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왜 꼬였나 |
국내 최대 개발 사업…좌초시 엄청난 후폭풍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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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정부가 용산역세권개발 확정을 확정하고 땅주인인 코레일이 사업자를 공모했을 당시만 해도 용산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57만㎡의 부지에 150층짜리 초고층 빌딩 등을 지으면 서울 상징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 때문에 건국 이후 최대의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꼽히는 이 프로젝트에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섰고 사업은 순항하는 듯 했다. 그러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불어닥친 부동산 경기 침체는 사업을 삐거덕거리게 만들었다. 땅값을 제대로 대지 못해 코레일―투자자간 마찰이 일면서 이제 좌초 위기에까지 몰렸다. 이대로 가다간 삽질 한 번 못하고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업이 깨지면 1조원을 댄 투자자들의 피해는 물론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재산 손실도 적지 않다. 건설업계도 부동산 개발의 상징적인 사업이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수익성 빨간불 돈에 발목을 잡힌 것은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구하지 못해 이제 더 이상 진도가 나가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돈을 구하지 못한 데는 배경이 있다. 바로 수익성 문제다. 2008년 하반기 터진 세계 금융위기와 각종 규제 등으로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예상보다 줄어든 것이다. 삼성물산·롯데관광개발 등 민간·공공 30개 출자사들이 모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하 드림허브)가 사업을 따낸 2007년 11월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출자사들은 땅값으로만 8조원을 써냈다. 이 돈을 내고도 초고층 빌딩 등을 지어 팔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 값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7년 이후 시행된 분양가상한제, 광역교통개선부담금 등의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사업 초기에 빌딩 구매 의사를 밝혔던 글로벌 기업들이 금융위기로 발을 뺀 데다 빌딩 등의 매각 가능 금액이 기대를 밑돌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건설투자자와 재무·전략적투자자 간에 사업비 마련을 둘러싸고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무·전략적 투자자들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관례상 시공사(건설투자자)가 보증을 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사업비를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성물산 등 17개 건설투자자들은 건설사만 위험 부담을 질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래서 각 출자사가 지분만큼 증자를 통해 자금을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청한 삼성물산 관계자는 “광역교통개선부담금만 4000억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등 사업비가 당초보다 3조원 가량 늘어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만 지급보증을 서는 건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무·전략적투자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수익성이 당초보다 악화된 것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3조원대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업 무산되면 직접 피해 수조원대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드림허브는 결국 지난해 3월 토지대금 2차 중도금 등 6437억원을 내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땅 주인인 코레일은 그해 10월 5년으로 돼있던 3, 4차 계약금 분납기간을 최장 7년으로 연장하고 계약금과 분납 비율을 낮춰주기도 했다. 드림허브는 지난해 말 8500억원에 이르는 자산유동화증권(ABS·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것)을 발행해 미납금을 해결했다. 그러나 올 3월 냈어야 할 중도금과 계약금 7000억원을 또 연체했다. 최근 건설투자자들이 땅값 납부시기를 2016년으로 미뤄달라고 요구했지만 코레일은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코레일 개발기획실 한영철 부실장은 “사업이 중단되더라도 더는 계약변경은 없다”고 거부했다. 사업성 확보를 위해 건설투자자들이 서울시에 요구한 용적률 상향(608%→800%)도 쉽지 않다. 서울시는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며 안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처럼 출구는 꽉 막혔는데 시간은 없다. ABS 이자를 내려면 적어도 두 달 전인 이달 16일까지 투자회사들이 자금조달 계획에 합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드림허브는 채무불이행에 처하게 된다. 사실상 사업이 무산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칫 사업이 무산될 경우 미칠 후폭풍을 크게 걱정한다.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을 통해 36만명의 고용 창출과 67조원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기대됐지만, 사업이 깨지면 이런 효과가 사라진다. 출자사들이 낸 자본금 1조원도 사라지고, 땅값을 못받으면 코레일은 고속철도 건설부채(4조5000억원)를 갚고 적자 기업에서 탈피할 기회를 잃게 된다. 간접 피해는 더 크다. 서울 서부 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는 2007년부터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다. 사업이 무산되면 민원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용산구의 땅값·집값 폭락도 우려되는 부문이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용산 일대 집값이나 땅값이 국제업무지구 개발 재료를 업고 크게 오른 만큼 사업이 무산되면 당연히 조정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산구 땅값은 2008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전년보다 21.9%나 급등했다. 가뜩이나 위축된 부동산 PF 시장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신동아건설 박운석 이사는 “이미 대형 PF 사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업무지구가 무산되면 다른 부동산 PF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혜는 주되 이익은 환수를" 드림허브 안팎에서는 지급보증을 반대하는 일부 건설사를 바꿔 사업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건설출자사를 교체한 뒤 지급보증으로 PF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출자사 관계자는 “관련법이나 규정상 출자사 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갖는 상징성이 커 참여할 건설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건설·부동산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한 계획을 다시 세워 끌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정준호 교수는 “최근의 부동산·금융시장의 여건을 감안해 2016년까지 정해져 있는 사업 시기를 조정하고, 단계를 나눠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일단 사업성을 확보해 주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은 정부가 환수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코레일도 원칙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땅값을 낮추거나 대금 납부일을 늦춰 사업이 궤도에 오르도록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특구 지정으로 사업을 우선 진행시키고 나중에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업구도를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코레일이 땅값만 받으려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토지조성 사업을 먼저 하고 출자사에 원하는 땅을 공급해야 한다”며 “출자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땅에서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므로 서로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