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닉네임: 빛나는하루♥ 메일주소: cjh880929@hanmail.net 총 분량(몇 편): 42편이 완결 하고 싶은 말: 거의 2년 반만에 5번째 소설을 완결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너무 바쁘게 보낸 탓에 소설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지금에서 조금씩 조금씩 공책에 끄적이다가 드디어 완결을 내게되었습니다. 소설을 써본 사람들은 다 아시겠지만 쓰다가 도중에 슬럼프를 몇 번 겪어서 완결 내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으휴, 그래도 이렇게 완결을 내었다는 사실에 너무 뿌듯합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출처: Τ.Ι.Λ.Μ.Ο.〃백묘[白猫] * 소설을 스크랩하거나 퍼가시려면 작가님께 직접 문의해주시기 바라며 작가님의 동의 하에 퍼가실 경우 위의 문구와 작가님의 동의여부를 꼭 표기해주세요. ================================================ |
11.
[서울 강남의 J스튜디오]
팬 미팅이 성황리에 끝나고 CF제의가 들어왔다.
웬만한 스케줄은 안 잡으려고 했지만 계약금도 꽤 좋은데다가 이번 CF는
특별하게 아시아 5개국에 방영된다고 했다.
이 기회를 사장님이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도 이번 CF가 마음에 들었다.
“스페아, 이번 CF의 컨셉은 Pretty야. 귀여움과 너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야 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독님이 원하는 모습대로 찍어야 카메라 각도에 잘 맞았다.
단지 이번에 계획된 3집 컨셉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스페아의 여러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리고…최대한 촬영을 빨리 끝내야 했다.
제프, 그를 만나야 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힘들어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최소 1시간, 길어지면 하루 종일 걸리는 이 촬영은 방송국과 잡지사 기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만 안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걱정되고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빈아, 뭐해? 촬영 시작이야. 휴대폰은 왜 그렇게 꼭 쥐고 있니?
언제는 애물단지 취급하더니…….”
혜미의 말에 나는 내 손을 봤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잠금장치하고 혜미에게 맡겼다. 혜미는 그런 내 행동이 이상한 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그런 혜미의 반응을 모른 척하고 스튜디오로 나갔다.
푹신한 침대 위를 뛰면서 가벼움과 즐거움을 보여야 했지만
내 마음은 딱딱한 돌덩이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가식적인 미소로 촬영해야 했다.
감독님은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한 지 계속 ‘NG’를 외치셨다.
“스페아, 무슨 근심이 있는지 몰라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해.
휴우~ 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마음 좀 추스려!”
촬영 때만큼은 제프를 잊어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제프와의 짧은 만남…이 아니라 진과 노래를 부르던 순간이었다.
나는 진과의 추억을 떠올렸고 불고기를 좋아하던 진의 모습이 갑자기 제프로 겹쳐졌다.
내 머릿속에 어느 새 제프의 미소로 가득 찼다. 짧은 순간이나마 나에게 자유를 맛보게 해주었고
나의 애국심을 더 깊게 해준 제프였다. 그리고 나에게서 잠시나마 진을 추억하게 해주었다.
“그래! 스페아, 그 미소야. 웃어야…어? 스페아, 우니?”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웃고 있는 내 얼굴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고 감독님은 당황하셨지만 ‘NG’라고 외치지는 않으셨다.
모니터 속에서의 나는 행복하고 자연스러웠다.
가식이 없는 눈물 섞인 미소가 스페아로서,
강서빈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 같았다.
“촬영 끝! 스페아, 수고했어. 아까 눈물을 보여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정말 연기 쪽도 생각해 볼만 하다. 자, 다들 가서 회식하자!”
“아니에요. 전 아직 미성년자라서 여러모로 어려워요. 그리고 선약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담 할 수 없지. 스페아를 주시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내년을 기약하자.”
“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영 언니, 감사합니다.
조명 감독님, 감사합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스텝들에게 인사를 다 했다. 나로 인해 촬영이 꽤 길어졌고
모두들 다 같이 고생한 거라 감사할 따름이었다.
저녁 6시다. 아침에 연습생들을 만났다가 오전부터 시작된 촬영이었다.
제프에게 당장이라도 갈 듯이 말했지만 통화한 지 8시간이나 지나가 있었다.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촬영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 때 누군가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혜미였다.
“어디가? 집에 가는 거 아니니?”
혜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화 언니와 영민 오빠가 회사에 있어서 지금 현재 나의 매니저는 혜미였다.
나를 집까지 바래다 줄 임무가 있는 혜미였다.
내가 시계를 자주 보면서 서두르는 모습에 혜미가 의심스러워했다.
“혜미야, 너 나 믿지?”
“서빈아!”
“나 믿으면 그냥 보내줘. 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어. 걱정 말고 들어가.”
“서빈아, 남자…생겼니?”
“그런 건……아니야. 걱정 마. 나 이만 갈게.”
혜미에게 처음으로 사생활이라는 말을 했다.
말을 한 나도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데 혜미의 입장에선 얼마나 서운할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혜미를 친구로만 여기기엔 헤미도 회사 관계자였다.
**
[한강 둔치]
야경이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자 수많은 연인들의 기본적인 데이트 코스라고
불리는 곳에서 제프를 만났다.
평소 본 그의 캐주얼한 옷차림이 아니라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프가 고귀하게만 느껴졌고 단순한 외국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웃음기가 보이던 얼굴은 무표정이었고 푸른 눈동자가 더 차갑게만 느껴졌다.
제프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모자를 벗고 그를 응시했다.
“CF촬영은 잘했습니까?”
그가 알았다! 내가 스페아라는 것을 제프가 알아버렸다!
영어로만 대화했는데 그가 한국말로 물었다. 제프의 유창한 한국어가 차갑게 들렸다.
배신감이다. 제프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제프…….”
“팬 미팅 날에 알았습니다. 서빈 씨가 아시아의 제일 유명한 가수 스페아고,
배우로서도 촉망받고 있으며 이제 컴백 준비로 한창 바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프는 조명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제프, 전 말하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제프도 알아야…”
“그래서 그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써야 했습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네.”
제프가 나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나온 그의 칭송에 나의 심장은 주저 없이 두근거렸다. 설렘이었다.
내가 용서를 빌 자리에서 나는 설레고 있었다. 제프의 부드러운 금발이 바람에 살짝 흩날리고 있었다.
제프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무엇을 크게 결심한 듯 그가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말했다.
“유명인의 외로움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나는 제프의 말의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제프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서빈 씨, 제 이름은 제프 마틴이 아니라 제프 베킨데일입니다.”
제프 베킨데일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직위 ‘왕세자’라는 말.
그렇다면 현재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 서양 남자는
평범한 카샤르 유학생이 아니라 왕세자라는 거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랐다.
캐주얼한 옷에 웃음기를 머금은 개구쟁이 같은 제프가 아니라
내 앞에는 고급 정장을 차려입고 단정하게 정돈된 헤어스타일에 무표정한 제프가 있었다.
그 무표정함은 냉정함과 왕세자로서의 기품까지 느껴지게 했다.
제프는 두 얼굴의 남자였던 것이다.
“서빈 씨, 저 그러니까…”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제프는 단순한 유학생이 아니라 카샤르의 왕세자라는 거죠?
전 그 왕세자를 만나 왔다는 거네요.”
“네. 비밀리에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난 엄청난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단순히 외국인 유학생이 아닌 여행 중인 왕세자를 만났다.
게다가 왕세자도 얼마 전에 내가 가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왕세자도 나에게 정체를 밝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존은 사실 저의 전속 경호원입니다.
지금도 사실 전방 50m 이내에 존이 있을 겁니다. 서빈 씨, 놀라셨나요?”
“안 놀랄 수 있나요? 제가 왕세자를 만난 거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범한 동양소녀가 아니라 아시아의 톱 가수를 만났습니다.”
배신감이 아니었다.
제프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저 나처럼 놀라움을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곧 서로의 만남을 걱정했다. 제프는 그래서 나를 다시 만난 것이었다.
“왜…여행을 하시는 거죠?”
부유한 나라 카샤르의 왕세자인 제프가 왜 굳이 아시아를 여행하는지 궁금해졌다.
유럽 지역을 여행해도 볼거리가 많을 텐데,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비밀리에 여행하는 것이 궁금했다.
제프는 나의 질문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자 다시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서빈 씨에게 말하긴 부끄럽지만 사실 전 언론에서도 알려진 바람둥이입니다.
여러 여자들과 데이트도 많이 했습니다.
그로 인해 루머도 커지고 손도 안 댄 마약까지 했다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카샤르에서도 저의 입지가 줄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비울 겸
원래 관심을 가지던 아시아에 여행을 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아시아를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계 카샤르인인 나의 비서 엘리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엘리 존슨…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뉴스에 나왔던 여자다.
카샤르 왕실 전속 비서로서 한국계 카샤르인으로 소개된 것이 기억났다.
“그럼 그 엘리라는 분에게서 한국어와 일어를 배운 건가요?”
“네. 덕분에 저의 동생 그레이스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원래 제프의 미소는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 본 그의 미소는 씁쓸한 게 느껴졌다.
“많이 힘드셨죠?”
“…….”
“바람둥이로 낙인찍힌 건 로라 드렌 때문이죠?
사실 제프 왕세자는 한 여자에게만 순정을 바치잖아요.”
내 말에 놀랐는지 제프가 나를 쳐다봤다.
할리우드 소식을 자주 접해온 나는 4년 전 제프 왕세자와 로라 드렌의 결별 소식을 들었다.
그 전에 찍힌 제프 왕세자의 사진에는 미소가 늘 띠었지만 어느 샌가 그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제프를 네 번이나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정말 할리우드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퍼집니다.”
제프는 씁쓸한 표정으로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라를 떠올리는 듯 제프의 얼굴을 보자 괜히 심술이 났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셨나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터무니없는 질문을 한 것인지 너무 어이없었다.
하지만 이미 질문을 해버린 상태,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제프의 답이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했다.
“잊지 못하기보다는 버렸습니다. 로라와의 추억과 사랑…얼마 전에 버렸습니다.”
“네?”
“이제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넣었으니까 새로운 추억을 담으려고 합니다.”
제프에게 새로운 사랑이 온 것일까?
로라를 잊지 못해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닌 이 불쌍한 왕세자에게
드디어 새로운 사랑이 피어난 것일까?
친구라면 당연히 축하해줘야 하지만 왜 내 마음 한 구석이 따가운지 모르겠다.
“지금 그 말은 새로운 사랑을 한다고 들립니다.”
“네, 서빈 씨. 저는 이 사랑이 비록 두렵고 힘들겠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이라고 확신합니다.”
이토록 배려가 깊고 부드럽고 잘 생기기까지 한 남자의 확고한 사랑을 받는 여자가
누군지 몰라도 같은 여자로서 부러워졌다.
제프라면 분명 이번 사랑은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내가 만난 그는 분명 매력적인 남자니까.
