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칼럼으로 썼던 것인데 인터넷 검색해서 올려 드립니다.
먼저 종교적(서양종교와 불교)인 문제를 짚었습니다.
만여개의 댓글이 올라 치열한 토론이 되었던 글이기도 합니다.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다."
1~3편까지 읽어 보시면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자료로서 밝혔는데도 개신교를 믿는 신도들은 허구라며,
조그만 일을 과대포장해 예수를 죽이려는 행위로 몰아 부치기도 했고 죽인다고 협박 등을 해왔지요.
신을 믿어야지 왜 종교를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문광부에 자료를 요청해 입수한 결과 우리나라는 기독교계가 하나도 없고 개신교계만 있다는 점도 밝힙니다.
기독교 신자(목회자)가 아닌 개신교 신자(목회자)라고 불러야 옳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천인공노할 초창기 선교사들과 이 땅의 기회주의적인 목회자들이 우리 민족이 믿어 온 하나님, 하느님을 도용 내지 차용해 버려 번역한 것입니다.
위선의 가면자들입니다.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아닌 ‘태초에 기독신(야훼신, 여호아신...)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옳은 것입니다.
'무디게 속고 또 속는 바보나라 대한민국' | |||||||||||||||||||||||||||||||||||||||||||||||||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많은 새싹을 냄과 같이, 내가 암살되어 나와 같은 애국자들을 많이 낼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겠다." (30여 년간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의 여정을 끝내고 환국한 백범이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제보 받을 때마다 남겼던 유언이다.) “엄밀히 말하면 8·15는 민족이 해방된 날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날이다. 일제를 주인으로 떠받들던 친일파 주구들이 제 주인을 벗어나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선 날이다.”(독립투사 조문기 선생이 쓴 <슬픈조국의 노래> 중에서)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고 일본에 의한 대한국의 강제합병 36년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는 한마디로 갈갈이 찢겨지고 역사는 난도질을 넘어 왜곡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남을 배려하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민족적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은 없어지고 말았다. ‘민족과 조국이 밥 먹여 주냐? 무궁화 쳐다보지마, 눈 병 걸린데! 나만 잘 살고 보자!’는 경제적 가치로 변질, 음모와 배신을 밥 먹 듯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패망하여 물러갔지만 일본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일반민족행위자들(이하일제강점기때 일제에 충성하고 야합해 민족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친일파’로 명명함)은 '구친일신숭미사대주의자(舊親日新崇米事大主義者)'로 변신,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김구 선생 등 민족주의자들을 국수주의자 또는 용공으로 몰아 멸시와 함께 제거하고 말았다. 이제 21세기에서 이미 일본은 우리 가까이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우익을 앞세워 세(勢)를 불리며 우리에게 침탈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던지고 있다. 그들 일본인의 치밀함은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먼 나라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세계화를 주창하며 자칭 진보라 일컫는 사대주의자들이 개혁을 주창하며 나오고 있고, 자칭 보수라 일컫는 구친일신숭미(舊親日新崇米) 정상배들이 탈을 쓰고 3.1절과 8.15절과 국경일에 성조기(미국국기)와 일장기(일본국기)를 흔들어 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치밀함,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디게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친일 흉내를 낸, 가수 조영남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였던 김완섭이나 나아가 신친일파라고 명명된 이들에게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단재신채호평전 저자) 선생이 “ 일본 지식인의 멘탈리티는 여전히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 힘이 있을 때는 통째로 가지려고 하고 있고, 힘이 약할 때는 분열 시켜서 유지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일본의 치밀함을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늘이라도 TV나 잡지에 나오는 광고를 유심히 살펴보시라. 우리나라가 국제화에 발맞춰 일본을 가까운 나라로 지내기 위해 잘 해보자고 김대중 정권시 일본에 대한 문화개방과 경제개방을 했다. 광고 속에 나오는 모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본 사람이 너무 많다. 나아가 아이들이 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봐도 일본의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짱구’을 들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아무 거부감 없이 웃고 그 만화물 속에 들어있는 일본문화 또한 당연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성인들은 어떠한가. 꽃미남, 꽃미녀 CF모델이 찍은 광고를 그저 황홀한 듯 바라보지만, 그 모델들이 누구인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모르고 있으며,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을 듣고 전혀 거부반응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일본에서 역사왜곡을 위해 흘러들어온 비공식 자금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명박 정부는 과연 공식적으로 일본자금이라고 들어오는 자금만 일본자금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수 없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의 가방 속에는 만화책과 잡지, MP3속 음악을 들으며 일본이 원하는 대로 그들 문화에 익숙해져 결국은 경제라는 전략적 무기 앞에 그들이 원하는 침략적 근성에는 하나에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할까.
