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댄스 포에버
이 선 재
지금은 금년에 세 번째 등록한 라인댄스 수업 첫 시간이다.
플라자 홀에는 60대에서 80대에 걸친 사십 명이 좀 넘는 여자회원들이 환한 얼굴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나란히 서있다. 다채롭고 다양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옷차림에 댄스화를 신은 모습이 멋스럽고 당당하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이상적인 신체비례를 갖고 태어난 체형에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 했는지 군살이 거의 없고 자세가 반듯하다. 그렇지 못한 나는 오늘도 그들이 부럽다.
그때 세련된 무용복에 패션 댄스화를 신은 선생님이 발랄하고 활기차게 우리를 맞으신다. 모두들 “라인댄스 포에버(forever)!” 라고 환호하며 박수로 화답한다. 라인댄스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관계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는 상생의 힘으로 공감대가 이뤄진 홀 안은 충만한 기쁨과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던 분들의 내공이 응축되어 승화된 여유와 사랑도 녹아있다.
65세에 정년퇴직 한 후 갑자기 편안해진 생활 탓인지 여기 저기 탈이 나기 시작했고 챙겨먹어야 할 약봉지가 늘어났다. 강단에서 물러 난 후 그동안 못 누렸던 다방면의 친구들과 어울려 분주하게 지냈다. 그러나 외출했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느긋한 여가에 따라오는 외로움과 무력감, 때로는 사회로부터의 소외감과 위축감이 몰려오곤 했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건강을 위한 운동은 해 본적이 없었다. 생활습관 개선과 태도의 변화를 위해 아파트 구내 헬스장에 3개월 회원 등록하였으나 이런 저런 핑계로 보름 정도 이용했을까? 그러던 중 친구 따라 73세 늦깍이로 강남시니어 플라자 에서 라인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안에 가무(歌舞)를 좋아하는 ‘끼’가 숨어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으로 보나 외양으로 보아 춤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내가 라인댄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생각할수록 신통하고 대견하다. 처음엔 다리힘이나 길러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라인댄스를 요즘은 횟수를 늘려 일주일에 세 번씩 하고 있다. 라인댄스는 박자에 맞춰 스텝 위주로 동작이 이루어지는데 파트너 없이 출수 있고 많은 사람이 줄을 맞추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동작을 하는 비교적 단순한 춤이다.
처음 이 반에 들어 왔을 때는 홀 안을 빙빙 돌면서 춤추는 분들을 보고 감탄을 넘어 경외감이 들었다. 라인 댄스의 기본 동작을 몰라 허둥대다가 주변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슬그머니 나와서 앉아 있곤 했었다. 머리로는 될듯한데 몸이 안따라 오니 재미도 없고 주눅이 들곤 했다. 포기하려다가 내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에 다시 용기를 냈다. 시간이 힘이고 반복적인 연습만이 대가(大家)를 만든다고 했던가. 제자리 동작, 발로하는 여려 종류의 스텝과 턴 동작을 익히면서 차츰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아직도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내 나름대로 해석해 움직일뿐 라인댄스의 테크닉 이나 전문적인 지식은 없다.
내게 딸 뻘 밖에 안되는 선생님은 스트레칭으로 준비운동을 한 후, 전에 배웠던 춤들을 같이 즐긴 후 새로운 춤을 배우자고 하신다. 넘쳐나는 흥과 끼로 가슴뛰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줄기찬 에너지와 신명을 불어 넣어 주신다. 이미 익혔던 춤인대도 선생님이 시범해 보이실 때 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드디어 음악이 흐르고 우리들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선생님은 우리와 호흡을 맞춰 가면서 춤을 가르치신다. 라인댄스는 줄, 박자, 스텝, 각도와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음악과 춤의 박자와 스텝을 정확하게 일치시키고 순서대로 속도를 조절하며 움직이라고도 하신다. 때로는 박자를 잘게 쪼개거나 늘리는 기교로 춤의 격조를 끌어 올리라고 하신다. 춤의 각도를 바꾸거나 회전 할 때에는 각도에 따라 몸을 정확하게 같이 움직이고 시선은 아래에 두지 말고 벽 한 곳에 머물게 하고 춤을 추라고 하신다.