제프는 상의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깨끗한 진주와 백은으로 반짝이는 심플한 팔찌를 꺼내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맑게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빈 씨, 좋아합니다.”
이럴 수가! 그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 제프는 다정하게 나를 보며 스스럼없이 미소를 띠었다.
“비록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저는 서빈 씨를 만날 때마다 설레고 즐거웠습니다.”
‘저도 제프와 만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내 생각대로 제프에게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제프처럼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정욱 오빠와 사귈 때도 설렘이 있었지만 결국 진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남아 있어서 헤어져야만 했다.
정욱 오빠가 나로 인해 상처받은 것이다.
혹시나 또다시 내가 연애를 한다면 그 누군가에게 분명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제프, 다시 생각해봐요. 제프는 지금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나는 제프의 감정을 핑계를 댔다. 하지만 나는 제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많이 본 사이는 아니었지만 제프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서빈 씨…….”
“제프,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나는 얼른 뒤돌아섰다. 나는 도망갔다.
상처받은 제프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후에, 사귀면서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 한 번에 거절하는 게 옳았다.
제프의 고백을 받지 않은 건 제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아직도 진을 추억하는 나 때문에 나는 제프를 거절했다. 하지만 왜 내 마음이 이토록 따가운지 모르겠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2. <번외-서빈의 사랑>
6년간 다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혜미와 나는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을 만났다. 심술궂은 남자애들이 싫어서 여중에 가고 싶었지만
결국 가까운 남녀공학인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남자애들보다 10cm더 큰 키에
잘생기기까지 해서 진은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나 또한 철없는 남자애들과는 다르게 친절한 성격인 진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뒷산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중
나무위에서 내 노래를 듣고 있는 진을 보았다.
진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랬는지 나무에서 떨어졌다.
“괜찮나? 그러기에 와 그리 높은 데까지 올라갔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진에게 말을 걸었다.
“높은 곳이 좋아서……. 니 노래 진짜 잘 부르네.”
“잘 부르는 정도는 솔직히 아이다.”
“아이다. 엄청 잘 부르는기다. 실은 내도 초등학교 다닐 때 합창 불렀는데,
니처럼 잘 부르는 애는 못 봤다.”
진과 처음으로 대화하던 순간부터 나는 설레었다.
14살 어린 소녀의 마음이 들뜨게 된 것이다. 이로써 나와 진은 뒷산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장래희망이 가수라는 것을 알았고 누구보다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뒷산은 일진 아이들이 점령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노래 연습은 어려워졌다.
게다가 선배라는 작자들이 나와 진을 일진에 들이려고 자주 불렀다.
그러다가 우리는 학교생활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진과 나는 일진과의 극심한 갈등 끝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게 된 것이다.
14살 사춘기 접어들 무렵 나는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꼈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집안 환경에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었다.
진의 아버지가 유명 변호사라는 것을 알자 나는 집안에 대한 콤플렉스를 더 느꼈고
그만큼 음악에 대한 갈망도 커졌다.
결국 나는 음악을 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내고 말았다.
한참 어린 나이였지만 일찍부터 공부에 시달린 혜미는
부모님 바람과 다른 미용사를 꿈꾸었고 혜미 역시 나와 함께 가출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오디션을 생각도 못했고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건반을 사서 연습했다.
지하철, 대학로 등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을 찾아 공연했다.
두 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혜미와 나는 숙식을 했다. 가출한 지 두 달째 되었을 때, 진이 찾아왔다.
“왜 이러고 있는데? 서빈아, 어서 가자. 응?”
오랜만에 만난 진의 모습은 너무 반가웠지만 진은 나에게 화를 냈다.
진이가 바도 나의 가출은 옳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그것도 가난한 우리 집에서 꿈꾸기엔 나의 꿈은 너무도 크고 거대했다.
“진아, 나 정말 노래 부르고 싶어. 가수를 꿈꾸기엔 부산은 너무 좁아.
진아, 걱정하지 마. 난 잘 있으니까.”
“서빈아!”
“며칠 전에 엄마랑 통화했어. 엄마께서 날 믿어주신다고 격려하는 거 있지?
우면서 격려하는 우리 엄마…웃기지? 그래도 딸 믿는다고…….”
“…….”
진은 아무런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걱정스런 눈빛은 좀처럼 거두지 않았다.
“서빈아, 그럼 내도 서울에 있을란다. 어차피 나도 가수가 꿈이고 너와 같이 꿈꾸었으니까.”
“진아, 너까지 그러면…”
“와 내는 안 되나? 내도 가수가 꿈이다. 그리고 널……지키고 싶다!”
“진아…….”
진의 고백에 나는 행복했다. 친구였지만 내심 나는 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연애에 대해서는 소심한 나머지 진에게 좋은 친구로 만족하던 나였다.
그렇지만 진도 나와 같은 감정에 고백을 한 순간 우리 둘은 다른 의미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로써 혜미와 나, 진은 서로의 꿈을 위해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진은 근처에 방을 따로 구했다.
가출한 지 넉 달에 되던 때에 최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지하철에서 공연하던 나와 진을 보고 오디션을 제안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BEST의 연습생에 되었다.
혜미 역시 사장님의 도움으로 BEST와 연계된 헤어숍에 취직했다.
우리 셋은 동시에 한 발짝 전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연습생이 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진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죽었다.
먼저 연습실에 와있던 나는 진의 사고 소식에 얼른 병원으로 달려왔다.
진의 모습을 봐야했다. 피투성이로 죽어있는 진을 본 순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의 피 묻은 손을 잡았다. 손은 아직도 따뜻했다.
진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건만 진의 눈은 야속하게도 계속 감겨있었다.
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 온 몸에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진과 같이 다시는 가수를 꿈꿀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의 죽음으로 진의 부모님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진의 어머니는 나에게 욕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저 진을 잃은 상실감에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부산에 내려갈 준비를 했다.
진이 없는 이상 가수가 되어도 의미가 없었다.
“강서빈! 너까지 왜 그래? 가수가 되고 싶다며?
그래서 BEST에 들어왔는데 이제 와서 내려가다니, 말이 돼?”
“혜미야, 나 보내줘. 응?”
“서 진이 네 꼴을 보고 잘도 좋아하겠다.
야, 이 나쁜 년아! 너라도 가수가 되어서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서 진, 그 자식 먼저 간 거 후회할 정도로 최고가 되어서 더 잘난 남자를 만나야 될 거 아냐?”
혜미는 격한 어조로 나를 설득했다. 난 여전히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음악을 하면 할수록 진이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 거 같아서 더 외로웠다.
“너까지 가면 나도 부산에 갈 거야!”
“혜미야!”
“잘 들어! 죽은 진이 녀석도 지금 네 모습을 원치 않을 거야.
어떻게든 노력해서 최고의 가수가 된 강서빈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고.
게다가 널 믿어준 가족들에게 배신할 거니? 강서빈, 진은 죽었어. 가수도 되지 못하고 죽었어!”
혜미의 말대로 죽은 진은 나에게 다시 올 수 없었다.
영원히 14살 어린 소년으로 남아있을 진이었다.
진도 소중하듯 혜미도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그런 소중한 친구의 믿음을 나는 배신하려고 했다.
“혜미야, 미안해. 흐흑. 내가 잘못했어. 흑흑. 나는 정말 가수 될 거야.
노력해서…정말…최고의 가수가 될게. 속 썩여서 미안해. 흐흑!”
“그래, 이 년아. 진도 내 친구야. 친구를 잃은 내 마음을 왜 몰라준 거니?
또 이 지랄하면 그 땐 정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나보다 작은 혜미가 나를 끌어안아 달래었다. 나는 키만 컸지, 아직은 어린 소녀였다.
혜미는 나에게 언니였고, 친구였고, 버팀목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미친 듯이 연습에 매진했다.
밤새는 일도 잦았고 선생님들께 지적받으면 그 날 밤새서라도 바로 고쳤다.
연습생이 된 지 6개월이 접어들 무렵에 나는 사장실에 불리었다.
“검정고시…얼마 안 남았지?”
“네. 다음 주에 시험 쳐요.”
야간으로 검정고시를 틈틈이 준비하던 나는 14살에 대입 검정고시를 공부했다.
몇 달 전 고입 검정고시를 패스했고 기본적인 학력을 달성하기 위해
사장님의 권유로 시작한 공부였다. 진도가 빨랐지만
나 역시 빨리 합격해서 음악 연습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이번 시험치고 미국에 가서 연습해라.”
“미국…이요?”
“그래. 검정고시 합격여부를 떠나 시험치고 바로 다음 날에 떠나거라.
미국 음반 시장은 세계 최고야. 넌 세계 최고가 될 자질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 영어도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와 가수가 될 자질을 배우고 오너라.”
사장님은 연습생들 중에 나를 최고로 여기면서도 냉정했다.
미국으로 떠나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으셨다.
연습생들 중에 미국행이 결정도니 사람은 아와 리연 언니였다.
BEST와 연계된 미국 업계에서 우리는 외로운 연습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생활은 초기에 외로웠지만 영어를 배우고 미국 문화를 알아가면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나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다.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리연 언니는 미국에 온 이후 가수 연습생에서 배우 연습생으로 전환했다.
내가 미국 팝 시장에 반하듯, 리연 언니도 할리우드에 반한 것이다.
13개월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1년 반 만에 가족을 만났고 사장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서울의 한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장님의 나에게 철저히 투자를 했다. 사장님의 사업 기질은 다른 기획사들과 확연히 달랐다.
BEST의 관계자 모두를 한 가족으로 여기며 회사의 단합을 강조하셨다.
그로 인해 BEST와 재계약하는 연예인들이 많았고 또 새로 들어오는 식구도 많았다.
나의 데뷔가 임박해지자 회사에서는 나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하였다.
내가 직접 데뷔 앨범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나의 음악적 재능을 믿는 작곡가 선생님들이 나의 작업 모습을 지켜볼 뿐
더 이상의 충고 한 말씀도 없었다.
내가 데뷔한 날, 나는 가수가 천직이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쾌감은 정말 좋았고 나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진을 추억했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볼 진을 생각하며 나는 열창했다.
립싱크는 스페아에게 없었다.
라이브로 통해 나는 내가 가수 스페아라는 것을 느낄 수 이었고, 또 진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첫 CF딴 거 축하해.”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냥…오빠라고 해. 난 선배라는 소리는 영 듣기 싫더라.”
정겹게 나에게 말을 걸어준 정욱 오빠는 연습생 시절부터 동경해온 선배였다.
K-6의 멤버로 먼저 데뷔한 정욱 오빠는 어렵사리 가끔 얼굴 본 적이 있었으나
이토록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TV보다 역시 실물이 더 잘생겼다.
데뷔한 이후 친해진 정욱 오빠는 촬영장에서 자주 만났다.
게다가 같은 소속사라서 사적으로 만날 기회도 잦았다.
가수로서 성공하고 2집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정욱 오빠와 사귀게 되었다.
신인 가수로 버거울 때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첫 싱글 발매로 일본에 잠시 떠날 때
긴장하던 나에게 재밌는 농담도 해준 정욱 오빠였다.
