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전 우연히 접한 영상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코에 박혀 있는 작은 물체를 집게 모양 공구로 빼낼 때 고통스러워하며 피를 흘리던 바다거북의 표정을. 인간이 고통스러울 때 짓는 찡그림과 바다거북의 그것은 여지없이 똑같았다. 바다거북이 느끼는 고통은 인간이 느끼는 신체적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영상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영상은 무려 1억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플라스틱 빨대 사용에 대한 전 세계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무심코 사용한 플라스틱 빨대는 장수(長壽)의 상징인 바다거북의 생명을 그렇게 위협했다. 수억 년을 이어져 온 지구의 균형은 불과 몇백 년도 되지 않은 산업혁명의 역사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고, 2023년 여름 이 불균형은 다시 한번 인간의 책임을 묻고 있다. 물티슈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더 은밀하게, 더 광범위하게 우리 삶에 파고들었다. ‘티슈’라는 이름이 불러온 ‘오해’는 종이모양 미세플라스틱을 아무 거리낌 없이 변기 안으로 던져넣게끔 했고, 그렇게 버려진 물티슈는 돌고 돌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7월 19일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성수중계펌프장에서 직원들이 협잡물 더미를 들어올리고 있다. 길게 이어진 섬유질 형태가 모두 폐물티슈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6월 8일 전남 여수 쌍봉천은 물티슈의 역습이 불러온 ‘재난의 뉴노멀’ 현장 그 자체였다. 이날 쌍봉천에는 부유물이 가득한 물길 위로 폐사한 물고기들이 떠다녔다. 하수처리장의 이물질 제거 장비가 막혀, 하수관의 오수가 ‘우수관(雨水管·빗물을 빼기 위해 설치한 관)’으로 역류한 것이다. 여수시는 이에 대해 지난 지난 6월 13일 “이물질을 걸러내는 기계 설비가 물티슈와 나뭇가지 등으로 막혀 역류하면서 화장동 일대 쌍봉천에 오폐수가 유입되어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쌍봉천 일대에서 악취가 발생한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점검을 진행한 결과 오수 펌프장 하수관의 이물질 제거 장비에 일시적으로 많은 양의 물티슈와 나뭇가지가 밀려들면서 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오폐수가 유입돼 물고기가 폐사한 여수 쌍봉천. photo 여수환경운동연합
성수중계펌프장의 전경. 이곳에 모인 오수는 총 3단계의 이물질 제거 과정을 거쳐 산동하수처리장으로 이동된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맨홀펌프장 문제 70% 물티슈가 원인
쌍봉천 사고는 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4339개의 하수처리장이 있다. 대부분의 하수처리장들이 물티슈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변기에 버린 물티슈가 물에 분해되지 않은 채 각 하수관과 하수처리장에서 빈번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9일 찾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산동하수처리장 역시 여수와 다르지 않았다. 산동하수처리장은 하루 평균 2200t의 구미 인근 오수가 모이는 곳이다. 기자가 안전장비를 갖추고 하수처리장 안으로 직접 들어가 봤다.
산동하수처리장의 중앙제어실에 경보 알람이 울리면, 급히 맨홀펌프장의 위치를 파악한 직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한다. 맨홀 뚜껑을 열고 펌프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분해해보니, 물티슈가 한데 뭉쳐 구동부의 회전체에 돌돌 말려 있었다. 펌프는 오수에 압력을 가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물티슈가 감기면서 고장이 나고, 작동이 멈춘 것이다. 구미시설공단 이용태 팀장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주거지역 맨홀펌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70% 이상을 (물티슈가)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린설비(거름망) 출구에 끼인 폐물티슈를 제거하는 모습.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 물티슈들을 제거하는 작업은 모두 수작업이다. 직원들이 비닐장갑을 끼고 뒤엉킨 물티슈를 찢어서 뽑는다. 물티슈가 너무 많이 뭉쳐 단단한 타래 형태가 된 경우 갈고리를 동원해 물티슈를 찢는다. 물티슈가 기계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을 땐 볼트를 푸는 등 기계를 분해해야 한다. 이러한 제거 작업은 일주일에 평균 2~3회 일어나며 한 번에 최소 2시간에서 최대 4시간이 소요된다.
