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致不疑知快活 배워서 의심이 없으면 쾌활함을 느끼니,
누구나 청년의 꿈은 학문을 배워서 세상을 경륜할 의지를 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오히려 ‘안회’의 가난함이 더욱 달가워지는 때가 온다. 세파에 지쳐서 탄핵도 당하고, 귀양도 가도, 몰락하기도 한다. 부귀영화는 경쟁 속의 다툼이니 손대기 어렵다. (하수들의 다툼이다) 숲에 들거나 물가에 드는 것을 막는 자 없으니, 모두 편히 살만하도다. 산에서 나물 캐고 물가에 낚시하여 그런대로 배를 채울 만하다. 달을 보고 노래하고 바람을 쐬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내 학문이 배워서 의심이 없으면 쾌활함을 느끼니, 헛되이 백 년 인생 사는 것을 면했도다.
조선 중기 연산~명종조의 대학자 문강공 화담 서경덕 선생의 ‘독서’라는 시를 의역했다. 이런 대학자가 백 년 인생 헛되이 삶을 가르침으로써 면했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말씀이다. 한국 남자 평균 수명이 80세로 늘었다. 그런데 우리 형님은 75세로 걸어서 병원에 가셨다 5일 반나절 만에 돌아가셨다. 도저히 발달한 현대의학으로 봐서 이해가 안 된다. 사인은 급성 폐렴이다. 어제까지 건장하시던 분이 오늘 산소마스크를 쓰시고, 임종을 맞으라는 통보에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받아서 수레를 밀면서, 산자의 공간 병원 지하층에서 좁은 공동구 미로 같은 통로에서 죽은자의 공간, 장례식장으로 조카와 같이 수레를 밀고 가니, 슬픔보다 화가 치민다. 도대체 현대의학을 믿어야 하는가? 이 배부른 안하무인의 의사들이 지금, 의사 정원을 가지고 노조보다 더 지독한 이익단체의 정치투쟁을 하고 있으니 이 의사의 본분을 잊은 덜떨어진 의사들을 단단히 쪼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형제, 우리 세대는 바로 위 형과 바로 밑의 동생과 애증의 세월이 가장 길고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형과 나는 세 살 터울로 선친이 위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잃고, (띠동갑 누이와 다섯 살 터울 누이를 두고) 얻은 첫째로,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은 참으로 비교 대상이 없는 금쪽이다. 할머니는 칠십 리 벽촌의 절, 문의 ‘월리사’ 불공을 초하루 보름으로 지극정성으로 올려서 얻은 손자들이라, 같은 손주라도 사촌 여동생들과 외손자는 조금 온도 차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친, 외손자 모두에게 당신의 언행으로 모범을 늘 보이시며 신독하시었다. 항상 가르침을, 사서삼경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시었고, 세상의 진부한 이야기는 삼가셨다. 우리가 알아듣고 이해할 때까지 같은 온화한 음성으로 천천히 반복 교육하셨지만, 화를 내신 적이 없었다. 밑의 (셋째) 동생이 태어나자, 젖을 떼면서 간식으로 인절미를 벽장에 올려 두면 형과 나의 몫이 없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군가! 안 주면, 우리가 훔쳐서 먹는 도전을 한다. 베개를 쌓아 놓고 높이가 안 닿으면, 내가 엎드리고 형이 내 목과 허리를 밟고 올라가 기어코 꺼내 먹었다. 동생은 겨우 걸음을 걷는 데 궁금한 것이 많았다. ‘왕골 꽝’에서 청개구리 작은 새끼인지 작은 종인지를 잡아 달라고 조르고, 손을 오므려 넣어 아끼다 귀에 넣어 보관하거나 콧속에 넣어 맑은 콧물을 먹인다고 했다. 여름이 가고 도토리가 열리면 나는 도토리 따먹기 놀이에 바쁜데, 동생이 가묘, 뒷산에서 풍뎅이를 잡아 와 큰아이들이 다리를 떼고 목을 비틀어 흙 위에 놓고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면 날갯짓하는데, 이것이 신기해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뒤뚱거리면서 가묘 뒤 참나무에서 풍뎅이를 한두 마리 붙잡아와 뱅뱅 돌게 해달라고 내게 조르곤 했다.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자, 같은 학교 삼 학년인 형에 무슨 운동부가 좋은가? 물으니, 유도나 검도가 좋아 보이는 데, 형 친구가 검도부장이니 검도를 해보란다. 그래서 취미로 검도를 시작했다. 내가 삼 학년이 되자 동생이 다른 신생 학교 1학년인데, 그 학교는 검도부가 없어 우리 학교 상무관 검도부에 와서 수련했다. 동생은 지금도 운동을 계속해서 사회인 검도 국가대표로 일본에 자주 대회에 나간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일본을 여행 사진이 오른다. 다음은 유럽 일주를 45일 4명이 야영하며 한다고 한다. 아무튼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라.