천천히 서로의 존재가 크게 느껴질 때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사귄 지 두 달도 채 안되어서 나는 정욱 오빠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오빠, 미안해. 나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어. 사랑이 아니야.
난 오빠에게서 우정을 느낀 거야.”
“서빈아, 정말…안 되니?”
“어기서 멈추자. 난 오빠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너 그 말 얼마나 잔인한 줄 알지?”
“미…안해. 정말……미안해.”
정욱 오빠는 내가 여전히 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진을 추억할 때 즈음이면 정욱 오빠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정욱 오빠는 내게 있어서 쉴 수 있는 나무 밑의 그늘과도 같았다.
“난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서빈아, 행복할 자신 있지?”
“지금도 행복해.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오빠가 있는데, 당연히 행복하지.”
정욱 오빠와 나는 친구사이로 돌아갔다.
같은 가수로서 서로의 직업을 잘 알기에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가끔 접근해오는 연예인들은 정욱 오빠가 혼내주었고
나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직접 기획안까지 고안해주었다.
나는 정욱 오빠를 좋은 오빠라고 생각했지만
정욱 오빠는 여전히 나를 마음속에 두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오빠에게 사랑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진을 잊지 못하는 것과 정욱 오빠가 나를 마음에 두는 것은 같은 거니까.
데뷔한 지 4년째 되는 현재 나는 ‘천만 장의 가수’, ‘아시아의 톱 가수’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진을 추억하다가도 이젠 제프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도 진과는 6개월을 넘게 같이 봐왔고
제프를 안 지 이제 겨우 두 달이었다. 우정일까? 사랑일까? 내 마음을 내가 더 모르겠다.
제프와 함께 있을 때는 그가 신비롭고 유쾌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서양인만의 독특한 매력도 있었다. 여자에 대한 배려와 서양인이면서도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와 잘 어울릴 정도로 예의가 있는 남자였다.
그냥 친구라서 그런지, 아님 남자로 느껴져서 그런지 제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무엇이 감추어진 듯 그가 궁금했다. 그리고 제프는 자신이 왕세자라고 밝혔다.
그래도 내가 그에 대해 다 안 것이 아니다.
또 궁금했다. 전 애인이었던 배우 로라 드렌을 잊었는지에 대해 괜히 궁금했다.
새로운 사랑을 말하는 그에게 그 사랑이 누군지도 궁금했다.
궁금함의 연속인 그 남자가 자신의 마음에 내가 있다고 고백했다.
또 궁금했다. 왜 그 사람이 나인지…….
하지만 난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끝없이 질문하기가 두려워졌고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 가슴의 한 부분이 답답해졌다.
너무 답답해서 주먹으로 두들겼지만 답답함은 여전했다.
사랑이 뭘까?
진에 대한 추억을 사랑으로 믿고 있는 나에게 이 답답함의 감정을 우정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제프의 고백을 거절한 이 시접에서 나는 왜 이리 망설이는 거지?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3.
[BEST Entertainment 근처의 카페]
성후를 만나러 온 세정은 입이 마른지 물을 들이켰다.
어제 성후에게서 온 ‘헤어지자’라고 이별 통보의 문자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세정이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결국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은성후!”
세정은 성후가 들어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성후를 크게 불렀다.
성후는 담담하게 세정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제 문자 보낸 거…오빠 아니지?”
“나 맞아.”
“무슨 이별 통보를 문자로 해? 우리가 단 네 글자로 깨질 사이였어?”
세정은 기가 막힌 듯 음료수를 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성후가 냉정한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별까지도 이렇게 차가울지 몰랐다.
그 동안 사귀었던 남자들 중에 성후처럼 자신에게 차갑고 냉정한 남자는 없었다.
그래서 세정은 호기심으로 성후에게 고백했고 너무 쉽게 사귀게 되어서 싱겁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정은 성후가 오는 여자와 가는 여자를 막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흥미로워졌다.
가끔 고독한 모습으로 술 마시는 성후에게 세정은 흥미를 넘어 어느 새 마음을 주게 되었다.
감싸주고 싶은 남자는 처음이었다.
성후는 차가웠지만 절대로 먼저 이별을 말할 남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세정은 안심하고 성후를 좋아했다.
하지만 성후는 그런 세정의 확신을 뒤엎고 이별을 통보했다.
“네가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 알거다. 내가 널 한 번도 마음에 둔 적 없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오빠 입에서 그 소릴 들으니까 잔인하네.”
“글쎄……. 내가 보기에도 넌 나를 단순히 흥밋거리, 자랑거리로만 여기지 않았나?”
“아니야. 난 오빠를…사랑해!”
세정의 감정까지 차갑게 말하는 성후에게 세정은 극구 부인했다.
“김세정, 사랑이라는 말……그리 쉽게 하지 마라.”
“오……빠.”
‘사랑’이라는 말에 성후는 세정을 노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세정은 너무도 차가운 성후의 반응에 섬뜩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면 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될 거다. 내 마지막 충고다.”
성후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나가려던 성후의 뒷모습을 보며 세정은
이대로 끝내기엔 억울함을 느꼈다. 성후가 이별 통보한 직접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오빠! 대체 이유가 뭐야? 나와 헤어지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네가 알 필요 없다.”
차갑게 말하고 나가는 성후를 바라보며 세정은 눈물을 흘렸다.
억울했다. 자신에게 저토록 차가운 남자와 연애한 시간이 너무도 억울한 세정이었다.
‘내가 왜…알 필요 없어? 그래도 이별하는 이유 정도는 알아야
내가 헤어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이대로는 못 헤어져. 아니, 안 헤어져!’
세정은 우현에게 연락했다. 성후의 가장 친한 우현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
“우현 오빠, 여기야!”
“성후…안 만났어?”
세정에게 이별을 이야기할 거라는 성후를 본 우현은 세정이의 연락이 얼떨떨했다.
울었는지 세정의 눈가는 촉촉했지만 워낙 자존심이 센 여자애라 우현은 별 말을 안했다.
“만났어.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말만 하고 나갔어. 정말 무심한 남자야.”
평소 발랄한 세정의 모습이 아닌 처량한 세정을 보자 우현은 걱정했다.
친구지만 성후는 여자들에게 잔인한 남자였다.
처음에 세정과 성후가 사귄다고 했을 때 친구 성후가 아닌 세정이 걱정되었다.
“우현 오빠, 오빠는 성후 오빠가 왜 저러는지 알지? 이유나 알고 헤어져야지. 너무 억울해!”
“넌…모르니?”
“모르니까 이렇게 오빠에게 묻잖아.
설마…성후 오빠,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건……아니지?”
“…….”
“뭐야? 정…말이야? 말도 안 돼!”
세정은 우현이 대답하지 않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자에게 그토록 차가운 남자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세정의 입장으로선 질투가 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성후의 마음을 가진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성후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무모해.”
“그게 무슨 소리야? 무모하다니? 그 여자 누구야? 오빠는 알잖아.
누구야? 성후 오빠가 나를 차버릴 정도로 대단한 여자야?”
“김세정, 성후에게 직접 들어라. 나도 성후의 마음이 어떤지 파악이 안 돼.”
BEST의 간판스타인 ‘스페아’에 관한 것은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러운 우현이었다.
BEST의 연습생이 된 이후 성후는 스페아의 앨범을 전부 다 사버렸다.
스페아와 서슴없이 대화하는 성후를 떠올리며 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우현은 스페아를 동경했지만 성후는 동경을 넘어 스페아에게 더 다가가려고 했다.
스페아의 콘서트와 촬영장 보조를 자청하던 성후였다.
“거짓말 마. 오빠는 다 알고 있어. 누구야? 어서 말해 봐.
내가 그 여자를 해할까봐 그래? 나 그렇게 나쁜 애 아냐.”
망설이는 우현을 세정이 재촉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정은 성후의 마음을 가진 애를 찾아가 목을 비틀어버릴 심정이었다.
우현이 무모하다고 여기는 상대가 대체 누군지 우현이 망설일수록 더 궁금해졌다.
“성후가 선배에게 느끼는 존경인지, 이성에게 느끼는 호감인지 정말 나도 모르겠다.”
“선배에게 느끼는 존경? 그런 BEST에 있는 연예인이야?”
“그래.”
세정은 이제야 성후가 BEST에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현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어쩌면…스페아 때문일 거다.”
“뭐? 그, 그 스페아?!”
“그래. 성후가 무모하긴 해. 스페아의 공연을 보고 가수를 꿈꿨으니까.”
세정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같은 연예인끼리도 서로 만나기 어려운데
그렇게 큰 가수를 따라 연습생이 도니 성후가 무모하게 느껴졌다.
스페아는 세정이 봐도 매력적인 가수였지만
성후의 마음을 가진 여자라는 생각에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스페아의 안무 연습실]
발랄함이 느껴져야 할 곡에 나는 발랄함은 전혀 고사하고 반 박자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연습해서 다행이었다. 심난해서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연습실에 나왔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콘서트를 열었으면 정말 최악이었을 것이다.
NICE팀과 매일 맞추던 동작인데도 오늘따라 너무 어려웠다.
답답하다, 너무 답답했다.
정욱 오빠와 헤어질 때는 미안함만 느껴질 뿐 이토록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제프가 고백했을 때 너무 기뻤다. 그의 새 사랑이 나라는 사실이 흥분되고 좋았다.
하지만 그 순간 진이 떠올랐다. 그래서 제프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마음이 대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제프가 보고 싶다. 그가 자꾸 보고 싶다.
나를 향해 지어주는 바다 닮은 시원한 미소와 나를 아껴주는 배려를 잊지 않는 남자.
밝은 것 같지만 유명인의 고독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순수한 사랑의 상처로 방황하기도 했던 약한 남자.
하지만 극비로 아시아를 여행할 정도로 독립심도 강한 남자다.
짧은 만남동안 내가 그에게 느끼고 있는 것은 많았다.
어쩌면 제프는 방황을 한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상태지? 진이 죽은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그 기간동안 나는 진을 추억하고 여전히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고 할 수 잇을까?
제프의 고백에 들떠 있는 내가 과연 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Not hesitate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야
망설이지 말고 다가서서 밟고 눌러서 이겨봐!
Not be emotional 흔들리지 말고 가봐
자신에게 있어 우울하지 말고 일어서 Let`s GO!
어느 새 나의 데뷔곡이 들리고 있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내가 쓴 가사인데도 지금은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진은 추억하고 제프는 사랑한다? 그래, 나는 제프를 사랑하고 있다.
제프를 사랑한다고 내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나의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이러다 내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닌가? 괜한 걱정도 했다.
그리고…진아, 나 사랑인가봐.
널 지금도 그리워하는데, 제프에게 느끼는 이 감정…사랑이지?
아! 난 제프의 고백을 물리친 상태였다. 지금쯤이면 제프가 상심하고 있겠지?
어리석고 소심한 내가 그에게 한순간 상처를 준 게 이제야 떠올랐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믿어야만 했다. 이젠 진에게 사랑이 아닌 추억이 짙은 것이다.
