장수 소희란 말인가, 그래 소희야, 몸이 불편하다는 어머니는 요즘 어떠시냐.
소희. 지금 동산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고 계세요, 국희 언니 덕분이지요. 언니는 정말 살아있는 천사와 다름없습니다. 요즘 나는 요, 국희 언니와 구식이 오빠 때문에 살아가는 재미가 너무 좋고 신바람 난답니다.
구식. 어머니 소희가 어떻게나 영특한지--
소희. 괜히 비행기 태우시네, 어머니 사실은 요즘 내가 구식이 오빠와 국희 언니한테는 사막의 오아시스랍니다. 둘이서 만날 비밀 장소도 내가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모친. 그래
소희. 어머니 오빠가 계속하여 일본 놈에게 쫒기면 좋겠어요. 그래야 두 분을 위해 내 할 일이 계속 있지 않겠어요. 헤헤헤----, 언니 오빠 용용--, 다 농담이에요.
이때 재선이와 임용이가 들어온다. 재선이는 학교 1학년 후배이고, 임용이는 같은 권투도장에서 사귄 후배다. 둘 다 고향이 합천이고 셋은 형제의 의를 맺었다.
재선.임용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국희씨도, 소희야 반갑다 정말예쁘구나.
모친. 그래 그래 모두 반갑다.
구식. 어떻게 됐나.
재선이. 도경 고등계에 전화를 걸어 고주임을 찾았더니 마침 전화를 받습디다. 나는 작은 메카다 시다바리인데요, 지금 구식이가 대구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알려 들입니다 고 했지요. 지금 쯤 대구역으로 출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임용. 남의 눈에 뛰기 시우니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고 이곳에서 어머니와 예기를 계속 하이소. 우리가 사방을 지키고 있겠심더. 국희씨도 소희와 함께 망보러 가요.
모친. (재선이와 임용을 보고) 그래 너희들이 할 짓이 아니다.
모두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구식.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단 한 번도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모친. 구식아, 이 어미가 기생 출신이란 말을 듣고, 얼마나 실망하였느냐. 내가 이 일만은 한평생 묻어두고 너에게 비밀로 하려 했지만, 못된 메카다가 니 뒷 조사를 하다 보니 결국 부끄러운 이 어미의 과거가 폭로되고 말았구나,
구식. 어머니 나는 까닥 없습니다. 어머니는 50평생 이 나라와 못난 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기생’, ‘기생’ 이 치욕스런 한마디를 못난 아들인 나의 귀에 들려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가슴을 조이며 살아오셨습니까. (어머니게 다가가 포옹하며) 어머니! 자기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고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지적하였습니다. 또 공자는 형벌의 죄목이 삼천 가지가 되나, 그 중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어머니에게 포옹을 풀고 무대 한 복판에 나오면서),
어머니, 문둥병인 내 어머니도 다른 사람의 어머니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니까 (다시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우리 조선나라도 우리 백성의 어머니와 같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우리 민족을 양반과 상놈으로 갈라놓고 쌍놈은 대를 이어 쌍놈으로 살아야 하고, 양반은 쌍놈을 깔아뭉개는 주인이 되어, 자손 대대로 호강을 누리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조선의 법과 제도를 보면서도 내가 생각이 모자랐던지, 눈이 멀었든지, 이 나라를 모든 백성을 낳아 길러준 내 어머니 같다고 생각했고, 우리 조선이 이 민족을 따뜻하게 품고 길러주는 만백성의 어머니라고 생각해 온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억울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우리 조선이 이 민족의 어머니가 아니란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양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렇게 착한 내 어머니를 이 나라가 왜 기생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기생인 우리 어머니를 얼마나 조롱하고 쌍것으로 천대해 왔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모친. 예야 그 무슨 소리를
구식. 양반, 고관대작, 왕실 귀족들은 그들만을 위한 높은 담장을 쌓아 그 안에서 신선들처럼 호의호식하며, 담장 밖에 있는 백성의 피를 빨고 살을 뜯어먹으며 배에 살을 찌워 오지 아니 하였습니까. 백성은 그들의 도구요 그들을 위한 노예요,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눈물로 한 많은 인생을 죽지 못해 살아 왔음이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런 기막힌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내 어머님인 줄을 꿈에도 모르고 살아온 내 불효를 어찌 하늘인들 용서를 하겠습니까.
이 때 모친은 달려 나와 구식이 앞에 꿇어 구식이의 바지 가랭이를 잡고
모친. 구식아! 아니다, 아니다, 니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한 민족 한 뿌리다. 니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조상이 대대로 뼈를 묻어 온 내 땅이요, 이 맑은 공기는 반만년의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마시며 숨 쉬워 왔다. 저 하늘을 보라, 저 공간 속에 우리는 민족의 미래를 그리며 참된 삶을 역어 온 배달민족이 아니더냐. 이 삼천리강토는 바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위대한 어머니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구식아----,
잠시 불이 어두워지더니, 수호천사 인 듯 한 소복의 소녀들이 무대에 등단하여 조국의 찬가(?)를 합창하자 다른 한 팀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난 후 퇴장한다. 불이 밝아지며.
재선. (무대로 급히 등단하며) 형님, 빨리 어머님과 헤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쪽 서문시장 쪽에 수상한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소희가 알려 왔습니다.
구식. 알았다, 어머님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제 걱정은 하지마시고---, (포옹을 하고 난 후 급히 재선이와 퇴장한다)
막이 내려간다
2막 1장
장소. 소희 집 부근에 있는 대동한약상 민규호(국희의 부친)씨 소유 한약제 창고, 소희네 집 부근에 있음.
때. 조양회관 앞에서 구식이 모자가 상봉한 후, 8-9개월이 지난 즈음.
나오는 사람. 구식, 재선, 임용, 국희, 소희, 채란 등
무대. 한약 창고 안에 구식이는 한편 쪽을 사무실로 꾸며 공부방 겸 연락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칠판이 걸려 있고, 큰 지도도 벽에 붙어 있다. 책장에 책이 가득하고 신문들이 책상위에 널려 있으며, 권투 연습 빽이 대들보 철근에서 밑으로 걸려있고 한 쪽 벽에 전화기가 걸려 있다.
구식이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임용이가 각설이패 복장으로 들어오고 뒤 따라 양장을 한 채란이가 들어온다.
임용. 각설이 용이가 동냥 왔습니다, ‘어 시굴 시굴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구식. (용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그래, 용이 왔구나. 동냥벌이는 좀 했느냐.
임용. 행님, 오늘 수입은 동냥 대신 채란이를 낚아 왔습니다요. 헤헤--.
채란이는 어린 기생으로 영특하고, 구식이 집에 드나들며 구식이를 친 오라비처럼 따르고 있는 총명한 애다. 최근에 국희 때문 질투심으로 다소 마음이 아프다.
채란. 오빠 내 생각 많이 하셨는지요.
구식. (웃으며) 채란아, 자나깨나 니 생각, 밥 먹을 때도 니 생각, 온통 니 생각 뿐이다 됐느냐. (구식이 정색으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고, 잘 돌보아 들이 거라.
채란. 그렇잖아도 내가 오빠 방에서 기거한답니다. 오빠 냄새에 젖은 이불을 덮고 달콤한 꿈을 꾸면서요. 헤헤---, 그런데 어머님이 요즘 부쩍 수심에 쌓여 있는 듯해요.
언젠가 어머니와 상면 시 너무 심기를 괴롭힌 것을 구식은 후회한다.
구식. 이제 니도 기방 생활을 거만 둘 때도 되었는데 그래.
채란. 오빠가 나를 여자로 보지 않는 한 절대로 안 돼요. 나한테 반한 남자들이 수두룩 빽빽하게 찾아오는 춘앵각(요리집)을 내가 미쳤다고 떠나요.
구식. 니는 내 속을 뒤집는 재주가 우째 그리 여전 하냐.
채란. 사실은 어머니에게 약속하였어요. 당분간만 나가기로---, 오빠 그런데 며칠 전 악질 큰 메케다가 춘앵각에 왔었어요, 경성에서 내려 온 높은 분과 대구 주재 일본 헌병대장 그리고 경찰국장과 함께요, 다른 방에서는 야쿠자 같은 메카다 똘만이들도 들었었구요.
구식. 그래서
채란. 처음 대장들 자리에 언니들과 함께 하였는데, 술을 몇 순배 돌린 후 자기들끼리 무슨 금괴가 우쩌고 저쩌고 하며 소곤소곤 하더니, 우리더러 잠깐 자리를 비우라 했어요. 그래서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다 싶어 그 방을 나오는 길로 똘만이들 방에 들어가 그 중 우두머리일성 싶은 놈 옆에 차고 들어가 어울렸어요.
구식. 분명히 금에 대한 예기였어--?
채란. 내가 누구에요, 머리를 굴렸지요. 그들에게 술을 정성껏 한 잔씩 권하고 나서 아유 이제 내가 정열의 불꽃이 튀는 용광로에 날아 온 것 같에, 하고 애교를 띠우니 똘만이 대장 쯤 되는 놈이 나의 손을 잡더니, 높은 자리에 있고 돈만 많으면 무엇해 몸통 중앙청이 튼튼해야지 하며 장중을 훑어보는 거에요.