이명박 대통령, 식민시대 '조선총독부 마크’가 새겨진 연탁에 올라 기자회견했다
조 관장은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예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의 기자회견장 연단에 그 마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건 조선총독부 마크입니다. 본래 이 마크는 또 누구의 것인지 아십니까? 마크의 유래가 더 중요합니다. 이 마크는 바로 400여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온 조선을 초토화하고 수많은 인명 살상과 문화재 약탈을 하고 심지어는 코까지 베어다가 소금에 절여 가져갔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입니다.” “1910년 8월29일(국치일) 밤 조선 병탄의 주인공들이 벌인 자축연에서 당시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총독이 축배를 들며 즉흥시를 읊었어요. ‘가토와 고니시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 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이에 곁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 받아 읊었습니다. ‘도요토미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가토와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의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다. 마침내 도요토미의 꿈을 300년 만에 자신들이 이뤘다는 감개를 읊은 시다. 참으로 일본의 치밀하고 용이주도함에서는 무서우리만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일제군가가 일부종교에 의해 찬송가로 불리워져 일제시대 저지른 민족압살정책에 동조했던 일부 지식층과 종교 목회자들의 반민족행위는 어떠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앞으로 필자가 ‘민족적인 구심점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세세히 밝힐 예정이다. 한겨레신문은, 전국의 교회에서 아직도 일제군가나 창가의 곡을 그대로 따온 찬송가와 복음성가들을 널리 부르고 있다고 보도해 커더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신문은, 그중에는 일제가 경복궁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고종을 연금한 뒤 청(중국)의 북양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조선 식민지배의 토대를 굳힌 청일전쟁 찬양 군가도 포함돼 있다. 1929년에 태어나 신의주와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조형균(78·사진) 계성종이 역사박물관 관장은 “해방 전엔 그렇다 치고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러하니 도대체 우리가 해방된 민족인지 통탄스러울 때가 있다”고 탄식했다고 전했다.
조 관장은 “일제 때 경찰을 했던 사람이 해방(광복)되자 속죄하는 심정으로 교회의 부흥강사가 됐다면서 퍼뜨린 노래 중에 〈부럽지 않네〉라는 성가가 있다”며 “거기에 붙인 곡조는 청일전쟁 때의 일본 해군 노래”라고 말했다. 79년 11월30일에 초판이 나온 뒤 81년까지 확인된 것만으로 20판을 찍어낸 부흥회용 〈복음성가〉(영산출판사) 제5장, 그리고 97년 3월20일 발행된 〈새로운 복음성가〉(새로운 출판사) 제40장에 실린 이 노래는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로 시작하는데 모두 4절까지 있고 마지막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는 후렴구가 붙어 있다. 조 관장은 이 노래에 붙은 곡은 1895년 사사키 노부쓰나라는 사람이 작사하고 오쿠 요시이사라는 사람이 작곡한 〈용감한 수병〉에서 따온 노래로, 청일전쟁 승리를 찬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본의 국민가요였다고 했다. 그 노래 8절에 나오는 “아직 그대롭니까 적함 정원(定遠)은?/ 그 말 한 마디는 짧을지라도/ 황국을 생각하는 온 국민의/ 마음에 길이길이 쓰여지리라”라는 가사는 중상을 당하고도 부함장을 찾아 적함이 격침됐는지를 묻고 바로 숨졌다는 어느 3등 수병을 영웅화한 내용이다. 노동은 중앙대 창작음악과 교수는 문제의 노래가 청일전쟁 뒤 ‘데이치쿠 주식회사’가 소방청음악대와 합창대의 노래로 녹음한 것이며, 1910년 대한제국 학부가 발행한 〈보통교육창가집〉에도 〈권학가〉란 제목으로 같은 악보가 실려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80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조처로 한국방송공사에 흡수된 〈동아방송〉이 한때 새벽에 방송을 시작할 때 흘려보낸 ‘콜사인 뮤직’ 역시 일제 군가 〈흥아(興亞) 행진곡〉의 각 소절 꼬리 부분만 슬쩍 바꿔 붙인 “명백한 표절”이었다. 〈흥아행진곡〉 1절 가사는 “이제는 세기의 새벽노을 풍영(豊榮) 솟아오르는/ 욱일의 …흥아의 사명 두 어깨에/ 짊어지고 섰도다/ 5억의 백성”으로 돼 있다. 노동은 교수는 58년에 박경원씨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김교성 작곡의 가요 〈만리포 사랑〉도 “(흥아행진곡의) 완벽한 표절이라 할 순 없지만 비슷하게 진행된다”면서, 조 관장의 얘기가 “모두 옳은 지적”이라고 했다. 직접 일본에 가서 악보를 채집해 오는 등 수년간 애쓴 끝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조 관장은 “최근 한국방송의 노인프로그램에서 죽음준비학교를 소개하는 중에도 〈철도창가〉를 딴 노래가 나왔다”면서 “어디서 또 일제의 ‘망령’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노 교수는 “그동안 항일독립운동가나 동요에 일제군가나 창가의 곡에 가사만 바꾸거나 표절을 한 노래들이 많다는 사실은 지적이 돼왔지만 찬송가는 그런 줄도 모른 채 지금도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며 “우리 음악계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이 밝혀내 놀랍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찬송가 〈주님 고대가〉도 일본 음계와 박자로 작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족적 구심점으로 나가야만 살 길