무모할 수도 있지만 지금만큼은 제프가 보고 싶다. 내가…제프에게 고백할 차례였다.
무모하지만 정말 무모하지만 그와 계속 만나고 싶다. 설마 한국을 떠난 것은 아니겠지?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연락해야겠다.
**
[엘리의 임시사무실]
제프가 서빈에게 고백한 이상 제프의 직속 비서실장인 엘리에게 보고해야 했다.
존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리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실내에 들어갔다.
무엇이 바쁜 듯 엘리는 잔뜩 쌓여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존, 무슨 일이죠? 급한 일이 아니면 한 시간 뒤에 다시 와줄래요?”
엘리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존은 그런 엘리의 모습을 많이 봐온 터라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급하다고 하기엔 중요하다고 표현할 일입니다.”
“중요한 일이라니?”
“세자 저하께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엘리는 그제야 서류를 놓고 존과 눈을 마주쳤다.
존은 그런 엘리의 반응에 탄력 받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곧 연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존이 날 속였군요.”
“속인 게 아니라 숨긴 겁니다.”
제프의 모든 사생활은 비서실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제프의 모든 생활을 기록하고 건강 검진과 식사도 비서실에서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제프의 연애에 대해 숨긴 그의 경호원으로 인해 엘리는 자존심이 퍽 상했다.
하지만 그깟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엘리는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했다.
“그 상대가 누굽니까? 한국인입니까?”
“네.”
“동양인이라…….나도 동양인이지만, 카샤르에서는 반갑지 않겠네요.”
“저…그런데 그냥 평범한 소녀가 아닙니다.”
“소녀? 어린가 보군요. 게다가 평범하지 않다니! 그럼 유명인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엘리는 대답을 망설이는 존을 보고 불안했다.
평범한 동양인 소녀와 사귀어도 쉽지 않을 텐데, 이번에는 또 누군지 엘리는 불안했다.
제프가 유명인과 데이트를 하면 비아냥거리는 언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 기사를 막느라 고생하는 것은 제프의 비서들이었다.
“가수 스페아입니다.”
“오, NO!”
스페아라면 절대 쉽지 않았다. 단순히 한국 내에서의 가수가 아닌 아시아의 스타였다.
그레이스가 팬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매력으로 아시아인들을 사로잡은 10대 소녀로
엘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스페아가 제프와 사귄다면 미국 진출은 보다 쉬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둘 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엘리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제프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존, 후에 저하의 신변에 위험이 가해진다면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일단 저하께 가보죠.”
엘리는 열심히 보고 있던 서류를 대충 쌓아두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4.
[제프의 숙소]
제프는 엘리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차를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가 소파에 앉자마자 따뜻한 홍차를 내어왔다.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군, 엘리가 궁금한 게 뭡니까?”
“스페아와 사귈 겁니까?”
“사귀고 싶어.”
“그렇다면 스페아도 저하와 같은 마음입니까?”
“아니. 그녀는 나를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프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백했을 때 팔찌를 한 번보고
무심하게 뒤돌아서 가버린 서빈의 뒷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제프였다.
여자들에 대해 쉽게 생각하던 제프가 한 여자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엘리는 당황했다.
생각보다 제프의 감정이 깊어보이자, 엘리는 스페아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하, 스페아도 저하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엘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콘서트 준비로 바쁜데도 얼굴을 감추면서까지 저하를 만나 왔습니다.
단순히 친구를 만나는데 그렇게까지 하진 않지요.
세자 저하께서 평범한 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당황해서 그럴 것입니다.
그녀에게서 곧 연락이 올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엘리는 제프에게 따뜻한 누나였다.
그 동안 제프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엘리는 제프를 동생으로 보듬어주었다.
공적인 일에서는 제프를 철저히 왕세자로 단속했지만 사적인 면에서는 제프에게 선생님이자 누나였다.
공적으론 제프의 사랑을 단속해야 했지만 지금으로서 엘리는 제프를 격려했다.
로라 이후 방황하던 제프를 지켜봤던 엘리였다.
“정말…그럴까?”
“그러니까 기운 내십시오. 그나저나 웬 술병입니까? 윽! 술 냄새! 제프 술 마셨습니까?”
“헤헤, 조금 마셨습니다. 아주…조금! 아주…아주…조오…금……”
주량이 꽤 센데도 곯아떨어질 정도면 많이 마셨다는 증거다.
엘리는 한숨을 쉬며 테이블 밑에 숨겨져 있는 빈 술병을 찾아냈다.
제프가 늦은 밤에 술을 찾은 것을 보면 스페아를 많이 좋아하는 듯 했다.
“이렇게 취했으면서 차는 또 어떻게 끓였대?”
엘리는 제프가 내온 홍차를 마시며 소파 위에 엎어진 제프를 봤다. 다시 걱정이 되었다.
둘이 연애한다면 말 그대로 전 세계가 들썩일 것이고 스페아가 세계적인 가수가 되기 위해
제프를 이용할 수 있었다. 과연 스페아가 왕세자비가 될 마음…아니, 자격이 있을까?
아무튼 지금은 제프의 마음이 중요했다.
**
[강남의 H스튜디오]
CF촬영 준비로 스텝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혜미는 스페아의 스케줄이 비어서 한창 바쁜 리연의 머리를 봐주고 있었다.
같은 BEST소속의 영화배우인 리연은 서빈과 혜미보다 언니였지만 여느 동갑내기 친구 못지않게 친했다.
“서빈이 오늘 스케줄 없는 걸로 아는데, 같이 오지 그랬니?”
“…….”
"혜미야!"
“어? 응, 언니. 뭐라고 했어?”
“너 내 말 들었니? 무슨 생각하느라고 그리 멍하게 있어?”
리연의 머리에 빗질만 하면서 어딘지 고민 있어 보이는 혜미가 걱정되는 리연이었다.
늘 쾌활한 모습으로 일하던 혜미를 봐온 리연으로서는
걱정스럽고 또 무슨 생각에 일까지 잘 못하는 건지 궁금했다.
“언니, 서빈이가 이상해.”
“서빈이가? 왜?”
“불안해보여. 연애를 하는 건지 나에게까지 숨겼어.
애물단지 취급하던 핸드폰을 언제부턴가 손에서 놓지도 않고 촬영 때 울기까지 하고 말이야.
걱정되어서 오늘 아침에 서빈이네 갔더니 새벽부터 어디론가 갔더라고.
나쁜 계집애, 나에게까지 사생활이라며 숨기다니.”
혜미는 못내 서운했다. 자신에게 숨기면서까지 혼자 고민하는 서빈에게 서운했고 멀게 느껴졌다.
죽은 진을 잊지 못하고 정욱과 헤어졌던 서빈이 영영 연애를 못할까봐 친구로선 내심 걱정했다.
비록 연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지만 서빈이가 연애를 한다면 적극적으로 응원해줄 수 있었다.
“서빈이가 많이 혼란스러웠나보네. 우리들에게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거 보면…….”
혜미와는 다르게 리연은 담담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지만
연예인이기에 연애나 사랑에 대해선 조심스러웠다.
“혜미야, 너무 서운해하지마. 서빈이의 입장도 한 번 생각해줘야지.
서빈이도 결심이 서면 언젠가 말해 줄 거야.”
“그치만 언니…”
“아직 준비 안됐어요? 정혜미! 너 아직도 그러고 있어?”
“으앗! 몇 시지? 어휴, 내 정신 좀 봐. 서 실장님, 죄송합니다.
얼른 준비할게요. 다되어가니까 좀만 기다려주세요.”
리연이 좀처럼 대기실에서 나오지 않자 리연의 매니저인 서 실장이 혜미를 불렀다.
혜미는 얼른 리연의 머리를 정리했고 리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배우다운 아름다움을 보였다.
“역시 너의 솜씨는 최고야.”
“후훗, 내가 한 솜씨하지 .어서 나가봐. 나 때문에 괜히 늦게 시작한 촬영, 더 늦어지겠다.”
“그래. 아, 참! 서빈이 일은 당분간 모른 척하면서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 기다려.”
“알았으니까 얼른 가봐.”
리연은 빙긋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서빈과 같이 출연한 영화 ‘친절한 거리’가 관객몰이에 성공한 이후
리연은 새로운 영화 촬영과 CF활동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화 촬영 이후 더 바빠진 탓에 서로 얼굴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꾸준히 연락해오던 리연과 서빈이었고 서로에 대한 우정도 남달랐다.
특히 미국에서 쌓아온 우정은 혜미도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각별했다.
“성후야, 너 정말 촬영보조일 할거니?”
“응.”
스페아의 콘서트 기획안에 대한 중간점검을 끝내고 예화는 성후를 불렀다.
연습생들이 촬영보조로 뛰면서 공부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자청하면서까지
촬영보조를 따낸 성후가 이상했다.
“왜? 어차피 스페아 콘서트에 연습생들 다 관람하기로 되어있어.
물론 일손이 부족하긴 하지만 네가 나서야 될 만큼 빠듯하진 않아.”
“…….”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니? 나 사실 네가 BEST연습생으로 들어온 것도 이상해.”
“이상할 거 없어. 난 연습해야 하니까 누나 먼저 들어가.”
연습실로 향하는 성후의 뒷모습을 예화는 불안하게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매사에 차갑고 냉정하던 성후였다. 물론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취미로만 여겼다. 그런 성후가 눈을 반짝이면 BEST에 들어왔고
독선적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서빈과 대화를 스스럼없이 하는 듯 했다.
‘성후야, 가수가 되는 거……그것보다 되고난 이후가 더 힘든 일이야.’
BEST의 간판이 스페아의 코디이자 매니저인 예화로서는 가수가 된 서빈이
악플에 시달리면서도 표정관리에 여념 없던 모습을 쭉 봐왔다.
행동 하나와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위치에까지 오른 서빈이
버거워하는 거 같아 늘 걱정이었다.
**
결국 밤새 한숨도 못자고 새벽부터 허겁지겁 밖에 나왔다.
물론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4월이라서 그런지 이젠 봄기운이 제법 느껴졌다. 답답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제프의 고백을 들은 장소에 왔다. 또한 연습이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주 왔던 한강이었다. 바다가 없는 서울에서는 한강이 바다와 같은 곳이었다.
“진아, 너 질투했지? 내가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좋아해서 말이야.”
나는 조그마한 돌멩이를 던지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어딘 가에 있을 진의 영혼만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욱 오빠와 헤어질 때는 이 정도로 답답하진 않았어.
그냥 미안함에, 정욱 오빠에 대한 미안함에 슬펐지. 그런데 말이야.
제프와 시작도 안 했는데 가슴이 저리다. 그의 마음이 용기를 내어 새로운 사랑이라고 고백했지만
나는…나는……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랬다. 제프도 분명 어렵게 마음을 다 잡았다. 로라와의 추억을 버렸다고 제프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나는 진과의 추억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 거지?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나는 수만 명의 팬들 앞에 있는 거보다 더 떨리고 흥분됐어.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너를 떠올렸고 자연적으로 너와의 추억이 떠올랐어.