모두가 웃는다
구식. 그래서
채란. 내가 그 놈보고 ‘삼촌, 한 가지 물어볼께요, 요즘 방물장수가 찾아와 금붙이가 있으면 팔아라고 어떻게나 닦달을 하는지 귀찮아 죽겠어요’ 하고는 슬며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금패물이 좀 있는데 팔가 말까 하다가 그냥 돌려보냈다’고 했지요, 그런 후 ‘삼촌, 요즘 금시세가 얼마나 되는지 알면 좀 가러쳐 주세요’ 하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아니 니가 금붙이가 있다고 얼마나 가졌는데’ 하고 되묻는 거에요. 그래서 눈 딱 감고 ‘한 백오십 돈 쯤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니가 그렇게 많은 금을 가지고 있을 리 없지’ 하고 빈정거리기에 ‘어린 기생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고요’ 하고 앙탈을 부렸지요, 그랬더니 그놈은 내 손에 꼭 힘을 주며 하는 말이 ‘방물장수가 한 돈에 얼마나 주겠다고 하더냐’고 묻길래 ‘15원 50전 준다고 합디다’ 하고 방물장수에게 들은 가격을 예기 했지요. 그랬더니 똘만이는 고개를 꺼덕꺼덕 하며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기에게 팔면 한 돈에 18원을 주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방물장수란 원래 주로 노파들이 행상(行商)을 하였다고 해서 아파(牙婆)라고도 한다. 이들은 연지 ·분 ·머리기름 등의 화장품을 비롯하여 거울 ·빗 ·비녀 등의 장식물과 바느질그릇에서 패물에 이르는 잡다한 물건들을 커다란 보퉁이에 싸서 등에 지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전전하면서 행상을 하였다. 방물장수의 기원은 삼국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은 여염집 여인들에게 세상 물정이나 세상 잡사를 전해주는 정보 매체 구실도 하였으며, 특수한 심부름을 하여 주는 중개자, 혼인의 다리를 놓아주는 매파의 구실도 하였다. 이런 방물장수가 30년대 후반의 식민지 조선시대에 이르러 시중의 금 매입을 주업으로 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중일전쟁이 터진 뒤 일본은 군수물자의 수입제조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됨에 따라 금수요가 절실해지자 마침내 일제는 민간인이 사용하는 금을 규제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조선 총독부는 1938년 1월 4일‘조선총독부령 제2호’를 공포하여‘9금 이상을 사용한 금제품의 제조와 금실, 금박, 금가루, 금액 등의 제조를 금지하였다. 그러나 통제경제란 인위적으로 묶어두는 것임으로 시중에서는 더욱더 은밀한 ’암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통제 이전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위 년 8월 20일에는 부분제한이 아니라, 금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있는 것은 전면적으로 사용금지하는 ‘금사용전면금지’조치를 내린다. 이에 의료기구를 빼고는 금을 일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국책홍보용 경제기사가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전 생략-, 모든 가정에서 가지고 있는 금붙이나 금돈은 나라에 헌납하는 것이 좋고, 나라에 그냥 바칠 형편이 못되는 사람은 조선은행에 갖다가 파는 것도 좋다. 이 무슨 어림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때는 전시(戰時)이다. 금붙이를 자랑하던 세상은 지났다. -중약-, 금사용금지로 전국에서 얻는 연 액은 2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런 소액 절약으로는 국가 목표한 금의 비축이 턱없이 부족 할 터이니까, 장래에는 3억 내지 5억원으로 추정되는 민간의 퇴장금(退藏金,소유금)을 강제로 매상하는 것이 좋다는 설이 제기되는 중이다. 이것이 설에 그치지 않고 실현될지 모른다. 그 때 강제로 매상 당하는 것 보다 지금 선선히 파는 것이 어떨까? 금에 대한 관념을 고칠 때가 왔다”
이런 협박성 경고가 시민에게는 무상 공출로 와전되어 밀거래를 더욱 부추겼다. 당연히 민간인이 금을 제 값에 파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고, 그 일선 매입자 역을 기존의 방물장수가 암암리에 담당했던 것이다.
30년대 말에 쓴 채만식선생의 소설‘금의 정열’에는 강화아씨, 해주댁, 박윤식, 현씨 일가 등을 등장시켜‘금밀매 커넥션’을 펼쳐 보이는데 강화아씨와 해주댁은 방물장수로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부녀자들에게 금붙이를 사들인다. 시세보다 1원 가량 비싸게 사들이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부녀자의 구미를 동하게도 하지만, 곧 강제공출이 실시되면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공갈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이 집집마다에서 사들인 금붙이나 패물 따위는 중간 상인 박윤식에게 넘어가고, 박윤식이 수집한 금은 다시 대 접주인 현씨 일가에 넘어 간다. 현씨일가는 여러 중간상인으로부터 수집한 금을 만주나 중국으로 가지고가서 시세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팔아 폭리를 취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방물장수는 금 1돈중에 15원 50전매입하고, 중간상은 18원에 매입하고, 대접주에는 20원으로 매입하여 이를 국외로 빼돌려 얼마에 파는지를 아무도 모른다.”이것이 금 투기 암거래의 표본이다.---
구식. 그랬더니--,
채란. ‘며칠 내로 몽 땅 현금으로 사겠다고’고 하며 ‘절대로 다른데 팔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하데요. 그래서 ‘똘만이 주제에 무슨 돈이 있느냐 하고 약을 올렸지요. 그래도 ‘자기가 꼭 산다’ 하며 장담하데요. 오빠, 그 똘만이 눈치를 본께 수일 내로 돈을 싸들고 나를 찾아 올 끼 분명해요.
구식. 채란아 정말 잘했다.
채란. 오빠 (손가락을 내밀며) 이 금가락지 하나 밖에 없는데---, 우짜고 예,
구식. (채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큰 메카다 일행 좌석에는 또 들어갔었나.
채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어머니 집으로 바로 퇴근하였습니다.
이 때다 싶었던지
임용. 형님 방물장수가 들어가는 집을 알아본께 잡화상 김 몽달이 집인데 들락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이데요.
구식. 그럼 몽달이의 거동은 계속하여 살펴 보았섰나
임용. 예, 불종거리에 있는 도쿄물산이란 간판이 달린 집으로 보따리를 들고 들어가 두어 시간 있다가 빈손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뿐이 아입디더, 또 몽달이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계속 가방이나 책보에 싼 물건을 들고 그 곳에 들락거리는데 나올 때는 모두 빈손이었습니다.
구식. 그래. 도쿄물산은 메가다 회사의 사무실이지.
임용. 그런가요, 무슨 일을 꾸미는 긴가요.
이 때 재선이도 들어왔다. 심상찮은 예기가 오가는 것을 보고 뒤편의 의자를 당겨 조용히 앉았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시중경제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우리민족은 국가 권력이나 지배구조에서 소외당하고 있어 경제적 지위나마 확보해보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계 국가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경제는 순리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노력으로 돈을 모으기에 어려운 식민지시대의 우리국민이 눈을 돌릴 곳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던 차 우리 조선 사회에 일제 식민지 정책에서 파생된 후유증으로, 투기 열풍이 일었는데 20년대에는 미두장 투기열풍이 그리고 30년대에는 금광 열풍이 휘몰아쳤다.
투기는 시장가격이 급변하는 틈새를 이용하여 비정상적 이익을 얻는 행위라 말 할 수 있다. 투기의 특질은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 ‘대중의 비정상적인 환상과 집단적인 광기행위’라 할 수 있는데, 식민지 시대에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일단의 투기 열풍도 그 예에 해당된다.
한일합방 후 1910년대와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정치적 면으로 구분해보면, 대략 10년대는 무력 통치기 이고 20년대는 문화 통치기 이며, 30년대는 내선일체 강화기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1910년대는 토지 물자 침탈 및 제도화 시기이며, 20년대는 문화회유 및 미두장 투기, 30년대는 전쟁준비 및 금광 투기시대로 특징 된다 하겠다.--
구식. (채란이 앞으로 다가가서) 채란아, 어머니께 편지를 써 줄 테니 찾아가서 보이고 금부치를 받아 똘만이 놈에게 한 돈에 18원으로 계산하여 팔아라. 내일 쯤 그놈이 가게로 분명이 너를 찾아 올 것이다.
채란. 그래서요.
구식. 그 돈은 당분간 니가 보관하고 있거라. 재선이도 왔구나.
재선. 예, 행님.
구식. 너거들은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일제는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대륙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들어내고 한반도를 그들의 병참기지로 삼으려고 했단 말이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한다는 말과 같이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지, 1932년에 도꾜에서 이봉창 선생이 히로히토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일이 있고, 상해 홍구 공원에서는 윤봉길 선생이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기념식장에서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져 상해 파견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9사단장 우애다, 거류민단장 가와바타를 즉사시켰다 는 쾌거는 너거들도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든 차 3년 전인 1936에는 안익태씨가 애국가를 작곡하였고, 제11회 베르린 올림픽 대회에서 손기정 선생이 세계신기록으로 마라톤경기에서 승리하는 등으로 조선인의 사기가 차츰 일기 시작 했는 기라. 그러자 일본 총독부는 1937년에 반도에 있는 조선인 1만2천명을 강제로 만주로 쫒아내고, 1938년에는 국가총동원법인 법률제55호를 공포하여 일본, 조선, 대만에서 동시에 실행하였던 것이다. 이 법은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사람과 물자를 자기 멋대로 동원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대구의 악질 메카다는 총독부의 한 실력자와 대구의 실세 몇이와 함께 큰 돈을 벌기위해 많은 량의 금괴를 외국으로 빼돌리려고 하는 모사를 꾸미고 있었다 그 말이다. 정말 대담한 놈들이지. 며칠 전의 춘앵각 모임은 그 계획이 이미 실천단계에 들어갔고, 바로 구체적 행동 계획을 확인하는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그 말이다.
채란. 오빠는 그 왜놈들의 음모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네 예.
임용. 당연하지, 행님이 누군데---.
구식. 내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마, 아프리카의 좁은 늪에서 함께 사는 악어와 하마를 보면, 악어는 하마의 공간을 절대 침범하지 않고, 하마는 역시 악어의 공간을 넘보지 않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상대의 새끼를 공격하지 않는다. 또 악어와 악어새를 보면, 힘을 가진 악어는 악어새를 보호해주고 악어새는 악어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 먹는 진드기를 쪼아 먹는다, 이같이 힘 있는 자끼리는 서로 협동하고, 힘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봉사하며 보호를 받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목적이 있기에 공존. 공생하며 살아간다 말이야.
재선. 제가 중간에 한 말씀 먼저들이겠습니다. 행님,
구식. 급한 예기라면 해보아
재선. 내가 대한방적에 침투해 둔 노조원으로부터 알아 낸 정보에 의하면, 대한 방적공장에서 최근에 생산한 옷감 수 만 필을 국방색으로 염색하여 대구는 물론 부산 등지에 있는 봉제공장에 보내어 군복을 주문하였는데 그 제품이 완성되어 대구 침산동에 있는 대한방적 창고에 전량 입고되었다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구식은 잠시 생각하더니.
구식. 재선아, 대구 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다오.