산동하수처리장의 이창희 대리는 “각 가정에서 변기에 버린 물티슈는 (기계의) 회전체에 감기게 되어 있다”며 “물티슈는 부직포라고 보면 된다. 많이 감겨 있거나 건조한 상태가 되면 조직력이 좋아져서 더욱 질겨진다”고 설명했다. 이동욱 대리는 “팔뚝만 한 물티슈 덩어리를 본 적도 있다”고도 했다. 그에게 ‘가장 긴 물티슈 타래가 어느 정도였냐’는 질문을 하자 “60㎝”라고 답했다.
올해 여름은 유달리 큰 수해를 입었다. 물티슈가 이번 수해의 직접적 원인이란 발표는 없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물티슈의 역습이 곧 수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동하수처리장이 관리하는 맨홀펌프장의 경우 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오면 배관로에 빗물과 오수가 섞여 들어오면서 물이 넘쳐 맨홀 뚜껑이 열려버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펌프에 물티슈가 끼여있다면 설상가상이 된다. 맨홀펌프장은 마을의 배수관 격으로 지대가 낮은 곳에 설치된다.
따라서 홍수 상황에서 물을 퍼주는 펌프가 기능을 못하게 되면 침수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하수처리장 직원들이 24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비가 오면 관리를 더욱 자주 하고 있는 이유다. 이 대리는 “펌프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다른 2~4대의 보조펌프가 가동을 하게 되지만, 이 보조펌프까지 모두 고장날 가능성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전했다. 지난 7월 18일 국지성 호우로 인해 산동하수처리장 직원들이 평상시보다 1m가량 높아진 수위에 맞서 긴급 복구작업을 할 당시에도 물티슈 제거 작업이 이뤄졌다.
스크린설비(거름망)에 끼인 폐물티슈.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4시간 걸려 수작업으로 일일이 제거
모든 물티슈가 맨홀펌프장의 펌프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오수와 함께 맨홀펌프장을 통과한 물티슈는 중계펌프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중계펌프장에 도착한 오수는 집수정(물통)에 모아졌다가 거름망(스크린설비)을 통과하게 된다. 이 거름망에 끼이는 건더기를 협잡물이라고 한다. 산동하수처리장에서 1차 거름망을 거친 협잡물의 40% 이상이 물티슈다. 오물이 묻은 물티슈가 생리대, 콘돔, 머리카락 등과 함께 엉켜 거름망에 감겨 있었다. 이것이 기계를 통해 대형 포대로 옮겨지는데, 통과 과정에서 거름망이나 기계 출구에 물티슈가 끼이게 되면 장비 고장의 가능성이 커진다. 만일 물티슈가 끼여 장비가 고장난다면 하수 처리 과정이 중단된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물통의 오수가 넘치는 문제가 발생하고, 여수 쌍봉천 역류와 같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산동하수처리장 직원들이 맨홀펌프장에서 발생한 물티슈 끼임을 해결하기 위해 펌프를 인양해 진단하고 있다.