로라와의 추억을 버렸다는 그의 앞에 나는 너를 추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제프의 고백을 받아들이면 너무 뻔뻔하잖아.”
나 혼자 주절대는 꼴은 누군가가 본다면 미친 사람으로 여길 거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해가 뜨면서 붉게 반짝이는 강물은
순수한 열정으로 살다간 진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진아, 널 생각하면서도 제프를 놓치기가 싫어. 그 유명한 카샤르의 왕세자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그와 계속 만나고 싶어. 너와 사귈 때는 너의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지만,
제프와 사귄다면 전 세계가 반대하겠지? 그래도…그와 사귄다는 생각만으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려.
진아, 나도 제프처럼 너와의 추억을 버려야 하는 거니?”
대답 없는 강물은 잔잔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한참동안 강물만 멍하니 응시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통화가 꽤 많았지만 그 중에서 제프에게서 온 연락은 하나도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눌렀다. 제프는 컬러링을 넣지 않아 들려오는 통화음이
너무 초조하게 했다. 내 심장은 이것보다 더 빨리 두근거릴 거라 생각했다.
[서빈 씨? 서빈 씨죠?]
“……제프.”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눈물이 차올라서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나 또한 ‘제프’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자 저하라고 부르기엔 나에게 있어
제프는 세자 이전에 제프였다. 제프에게도 내가 가수 스페아보단 서빈이듯이 말이다.
[서빈 씨, 난 또 서빈 씨가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제프, 제가 늦은 건 아니죠?”
[그…무슨?]
“제프에게 저의 마음을 다시 전해도 되는 거죠?”
[서빈 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집입니까?]
“…….”
[혹시…한강입니까?]
제프는 다급하게 내가 있는 장소를 물었고 나는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목이 메었다. 제프의 목소리가 너무도 따뜻하게 들렸다.
나의 말 한마디에 크게 반응하는 그가 너무 좋았다.
“한강…맞아요. 제프, 나 제프에게 고백 받은 그 장소에 있어요. 와…주실 거죠?”
제프가 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얼굴 마주하기가 어색했다.
겨우 소심하게 ‘와주실거죠?’라니! 너무 소심했지만 그의 답이 기다려졌다.
그가 와줬으면 좋겠다.
[당연하죠. 지금 당장 서빈 씨에게 갈 겁니다.]
“제프, 너무 고마워요.”
[서빈 씨,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요. 지금 당장 갑니다. 지금 당장요!]
기다리게 한 건 난데, 상처 준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제프는 내가 기다리는 게 싫은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렇게 좋은 남자에게 나는 심장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5.
연락한지 10분도 안 돼서 제프가 왔다.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도
그는 상당히 초췌한 모습이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그가 입은 남방의 단추가 엉망으로 잠겨있었다.
항상 위엄을 유지해야 할 왕세자의 망가진 모습은 너무 사. 랑. 스러웠다.
“서빈 씨, 많이 기다렸어요? 새벽부터 여기에 온 건 아니겠지요?”
도착하자마자 한다는 말이 자기보다 날 걱정하는 소리였다.
이틀 만에 망가진 자신은 신경도 안 쓰는 건가?
“제프, 술 마셨어요?”
“냄새…납니까?”
“아니요. 카샤르 왕세자의 비싼 남방의 단추가 헝클어진데다가
바지 주머니에 살짝 나온 술잔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하하! 이런…….”
제프는 민망하진 얼른 단추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흰 속살을 보고야 말았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그의 상의 단추를 잠가주고 있었다.
“앗! 미안해요.”
“아니오, 서빈 씨가 잠가주니 더 좋은데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제프의 미소에 내 얼굴에 열기가 느껴졌다.
떠오르는 붉은 햇살에 더욱 빛나는 금발의 제프는 너무도 눈부셨다.
차가운 이미지의 왕세자가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남자로서의 제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제프에게도 첫사랑이 있듯이 나도 첫사랑이 있어요.
다만 제프와 다른 것은 저의 그 첫사랑은 지금……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서빈 씨!”
몇 년이 지났는데도 진이 죽었다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내말에 제프는 놀랐는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내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힘들게 시작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된 듯했다.
“아직 방송에서 말한 적은 없어요.
아니, 진에 대해서 함부로 떠드는 게 싫어서 계속 입 다물 생각이었어요.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결혼하더라도
내 남편에게도 숨길 생각이었는데…결국 제프에게 말하게 되었네요.”
“난 서빈 씨의 아픔을 알고 치유해주고 싶어요. 맘 편히 털어놔요.”
“제프, 제프는 로라와의 추억을 버렸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진과의 추억을 버릴 수가 없어요. 진이 죽고 힘들게 가수가 되어서
나를 아껴주던 오빠와 사귀게 되었지만 두 달도 안 돼 헤어졌어요.
진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건 꿈도 못 꾸었어요.
제프가 고백한 그 순간에도 진을 떠올렸어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제프가 겨우 용기를 내서 새 사랑이라고 고백을 했건만 나는 겁이 났어요.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랬군요.”
제프는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나는 자연스레 기대었다. 두근거리는 이 느낌…너무 좋다.
“하지만 막상 제프의 고백을 거절한 후 나는 심하게 망설였고 마음이 아팠어요.
단순히 제프에게 미안함만 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프를 좋아해요.
그런데 아직도 진을 추억하는데 내가 과연 제프를 마음에 둘 수 있을까요?”
“서빈 씨, 나를 봐요.”
나는 제프와 눈을 마주쳤다. 푸른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었고 그의 얼굴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그 사람을 추억하고 떠올리는 건 단순히 그리움 때문이에요.
그를 떠올렸을 때 가슴이 아픈가요? 그건 지나간 사랑에 아쉬움일 뿐, 절대 사랑일 수 없습니다.”
“제프, 정말인가요? 정말 단순한 그리움일까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남자친구가 있기도 했습니다.
서빈 씨, 그 사람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사랑은 아닙니다.
저도 평생 로라를 사랑할 줄 알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추억 상대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 그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든, 살아있든 간에 사랑했던 그 감정은 다 깊었을 것이다.
또 추억일 뿐 그 이상의 감정이 될 수 없다.
나에게도 진은 과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미련스럽게 진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제프, 나는 바본가 봐요.”
“맞아요. 서빈 씨는 바보에요. 앨범 천만 장을 팔아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챙기지 못하는 바보!”
“치! 그럼 제프도 바보! 기껏 새로운 사랑을 한다고 자랑해놓고 금세 술마시는 바보!”
“하하하하! 하여튼 한마디도 안 져요!”
제프는 투덜거리는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 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서로 가까워져서 기뻤지만 금세 걱정이 앞섰다.
“제프, 우리…이제 사귀는 거죠?”
“당연하죠!”
“그럼 언론에는…”
“그런 건 걱정 마세요. 서빈 씨 가수생활에는 지장 없도록 할 테니까.
한국에서 입지를 다시 다지는 중요한 시기에 제가 서빈 씨의 꿈을 꺾을 순 없잖아요.
천천히 밝혀요. 서빈 씨가 나의 부인이 될…마음이 생긴다면…그 때 밝혀요.”
제프는 결혼에 대한 말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제프의 부인?
그래, 제프는 평범한 남자가 아닌 한 나라의 왕세자였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지위를 가지는 셈이다. 과연 내가 그와 어울리는 아내가 될 수 있을까?
“그래요. 제프의 말대로 해요.”
나는 제프의 품이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따뜻한 제프의 품을 더 느끼고 싶었다.
제프는 나에게 못 준 팔찌를 겨의 선물하고야 말았다. 자기 여자친구라는 증거라나!
아무튼 백은과 진주로 되어있어 깨끗한 느낌이 들어 너무도 맘에 들었다.
‘진아, 미안해. 넌 하늘나라에서 분명 잘 지낼 텐데
내가 미련스럽게 널 붙잡아 두고 있었어. 내 생각만하고 널 여전히 사랑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너와 날 더 힘들게 한 거 같아. 거기선 행복하지? 가끔…이제 아주 가끔 널 추억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귀찮아하지 마. 그리고 거기선 행복해야 해. 잘 가, 나의 첫사랑~’
「엘리, 서빈 씨가 제프와 사귀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수고했습니다, 존. 앞으로 그 둘 사이가 파파라치나 언론에
새지 않도록 더 각별히 주의하세요.]
「알겠습니다.」
제프와 서빈의 뒤에서 지켜보던 존은 엘리에게 보고를 했고
그들이 부디 언론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빌었다.
**
BEST 로비에 있는 세정을 보고 성후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오빠!”
“왜 왔냐?”
성후의 차가운 태도에 이미 적응했을 만도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상처받는 세정이었다.
그리고 이미 성후가 마음에 둔 여자를 알아버린 순간 역시 화가 나기도 했다.
“나랑 헤어지려는 이유가 스페아 때문이야?”
세정의 입에서 '스페아'가 나오자 성후는 짜증났다.
미묘하게 변하는 성후의 표졍을 보고 세정 역시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그래?”
“누가 그러든지 간에 난 지금 오빠의 진심이 궁금해.
정말 스페아 때문에 가수되려고 BEST에 들어간 거야?
내가 있는 JIS에 안 들어온 게 정말 스페아 때문이냐고?”
“내가 누굴 좋아하든 너와 상관없다.”
“웃기지마! 어떻게 나와 상관없어? 그래도 명색이 오빠 여자친구야.
그리고 그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진심이 궁금한 건 당연한 거잖아.
기가 막혀서 어제 하루 종일 멍하게 있었어. 나를 차버린 이유가 스페아 때문이라니.”
“김세정, 너 원래 이렇게 사설이 길었냐?
남자관계에서만큼은 쿨하기로 유명한 김세정이 왜이래?”
성후는 세정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서로 애틋하게 좋아서 사귄 게 아니라
그저 자랑거리로 사귄 사이라는 건 세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성후 역시 세정의 그런 쿨함이 성가시지 않아 사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말 몰라서 그래? 나 오빠 좋아해! 정말 좋아한다고!”
“날 좋아한다는 애가 내 후배랑 바람이 나?”
“오, 오빠가 그걸 어떻게…….”
“우현이 자식도 웃기는 새끼다. 너같이 구제불능인 애를 걱정하는 꼴이라니.
김세정,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너의 그 쿨함이 정도가 지나쳐서 역겨울 지경이야.
그리고 우현이 놈에게도 연락하지 마!”
성후는 차갑게 쏘아대고 BEST로비를 빠져나갔다.
세정은 성후의 매정함에 새삼 서운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차가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 스페아를 만나고 싶어졌다.
**
[BEST Entertainment 사장실]
내가 지금 사장실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첫 콘서트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의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일정이었다.
그것도 서울 돔에서의 콘서트라니. 가수로서 크나큰 광영이 아닐 수가 없었다.
“기분이 어때? 이제 일주일 남았다.”
“담담합니다. 거의 하루 종일 연습해왔으니까 자신감이 넘쳐서 탈이죠, 후후후.”