재선. (한 쪽 벽에 붙은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서 전화를 건다) 역장실 부탁합니다. 역장님이세요. 전화를 바꾸겠습니다.
구식이는 국희를 만나기 전부터 어머니와 친교가 있는 대구역장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삼촌, 삼촌 하고 불렀고, 같이 만나 동촌에 놀러가기도 하고, 역장이 어머니 집에 들려 나라를 걱정 하는 예기도 들었다. 또 역장은 국희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구식. (전화통으로 다가가서) 삼촌 저 구식입니다---. 예,예--- 별일 없습니다만---, 그 놈들이 땡비(야생의 조그마한 떼 벌)처럼 어찌나 집요하게 설치는지---, 조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입니다. 연세도 많으신데---, 그리고 참 (소리를 낮추어 힘 있는 목소리로) 삼촌! 일본군이 혹시 만주로 가는 열차를 잡아 둔 것이 있는지요. 예, 언제라고요---, 내일 모래요, 화주는 총독부라고요. 33열차로 화물칸 6고뻬-- . 수송화물은 요. 예---군복이라고요, 그것 말고는 없었나요, 예, 무기가 한 꼬뻬라고요--, 저녁 11시 출발이라고요.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재선. 그 일과 춘앵각 모의가 혹시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서 먼저 예기를 드린 것입니다.
구식. 니가 바로 짚었다.
--1935년 이래 일본이 중국과 만주의 분리공작(화북분리공작,華北分離工作)을 진행시키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사건(蘆溝橋事件,중일전쟁의 시발)이 일어나자 관동군(關東軍)을 중심으로 한 일본 육군 내의 전쟁 확대 파는 소련의 참전을 경계하는 비 확대 파의 반대를 물리치고 8월 13일 제2차 상해사변을 통해 중국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일본군은 전쟁을 신속히 끝맺으려 했으나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이룬 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그해 12월에 이르러서야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다. 일본군은 1938년 5월에 서주(徐州)를, 10월에 광동(廣東)과 무한(武漢)을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전력이 한계에 도달하여 전선은 고착상태에 빠지고 관동군은 도시와 철도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한편 중국 국민정부(國民政府)가 관동, 무한이 함락되어 사기가 떨어져 있을 때, 친일파 왕자오밍(汪兆銘)이 중경(重慶)을 탈출하여 남경에서 친일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
재선이가 보고한 것은 관동군 겨울용 군복을 만주로 실어 내려는 군수작전 정보이다.
구식. 기어코 메가다 그 놈들이---, 그래 한몫 잡자는 것이지--, 내일 모래--, 무기 한고빼--,
혼자 중얼대는 구식이의 입을 모두 쳐다본다. 구식의 표정에 어떤 결의가 보인다. 구식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반도 지도를 살피더니, 다시 재선이 임용이 채란이 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이 때 국희와 소희도 들어온다. 모두가 심각한 분위기여서 눈인사로 대신했다.
구식. 내가 아까 말했지만 지금 조선총독부 부총감 기무라, 일본헌병대 다깨미야 대좌, 경찰간부 오노 총경 등 세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내지(일본)에서 한 명문 고등학교의 선후배 동문 관계이다. 조선의 일본인들은 이 세 사람을 ‘반도삼총사’라고 부르지. 이들은 대구에 기반을 둔 메가다가 교묘하게 일본의 정책과 조선의 시장물정을 꿰뚫고 돈 벌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가다가 조선인의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못 뗀 짓을 응징하려했으나 그의 부친인 대한제국의 경제고문이었던 메가다의 영향력이 미나미 총독에게까지 작용되어 있어 손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이를 눈치 챈 메가다는 3총사에게 뇌물을 주며 친분을 쌓았고, 그들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려고 어떤 계획을 꾸민 것이다. 즉 악어와 하마,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만들었다 그 말이지, 대구 메가다는 그들 3총사와 짝짝궁이 되어, 1930년대 초부터 조선에 일고 있는 금광 열풍의 틈새에 풍기는 돈 냄새를 맡았고 이를 이용하여 일확천금을 거머쥘 계획을 세웠지, 경제동물의 표본인 메카다는 이미 재미를 본 미두장 투기열기가 가라않자 연이어 불어 닥친 금광 열풍의 호기를 그대로 썩힐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거야.
일동. 그렇군요.
구식. 나는 그들이 관동군에 보급될 군복을 수송 할 때, 금괴를 만주를 통해 해외로 빼돌릴려고 하는 눈치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단 말이야.
모두가 구식이를 경외의 눈길로 쳐다보며. 감격하고 있다.
임용.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구식. 질문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내말부터 끝내자. 일찍이 명치유신으로 개명한 일본은 청일 노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받아 내었지, 이 돈을 밑천으로 산업을 부흥시키고 조선을 점령하여 원자 제 조달과 제품의 판매 시장까지 확보하였고 더구나 일차대전으로 전례 없던 호황을 누렸던 것이다. 그런 일본이 1917년까지 유지해오던 금본위제 화폐제도를 폐지하고 금 수출입을 막는 통제 경제로 들어갔었지. 그러나 그런 호경기는 1922년 중국에서 인 일본화폐의 배척운동으로 수출에 큰 타격을 입었고, 다음 해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의 복구비로 사용한 ‘진제어음’ 처리문제로 국가재정에 타격을 입었지, 그리고 1927년에 일어난 쇼화 경제공항 시에 결행한 3주간 모라토리엄 선언, 연이은 미국 뉴욕으로부터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불어 닥쳐 근 십여 년 간 일본은 만성적 경제 불황으로 죽을 맛이 되었던 것이야. 이런 경제 불황을 타게 하기 위해 당시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은 마침내 1930년 1월 21일에 여태껏 버티어 오던 금 수출 정지 정책을 금 수출허용 정책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말이다. 이같이 무려 1917년부터 13년간 유지해 오던 금본위 정지 정책을 철회하고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너희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예기를 하는 것 같다만, 특히 재선이와 용이는 조선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잘 아는 것이 항일운동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명심하고 소홀히 취급하기 쉬운 돈 경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다시 말하면, 우리 조선이 돈만 많았어도 일본에 먹히지 아니하였고, 또 일본이 저렇게 동남아를 집어삼키려 고 발악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 말이야. 돈은 물자요 돈은 힘이며, 돈은 국력이며, 바로 부닥방맹이다 그 말이다.
구식이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쉰다.
재선. 형님, 형님 말씀 중에 모라토리엄이란 어구가 있었는데 무슨 뜻인지요.
구식. 잘 물었다, 간단히 예기하면, 모라토리엄의 뜻은 외국으로부터 빚을 많이 진 나라가 돈을 갚아야 할 기한이 돌아왔지만, 빚이 너무 많아 그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부득이 빚 갚는 기한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어찌 되겠느냐, 당연히 국제간에 신용이 추락하고 그 나라 화폐의 가치는 급락하게 되며, 그 나라는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1927년의 일본의 3개월 모라트리움 선언이란 외국의 빚 기한을 일방적으로 3개월간 연기 하겠다고 선언했다는 뜻이다.
채란. 오빠 금본위제라 했는데, 그 말에 대해서도 좀 가르쳐 주세요.
구식. 역시 알아야 하겠지, 금본위제도란 간단히 말하면, 화폐(통화)의 십원이다 백원이다 하는 명목가치를 금의 량과 똑 같이 취급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면, 금본위제는 누구나 금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 ‘자유주조’ 누구나 돈과 금을 바꿀 수 있는 ‘자유태환’ 그리고 해외에 마음대로 금을 팔고 살 수 있는 ‘자유수출입’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화폐제도를 금본위제도라 하는 것이다.
채란. 알 것도 같은데 아리송하네요.
임용. 어렵내요, 좀 쉽게 말해줄 수 없나여.
구식. 그래 쉽게 말해보지, 가령 금 2돈이 10원과 같다고 할 때, 금 2돈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돈으로 만들어 달라하면, 금 2돈을 10원짜리 금화로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지폐를 원하면 10원의 지폐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10원의 지폐를 은행에 가지고 가서 금을 달라고 하면, 2돈쭝의 금이나 금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이런 지폐를 태환권이라고 하고, 지폐의 명목가치가 금의가치와 같다고 하여 그 돈을 ‘정화’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금본위제라 할 수 없다. 이런 금을 해외에 마음대로 수출할 수 있고, 반대로 해외에서 마음대로 들여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에서는 그 나라의 돈을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겠냐.
임용. 행님은 도대체 권투하랴, 유도하랴, 독립운동하랴 언제 이런 역사는 물론 이요 시장판때기까지 다 꿰뚫고 있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구식. 다 왜놈에게 쫓기다 보니 이곳에 숨어서 반년 이상 책과 씨름하고 국희가 모아다 준 각종 자료들을 우리 둘이서 배우고 익힌 것이다.(채란은 삐진 표정이다)
채란. 오빠, 어머니께서는 우리나라가 1907년에 일본에 진 빚 천삼백 만원을 우 리 2천만 국민이 3개월 간 담배를 끊는 결단에 의해 모은 돈으로 빚을 갚
자는 국체보상 운동이 일어날 때 무려 3백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어 놓았다는 전설 같은 예기를 다른 언니들로부터 들었습니다만, 내가 편지를 갖고 어머니를 찾아가면 어머니께서 금 백50돈을 줄 것이라 하셨는데 과연 어머니가 그 많은 금을 갖고 계실 런지 걱정이 되는 군요.
구식. 채란아,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후 화류계 생활을 청산하고, 한복 주문을 받아 근 20년 동안 돈을 많이 벌었지,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폐물을 장만 할 수 있었겠느냐. 내가 어머니가 준 돈을 밑천으로 한참 투기바람이 인 미두장에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뛰어 들어 가 단번에 큰돈을 모으고, 방학이 끝나자 현금을 모두 금으로 바꾸어 두었던 것이다. 그 금괴가 남아있는 것이 너댓 개 되는데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다, 걱정 마라.(모두가 놀란다)
임용. 행님, 금괴가 너댓 개라 하였는데 도대체 금괴 한 개가 얼마나 되는데요.
구식. 보통 금괴 하나는 1Kg이다, 돈중으로 따지면, 266돈중 조금 넘는다.
