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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 브랜드 ‘미스 도티’의 오너이자 디자이너인 리네 바트의 코펜하겐 집은 삶과 일의 궤적이 느껴지는 집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리네 바트(Line Watt)를 만나면 1940년대나 1950년대로 되돌아가는 듯 하다. 그녀의 스타일은 100%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입는 옷 스타일이나 삶의 방식은 물론이요 작업을 할 때나 집에서 보내는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여성복 브랜드 ‘미스 도티’에서도 그 스타일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리네는 학교의 기말시험으로 교내 패션 쇼에 작품을 제출하는 일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디자인으로 라인을 론칭했다. “쇼가 끝나고, 제가 만든 작품들은 순식간에 모두 팔려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제 의상실을 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순서였죠.” 리네는 특유의 절제된 태도로 설명해주었다. 소규모 1인 기업이라는 특이한 판매 전략을 내세운 ‘미스 도티’는 2001년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곳은 매우 한정된 수의 손님들을 상대로 하며, 18~70세에 이르는 고급 취향 여성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그녀의 의상은 작업실 겸 매장 역할을 하는 자그마한 아틀리에에서 디자인되고, 만들어지며, 진열된다. 아틀리에는 1년에 딱 두 번, 봄과 가을에만 손님들에게 개방된다. 모든 컬렉션은 일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한 미스 도티의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고급 소재, 뛰어난 솜씨와 더불어 패션 디자인, 시, 그래픽, 1950년대에 대한 애정이 어우러진 리네의 디자인은 여성스러운 스타일에 섬세한 유머 감각도 가미해놓았다.
리네는 남편 토르킬드(Thorkild)와 세 자녀 셀마(Selma), 나야(Naja), 실베스테르(Silvester)와 함께 산다. 코펜하겐 도심에 자리 잡은 리네의 집에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고요와 평온함이 감돈다. 스타일은 산뜻하고 극도로 단순하며 클래식한 디자인과 옛 느낌을 살린 조합이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230㎡ 규모의 넓은 아파트는 레터링이나 시 구절 같은 시각적인 요소를 더해 장식성을 높이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독특하고 독보적인 이곳의 분위기는 저절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리네가 집을 꾸미는 능력은 70㎡짜리 집에 살아본 경험에서 왔다. “그런 작은 곳에서 지내다 보니 수납의 달인이 되었어요. 더불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갖추고 사는 지혜도 익혔지요.” 리네의 말이다. 지금이야 넓고 호화로운 집에서 살고 있지만 이 가족은 아직도 집을 청결하고 단정하며 편안한 곳, 기능적이고 살기 편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어 한다. 합리적이지만 포근하고 기분 좋은 곳으로 만들기. 이 규칙은 집 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자 제품이나 일상 소품은 거의 다 원래부터 있던 커다란 붙박이 수납장과 옷장, 특별히 디자인한 가구들에 넣어두었다. 거실에 놓은 가구, 텔레비전과 오디오장이 그 예다. 벽과 천장은 온통 새하얗게칠해 마치 천상에 있는 듯, 공간을 돋보이게 하고 모든 방을 밝고 산뜻하게 해준다. 이러한 배경이 가구를 한층 돋보이게 해줌은 물론이다. 부드러운 톤의 나무 바닥은 분위기를 한결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붙박이 수납장과 옷장, 용도에 맞추어 디자인한 수납용 가구들은 집 안이 어수선해지는 것을 막고 간결하게 유지해주는 장치다.