나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사장님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곧 본래의 사업가적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번 콘서트 후에 3집 발매도 서둘러야 한다. 앨범 작업은 저번 주에 끝냈지?”
“네, 타이틀 곡 안무도 거의 다 구성했습니다.
장르가 거의 록(rock)이어서 그리 큰 안무는 없고
어차피 밴드와 함께 라이브로 무대에 오를 거니까 컴백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후속곡도 다 정해야지.”
사장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의 콘서트 기획안을 훑어보았다.
데뷔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서운 사장님으로 군림하셨지만,
데뷔한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유들유들해지셨다.
스케줄 펑크만 아니만 언제나 저런 흐뭇한 표정이라니.
“저, 사장님, 콘서트 표 나온 거 있어요?
명색이 저의 콘서트인데, 아직 표도 못 봤습니다.”
“아, 그래? 여기 있다. 영민이가 안 줬니?”
“요즘 얼굴을 못 봤어요. 대체 영민 오빠 뭐하는데요?”
“으이구, 명색이 스페아 매니저란 녀석이!
그래도 네 콘서트 준비에 열 올리고 있는 중이니 너무 섭섭해 마라.”
“섭섭할 거까진 없고 매일 지겹게 본 사람이 안 보여서요.”
현재 BEST는 유독 바쁜 시기였다. 게다가 서울 돔에서 개최하는
내 콘서트에 참여하는 관계자만 하더라도 수백 명이라 들었다.
그것을 총괄하는 사람이 영민 오빠니까 아무래도 며칠 야근했는지도 모른다.
“표가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어차피 네 가족에게도 초대권을 보내었는데, 누구한테 주려고 그러냐?”
“아…친구요, 친구! 혜미 말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려고요.”
어차피 혜미와 리연 언니에게도 초대권이 보내졌을 테니까.
나는 제프가 내 콘서트에 와 주길 바라면서 콘서트 표를
내 손으로 직접 전달하고 싶었다. 어차피 카샤르에서 같이 온 경호원 존처럼
여러 왕실 관계자들을 생각하니 여러 장이 필요하기도 했다.
“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안무 연습 좀 더해야죠.”
“넌 데뷔 전보다 더 열심이야. 그래. 콘서트 전까진 수고해!”
콘서트 표를 손에 꼭 쥐고 사장실을 나왔다.
제프에게 첫 선물이 나의 첫 콘서트 R석 초대권이 되는 셈이다.
그에게 받은 은팔찌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록 공식석상에 나의 ‘연인’이라고 소개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 의미있는 무대에서 그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평범한 강서빈이 아니라 제프의 부끄럽지 않는 연인, 가수 스페아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카샤르 왕세자의 연인이 가수라는 것이
제프의 명예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인기에만 벌어먹는 삼류가수가 아닌
제프의 명예에 어울릴 수 있는 훌륭한 가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아시아의 톱 가수’라는 수식어에 어느 정도 만족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제프와 사귀는 입장이 되자, 아시아로 만족하기 싫어졌다.
‘세계’를 노리고 싶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6.
한창 바쁜 시기에 나는 2시간의 자유 시간을 틈새로
제프와 작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의 평범한 가정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제프로 인해
주로 연령층이 높은 손님들이 찾는 식당에 왔다.
덕분에 나와 제프를 알아보는 경우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았지만,
외국인인 제프가 신기한지 아예 대놓고 쳐다보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제프, 부담스럽죠? 차라리 조용한 레스토랑이 나을 뻔 했어요.」
「아니요, 레스토랑에 가면 더 눈이 띱니다. 그나저나 서빈이 너무 무리하는 거 같군요.
콘서트 준비로 바쁠 텐데 굳이 저에게 시간을 뺏기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콘서트 때까지는 당분간 외출금지에요.
오늘이 콘서트 전 마지막으로 제프 얼굴 보러 나온 건데 너무 뭐라지 말아줘요.
호호호! 아, 참! 이거 받아요.」
나는 제프에게 콘서트 표를 여러 장 내밀었다.
「어? 콘서트 표군요. 서빈 씨 콘서트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바람에
암표라도 구할까 했는데, 마침 선물로 주시네요.」
「암표라니! 말도 안 돼! 명색이 여자친구 콘서트인데
그 남자친구가 그 공연장에 없으면 되나요? 정말 안 좋을 뻔 했네요!」
내가 새침데기 표정으로 흘기자 제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6살이라는 나이차이가 느껴지는 저 듬직함 때문에 내가 점점 유치해지는 건 아닌지…….
「나 사실 내 콘서트 때 마음 같아선 제프를 ‘내 남자친구입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참을래요. 대신 무대에서 제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은밀하게 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막상 ‘제프’라는 이름을 말하면 한국인 이름 속에서 너무 튈 거 같아서 고민이에요.」
정말 솔직하게 외치고 싶다.
카샤르의 왕세자는 내 남자니까 이 세상 여자들 꿈 깨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쏟아질 수많은 관심과 망언들 속에서 견디기에는
아직 옛사랑의 상처가 있다.
그리고 서로 안 지 이제 겨우 두 달이고 사귄지는 고작 며칠이라서 조심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난 이미 서빈의 마음을 지금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아니요. 내가 싫어서 그래요. 잠깐! 제프, 제프, 제프…음!」
「서, 서빈 씨,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가…」
「잠깐만요. 제프는 밥 한 숟갈 더 떠요. 난 잠시 고민 좀 해야겠어요.
제프와 어울리는 한국이름을 찾아야지!」
제프는 내 눈치를 보고 있고 나는 몇 분간 생각 끝에 떠올랐다!
「재준! 재준(才俊)이라는 이름 어때요?
재주 재, 준걸 준! 딱 좋네! ‘제프’라는 이름과 발음도 비슷한데!」
“Jae, Jae-jun?”
“Yes! Jae-jun!!”
「좋네요!」
OK! 나는 제프에게 ‘재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드디어 제프를 맘껏 부르겠구나! 콘서트에서 뿐만 아니라
제프와의 관계가 알려지기 전까진 재준이라 부를 생각이다.
아, 그리고 우리 커플은 다른 커플들과 완전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서로 존대를 하는 것이다. 영어로 말할 때도 정중하게 말하였고
지금도 역시 제프와 나는 서로를 존댓말로 대한다.
물론 서로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반말을 할 수 있으나
우리는 은연중에 서로를 존경하기 위해 반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6살이나 어린데도 제프는 아직도 나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나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예를 갖추고 존경함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서로 존대하는 연인!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로맨틱하지 않나?! (작가曰 잘났다!)
“재준 씨.”
“네, 서빈 씨.”
즉시 대답해주는 제프가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미소를 짓자 제프도 나를 보며 싱긋 웃는다.
바라만 봐도 좋다는 게 이런 것인가? 정말 바라만 봐도 그가 너무 좋다.
“우리 앞으로 한국어로 대화할 일이 있으면 전 앞으로 ‘재준’이라 부를게요.”
“알겠습니다, 서빈 씨. 그럼 영어로 대화할 때 전 서빈 씨를 Bin이라 불러도 되죠?”
“맞아! 내 이름 발음하기가 어렵죠? 왜 그 생각을 못했지?
OK! Bin…좋네요, 호호! 이것으로 협상타결!”
“OK! 협상타결! 하하하!”
“어이! 거기 외국청년, 조용히 좀 하면 안 되겠소?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 더 잘하는 거 같아 배 아프다오.”
“Yes! 알겠습니다. 대신 영어로 대화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재치 있는 청년일세. 됐소! 농담이야, 농담! 한국말 좋지!”
정겹게 말거는 사람들로 인해 식당 안의 분위기가 더 고조되었다.
제프도 그런 분위기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짧은 데이트였다.
**
[BEST Entertainment 제3연습실]
새로운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 위해 BEST의 최종 오디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자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5명을 가리기 위해 BEST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심사위원으로 결성되었다. 특히 ‘K-6’의 보컬인 ‘서욱’이
이번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더욱 화제가 되는 바람에
이 오디션 과정이 케이블 채널의 리얼리티 쇼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오디션장의 분위기는 다소 긴장되어 있다. 최종 오디션답게 참가자들의 실력이 막강했다.
“자신 있냐?”
“뭐 그런대로.”
“하긴 성후 넌 워낙에 잘났으니까 뽑힐 거 같다. 연습도 열심히 했고
실력도 있으니 작곡가 선생님들께 칭찬을 두루두루 받지 않았냐.”
옆에서 우현은 성후를 두둔했다. 정작 성후는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지만
가수가 되겠다는 열정은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우현은 알고 있었다.
또 데뷔를 한다면 지금보다 자주 스페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성후는 이번 오디션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단순히 BEST내에서의 오디션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연습하는 모습까지 한 달 전부터 촬영해왔고
오디션의 결과까지 4부작으로 제작되어 곧 방송될 것이다.
그래서 이 그룹에 대한 인지도를 데뷔 전부터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최종 오디션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더욱 긴장했어. 휴우~”
제일 처음 오디션을 본 지원이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야, 서욱 선배도 왔다던데, 정말이야?”
“응. 남자가 봐도 정말 멋있었다. 카리스마 작살! 이던데?”
역시 ‘K-6’의 ‘서욱’이 심사위원으로 나온 것이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성후는 자신도 모르게 ‘서욱’의 이야기에 짜증이 났다.
스페아와 서욱이 친하다는 것은 BEST내에서 뿐만 아니라 팬들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후는 둘 사이가 더 친밀하게 느껴졌고 서욱이 딱 한번 연습생실에 왔을 때
스페아를 보는 눈빛을 보고 더욱 확신이 들었다.
‘서욱은 스페아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잠시 후 성후보다 먼저 오디션을 본 우현은 별로였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대기실에 들어왔고
성후가 위로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이 성후 차례였다.
“은성후, 스페아의 콘서트 스텝 지원을 자청한 연습생이 너야?”
정욱(서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후에게 물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스페아의 콘서트 덕분에 연습생들은 좋은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
스페아의 콘서트에 초대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것인지 연습생 중 한 명이
초대권을 거부하고 콘서트의 스텝 일을 자청한 탓에 정욱은 뭇 신경 쓰였다.
“예, 제가 은성후입니다.”
정욱의 포스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기만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성후를 보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놀라워했다.
그 둘은 공식적인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 했다.
“연습생들 중에서 네가 제일 가창력이 좋다지? 그렇다면 오늘 오디션에서는 춤을 춰봐.”
“서욱 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다면 노래를 부르지 마라는 거에요?”
정욱의 말에 놀란 다른 심사위원인 정 선생이 물었다.
“일단 이 음악에 맞춰서 춤 춰봐.”
정욱은 정 선생의 말에 손짓을 하고 K-6의 곡 중 가장 격렬한 리듬을 가진 곡의 반주를 켰다.
성후는 그 반주에 잠시 귀를 기울여 리듬을 살피다가 몸을 움직였다.
절제하면서도 힘 있는, 좌중의 시선을 모으는 분위기의 소유자는 바로 성후였다.