재선. 행님 ‘미두장투기’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미두장이란 무엇입니까.
구식. 미두장 투기에 관하여는 다음에 상세히 설명 하겠지만, 우선 현물이 없는 쌀을 놓고 사고팔고 하는 선물 시장이라는 것만 말해두지.
--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자, 조선에서 생산된 미곡이 일부만 국내에서 소비되고, 거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넘겨지는 중요한 농산품이 되었다. 그래서 일제 당국에서는 1920년대 초에 미두취인소를 만들어 미곡의 품질과 가격의 표준화를 도모하고, 미곡의 개량 화를 촉진하며, 조선 각지에서 활동하는 미곡수집상들에게 미곡가격의 동향을 정확히 알려주어 구매과정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나아가서 조선과 일본의 식량수급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목적에서 미두취인소(미두장)를 인천에 제일 먼저 만들고 다음 부산 군산 대구 등지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의 미두장이 투기의 현장으로 변하여 쌀의 현물거래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이 청산 거래방식을 통한 ‘결재의 권리’만을 파고 사는 투기시장이 된 것이다. 1937년을 고비로 미두장 투기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는데 일제가 쌀을 전쟁수행을 위한 ‘통제물자’로 규정하고 자유판매를 금지하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에는 또 연이은 ‘금 투기’의 광풍이 불어 닥쳐 있었던 것이다---.
메가다는 이 미두장에서 미두꾼들에게 고리의 ‘수형할인’장사(어음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이다.
재선. 행님, 행님이 그런 투기장에서 큰돈을 모았다는 것인가요.
구식. 그래, 그때 나에게도 운이 따랐지, 여름 방학 때이지 싶다. 그해는 유달리 더웠고, 비가 제때 내려 조선의 논에는 가을 벼 추수가 누가 봐도 대풍년을 예고하였지, 그러니 미두장에서는 쌀값이 떨어질 수밖에, 나는 틀림없이 추수하기 전에 홍수가 지고 태풍이 몰아치게 되면, 벼 시세가 올라갈 것이란 점에 초점을 맞추어 어머니께 얻은 돈 1,000원을 미두장 결제소에 증거금으로 예치하여 10배인 10,000원의 거래 권리를 얻었던 거야, 즉 10%의 증거금을 내면, 현물을 파고 살 수 있는 권리를 10배로 해주었거든, 그 당시가 4-5 년 전이니 겨우 중학교 2-3 학년 때이지, 내가 등치는 조숙하여 지금과 다름없이 껄대가 컸지, 그 해 여름 미두장에서는 대풍년이 예상되었으니 미두장의 쌀값은 아침저녁으로 하락하였지, 거야말로 쌀값이 똥값이 될 때, 나는 선한(先限)으로 쌀 천석을 사두었단 말이야. 선한이란 3개월 뒤에 현물을 인도하고, 당한(當限)은 당월, 중한(中限)은 2개월 후. 현물을 인도토록 한 제도 이지만, 미두장에서는 실재로 현물이 거래되지 않고 쌀 수도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기한 내에 팔면 그것으로 청산 거래는 끝나는 것이었지. 나는 3개월을 꾹 참고 기다렸다 그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예상한대로 벼싹이 들판에 누렇게 변하면서 꽃을 피울 때 쯤 태풍이 불어 닥쳤다 그 말이거든. 논밭은 물에 잠기고 벼는 꽃이 떨어져 대흉작이 될 것은 필연이었고, 미두장의 쌀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두세 배 이상 뛰었었지. 흉작이 쌀값을 올린 주원인 이지만 사실은 일제가 만주 중국 등 식민지 개척을 위해 군량미를 암암리에 비축하고 있어서 수요가 급증하니 미두장세 역시 급등하지 않을 수 없었지. 석 달 전에 한 섬에 10원으로 산 것이 세 곱 반을 뛰어 35원이 되었다, 그 말이야. 한가마 당 25원의 이문이 생기니 1,000석이면 돈이 얼마인가. 몽땅 팔았다 그 말이야. 계산해보면, 본전 1,000원을 빼고 순 이익만 25,000원이 되었지, 겨우 3 개월 만에 25배의 장사를 한 셈이야. 나는 번 돈 을 몽탕 털어 1 키로에 2,000원을 주고 금괴 12개 정도를 사두었던 것이야. 그동안 비밀리에 상해 등지에 있는 독립운동 기관 등에 몇 개정도를 쪼개어 보내고 나머지는 어머니께서 보관하고 있단다. 내 나라가 독립이 되면 유용한 곳에 투자할 계획이야.
모두. (구식이의 말을 듣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구식. 너희들에게도 한 사람당 금괴 반 정도를 나누어 주려고 작정하고 있다.
임용. 행님 정말인 기요.
구식. 내가 거짓말 하는 것 보았느냐. 그런데 미두장 열풍이 서서히 꺼지더니 금광 열풍이 불어 닥친 거야. 앞서 말했지만 당시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이 금 해금조치를 취했으나 2년이 흘러도 일본과 조선의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었지 결국 하마구지 내각은 경제 실정으로 물러나고, 1931년 12얼 13일에 이누가이 쓰요시 내각이 들어서자 금 수출 재금 조치를 단행하여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관리통화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야.
재선. 관리통화제인 재금조치가 결국 금투기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 군요.
구식. 그렇지, 금 본위제도가 폐지되면 우선 태환권이 불태환권으로 바뀌고 그러니 있는 돈 만큼 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돈을 더 찍어 낼 수 있지 않겠나. 결국 정책에 의해 인프레이숀이 된다는 뜻이지. 그래서 수출업체는 채산을 맞출 수 있어나 수입 때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됨으로 손실을 입게 되는 게 뻔하지, 그래서 1930년에 일어난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에 타격을 입은 영국, 미국 등 각 국이 금본위제를 탈피하여 우선 자국의 금 보유량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말이야. 곧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화폐가치를 높이려는 안간힘이지.
재선. 그래서요,
구식. 자국의 금 보유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겠나. 당연히 금 수출을 금지시키고,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금을 정부로 집중시켜야 하고, 그리고 땅 속에 묻혀있는 금을 많이 캐내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지, 이런 일본의 처지에 맞물려있는 우리 조선은 마침내 금 수출 금지와 매매단속, 금 생산 장려 정책이 펼쳐지고 그리고 정부의 금 사들이기가 시작되었지, 그야말로 조선은 일시에 금 투기 열풍에 푹 빠지고 만거야.
재선. 금투기 열풍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났나요.
구식. 우선 금광 개발을 위해 조선의 산야는 금 광맥을 찾는 사람들로 뒤 덥혔지, 금광업자에게는 장려금도 주었지, 또 시중에서는 금의 밀매가 성행한 거야, 작년의 물가 통계를 보면, 일본의 중앙은행, 조선은행 등이 국민들에게 사들이는 금 한 돈쭝의 값은 14원인데, 미국이 25원, 영국이 26원62전 그리고 만주중앙은행이 24원52전으로 사들였단 말이야. 그러니 채란이 말을 들으면, 방물장수가 한 돈에 15원 50전으로 산다 했거든, 방물장수가 은행보다 1원50전을 더 주고 산다는 말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더 비싼 값으로 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아니면 곧 금시세가 폭등할 것을 예상하고 금을 매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분명한 거야.
재선. 그렇군요. 아마 일본정책에 반역하면서 외국으로 금을 밀수출 하려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조선은 1890년 중반 은본위제를 실시하다가 광무5년, 즉 1901년에 세계추세에 따라 금본위제를 공포하였으나 실시되기는 1904년 경 실시되었다. 이 금 본위 제도도 일본의 재정 고문인 메카다 다네다로가 한국의 ‘화폐교환 건’이란 칙령으로 백동화 교환과 더불어 실시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일 합방 전인 1897년 즉 민비가 시해된 2년 후인, 바로 그해가 일본의 명치유신 30년인데 우리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그 해에 일본 정부는 금 본위제를 실시하였다. 금 2푼을 1원으로 정하고 따라서 금 10푼(1돈중)은 5원, 금 2돈을 10원이라고 법으로 정한 후 1917년까지 유지하였다. 그 이후 일본은 호황 경기를 보호할 욕심으로 금 유출을 막는 통제경제를 실시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불황이 계속되자, 1930년 하마구치 내각이 금 수입 및 수출을 자유로이 하는 금본위화폐제도를 단행하였다. 이 또한 경제회복에 실패하자 27대 하마구치 내각은 물러나고, 28대 와카쓰기 에이지로 내각을 거친 후 1931년 12월 13일 29대 총리 이누가이 쓰요시 내각이 들어서자 바로 금수출금지 조치를 다시 단행하고 관리통화 체제로 들어가 2년간 실시되던 금본위제는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구식. 그런 통 큰 모리배는 조선 천지에서 대구에 있는 메가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경성에서는 총독부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불가능하지 않겠나.
재선. 그래서 형님은 용이를 시켜 방물장수의 뒤를 켔구만요.
구식. 당연하지, 벌써 배가 촐촐하구나 저녁을 먹고 이곳에 다시 모이자. (모두 퇴장한다)
무대가 어두워지며, 천사들이 등장하여 합창을 하고 무녀들이 춤을 추고 들어간다.
2장
때. 바로 그날
장소. 창고 회의 실
나오는 사람.
구식, 재선, 국희, 임용, 채란, 소희 등
무대. 한약창고의 다른 방, 불이 켜지자 구식이는 흑판 앞에 서 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책상을 앞에 두고 걸상에 앉아 있다.
구식.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 대동 팀(대동한약상의 이름을 따서 칭한)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전부다 수첩을 꺼내어라.
모두가 긴장한다. 채란이도 재선이도 임용이도 필기할 준비를 했다.
구식이는 미리 계획을 세워 둔 듯, 종이 쪽지를 보며
구식. 우선 재선이는 대구 철도노조 조직과 긴밀한 유대를 계속하고 있겠지.
재선. 돈의 위력은 역시 대단합디다.
구식이는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란 것을 알고 난 후, 그의 신념은 민족보다는 계급적문제에 더 집착하여 갔다. 벌써 5-6개월 전에 재선이와 함께 공산주의 청년 단체의 비밀 조직원으로 가입하였다. 재선이가 이미 활동하고 있는 철도 노조의 간부들을 통하여 핵심 인물과 연을 맺어두었던 것이다.