"'하나님(Hananim)'이란 단어는 '하늘'과 '님의' 합성어로서 한자어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순수한 종교적 개념은 외래적 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중국에서는 천주(天主)라는 우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외적 형상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헐버트(H.B. Hulbert)의 기록.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선교활동을 위해 최초로 우리나라에 왔으며 그의 소속 교단은 미국 북장로회였다. 또한 1896년 당시 미국 선교사로 활약하던 헐버트(1863.1-1949.8.5)의 말이다. 그는 감리교회 소속이었다.) 이 기록들은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 있는 대한제국의 운명에 대해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로 밀약을 맺고 계략에 따라 미측은 일제에게 한국에서의 기독교(개신교)만은 탄압하지 말 것을 약속받았는가 하면, 일종의 사전 보고 성격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을 그들의 잡신 여호와 대신 차용하면서 남긴 여러 연구 검토 기록들 중 일부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 중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 거의 없고(특히 일부 기독종파주의자들은 철저히 숨기는 통에) 한민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이런 사실을 몰라도 좋다. 우리 민족은 이미 5천년 전에 6개 민족으로 단군 조선을 건국할 때 이미 '하나님'이란 존재를 알고 믿었던 사실만 알자. 8.15이후 대한민국은 미군정시기를 통하여 구친일신숭미(舊親日新崇米)하는 사대주의자 정상배들이 창궐하여, 일신일가(一身一家)의 금의옥식(錦衣玉食)을 거부하며 오로지 조국독립과 지구상(地球上) 강대국(强大國)을 건설하려는 독립운동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이어가기 위해 반공(反共)만을 유일한 무기로 삼아 성공했다. 이는 북한에서도 쏘련의 위세를 이용 정통성 있는 국내 항일지도자들을 무시한 채 항일빨치산 출신의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해 민족주의가 공산주의의 위세에 함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친일파세력을 처단하였던 점은 사회정기(社會正氣)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숭배적인 독재체제’라는 낙후성은 현실적 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떤식으로든 독재는 안 된다는 표상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지만... 민중생존조건을 질적으로 향상시켜보겠다던 사회주의자들도 물질생활의 물질풍요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들의 적이라는 자본주의자들이나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결국 자본주의사회의 뒷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내주는 찌꺼기나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신적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민족적 구심점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진정한 이상과 행복을 위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민족적인 구심점(求心点)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1편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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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21 [20:03] 최종편집: ⓒ plus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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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의 어제 오늘일, 이는 어느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의 몫인데, 어떤때는 참으로 안타까움이,,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라 할까요? 아뭏든 글에는 힘이 있어야 하겠고 말에는책임이 있어야 하듯 우리 모두 언어 유희가 아닌 사명감으로 한번 쯤은 곱씹어 봐야 된다는게 저의 좁은 식견임을 인식하면서 잘 음미하고 다녀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