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 회원님들 가운데에 PC통신 커뮤니티(동호회)시절부터의
통신경력이 꽤 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나 역시 PC통신 동호회
시절의 경험이 있다.
1994년에 천리안 가입을 한 이후 1998년에 40세 이상 중년동호회에
가입했다가 잔인한 싸움의 와중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당시
의 경험을 적은 글-통신 1년을 회고하며-은 이 글의 답변글로 따로
올린다), 이후 따로 살림을 차린 소모임 [황금시대]에서의 2년간의
경험, 그리고 하이텔의 중년동호회(현재 맡고 있는 방장의 임기만
만료되면 활동을 중지하고 싶다)에서의 2년간의 경험등...
동호회 안에 존재하는 인생의 첨예한 축소판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것은 한편으론 충격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5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PC통신
동호회를 찾아드는 많은 유형의 인격들 가운데에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이 표현을 나의 아내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다'
는 속담으로 적절히 비유했다)는 경제학에서의 논리처럼 맑고 선한
인격들은 혼탁하고 파렴치하거나 정의에 무감각한 군상들 틈에서
배겨내지 못하고 떠나가더라는 것이다. 통신에서 참 괜찮은 인격을
갖춘 인물들을 간간히 목격하곤 했지만 그들은 머지 않아 그곳을
떠나곤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문제가 심각한 회원을 과감하게 청소할
권위와 기능이 PC통신에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삽이라고
하는 임기 1년짜리 역할이 있지만, 시삽에게 전권이 부여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대개의 문제성 있는 회원들은 비열하고도 치졸하게
권력에 기생하기 때문에 용케도 자리를 지켜내곤 하며, 설사 정의감
있는 시삽에 의해 특단의 조치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 시삽의 임기가
끝나면 똥파리처럼 다시 슬그머니 찾아드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결국 유료인 PC통신 안에서의 중년동호회는 통신별로 한 두개밖에
없으므로 달리 갈 데 없는 회원들은 기껏해야 천리안과 하이텔,
유니텔이나 나우누리 등을 맴돌다가 급기야는 통신동호회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던 네트워크 커뮤니티(동호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찾아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다음카페, 세이클럽, 한미르, 프리챌 등에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인터넷 동호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대신에 PC통신 동호회는 날이 갈수록 침체되어
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존 PC통신 사용자들은 PC통신을 떠났거나
인터넷과 겸용하고 있다.
나도 작년 7월엔가에 처음으로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곳에 와보니, '와아... 인간들 엄청 많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PC통신의 중년동호회는 보통 200-3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그 10배가 넘는 회원을 거느린 카페가
흔하지 않은가. 내가 작년에 가입했던 [40-50대 열린마당]이라 하는
곳도 당시에 2000명을 상회했었는데, 지금은 4000명이 넘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루에도 고작 수십편의 글이 각 게시판에 몇편씩 올라오는 PC통신
동호회에 비하여 대규모 인터넷 카페는 게시판의 화면이 바뀌기가
하루에도 수 차례나 될 정도였으며, 조회수도 금방 2자리를 넘어
서고 때로는 3자리까지 가기도 하니 생동감과 박진감이 새롭기만
하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반 나절이나 수고해 써서 올린 글이 단 몇시간
만에 게시판 화면의 저쪽편으로 넘어가 버리고 새로이 올라오는
가십성(특히 이런 글이 조회수가 높다)글에 파묻혀 버리는 것을
보면서 숨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고, 어느틈엔가 게시판 하나
정도만 드나 들다가 급기야는 새로 만들어진 봉사방(특별한 주제가
있는)에만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의 PC통신 동호회는 동호회에의 중복 가입이라야 하나의
통신 안에서 성격이 다른 동호회에의 가입이었고, 중년 동호회
에의 가입은 따로 돈을 더내고 타 PC통신에 가입하지 않는한
only one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데에 반하여, 인터넷 동호회의
경우는 어디를 가나 무료이므로 중복가입의 정도가 매우 심해져
있다는 것도 인터넷 동호회의 특징이다. 오늘 이곳이 식상하면
그만 두고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있는 비슷비슷한 성격의 다른
중년카페를 찾아들면 된다. 아니, 이미 몇개 또는 몇십개씩
가입이 되어 있는 상태이니 한 곳을 떠나는 것의 허탈감은 별로
느낄 겨를이 없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지난 십여년 전으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네트워크(PC통신과 인터넷을 포괄하는)상의 중년동호회의 실상이며,
나 자신이 보편적인 친목 위주의 카페가 아닌 비록 규모는 적으나
특화된 [분명한 목적이 있는 카페]를 설립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두번째 이유는 분명한 목적이 없는 '좋은게 좋은 거'라는 친목
위주의 공동체의 경우에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패거리가 형성이
되면서 급기야는 쌈박질로 발전하거나 공동체생활에 회의를 느끼곤
하더라는 것이다.
나이 말고는 그 어느것 하나 공통점이 없는 그야말로 다양한 군상이
모여서 처음에는 형님, 아우 하면서 간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친해
지지만 사소한 언쟁은 일파만파 웬수지간도 그런 웬수가 없게시리
변해버리곤 한다. 설사 싸우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인간관계 그
자체에 대한 기대는 앞서 얘기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흐름
속에서 상대할만한 군상의 절대적 감소로 이내 시들해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
통신과 인터넷의 위와같은 장단점들 사이에서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인터넷 카페의 경우 카페 개설자의 분명한 목적 및 철학과
확고한 운영방침이 시종일관 고수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심각한 회원이나 시스템은 과감히 정리하여 카페 개설 당시의
순수한 초심을 유지함으로써, 과거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을 것
이라는 것이 내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카페]를 개설하게 된
세번째의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