-- 1930년대에는 민족지향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농민운동운동은 대단히 활발한 양상을 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자들은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전술적인 운동을 펼쳐 각지에 적색농조, 적색노조 등을 조직하여 반일항쟁을 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자, 1935년 이후에는 순수 계급투쟁적인 성격을 다소 완화시키면서 민족주의자들과 공조하며 반제국주의적 통일전선을 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12월 테제의 연장선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아야한다는 내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공산 지하조직은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주축이 된)‘경성콤그룹’이었다. 이 그룹은 이재유와 함께 조선공산당 경성준비그룹에서 활동하던 이관술이 1939년 1월 서울에 잠입하여 4월에 김삼룡, 8월에 감옥에서 출옥한 박헌영, 10월에 김순룡, 김태준등과 만나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위 경성콤그룹을 조직하였다. 콤그룹은 조직부, 기관지부, 기관지출판부, 인민전선부, 노조부, 가두부, 학생부, 일본유학생부를 두었으며, 금속노조책, 섬유노조책, 전기노조책, 출판노조책, 철도노조책 등을 임명하고 지역 조직에 착수하였다.--
이런 차에 구식이는 재선이를 중앙 노조부의 기간 용원으로 200여원의 기부금을 출연하여 가입시켰고, 임용이는 만약을 위해 아무 단체에도 참여시키지 아니하였다.
자신은 역시 국내 학생부 영남지역 조직 간부로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 달 전 쯤 출옥한지 반년밖에 안 되는 박헌영이 지역 조직점검차 대구에 왔을 때 대면하면서 금 500그람을 활동자금으로 헌납하여 깊은 인상을 심어두었다.
구식은 밤 열차로 경성으로 가서 내일 오전에 박헌영과 모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해두었다.
구식. 모래 33열차는 대구에서 군복과 무기를 만주로 수송한다. 군복은 만주주둔 관동군의 전투복이고, 무기는 비밀로 되어 있는데 이는 메가다 일당이 전국에서 수집한 금괴이다. 당연히 정부가 모르는 밀수출로 반역적 범죄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만주에 주둔하는 일군 병참 기지에 도착하면, 그 금괴는 중국 상인에게 팔려 나가도록 이미 치밀한 계획이 짜여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대동 팀이 단독 비밀작전으로 금괴는 추풍령에서 탈취하고, 군복은 수원역 못 미쳐서 폭발시킨다는 작전이다. 알겠나.
모두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임용이는 구식이의 명으로 작은 메가다 일당을 습격하여 몇 놈을 병신으로 만들 때에도 느끼지 못한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채란. 오빠, 그런 엄청난 큰일을 ---,
임용. 채란이는 구식이 행님을 아직도 몰라. 그래서 채란에게는 내가 적격이야--헤--헤---.
구식. 농담은 거만하고, 채란이는 메가다 똘만이가 금을 사러 오면, 돈을 챙긴 후에 이렇게 말하라. “삼촌, 돈이 생겼으니 경성에 나들이 갈까해요” 하면, 아마 그 놈은 틀림없이 자기가 경성을 거쳐 만주로 가는데 같이 갈 용의가 없나 하고 사정할 거야. 니 미모는 마력이 있단 말이야.
채란. 그러면요,
구식. 채란이는 못이기는 척하고 약속을 하라, 그러면 그 놈은 내일모래 33열차 객실의 표를 구입해 두겠다고 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면 손가락을 내어 밀고 걸어라. 너는 맛있는 요리벤도를 만들고, 고급 양주 위스키를 두병 정도 준비하고 수면제를 구입하여 미리 타란 말이야. 구미 정도 갔을 때 술을 주고받는 거야 알겠지.
채란. 오빠 내 실력을 보여줄께요.
회의실 내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권회복이나 민족독립이란 문제는 사치스러운 남의 예기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구식은 어느 공동체나 살아남으려면, 경제문제가 해결되어야하고, 그 본질은 재화의 소유이며, 그 재화는 곧 돈으로 표현 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식은 국권회복의 방안을 놓고 여러 갈래의 주장과 주의로 분열되어 있을 때, 늘 사회라는 큰 지도를 놓고 돈의 행방을 쫒으며 그 돈의 흐름이 개인에서 사회로 다시 사회에서 개인으로 어떻게 넘나드는가에 대하여 탁월한 분석력을 키웠다. 식민지 시대에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체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국광복이란 염원을 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지만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든지, 일본의 침탈을 보고 체험하면서 사회경제적 문제는 궁극적으로 물질과 직결된 돈의 흐름에 있다고 믿었다.
구식. 그러면 작전 계획을 알려주겠다.
작전1, 33열차는 기관실부터 객실이 4개가 연결되고 다음 군복 수송고뻬 6칸이 연결되고, 마지막 한 고뻬를 제일 후미에 연결하도록 조치한다. 군복 고뻬 밑에 폭약을 부착해 둔다. 이는 내가 역장과 은밀히 진행할 것이다.
작전2, 내일모래 대구 발 만주 행 33열차의 운전기관사가 우리사람이 되도록 조치하여 그 열차가 추풍령을 올라갈 때 시속 3키로 정도로 느리게 운행토록 조정해 둔다. 마지막 무기 고뻬의 연결 고리를 풀기 쉽도록 걸어두게 할 것이다..
작전3, 추풍령에서 제일 뒤쪽 고뻬의 연결 고리를 풀고 그 고뻬가 후진하여 추풍령 역의 보조선로에 들어오도록 한 후 수동 철로 이동 수리차로 김천역에 잠시 옮겨두었다가 하행 선 화물차에 연결하여 대구역에 옮긴다. 이 또한 경성콤 조직과 협의 할 것이다..
작전3, 재선이는 하역할 인부를 구하여 대구역 역구내에 진입한 화물차 고빼에 든 금괴 상자를 옮긴다. 그리고 탈취 물품을 이 곳 한약제 창고로 운반하라.
작전4, 임용이는 채란이가 탄 객실에 동승하여 메가다의 똘만이가 술과 수면제에 취하여 골아 떨어 질 때쯤, 아마 수원역 도착 전이 되지 싶다. 잠시 열차 교선 관계로 4-5분간 지연 시킬 때 하차하여 객실과 화물칸의 연결고리를 풀고, 즉시 군복 고뻬에 미리 부착하여 둔 다이나마이트 심지에 불을 붙이고 폭발하면, 수십 여만 불의 군복은 재로 화할 것이다. 채란이는 열차가 무서운 폭발로 진동하자 골아 떨어진 메가다를 깨우고 사색이 된 그에게 아쉽다는 듯 인사를 하고 용이와 함께 수원역 전에 가서 미리 마련해 둔 다쿠시를 타고 대구로 내려온다. 다쿠시 기사는 너희들을 모르기 때문에 택시기사에게 대동으로 갑시다. 라고 말하면, 대구 대동말입니까 하면, 그 차를 타고 내려오라.
채란. 오빠 잘 알겠어요.(오빠가 나를 염려하여 용이까지 수행토록하고 차편까지 빈틈없이 준비해주는 그 마음이 친 동기간 보다 더 깊다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이 때 국희가 책보에 싼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 구식에게 준다.
구식. (책보를 풀고 돈다발이 나오자 한 다발씩 재선이, 용이, 채란에게 준다) 너희들은 지금 대 일본의 실력자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 돈은 적은 돈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에 주는 고마움의 표시다. 각자 1,000원씩이다. 작전이 성공한다고 믿는다. 만약 선공하면, 막대한 황금이 우리 수중에 들어오고, 메가다는 대구에서 추방당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생매장 당할 것이다. 반도삼총사도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불쌍한 사람으로 전락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더욱 유쾌한 것은 총독부가 이 사건을 비밀리에 처리하고 그 뒷조사를 못 하리란 점이다. 본국 정부에 알려지면 우선 총독의 입장이 정적의 공격 타켓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에 어딘지 모르지만 무서운 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불상한 꼴을 우리는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부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금괴에 대한 말은 절대 금하여야 한다. 우리 외 협력 관계자가 물어오면 ‘무기인 것 같다’라고 말하라
창고 안 회의실은 두려움과 기대, 모험을 앞둔 긴박한 분위기가 넘친다.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구식이 같은 어리지만 당찬 지도자를 만난 것에 더 큰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국희가 뒷 쪽 벽 밑에 있는 상자에서 양주를 꺼내오자 채란이는 컵을 각자에게 주면서 술병을 받아 잔들에 술을 채운다.
구식. 구국 대동 팀의 33작전 성공을 위하여 건배---(무두가 건배하고 합창)
국희는 이곳을 지키고, 각종 신문을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노치지 말고 모두 수집하고 비상 연락망을 구성하여 준비해 두라.
수호천사들이 나타나 음악(?)을 합창한다. 막이 내려간다.
3막 1장
때. 열차 습격 3일 후
장소 . 조선 총독실
나오는 사람. 미나미 총독. 정무총감. 부속실장. 감찰과장. 정보과장 요다. 메가다. 헌병대장. 경북도경국장, 김 하네꼬 금차회장 등
무대. 미나미 총독 실 벽 정면에 일장기가 걸려 있고, 그 옆 아래편에 지휘도와 칼집이 벽에 부착되어 있다. 오른 쪽에는 고급 회의 용 의자, 탁자가 놓여 있고, 집무용 책상 앞에 있는 소파가 있다.
막이 열리면 소파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총리 여비서가 등장하자 4-50대의 남녀 두 사람이 일어선다.
여비서. 지금 총독님이 입실하십니다.(두 사람은 출입문 쪽으로 나서서 부동자세로 선다)
두 사람. 각하 안녕하십니까.
총독. 편하게들 않게,-- (두 사람이 소파로 가서 앉자) 요다, 내가 부른 이유를 알겠는가.
요다. (일어서서) 부르신 이유를 잘 알겠습니다. 어그제 일어난 33열차 폭파 사건은 박헌영이 이끄는 경성콩 그룹이 주도한 반역적 항일사건임이 분명합니다. .