심사위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성후의 춤을 감상했고 정욱은 괜히 긴장되었다.
‘뭐야? 저 녀석……. 정말 발라드 쪽으로 가려던 녀석 맞아?’
몇 분간의 격렬한 댄스 끝에 성후도 힘들었는지 땀을 흘렸다.
이 때 정욱이 또다시 제안을 했다.
“네가 제일 자신 있는 노래 불러봐.
제대로 된 가수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려면 가장 힘들 때 노래를 불러봐야 하지 않겠어?
지금 당, 장! 불러봐.”
정욱의 지독한 제안에 심사위원들은 놀라서 정욱을 하나같이 보았다.
웬만해선 연습생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정욱은 묘하게도 성후에게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매일 러닝머신 위에서 보컬연습을 해온 탓에 정욱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감정표현도 중요한 발라드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 가는 길에 보내주려 해
널 위한 이 반지
잃어버리지 마
손에 꼭 쥐고 가
언젠가 네 곁에 가게 되는 날
그때 내가 너의 손에 끼울게~~
넌 마음 편히 먼저가
-조성모 ‘For your soul’ 中에서
완벽한 신인탄생의 예고였다.
스페아 이후 BEST에서 내세울 신인을 뽑는 최종오디션답게 그 참가자들의 실력 또한 대단했다.
그 중 단연 성후의 실력이 으뜸이었다. 게다가 긴장되기 마련인 오디션에서도 저 무심한 표정은
대중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으로 스타로서의 분위기가 연습생인데도 불구하고 나타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춤을 추었다고 보기 어렵게 성후의 노래는 깔끔했다.
물론 가창력이 요구되는 부분에서의 고음처리 또한 훌륭해서 심사위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비판이 오고가야 할 분위기가 성후로 인해 조용해진 것이다.
BEST에서는 새로운 스타를 예고했고 정욱은 스페아의 데뷔 때처럼 또다시 긴장했다.
**
[BEST Entertainment 사장실]
“단순히 BEST내에서의 오디션이 아니라 엄연히 방송될 장면이라는 거 몰라?”
“…….”
“성후가 나왔을 때 네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더구나.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성후의 담담한 표정에 비해 넌 얼굴에서부터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어.
어떻게 연습생보다 표정관리를 못해?”
“죄송합니다.”
최 사장은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멀찍이서 오디션 장을 바라보고 오는 길이다.
내로라하는 연습생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후가 나왔을 때 카메라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정욱은 즐거워하던 표정을 순식간에 싹 지워버린 것이다.
“내가 담당 PD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성후가 나왔을 때의 너를 편집하기로 했다.
그런 줄 알고 있고 너 역시 자기관리 철저히 해.
데뷔한지 6년 째 접어드는 가수가 연습생 앞에서 무색해지는 꼴이었다.”
정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최 사장은 그럴수록 정욱이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BEST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성후 역시 그 실력이 뛰어나
분명 K-6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추앙받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죠.”
“성후가 예화 동생인 거 아니?”
“예화 누나 동생이요?”
“그래. 고아로 자란 탓에 성격이 어두울 지도 몰라.
한편으로는 밝고 명랑한 예화의 동생이라 의외로 밝은 면도 있겠지만…….
성후랑 친하게 지내도록 해. 이왕 한솥밥 먹게 되었는데 친하게 지내야지.”
“……네.”
정욱은 전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남매라고 생각했다.
성후와 친하게 지내라는 최 사장의 말에 긍정적인 대답을 했으나,
여러모로 경쟁하는 이 시점에서는 전혀 친해질 사이가 아니었다.
특히 정욱이 사랑하는 여자, 서빈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민감했다.
묘하게 서로를 연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둘이 서로 신경전을 벌일 때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 이미 서빈과 연애 중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7.
[SPe.A.'s 1th Concert-JOIN in Seoul Dome]
새벽부터 나와 전체 리허설을 마친 이 시점에 나는 잠깐 눈을 붙였다.
지난 일주일동안 간간이 제프와 전화통화만 했을 뿐 만나지 못해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다.
콘서트 날짜가 다가올수록 연습시간을 더 늘인 덕분에 요 며칠 동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젯밤에 일찍 자서 컨디션이 나름 양호한 편이었다.
“서빈아, 일어나 봐. 머리 다됐어.”
혜미가 나를 깨웠다. 아, 참! 나 염색 중이었지!
보이시한 헤어스타일을 좀 더 가꾸었고, 밝은 갈색으로 다시 염색하였다.
간간이 빨간 브리지를 넣는 바람에 상당히 튀는 스타일이 되었다.
“로커가 다 되었네. 뭐 그래도 좋아.”
“어머! 얘는…참! 무조건 로커스타일은 아니야. 이건 새로운 스페아만의 스타일이라고.
너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 록 분위기라서 잘 어울려.
후후후! 일본 년이라고 욕하던 안티들에 대한 발악으로 나라사랑 노래라……. 역시 넌 대단해!”
“안티들에 대한 발악만은 아니야.
지난 1년 넘게 해외활동을 하다 보니 조국이 그리웠어.”
나의 나라가 괜히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해외에 있는 동안 태국기가 보이면 마음이 찡해졌다.
정말 나라에 애정이 없던 어린 내가 해외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랬을 거야! 아, 서둘러. 앞으로 공연 30분 전이야.
아까 예화 언니가 마지막으로 의상 점검 마쳤어.”
“OK,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콘서트 시작시간이 다가올수록 대기실 분위기는 분주해졌다.
인터뷰와 게스트들과의 면담은 이미 아침에 끝냈고, 이제 정말 콘서트만 남은 것이다.
콘서트는 나의 첫 싱글앨범의 수록곡 ‘Issue’로 시작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어 나또한 모두를 바라 봐
Your passion 열정이 필요해
Your issue 모두가 바라봐
I'm exciting in my concert!
콘서트가 시작된 이 상활을 잘 표현한 곡이다.
정말 노래처럼 수만 명의 관중들이 나를 보고 있다.
처음 내가 무대에 올랐을 때 환호하는 소리에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내 노래에 경청하느라 아주 잠잠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 역시 관중들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Issue' 이후 연속 3곡으로 조용한 노래를 불렀고
나는 R석에 있는 가족과 스텝들을 간간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라드를 부를 때 나의 연인 제프가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제프가 있었지만 제프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고 옆은 누군가와 대화중이었다.
그것도 웬 여자와 함께…….
결국 나는 분노의 감정을 숨기고 겨우 노래를 끝 맺힐 수 있었다.
나를 보기위해 온 콘서트면서 다른 여자와 수다 떠는 모습이라니.
“서빈 선배, 왜 그래? 어디 안 좋은 거야?”
“어? 아니야, 성후 오빠.”
“정신 차려. 이제 어리연 씨와 선배, 그리고 K-6도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야.”
“아, 응.”
K-6가 게스트로 무대에 있는 동안 대기실에 있던 나는
제프 옆의 여자 생각으로 10분 넘게 앉아있었나 보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성후 오빠가 보다 못해 말을 건 모양이었다.
이 중요한 콘서트 때 한심하게 다른 생각이라니.
아직 나는 스타가 되기엔 아직 부족한 것일까?
나보다 일찍 나와 콘서트 보조로 뛰고 있는 성후 오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게스트이자 내 친구로 리연 언니와 K-6가 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벤트 차원에서 팬 중 한 명도 무대 위로 초대하였다.
스페아의 결혼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묻는 코너가 진행되었고 리연 언니와 K-6오빠들이 거들었다.
무대 위에 오른 팬은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동안 준비해 온 댄스 퍼포먼스를 하였고 이번 앨범의 컨셉 보이시를 홍보하기 위해
남장까지 불사하여 K-6가 아닌 K-7의 새 멤버로 깜짝 무대를 선보였다.
내 키가 175cm의 큰 키라서 은근히 K-6 오빠들과 잘 어울렸는지 팬들의 환호가 엄청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저의 첫 콘서트…만족하셨습니까?”
“네에!”
몇 만 명이 동시에 대답해서 그런지 이 넓은 서울 돔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를 보기위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즐겁고 뿌듯하다.
“제가 데뷔한 지 어느 덧 4년째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가수활동을 되돌아보고 제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하고 다짐도 했습니다.
우선 제가 이 세상에서 태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눈물을 찍고 계시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서영이에게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리고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우리 서훈 오빠랑 서영이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내가 가수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최 사장님 이하 BEST 식구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 혜미와 리연 언니,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영민 오빠, 재준 오빠, 춤추는 데 언제나 도움 주는 NICE팀,
저의 음악에 기를 팍팍 넣어주시는 선생님들…아, 그리고
지금의 스페아가 이 콘서트를 할 수 있게 해준 우리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스페아! 짱!”
은근슬쩍 영민 오빠 이름 뒤에 ‘재준 오빠’를 넣었다. 그제 서야 제프와 내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생각하니까 제 주변에 온통 고마운 사람들뿐이네요.
현재도 내 콘서트를 위해 고생하시는 스텝 분들도 역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콘서트 마지막 곡 나갑니다!”
“아아~”
“아쉬워 마세요. 앞으로 전 콘서트뿐만 아니라 곧 컴백할 거라 질리도록 볼 텐데요.”
“하하하하!!”
질리도록 보게 될 거라는 말에 웃음소리도 꽤 들렸다.
약간의 유머라고 할까? 아무튼 곧 컴백할 거라서 엄청 바빠질 것 같다.
“자, 이번 마지막 곡은…아직 앨범이 나오지 않았지만
특별히! 최초로! 공개합니다. 스페아의 3집 타이틀곡!”
“와아아아!”
“해외활동 하는 동안 조국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그 마음을 담았습니다. 제목은 ‘韓사랑’!”
밴드의 반주가 울렸고 객석은 조용해졌다.
나의 새로운 곡을 듣기 위해 수만 명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너무 즐겁다.
나는 의상에 맞게 붉은 선글라스를 썼고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생생한 라이브로 팬들에게 이 곡의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반주가 매끄럽게 흘렀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반만년의 역사가 어디로 흐르겠소
지금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
K. O. R. E. A. 대. 한. 민. 국!
Ah~ Dear my country! 순국선열의 뜻이 보이는구나
Ah~ Dear my country! 남녀모두가 그 뜻 알고 있네
Ah~ Dear my country! 우리나라의 저력을 보여주자
Ah~ Dear my country is the BEST!
노래의 후반부에 와서 모두가 부를 수 있었다.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룬 셈이다. 반복되는 가사가 많았고
그럴수록 대중에게 더 쉽게 어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힘차고 쾌활하면서도 록 멜로디에 팬들 모두가 일어서서 같이 리듬을 탔고
나는 장작 두 시간여 동안 노래에 대한 열정을 무사히 풀 수 있었다.
스페아의 첫 콘서트 'JOIN'은 성공적이었다.
**
콘서트 뒤풀이 때 화장실을 간다는 구실로 살짝 빠져나왔다.
그리고 서울 외곽의 작은 카페에서 제프를 만날 수 있었다.