새로운 춤을 가르칠 때 선생님은 무대 위에서 춤 동작 하나하나를 설명하신다. 뒤 사람들을 위해서는 뒤에서, 또 양 옆으로 옮겨 다니며 동작 설명을 하며 춤으로 보여 주신다. 열심히 따라 하는 우리들을 보고 잘 했다고 칭찬하시면 좋아라하며 웃고 틀렸다고 뭐라 하셔도 우린 그냥 웃어넘긴다. 꼭 말 잘 듣는 유치원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춤곡은 팝 송,샹송, 칸초네, 탱고 등 모든 음악의 장르가 총망라되는데 그 중 리듬이 분명한 곡이 라인댄스에 수용된다.
대체로 춤은 음악과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곡(曲)이 춤 동작에 비해서 길거나 느려져 박자가 남을 때에는 스텝이나 스윙, 턴 등의 동작과 박자를 조절하여 음악과 춤을 연결시키는 고리역할인 태그(tag)를 집어넣는다. 또 음악이 흐르다가 갑자기 처음으로 되돌아 갈 때나 다른 곡이 삽입될 경우 박자나 리듬에 따라 처음 동작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리스타트(restart)를 한다. 그러한 음악과 춤의 조화와 균형을 잡는 여러 가지 기예(技藝)들이 춤의 묘미와 완성도를 높여 준다. 음악을 이해하고 느끼면서 무아지경에서 그 감동을 온 몸으로 갈구하듯 표현해 내는 고난도의 우아한 춤사위야 말로 아름다운 행위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라이댄스는 여럿이 함께 모여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온몸을 움직이며 신 나게 즐기면서 건강을 지켜주는 생활체육이다. 노년층에게는 라인댄스가 치매예방을 위한 정신건강에 좋은 생활체육이기도 하다.
행복했던 젊은 날 즐겨 들었던 음악에 춤이 실리면 내 안에 젊고 행복했던 시절의 내가 들어와 춤을 춘다. 부드러우면서 서정적인 샹송이 흐르면 춤은 날아다니는 시(詩)가 되어 가슴 설레며 얼굴 붉히는 애 띤 소녀가 되어 미끄러지듯 홀 안을 빙빙 돈다. 칸초네의 자유로움과 문학적인 향취는 사랑과 이상을 동경하는 20대의 향기로운 내가 되어 꿈속을 헤매기도 한다. 마음속의 파트너와 감미롭고 경쾌한 왈츠를 추면서 황홀해 하고, 때론 육감적이고 우수에 젖은 몸짓으로 예쁨을 뽐내며 탱고를 추는 30·40대의 성숙한 내가 곱디고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수업이 끝나 마무리 운동을 할 때에야 나는 여든 살의 할매로 돌아 왔다. 빠른 움직임으로 숨도 차고 땀도 났다. 춤 춘 즐거움만큼 세포가 새로 생성 되는 것 같은 생명력을 느낀다. 오늘 한 시간 동안 배꼽이동을 했으니 집과의 왕복거리를 더하면 만보(萬步)이상의 운동 효과는 거두었으리라. 홀을 나오는 친구들도 아침에 만났을 때 보다 더 생기 있고 총기 있어 보인다. 동작에 맞추어 순서대로 움직이고 회전방향까지 외워가며 춤추느라 뇌의 활동량이 늘어 인지 능력이 향상되었겠지, 저절로 치매예방도 되었겠지, 또 많이 뛰었으니 심폐기능도 증진 되었겠지 하며 스스로 만족 해 한다.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아 지고 즐겁고 행복해 지는 것은 엔도르핀 이라는 호르몬 분비 관계라는 설이 있고 혈중‘엔드 칸나비노이드’라는 기쁨과 쾌감 물질의 분비가 상승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더구나 춤을 좋아 하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 같이 먹는 점심이 꿀맛이라 소화걱정도 없다. 인생 희로애락의 이력이 찬란한 친구들과의 폭넓은 입담으로 우울하거나 외로울 틈도 없다. 여기서 만나는 친구들이 출가해 가정을 이룬 자식들보다 더 자주 만나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것 뿐 이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면 내안에 행복했던 지난날의 나를 만나는 기쁨도 있다.
요즘은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하다. 성인병의 만성질환수치가 많이 호전되어 건강상태도 안정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게 바로 내 생활에 날개를 달라 준 라인댄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후반에 활력을 안겨 준 라인댄스가 나에겐 보약이고 건강과 행복의 수호신이다. 팔순에도 펄펄 날아다니는 나의 장수비결이다.
라인댄스여 영원 하라, 라인댄스 포에버(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