총독. 박헌영이라 무슨 증거라도 있나. 그가 출옥한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요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만, 적색 노조인 철도노조는 민족진영과는 달리무력으로 대항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에---
총독. 물적 증거는 없구먼, (침통한 목소리로) 내 말을 듣게나, 한줌의 재로 변한 군복 10만착은 지금 중국의 관동군 사령관 고마쓰바라(小松原)가 나에게 요청하여 만든 제품일세--, 정치적 문제가 있어 관동군 병참책임자와 제품제작지인 대구헌병대장 다께미아, 경북도경국장 오노에게만 비밀리에 수급책임을 지운 기밀 수송 작전이었네--,
-- 미나미 지로 (南次郞)는 1874년에 일본 오이타현에서 출생하여 군인·정치가로 조선 총독을 역임하면서 조선민족문화말살정책을 주도했다.
일본육사와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관동도독부 참모를 거쳐서 1919년 소장이 되었다. 이어 중국파견군사령관, 기병감, 육군참모차장 등을 역임하고 1929년 대장으로 승진해 조선군사령관이 되었고, 1931년 육군대신을 거쳐 1934년 관동군사령관이 되었다. 1936년 2.26사건(일본군인의 반란사건)의 책임을 지고 군에서 제대하고, 그 해 8월 천황의 총애로 제7대 조선총독으로 명을 받아 부임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우선‘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결성하여 한국인에게 일제의 전쟁(중일)에 협력할 것을 강요하였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후에는‘식민지 조선 정책에 내선일체(內鮮一體)’를 표방하여 일본어를 상용토록하고 창씨개명과 지원병.국민징용법를 만들어 수많은 조선인들을 전쟁터와 광산 공장 등에 몰아넣어 죽음을 맞게 했다. 끝내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민족의식의 말살과 황민화를 꾀했고, 모든 행사에 앞서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제창케 했다.
또 그 이전 1932년에 이누가이 쓰요시 내각이 금본위제도를 폐지한 후 일본 정부는 금보유량을 높이기 위해 시중의 금을 매입하였는데, 1937년 5월까지 그 가격을 무려 23차례나 인상하면서 사들였다. 미나미 총독 당시인 1939년 하반기에는 채만식의 소설‘금의 정열’에 의하면, 조선은행의 금 매입가는 1돈쭝에 14원 50전이고 시중 가는 15원 50전을 상회했다. 이를 보더라도 메이지 30년(1899)에 처음 금 1돈쭝이 태환권 5원의 가치로 정해진 것이 불과 30여년을 넘기면서 금 한 돈쭝이 15원으로 올라 무려 3배에 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30년대 후반 들어 금을 시중에서 밀매하는 자가 부지기수여서, 당국에 적발되면 8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정하여 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짐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전쟁물자 수급에 필요한 금 수요가 더욱 절실해지자 마침내 미나미 조선총독부는 1938년 1월4일‘조선총독부령 제2호’를 공고하여 9금 이상을 사용한 금지환, 금비녀 제품 및 금실, 금박, 금가루, 금액(金液) 등의 제조를 일체 통제했고, 8월 20일에는‘금사용전면금지’령을 내리고 금을 정부책정 가격으로 강제로 매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원인은 ‘금재금’조치 이후부터 금 밀매 및 투기시대로 이어졌고, 마침내 식민지 조선에서는 30년대 후반부터 금광개발 및 재련 사업이 정책 사업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금탐광장려금’제도와‘저품위금광석매광장려금’제도를 실행하여 금광개발에 드는 초기 비용을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보조하고, 광산에서 생산한 금광석을 조선의 재련업자에게 팔 경우 광업권자와 제련업자 모두에게 일정한 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폈다. 그래서 일본의 미쓰비시, 노구이, 미쓰이 등 대재벌이 조선의 금광개발에 뛰어들었고, 당연히 조선의 제 산업경기가 활성화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미나미지로는(南次郞) 1936년 8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직 후 경성의 일부 조선인 상류 가정의 부녀자들을 모아 애국금차회(愛國金次會)라는 의용 단체를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금비녀와 금반지 등을 헌납토록 하는 운동을 전개시켰다. 애국금차회는 미나미총리가 설립한 민간 어용기구인‘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협력을 얻어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미나미는 식민지 조선을 대륙 및 동남아 침공의 군수품 조달 및 노동력동원지로 만들기 위한 강압정책으로 종전의‘내선융화’구호를 '내선일체'구호로 전환시켜 조선어교육 폐지 및 일본어 상용(常用)화를 강제하고,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일본.조선은 같은조상)을 내 걸고 일본인의 시조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신위를 가정마다 모셔야한다는‘한민족 혼’말살정책까지 폈다. 한편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양대(兩大) 일간지를 폐간시키는 등 언론탄압은 물론 조선어 출판사까지 전면 폐간시켰다. 1940년까지 반도 지역에 징용,징병으로 동원된 조선의 인력이 260여 만 여명이 되었고, 일본 및 점령지역에 동원된 인력이 72만 명에 이르렀다. 이 무렵 일제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대(對)아시아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슬로건 아래 일본인과 조선의 지식인으로 구성된 녹기연맹을 창설하여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 황민화와 내선일체를 선동하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드디어 일제는 1941년 12월에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발발시켰다. 그 후 1943년 8월 해군특별지원병제, 10월 학도병제를 실시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대량 전쟁에 동원시킴으로써 민족말살정책은 극에 이르렀다.--
요다. 그랬습니까, 각하
총독. 자네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 본관이 3년 전 관동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 고마쓰바라는 내 참모였네. 내가 전역하면서 천황에게 간곡히 추천하여 관동군 사령관에 보임되었지, 그런 그가 나에게 올 겨울 만주벌판에서 고생하는 군솔들을 위해 방한복을 조달해 달라는 음밀한 부탁을 해 왔었네, 그래서 몇몇 재력가들에게 협력을 요청하여 어렵게 군복 십여만 착을 만들었던 거야, 이 귀중한 제품을 제국의 군대가 입어보지도 못하고 연기로 사라져 버렸네. 더구나 총독인 내가 있는 경성의 코앞 수원역에서 말이야, 이런 사고가 노출 될 때 내가 어떤 염치로 천황을 대할 수 있으며, 고마쓰바라 사령관에 대한 내 체면은 어떻게 되겠는가.
요다. 각하, 이 사고는 조선 내의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제 무능의 소치가 분명한 이상 차라리 저에게 자진을 명하여 주십시오.
총독. 나도 지금 자결하여 이 오욕을 잊고 싶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꼭 캐내어야 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야. 그리고 자네도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 질 때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네.
요다. 잘 알겠습니다. 제 책무를 다하고 그 후에 어떤 징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총독. 그런데 김 하나꼬 짱은 금차회를 통해 금 수집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겠지---,. 그리고 오늘부터는 금차회에서 수집하는 금을 은행에 넘기지 말고 총독부 재무과로 수납하게 내가 타일러 국고로 지불토록 하겠네
하나꼬. 각하, 그런데 금이 다른 데로 흘러 들어가는 듯-- 하여, 그렇잖아도 근간에 직접 말씀들이고자 하든 참입니다.
요다. 각하, 본인도 시중에 금을 매집하고 있는 반역자를 알아내었습니다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총독. 정보과장, 그 무슨 희괴한 말을, 감히 내 앞에서--,
요다. 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각하께서 돌보라고 당부하신 대구의 메가다씨라서--,
총독. (이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을 받아) 무엇이라고---,
요다. 그래서---, 정무총감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구 메가다의 부친인
-- 메가타 다네타로는 1853년에 출생하여 1926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일찍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재무성 주세국장을 지냈고, 1904년 러일전쟁 때 공로를 인정받아, 남작이 되어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같은 해 제l차 한일협약에 따라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 고문으로 부임하여 조정의 재정 및 경제정책을 관장하여 한일 합방의 기틀을 닦았다. 1905년 토지조사를 시작하는 한편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새 화폐를 발행하였고, 금융조합을 설치하였다. 본국 외무장관 고무라주타로(小村畳太郞)의‘대한시정강령(對韓施政綱領)’에 따라 조선합방 화에 앞장섰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 귀족원 의원, 추밀원(樞密院) 고문을 지냈다(귀족원은 메이지 헌법의 입법기관인 중의원과 병립된 의회이다. 추밀원은 천황의 자문기관임)---.
미나미 총독은 일찍이 정치가인 메가타 다네타로의 총애를 받았고, 군부에서 요직으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아 왔기 때문에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자 정무총감 등 직계 수하 몇몇에게 대구에 거주하는 메가타2세를 잘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한바가 있었던 것이다.
총독. 아니, 그 놈이---, 몰래 금을 사들인다고, 국가 정책에 반역하다니---,
요다. 그 뿐만 아니고 ‘반도 삼총사’도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입니다.
총독. 하! 갈수록 산 이구만, 반도 삼총사가 누구라 했지,
요다. 부총감 기무라님, 대구 주둔 헌병대령 다께미아, 그리고 경북 도경국장 오노씨입니다.
총독. 역시 그 패들이군,
요다. 각하 우선 군복 수송 장교로부터 송장을 압수하고, 대구역에서의 수송차량 고뻬 배정명세 일지를 압수하여 두었습니다.
총독. 그래서.
요다. 화물칸 6량의 번호를 알아 수원에서 파괴된 화물 고뻬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총독. 무슨 단서가 있던가.
요다. 수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대구역의 배차 내용에는 군복 6량 외에 무기 한량이 추가 되어 총 7 량이었습니다. 그리고 무기수송 차량은 어느 역에서 징발하여 온 고뻬인지 모르지만 고뻬 번호도 없었습니다.
총독. 그 무기 수송 차량은 폭파되지 아니하였나.
요다. 제가 사고 현장에 직접 점검하였습니다만, 파괴된 군복 수송 6량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무기수송차량을 조사하기 위해 고뻬 번호가 없는 차량을 조사해보았더니 대구 대전역에서는 두서너 량이 선로에 방치되어 있어서 무기를 수송한 차량이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차량인지 조차도 오리무중입니다.