우리 종산의 선대 묘지는 할아버지께서 추석과 설에 반듯이 성묘를 끝내야 자유시간을 주시기 때문에 늘, 꼬마 때부터 내가 돗자리를 들고 형과 앞서고 할아버지가 산세를 요령 있게 찾아서, 산소마다 내력과 역사와 얽힌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성묘를 마치고 인근의 다른 묘소까지 누구의 묘소라고 자상하게 설명하셨다. 몇 대조, 비위는 어느 성씨 할머니라, 이게 그냥 건성으로 몇 년을 버티다 보니, 나 같은 돌대가리도 반복 교육의 위대함인지 달달 외워대기 시작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흐뭇해하시면서 우리 손자 명석하다고 자부심을 품는 모습이다. 퇴직하고 건강을 위해 남산 길을 걷자니 고향 우리 선산을 걷는 것이 낫고, 마침 아들 혼인과 전세금 마련으로 은행 빚이 늘었고, 이자율이 높아서 힘도 드는데, 퇴직 후라 세가 한 곳에서 연체가 되면, 힘이 들었다. 시골로 내려가 전세금으로 은행 빚을 청산하고, 선산의 묘지도 선친이 돌아가신 뒤, 관리가 안 돼, 엉망인 것은 말끔하게 뿌리를 뽑고, 한해 두 번 벌초와 봄에 낙엽을 갈퀴로 긁으니, 잔디가 잘 살아났다. 그러자 이듬해부터 작은 떠, 밭 등이 팔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취업이 되어 김포로 3년 출근을 하니, 전세금을 되돌려주고도 여윳돈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귀경, 내포 직장에 출근하는데, 종산인 백제 고분 지구가 시청에 수용되었다. 종회를 열어 유산 상속과 미래세대들을 위한 재투자를 협상하는 데 아주 힘이 들었다. 요즘 같은 때 무슨 미래세대와 선산 마련인가? 그냥 나눠서 갖자는 의견을 설득하여, 40%는 재투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데 형님이 크게 노력했다. 선산을 새로 장만하는 데도 큰 노력이 필요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것은 힘이 든다. 묘지공원을 조성하고 선산에 흩어진 묘소를 이장하여 화장하고, 다시 모시고 합동 봉분제를 지내고, 공원에 설치될 석물을 만들기 위한 석재공장의 견적서를 받고, 귀가하셨던 형님이 그 이튿날 몸살기가 있다고 병원에 걸어가셨다 돌아가신 것이다. 젊은 시절의 일하던 정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 노력하시다 한계를 모르신 것이다.
지난 3월 말에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도 4월 초부터 현장이 끝이 났다. 우리 형제는 내가 취직하는 동안과 코로나 기간 때문에 십여 년 가는 형제부부 휴가를 못 가다가, 이번 4월 중순에 일본으로 1주일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형님을 잃었으니 다른 친구네를 초청해서 떠나기로 했다. 4월 첫 주는 보수교육을 받았다. 우리나라 감리제도는 성수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를 시공 과정의 감리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생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2021년 해체 공사 과정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동네 (조폭 조직) 업체가 운영하는 회사가 마구 때려 부수다, 철거할 건물이 인근 버스 정류장의 버스를 덮쳐서 9명이 죽고 10명이 중상을 입은 광주 ‘교동 철거아파트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광주 신축 아파트 무량판 구조 붕괴 사고, 인천 검단 주차장 무량판 구조 붕괴 사고로 철거를 강화하는 ‘철거감리 제도’가 생겼다. 이 교육을 받고 보니 나이 칠십이 넘은 마누라 옥바라지 시키기 십상인 직업이 남편의 ‘철거감리인’임을 알았다. 철거 과정을 매일 철거 전, 중, 후 사진을 찍고 ‘중요확인점’은 동영상을 촬영하여야 한다. 모든 책임이 옛날 시공회사 기사가 하던 일을 감리자도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이면 체력이 감당하겠지만 현실성이 취약하다. 감리자는 생활형 감리자와 여유형 감리자가 있다. 아직 필혼이 안 된 생활형은 생활비 벌려는 목적이 크지만, 여유형은 벌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지식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할 의도가 큰 데, 사망재해 1건이 발생하면 감리가 징역형 1년 이상을 받은 법 제도하에서는 취업할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 했다.