펌프의 회전체에 감겨 있는 폐물티슈.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직원들은 하루에 한 번 이상 현장에 나와 기계의 출구와 거름망을 청소해줘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물티슈 문제가 해결된다면 업무량의 30% 이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산동하수처리장 이용태 팀장은 기자에게 “빨랫줄처럼 엉킨 협잡물이 모두 물티슈”라며 산더미처럼 쌓인 협잡물 사이에서 길쭉한 타래 형태의 오물을 꺼내 보였다. 육안으로도 물티슈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러 처리 과정을 거치며 변색되긴 했지만 섬유 형태만은 그대로였다. 그만큼 질기고 처리가 어렵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하수처리장에서 21년간 근무했다는 그는 “20년 전에는 여성용품, 피임용품 등이 협잡물의 대부분이었다면 10년 전부터는 물티슈가 훨씬 많아졌다”며 “현재 기계가 고장나는 대부분의 원인은 물티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산동하수처리장에서 하루에 발생한 협잡물은 0.3t 분량이었다. 하수처리장의 규모에 따라 이보다 더 많은 협잡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협잡물의 물기를 빼기 위해서는 거대한 포대에 모아 크레인에 이틀 동안 매달아 두어야 한다. 이후 소각장으로 운반해 소각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비용이 1t당 20만~4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 팀장은 “그나마 서울 등 대도시의 사업장은 물티슈 문제가 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구미·여수 등의 중소규모 지역 사업장은 그렇지 못하다”며 “물티슈로 인해 점검 인력, 수리비용, 환경오염 문제 등 낭비가 많다”고 밝혔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실제로 서울의 한 하수처리장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변기에 물티슈를 버리면 정화조를 거쳐 분뇨처리장에 간다”며 “싱크대에서 흘려보내는 물과 우수(雨水)는 하수처리장으로 가서 별도로 처리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사용한 물티슈를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변기 등에 버려 이처럼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들어가거나 일반쓰레기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일반쓰레기로 분류해 매립·소각하는 것이 올바른 폐기 방법이다. 그렇다면 일반쓰레기로 분류된 물티슈를 매립 내지 소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이에 대해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물티슈는 생활쓰레기로 처리되더라도 다른 폐기물과 달리 수분함량이 높기 때문에 처리에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생활쓰레기 소각은 에너지 회수를 전제하고 있는데, 소각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하여 발전하고, 부대적으로 발생하는 스팀(증기)을 지역난방 등에 이용하고 있다”며 “물티슈는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소각과정에서 발열량을 낮추는데 이것이 나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소각로에 반입되는 폐기물 1㎏당 발열량은 2300~2500㎉로, 만약 물티슈가 혼합되지 않는다면 4000㎉ 정도 상승하여 더 많은 에너지 회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배 교수는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가는 물티슈는 다시 쓰레기로 회수하여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많은 에너지가 추가로 사용되는 등 비용이 발생한다”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최선이고, 플라스틱 소재의 난분해성 물티슈를 생분해성 재질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분함량 탓에 태워도 더 환경파괴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물티슈를 포함한 협잡물은 하수처리장이라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이기 때문에 사업장폐기물처리시설에서 따로소각한다”며 “협잡물 소각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코로나 이후 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필요하지 않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물티슈를 사용한다”며 “물티슈는 수입품이 많은데, 기준치가 다 다르고 어떤 화학물질이 사용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 말했다.
그는 “소규모 보따리상들이 가져와서 (매출규모) 10억 미만, 1억 미만의 작은 업체에 납품하는 경우나 미신고업체도 많아서 통계에 잡히지 않고 규제 적용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 편집자주_ 물티슈 사용이 본격화된 것은 10년 남짓이다. 짧은 기간 물티슈는 사실상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편리하고, 어디에나 있다. 이 편리가 불러오는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하다. 물티슈는 얇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쓰레기 처리의 제일 마지막 단계까지 그 형태를 유지한다. 이 물티슈 처리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간단치 않다. 이미 EU와 영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들은 물티슈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비하면 아직 그 심각성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상황이다. 주간조선은 편리하면서 치명적인 일회용품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물티슈의 역습'을 주제로 4개의 기사를 보도한다.
1) 물티슈가 막아선 하수처리 | 7월 28일 12시
2) “물티슈 쓰면 바다가 ‘아야’ 한대” | 7월 29일 3시
그래도 엄마들은 편리함을 포기 못한다
3) '쓰레기 박사'가 말하는 규제 1호 | 7월 30일 12시
4) 선진국은 이미 물티슈에 강한 규제 | 8월 2일 4시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