총독. 정말 예사 일이 아니구먼. 이 사건은 내가 직접 지휘하여 조사해 보겠다. 조사 요원은 감찰과장과 정무총감 그리고 정보과장 자내를 임명하겠네. 저 쪽 부속실을 조사실로 꾸미게 정무총감과 감찰과장도 호출하게.
요다. 하이, (퇴실) 나가보겠습니다.
총독. 하나꼬쨩은 금 매집에 노력하고 밀거래를 잘 감시하게, 며칠 후 한번 만나도록 연락하지. 그리고 녹기연맹 측과 긴밀히 협조하도록--.
하나꼬. 잘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퇴장)
총독은 실내를 왔다 갔다 한다. 호출 벨을 누른다. 여비서 입실
여비서. 하이, 총독각하.
총독. 관동군 사령관을---,
여비서. (수동 전화기를 돌린다) 모시 모시, 하일라얼 입니까. 사령관님 부탁드림니다. 총독 미나미 각하 실입니다. --- 예 장군님, 각하님을 바꾸겠습니다.
-- 관동군(關東軍)은 일본의 중국침략 첨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만주(滿洲)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부대의 총칭이다. 1906년에 설립된 육군부대인 관동군은 중국 랴오둥반도 주둔하며 대륙침략을 위한 철도 경비 등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관동군은 처음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1905년 러시아와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러시아의 조차지(租借地)인 랴오둥 반도(遼東半島)를 인수하여 관동주(關東州)로 만들고 관동도독부를 설치한 것이 관동군의 시초이다.
1919년 도독부가 폐지되고 그 밑에 있던 육군부가 독립하여 뤼순(旅順)에 일본천황 직속의 관동군사령부를 설치하고 그 아래 요새사령부와 관동헌병대를 두어 중국 침략과 소련을 적국으로 하는 국방방침의 핵심 전위부대가 되었다.
1928년 장쭤린(張作霖)의 폭살사건을 일으키고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만주국의 건설을 주도했고 사령부를 펑톈(奉天)으로 옮겼다. 또 이듬해 신징(新京)으로 옮기고 관동군사령관이 만주 특명전권대사 및 관동장관(關東長官)을 겸하여 군(軍).정(政)의 실권을 장악, 실질적으로 만주를 지배하였다.
관동군의 병력도 계속 증강되어 1933년 10만 명이었던 병력이 1941년에는 70만 명으로 늘어났다. 관동군은 소련과 사이에 장고봉사건(張鼓峰事件:1938), 노몬한사건(Nomonhan 事件:1939) 등 군사충돌이 있었고, 이 시기에 동북지방의 중국과 한국인의 항일무장세력의 압살에도 열중했다.
1943년 제2차세계대전 중 전세가 악화되자 관동군의 주력을 일본 본토 및 남방으로 이동시켜 세력이 약화되었다. 1945년 8월 9일 대일 선전포고를 한 소련군의 참전으로 급속히 붕괴되었으며 8월 19일 관동군 사령관의 무조건 항복으로 없어졌다.--
총독. 고마쓰바라 장군, 날세, ---글쎄 이런 엄청난 일이---, (제가 무리한 청을 들여--) 그 무슨 소리, 사실은 천황께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걱정이네,
(천황에게 보고는 잠깐 보류--) 천황께 상주하지 말라고, 그러나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가 가만히 있겠나, (지금 군은 정치인을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만--, (총리는 제가 군부를 통해 입을 봉하겠습니다), 무엇이라고 군부를 통해 무마한다고--- (제가 현 정권이 표방한 대동아공영권의 실행선봉장이 아닙니까), 고마쓰 군, 자네가 다치면 안 된다 말이야---, (그러나 각하께서---), 내가 대동아 공영권을 위해 조선을 인력과 물자기지로 만드는데 그 혁혁한 책략과 그 업적을 군부도찬탄하고 있다 말이지---알았네, 그러나 ‘장고봉 사건’과 ‘노몬한사건’ 으로 많은 병력의 손실을 입은 자넨데--- 되려 걱정을 안기누만, (아닙니다), 그래 장고봉사건이나 노모한사건은 황국이 북진 정책을 남진정책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의 전략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저를 이해하여 주시니---).
-- 장고봉 사건은 1938년 7~8월에, 조선.만주.소련의 국경 부근에 있는 장고봉에서 일본과 소련 두 나라 군대가 충돌한 사건으로 일본군은 패배가 확실하여지자, 정전 교섭에서 장고봉이 소련에 귀속되는 것을 승인하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노몬한사건 [Nomonhan incident]은 만주와 몽골의 국경지대인 노몬한에서 일어난 관동군과 소련군 간의 대규모 충돌사건으로 1939년 5월 할하강을 건너 온 몽골군을 관동군이 불법월경으로 간주 무력으로 대응하자, 소련이 기계화부대를 투입해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이에 관동군은 만주에 주둔해 있던 항공. 전차 병력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였으나, G.K.주코프 지휘하의 소련군 및 몽골군의 반격으로 사상자가 2만 명에 달하는 참패를 당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극동에서의 전쟁을 피하려고 그 해 9월 정전(停戰)협정이 성립되어 거의 소련의 주장대로 경계선이 그어지고 수개월에 걸친 국경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총독. (계속하여)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는 나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 그래--, 총리는 정당정치주의자이고, 중국과 화평을 그리고 미국과도 선린우호의 정책을 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천황을 업고, 군부 강경노선에 동조하여 조선에서 펼치는 내선일체 정책이나, 창씨개명, 일본어 상용, 지원병제 실시 등 나의 전쟁확대노선에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네. 당연히 이번 33열차 폭파 사건에 대한 책임을 구실로 나를 몰아 부칠 것이네----. 그래 알았어, 일단 사건이 노출되지 않도록 언론과 조선주둔 각 기관에 입을 봉하는 특별 조치를 이미 취해 두었네, 이 늙은이를 잘 부탁하네.
전화를 끊는다.
3막 2장
때 . 앞장 바로 다음날
장소. 총독별방 임시 조사실
나오는 사람. 총독, 정무총감, 헌병대장 다께미아, 총독부 부감 기무라, 경찰총경 오노, 등
무대 . 긴 책상 좌편에 나무로 된 의자가 대여섯 개 놓여 있고, 반대편에 조사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가장자리에 총독의 회전의자와 고급 책상이 있다.
막이 열리면, 기무라, 다께미아, 오노, 그리고 대구 메가다가 초조하게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옆문에서 여비서가 등장한다.
여비서. 총독님과 조사관님들께서 입실하십니다. (모두 일어선다)
모두. 총독각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총독. 오늘 진실을 밝혀주게. 모두 자리에 앉게.(모두 자리에 앉는다)
총감. 정말 유감입니다. (모두 고개를 숙인다)
총독. 너무나 엄청나서 비밀로 진행하고 있으니 그리 알게.
총감. 반도삼총사는 대 일본의 엘리트로서 동경 제일고의 명예와 일본정부의 요로에 중핵으로 있는 동문들을 보더라도 어찌 이런 일을---, 부감은 나와 총독각하의 믿음을 이렇게 배신하다니---, 그리고 이 자리에서 순순히 자백을 하면, 더 이상 추궁이 없이 결말 지울 것이네---,
부감. 이렇게 된 마당에 비급하게 일신을 돌보지 않겠습니다. 우리 3총사는 대구의 메게다와 모의하여 금을 전국적으로 매집하여 중국을 통해 해외로 빼돌려 일확천금을 획득코자 하였습니다.
총감. 무기 수송차량 한 대에 금괴를 실었단 말인가.
부감. 그렇습니다.
총감. 그 금의 양은 얼마나 되는가.
부감. 제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만, 3톤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총감. 메가다씨 정확하게 말해주게.
메가다. 사실은 5톤이었습니다.
총감. 그러면 2톤은 당신의 개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3총사를 속였단 말인가 메가다. 그렇습니다.
총감. 기가 맥히는 군. 3총사는 깃틀이라 이거지--,
정보과장. 그 금괴가 든 고뻬가 지금 증발하고 없다네. 첩보에 의하면 경성콩 일당이 빼돌렸다는데 그 물증을 잡을 방도가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혹시 네 분 중 집작이 되는 일이 있습니까.
메가다. 저희들도 누구의 짓인지 도저히 짐작 못하고 있습니다.
총감. 열차 화물 고뻬가 반도 철도 선로 위에 있을 텐데, 고뻬 차량번호도 기재되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고뻬인지 알 수도 없고, 아니면 그 고뻬를 해체 하였다 고 하더라도 금괴 5톤의 행방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총독. 총감, 금 5톤이면, 돈이 얼마나 되는가.
총감. 정보과장 금 한 돈쭝에 15원 잡고, 1키로가 266돈쭝이니 계산하여 알려주게. 각하 계산이 되면 보고들이겠습니다. 메가다씨 당신의 심복을 33열차에 동승시켰겠지요.
메가다. 예, 4명을
정보과장. 총독님 금괴의 총액은 거금 2천만원 정도입니다.
총감. 메가다씨 군수물자는 검열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무기로 위장하고 다께미야 헌병대장을 이용하였군요. 라이하얼에서는 누가 금괴를 인수하도록 되어 있었나요.
메가다. 중국 대 상인 풍테씨가 돈쭝당 24원으로 인수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 총액은 약 3천2백만 원 정도 됩니다. 선금 천5백만원을 수형으로 받아두었습니다만 사고소식을 알고 찾아온 그분의 심복이 어거제 회수하여 갔습니다.
총감. 이익금만 따져도 천2백만원 정도 되는 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메가다. 총독각하, 그리고 총감님, 이 모든 책임은 저의 물욕이 빚어낸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 아버님의 명예와 천황에게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제 죄과를 죽음으로 사죄하고자 합니다. 모든 죄는 저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3총사님은 아무른 죄가 없습니다. 제가 그들을 현혹시킨 것입니다. 저 세분을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때 품속에서 일장기에 싼 물건을 탁자 위에 내어 놓고 떨리는 손으로 푼다. 단도가 나온다. 모두들 비장한 모습으로 쳐다보나 누구한사람 말리려 들지 않는다) 제 시신은 현해탄에 뿌려 주십시오.(웃옷을 벗고 배에다가 칼을 찌른다) 대일본 반자이, 천황폐하 반자이. 내선일체 반자이---, 제 재산은 모두 국고로 반납합니다. 각하 제 철없는 자식 놈을 돌보아 주십시오. 윽 커커. 윽 (쓰러진다)
어둡게 장내가 부뀐다.