아마 해체감리자를 현재 급여 테이블에서 2~3배 연봉을 올려주기는 현실성이 감리회사가 어려울 것이고, 감리자는 법적으로 징역 1년 이상을 감옥살이하기 어려울 것이니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모든 것이 입법부의 포풀리즘 행정이 문제의 근원이다. 발의자 국회의원은 주민의 표를 얻어, 한 번 더 국회의원을 하는 것이 꿈이고, 공천을 받기위해서는 권력자인 당대표에 맹목적 충성이 우선인 것이지, 나라의 발전에 미국, 중국, 일본, 북한 중 어느 나라와 유대가 중요한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국가 경쟁력 확보나, 세계 정세와 국익을 위해 나아갈 길은 그들은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4.11총선에서 야당의 완승으로 이런 ‘ 대중영합주의 입법 독재’가 4년을 더 가야 하니 문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현재 230여 명, 이상이 죽었는데 현재 사업자가 구속된 것은 1건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냥 힘없는 동내 중소기업의 제빵업자, 요식업자, 가스업자, 장비업자, 불이나, 프레스나, 선반을 다루는 업자가 사망사고를 내면 그냥 사업장 폐쇄하고 망하는 것이 현재의 중대 재해방지법이다. 기업경제 발전이 국회의원 표 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근로자가 실업자가 되면 표가 갈까? 그건 다음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모양이다. 큰 업체는 이미 전과가 있는 사람의 재취업 기회가 열려서 그들을 대신 처벌 받는 ‘바지 대표’로 만들어 사외이사로 취직을 시키고 있단다.
머리가 복잡하다. 이 봄날, ‘한국서예전람회’ 전시회와 지방 초대작가전, 미협 도지부 초대작가전 등에 참여할 작품을 열흘,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옛날의 체력이 아니다. 이제는 서서, 쓰는 글씨는 다리가 받치지를 못해 하루 3시간도 못 하고, 의자에 앉아서 쓰면 하루 8시간을 버틴다. 날짜가 긴박해 지난 금요일 종일, 작품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얼굴이 맥이 다 빠졌다고 마고가 잔소리다. 아닌 게 아니라 요란한 재채기와 함께 몸살이 도졌다. 콧물이 쫙 흐른다. 그런데 내일 종친회의 석 공사 계약서에 첨부할 시공에 관한 사항과 하자에 관한 사항의 합의서를 작성해야만, 아침 7시 반 차로 갈 수 있으니 피곤한 눈을 뜨게 뜨고 간신이 타자를 마치고 USB에 담는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6시 반에 집을 나선다. 이제야 이 봄에 형님을 잃고 제정신을 차리고, 그간의 감정을 글로 남긴다. 종친회 일은 내가 할 일인데 건설을 모르는 형님이 약아빠진 업자 들을 골라내지 못하고, 말려들어 고생만 하신 것 같아 더욱 애처롭다.
형님이시여! 부디 세상만사는 산자의 몫이니, 잊고 훨훨 떠나가십시오. “아! 한 인생, 참으로 그런대로 괜찮은 가문에서 훌륭하신 조상과 조부모, 부모님 덕에 고생 모르고, 배곯지 않고, 12칸 기와집에서 제 공부방 놓고 커서, 나름 잘 살았고 재미있고 추억도 많았지요, 형이 壽를 팔십을 못 넘긴 것을 빼면, 모든 삶이 아름답고 보람 있었다고, 껄껄 웃으며 떠나시면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보살펴 주소서! 그리고 동생 부부들은 다음에 저승에서 만납시다.”
2024.04.14.
세월의 흐름에 형님을 잃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독서 못 해 수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