“아파트의 공간 구성과 수준 높은 디테일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어떻게 고치기보단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벽과 바닥은 그대로 둔 채 장식적인 요소 하나씩만 더하고, 아름답게 꾸민 창문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현대적인 디자인 가구들은 가족의 추억이 깃든 소품과 짝을 이룬다. 그 위에는 좋아하는 소지품과 컬렉션을 놓을 수 있으며 단일 아이템과 간결한 배치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거실과 서재, 식당 사이의 프랑스식 문들을 열면 세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환하게 탁 트인 시야를 즐길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서재는 사무실로도, 음악 감상실이나 다실로도 변한다. 흰색, 회색, 갈색이 주조를 이루는 책들을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하니 생각지도 않게 색의 대비 효과가 나타났다. 마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된 것이다. 한가운데에는 임스 체어(Eames Chair)가 커다란 탁자를 둘러싸고 있다. 손수 디자인하고 제작한 탁자는 윗면이 단순한 직사각형인 반면 그 아래의 다리는 루이 14세풍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첫머리를 탁자 가장자리에 써넣은 걸 보면 리네의 유머 감각과 창조성,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천장에 매단 덴마크 디자이너의 등갓은 종이를 접어서 만든 모빌 같은 느낌이다. 커다란 데이베드가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 데이베드는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면서 책을 읽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런가 하면 완벽하게 리폼한 프랑스식 문이 서재와 거실을 연결한다. 흰색 펠트로 만든 소가죽 모양의 넓은 카펫을 전통 방식의 마루에 깐 것 역시 리네의 아이디어로, 그녀의 독창성과 유머 감각을 새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뻐꾸기시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벽시계는 흰색 벽에 걸어놓으니 있는듯 없는 듯 조화를 이룬다. 프랑스식 문의 반대편에는 크리스털을 매단 앤티크 촛대를 걸어 대조적인 느낌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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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식당의 한 부분을 온통 흰색으로 장식해 더없이 가벼운 느낌을 주었다.
오른쪽 서랍장의 서랍은 총 30개로,앞에 레터링 필름을 붙여 내용물을 알 수 있게 했다. 흡음 소재의 패널은 점자를 새기자 하나의 장식품이 되었다. ‘쇠데, 블리브 헤르 베드시엔(søde, bliv her vedsiden-그대여, 내 곁에 있어요)’이라는 문장을 새겨 넣었다. 점자는 리네가 ‘블라인드 세일러’ 컬렉션에서 썼던 소재이기도 하다.
넓은 거실에는 우아한 분위기를 주는 길고 낮은 소파를 배치했다. “거실이 넓으면 좀 큼지막한 소파가 필요하잖아요. 과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죠.” 리네의 설명에 남편 토르킬드가 재치 있게 덧붙인다. “이 소파는 상당히 커서 다섯 식구가 모두 드러누워도 될 정도지요.” 새하얗게 칠한 벽에는 벽지를 한 줄 발라 포인트를 주었다. 이는 리네가 지난 컬렉션에서 사용했던 기법이기도 하다. 벽에 붙어 있는 나무 막대기로 눈을 돌려보자. 그 위에 앉은 작은 도자기 새는 ‘왕립 덴마크도기제작소(Den Kongelige Porcelænsfabrik)’에서 만든 것으로 증조부에게 받은 매우 특별한 선물이다. 리네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도 그때 할아버지 눈이 기억나요. 우리 자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시며 어찌나 자랑스러워하시던지. 마치 진짜 새들이고 소중히 보살펴야 할 것처럼 손에 꼭 쥐고 계셨다니까요. 애들에게 하는 뻔한 장난인 건 알고 있었죠. 그래도 제겐 특별했답니다.” 한편 타원형의 오래된 탁자 밑에 작은 바퀴를 달고 위에는 1960년대 풍 벽지를 끼웠다. 그러니 온통 흰색의 가구들 사이에서 살며시 도드라진다.
또 다른 프랑스식 문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으며, 유리를 끼워 넣었다. 식당은 대부분 흰색으로 정돈되어 천국에라도 온 느낌을 준다. 흡음 소재의 패널은 점자를 새기자 하나의 장식품이 되었다. 점자는 리네가 ‘블라인드 세일러 (Blind Sailor)’ 컬렉션에서 썼던 소재이기도 하다. 서랍 30개가 들어찬 서랍장에는 섬세한 꽃병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아 시각적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한쪽벽은 돋을무늬 벽지를 발라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식탁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작품이다. 인터넷 경매에서 구입한 것으로, 부부는 가장 잘 산 물건이자 제일 좋아하는 가구로 이 식탁을 꼽는다. 이 식탁과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의자, 1920년대 식 찬장은 대부분 흰색으로 꾸민 식당에서 단연 돋보인다. 모든 라디에이터는 이 아파트에 맞게 특별히 제작한 캐비닛으로 가려놓았다. 건축학적으로 얼마나 세세한 곳까지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다른 공간으로, 서재 안 창문을 낸 벽감이 있다. 데이베드가 있는 곳이 여기다.
리네는 특히 주방과 욕실 리폼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최대한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다. 목가구, 타일, 마루, 벽지와 같은 기존의 소재들이 섬세한 리폼 작업에 그대로 활용되었다. 더불어 하얀 페인트와 현대식 가구, 소품들이 이 고전 양식의 아파트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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