히노마루하지마께 아노도우시--노래가 흐른다.
2장.
때 . 메가다 자결 3-4시 간 후
무대 . 총독 집무실
나오는 사람. 1장과 같음
비장한 모습으로 총독을 중심으로 오른 쪽엔 삼총사 왼 쪽엔 총감, 감찰과장, 정보과장이 앉아 있다.
총독.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네. 나는 3총사를 징벌할 정도로 완벽한 지휘자가 아닐세,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책임을 메가다가 혼자 십자가를 메고 자결하였네.
메가다의 활복을 내가 제지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야. 여기 반도삼총사는 각 분야에서 미래의 일본을 책임질 큰 제목이기 때문에 도저히 회생시킬 수 없었다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지.
모두. 면목이 없습니다.
총독. 지금 세계는 미국, 영국,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자유시장 주의 블록과 독일과 이탤리를 주축으로 하는 침략팽창주의 그리고 소련의 세계 혁명 주의 등으로 3분되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 말일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우리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구미(歐美)의 식민지 지배를 타파할 오직 하나의 국가로 동아시아를 보호할 책임을 져야한다고 믿어 왔었네, 이는 메이지(明治) 이래 우리가 표방한 아시아 주의, 아시아 연대 론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지, 그러나 우리끼리 이야기이네 만, 사실은 우리 일본은 섬나라로 대외에서 식량과 원료 그리고 시장을 확보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처지에서 취한 생존 전략의 한 방편일 뿐이라네.
---일본이 아시아 제민족의 해방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대동아신질서 건설을 주장하면서 만주, 중국, 동남아 침략정책을 노골화하고 정당화했다. 그 경제적 본질은 전시국가독점자본의 경제체제(廣域經濟體制) 부록 화 및 구축이었다. 37년의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전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1938년 11월 3일 일만지(日滿支) 3국의 선린우호(善隣友好),·공동방공(共同防共),·경제제휴를 표방한 ‘동아신질서건설성명’을 발표하였고, 이 성명의 실체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만주, 중국, 남지나 경제 부록 결성이 목적이었다. 그 후 1940년 1월 미·일 통상조약이 깨어지자 일본은 남진정책을 구체화시키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대일금수(對日禁輸)를 강화하고 중국 장제스(蔣介石) 정권에 대한 군사·경제적 원조를 증가시켰다. 특히 1941년 7월 독·소(獨蘇) 개전 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하자, 미국·영국·네덜란드는 대일자산동결과 대일석유수출 금지를 단행하고, 일본과의 전면 대결을 표방했다. 이에 일본은 1940년 7월 정부의‘기본국책강요’를 통해 동아질서는 일만지 블럭 결성을 근간으로 하고 더하여 남양(南洋)을 추가해 황국(皇國)의 자급자족경제를 확립한다는‘대동아공영권’정책을 확정하게 되었다. 일만지를 중·경공업지역으로 하고, 여기에 원료공급지·공업제품의 시장으로서 동남아시아를 결합하는 광역경제권을 구상했던 것이다.
1941년 11월 '자위자존'을 목적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와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국책수행요령’을 결정하고, 점령지의 치안유지, 군사전략 물자의 신속한 확보, 제국일본 군의 현지에서의 물자조달을 규정한‘남방점령지행정실시요령’을 발표했고, 그해 12월 ‘남방경제대책요강’이 결정되었으며 자원을 획득하고 당면한 침략전쟁을 완수한다는‘대동아공영권자급자족체’건설을 제기했다. 결국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태평양전쟁의 궁극적 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이 전쟁을 '서양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동아시아 보위를 위한 자위전쟁'이요. '미국세력으로부터 동아시아 민족을 이탈시키려는 해방전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즉 대동아공영권의 구현이야말로 구미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동아 각 민족의 생존권과 번영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정당화하면서, 한편으로 식민지 혹은 점령지의 민족독립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해갔다. 또한 조선·만주·화베이(華北)·화중(華中)에서 일제에 의해 전개된 노동력의 강제징용이 남방으로까지 확대되고, 남방작전지역에 조선인·중국인을 군부(軍夫)·군속(軍屬)으로 강제 파견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은 점령지와 식민지 민중의 저항운동, 연합군의 총반격에 의해 붕괴되고 말았다.---
모두. 하이, 잘 알겠습니다.
총독. 이런 황국의 국가대사를 실행하기위한 그 개척자로 천황께서 나를 조선 총독으로 하명하셨다 그 말이야.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런 국가 중대정책을 수행하는 나에게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네,
총감. 각하 총독부가 총력을 경주 하여 박헌영 일당을 잡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총독. 총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군, 만약에 그 놈이 박헌영이든 다른 놈이든 우리가 강압수사를 계속한다면, 가만히 있겠나, 이 사실을 내지의 중앙 정치권에 알리면, 어떻게 되겠나, 상상만 해도 아찔하이.
감찰과장. 우선 금괴의 회수가 급선무인데, 수사에 제약을 받아서야 속수무책이 아닌가요.
총독. 그 놈도 금을 반도 안에 감추어 두고 때를 기다릴 것이요. 거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걸세. 그렇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 놈도 입을 봉하고 있을 것이야, 미국을 향한 전쟁이 곧 있을 것이니 우리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그 때가서 분풀이 할 궁리를 해 보세나.
총감.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단한 놈입니다.
총독. 그 놈이 아무리 우리를 비웃더라도 대응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니 제군들도 내 명에 절대 복종하기 바라네. 일본과 여기 모인 우리들 신상을 위해서이네. 반도 삼총사도 지난 일은 잊고 심기일전하게
삼총사. 각하, 정말 감읍합니다. 황국과 각하의 뜻을 받들어 분골쇄신 하겠습니다.
4막 1장
때
사건 5일 후
장소
한약제 창고 사무실
나오는 사람
구식, 국회, 재선, 채란, 임용, 소희, 모친, 국희 아버지 등
무대
3막 1장과 같음
막이 열리자 소파에 구식, 국희가 앉아 있다.
임용이를 필두로 재선, 채란, 소희가 뒤 따라 등장한다.
임용. 행님 각설이 용이가 혁명군을 이끌고 들어옵니다.
국희 일어서서 마중한다.
구식. 재선아, 오! 채란이, 소희야, 너거들 모두 수고 했다.
임용. 행님, 우째 내 이름은 빼묵는 기요.
구식. 각설이 니도 사람 축에 끼더냐.
임용. 행님, 무슨 거른 섭한 말을---. 그러니 채란이가 나를 얏 보지요.
채란. 용이 오빠! 무슨 그런 섭한 말을--. 오빠는 내 믿음직한 보디가드인데요,
33열차 객실을 다 훑어보아도 오빠만한 남자가 없던걸요, 이번에 감복했어요.
임용. 행님, 이런 사건 한번만 더 벌립시더, 그러면 채란이는 내 품에---헤헤헤 채란. 용이 오빠! 이미 내 마음의 남자는 오빠로 낙찰 되었어요. 거런 위험한 일을 또 하자 니요.
재선. 벌써 둘이 그런 사이가 됐나.
구식.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
소희. 국희 언니! 이제 마음 푹 놓아도 되겠네요.
구식. 소희는 못하는 말이 없구먼.
소희. 사실, 채란 언니는 만만찮은 국희언니의 라이벌이었거든요.
이 때, 전화벨이 울린다. 국희가 받는다.
국희. 삼촌이세요. 예, 메가다가 자결했다고요. 오빠를 바꾸겠습니다.
구식. 삼촌! 삼촌에게 혹시 불똥이 떨어질까 걱정이었습니다. 예, 메가다가 죽었으니 이젠 숨을 좀 놓아도 되겠습니다. 고등계 고주임요, 삼촌, 고주임은 메가다가 없으면, 끈 떨어진 빤스입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또, 왜놈들이 이 사건을 절대 확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놀란다.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전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승리감에 도취된다.
박수를 치며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춘다.
또 전화벨이 울린다. 구식이가 받는다.
구식. 어머니에요. 예, 고주임이 찾아 왔다고요. 우리 모자를 괴롭힌 것 용서해달라고 빌더라고요. 그래, 어머님은 --, 좋게 타 일렀다고요. 잘했습니다. 어머님 다구시 타고 이곳으로 오세요. 끊습니다.
임용. 행님 제가 각설이 타령을 뽑아도 될까요.
모두. 좋아요, 오늘 같이 기쁜 날에
임용. 어 시굴시굴 들어 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국희는 눈물을 훔치며 소희와 함께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각설이 타령이 끝나자
구식. 나도 한곡조 뽑아도 되겠나
모두. 좋고 말고요.
구식.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음악 합창 팀이 나오고, 추꾼도 나 온다.
국희 아버지 민규호, 구식이 어머니 홍화씨가 들어오고, 대구 역장도 들어오고 국회 소희도 들어온다.
모두. 반갑습니다.
구식. 격려차 오셨습니까.
세 사람. 구식 군 자네야 말로 식민지 조선에서 길이 빛날 소영웅일세.
구식. 이제 제 가족이 다 모였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밝혀 둘 일이 있습니다. 제가 경성 콩 그룹과의 관계는 지금부터 끊겠습니다. 처음은 그들이 내세우는 공산주의 이념에 공감 하였으나,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성 상실자들 이라는 것을 박헌영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원래 저는 돈이야 말로 제 삶의 목적을 위한 제일의 수단이라 믿고 살아 온 사람이 아닙니까. 제 길은 딴 곳에 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님과 민선생님 그리고 역장님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일정한 때가 오면, 제가 은익해둔 금괴를 독립운동 자금에 보태든지 아니면 공익을 위해 쓰겠습니다. 대동 팀 여러분 어떻세요.
모두. 찬성이요
모친. 과연 내 아들이다. 내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민선생님! 국희를 제 며느리로 주시겠어요. 둘이는 이미 약속이 된 모양인데---.
민규호. 구식이를 사위로 얻는 것은 오히려 제가 바라던 소망입니다. 소 영웅을 사위로 맡게 되다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