「빈, 콘서트 너무 좋았습니다. 역시 최고의 가수였어요.
아직도 그 감동이 남아서 가슴이 떨립니다.」
「제프, 솔직하게 말해요. 콘서트 때 옆에 앉은 여자 누구에요?」
「여자? 아, 엘리를 말하는 겁니까?」
엘리? 흥, 아주 다정하게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라 이건가?
콘서트야 즐거웠지만 제프 옆에 앉은 여자 때문에 자꾸 거슬렸다.
결국 다짜고짜 그 여자에 대해 물은 셈이다.
「네. 누구에요? 보아하니 한국인인 거 같았는데…….
게다가 다정하게 이름까지 부르는 거 보니 친. 한. 가 봐요?」
「빈, 질투해요?」
「네? 질투요? 무…물어보지도 못해요?」
jealous라니! 내가 질투 따윌 한다고? 그 여자한테?
「한국계 카샤르인입니다. 이름은 엘리 존슨, 저의 직속 비서실장이자 한국어 선생님이죠.」
「정말이에요?」
「그럼요. 설마 저를 못 믿는 거 아니죠?」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다만 그 여자를 못 믿는 거죠. 제프가 좀 매…력적이어야죠.」
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런 내가 귀여운지 제프를 나에게 볼을 매만졌다.
사실 불안했다. 제프가 너무 매력적인 남자라 여자들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내가 제프와 사귀고 있는 이 시점뿐만 아니라 언론에 공개되어
공식커플이 되더라도 제프에게 수많은 여자들이 올 것이다.
휴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제프는 나에게도 그렇고 모든 여자들에게 너무 버거운 남자였다.
「빈, 걱정 마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나의 유일한 사람은 빈이니까.」
「제프.」
「엘리도 동거 중인 애인이 있는데, 나의 여행 때문에 잠시 별거 중이에요.
저의 여자 친구 콘서트를 보여주고 싶었을 분입니다.
제가 연애하면서부터 저의 비서실장인 엘 리가 많이 바빠졌거든요.
저의 경호원 존뿐만 아니라 적어도 세 명이 제 주변을 경호할 겁니다.
어쩌면 카샤르에서 경호원을 더 보낼 지도 모르고요.
그만큼 엘리는 저의 행적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니 제가 선물을 해준 셈입니다.」
바보 같은 강서빈! 괜히 혼자 우울해서 제프를 의심하는 꼴이라니.
제프는 그런 나를 잘 다독였고 나만 맘 좁은 여자가 되었다.
그래, 6살이나 어리니 여동생 같기도 할 거야.
그리고 보니 제프의 여동생 그레이스 공주는 나보다 1살 더 많잖아?!
성숙하게 행동해야 제프의 여자친구로 인정받을 만 할 텐데, 이런 속 좁은 것을 누가 예쁘게 봐줄까?
「빈, 이거 받아요. 콘서트 성공 축하선물입니다.」
「어? 뭐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요? 음, 제프가 주는 거니까 받을게요. 감사해요.」
제프가 준 상자를 열어보니 모자가 나왔다.
청색에 무난한 디자인이었지만 ‘나 명품 브랜드요!’라는 티가 났다.
「앞으로 빈이 나를 만나러 올 때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야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굳이 변장할 일은 적지만 빈의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빈이 그 모자를 쓰면 제가 곧바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특수 디자인이 된 거라 똑같은 모자는 없으니까요.」
역시 뜻있는 선물이었다.
다시 국내활동을 시작하면 제프와 만나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에 아득했다.
그래도 제프가 준 모자를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준 씨, 저의 콘서트 때 이름 들었나요?”
“당연히 들었지요. 콘서트 회식 때 사람들이 별말 없었습니까?”
“아무도 모르던데요? 제가 워낙 물 흐르듯 말해서 그런가 봐요.”
어느 샌가 국어로 대화하는 커플이었다.
은근히 다른 언어를 바꿔가며 대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리연 언니가 재준이 누구냐고 묻기는 했지만 난 ‘다음에 말해줄게’하고 우물거렸다.
같은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리연 언니도 민감한 사생활이라 눈치 채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행동에서 친구들이 눈치를 챘을 거나 배신감을 느꼈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나의 제프를 말하기가 두려웠다. 내 결심이 굳어지면 그 때 말할 것이다.
제프와 헤어지고 집을 돌아왔을 때 콘서트로 피곤할 거라는 생각에
엄마는 짧게 화만 내셨다. 그리고 휴대폰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전화가 왔고
영민 오빠가 어디 갔었냐고 잔소리를 실컷 늘어놓았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8.
[서울 도심의 R백화점]
서울 도심에 위치한 백화점답게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게다가 놀토를 앞둔 금요일이라서 더더욱 북적대는 분위기였다.
스페아가 모델로 나오는 의류브랜드 HERO에서 사인회를 부탁해서
이 복잡한 장소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앉은 자리에서 사인을 수백 장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사인회를 즐기는 편이다.
“스페아 언니, 너무 예뻐요! 어, 어떡해! 정말 언니 맞죠? 저 콘서트 갔어요!”
“콘서트 괜찮았나요?”
“그럼요! 너무 즐거워서 미칠 것 같은 거 있죠!”
나를 보며 흥분하는 팬들을 보다 가까이서 만날 수 있으니
정말 뿌듯하지 아니한가. 생각보다 팬들이 너무 많이 몰려 경호원이 더 투입되었다.
하지만 사인회는 계획되었던 시간까지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성후, 알아요?”
차분한 어조로 묻는 웬 여고생으로 인해 나는 사인을 하다말고 그 소녀의 얼굴을 멍하게 보았다.
“알죠. 성후 오빠도 한솥밥 먹는 BEST식구입니다. 그런데 어찌…”
“여자친구였어요. 지랄맞게 딴 여자가 좋다고 차버리는 거 있죠? 자존심 퍽 상했어요.”
일반 여고생과는 다르게 늘씬한 몸매에 잘 어울리는 교복을 입은 그녀는
예쁜 얼굴과는 다르게 입이 다소 거칠었다.
그나저나 성후 오빠가 정말 저 퀸카 여고생을 차버렸나? 전혀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던데…….
“이름이?”
“김세정.”
“세정 씨, 성후 오빠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화 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세요. 한 남자에게 열 올리기엔
학생의 매력적인 외모가 아깝습니다. 부디 그 외모에서 더 이상의 변신은 NO!”
“호호호, 성형한 것을 어떻게 알고는…….
스페아는 안했죠? 가까이 보니까 말 그대로 자연 미인이긴 하네요.”
처음에는 안티 팬 같은 눈빛이던 세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지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남자문제가 아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젠장!
은성후, 눈 졸라 높네. 아, 다음 사람을 위해 이만 자리 뜨죠.
참고로 전 JIS연습생입니다. 언제 데뷔할지 몰라도 데뷔하면 알아봐주세요.”
남자문제? 좋은 친구?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세정이 JIS연습생이라고 말했다.
어쩐지 연예인과 같은 포스가 있었다. 김세정이라…….
성후 오빠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단지 그녀가 행복하면 좋겠다.
‘스페아 사인회에 오면 모두가 행복해 질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진실이기를 바라는 나도 참 유치하다.
대부분 나를 보면 흥분하던 팬들과 어르신들도 왔고
보약까지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인회 한 번 뛰면 이렇듯 수입이 꽤 좋은 편이었다.
**
[강남에 위치한 B스튜디오]
3집 앨범 발매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앨범 자켓 촬영이 있는 날이다.
촬영 대기실에는 혜미와 나, 둘만 남았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혜미와 단 둘만 있는 것을 기회로 고백했다.
내 머리를 다듬던 혜미의 손길이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눈치 챘지?”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내가 널 1, 2년 본 것도 아닌데, 뭘.”
서운함이 묻어나는 혜미의 말에 미안해졌다. 최근 혜미에게 무심했던 건 사실이니까.
“제프 베킨데일.”
“뭐?”
“그 사람이 내 남자친구야.”
많이 놀랐는지 혜미의 손에 들려있던 왁스 통이 떨어졌다.
혜미는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물어왔다.
“일본에서 만났어? 그 사람…비밀리에 아시아 여행 중이라는 거 거의 다 알려졌잖아.”
“응. 그것도 한국으로 올 때 여객기 안에서 만났어.”
“하필이면 왜 그 사람이니? 왜 유명인과 관계를 엮은 거니?”
“혜미야.”
“난 네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캔들메이커로 유명한 왕세자를 감당할 자신 있니?”
혜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진과의 일을 알고 날 위로해주던 친구가 바로 혜미였다.
내가 다시 가수를 꿈꾸게끔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역시 제프는 바람둥이로 소문 나 있는지 혜미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혜미야, 걱정 마. 그는 네가 생각한 만큼 난봉꾼이 아니야.
비록 사귄지 겨우 3주째지만 그가 진심으로 날 사랑하는 걸 알 수 있어.”
“그럼 다행이고. 다 됐다! 이젠 카메라 앞에서 빛을 발하면 돼! 나가자!”
어쩌면 혜미는 내가 연애한다는 것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그만큼 혜미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지만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친구다.
괜히 내 마음이 찡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스페아, 좀 더 강렬하게! OK! 좋다, 좋아!”
연신 ‘좋아’를 외치는 사진작가 선생님 덕분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엄청 즐거웠다.
나는 의상을 갈아입기 전 매번 사진을 찍어 제프에게 보내었다.
촬영장에서의 생생함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제프가 매번 답장을 보내왔다.
[아름답습니다, 빈! -재준]
[어떤 옷이든 다 잘 어울립니다. -재준]
[빈만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군요. -재준]
“재준?”
“으앗! 깜짝이야! 놀랬잖아!”
뒤에서 불쑥 나타난 혜미로 인해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반응해버렸다.
“고백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티를 내냐? 대단하다, 대단해.
재준이 누구야? 그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고친거니?”
주변 눈치를 살피고 ‘제프’를 ‘그’라고 부르는 혜미에게 고마웠다.
아직은 내 연애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기엔 너무 이르니까.
게다가 제프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혜미는…내 사랑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혜미까지 속이는 건 내 양심이 찔려 못했다.
“응. 그게 편해. 작가 선생님께서 촬영 분 얼마나 남았다고 그래?”
“이번 의상이 마지막이야.”
내 머리에 웨이브를 넣던 혜미의 손이 빨라졌다.
혜미도 역시 이번 촬영이 마지막이라는 것에 기쁜 모양이었다.
비록 이번 촬영이 오늘 스케줄의 모두가 아니었지만 앨범 자켓 셀카로 제프와 연락한 점이 좋았다.
물론 이 셀카를 내 미니홈피에 올려 간만에 인터넷 접속도 할 생각이다.
**
[제프의 숙소]
서빈이 보내준 셀카 사진에 연신 미소만 짓고 있는 제프를 보고
존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제프의 눈에는 서빈의 아름다운 모습만 아른거리는 상태였다.
「왕세자 저하, 이…이것 좀 보십시오!」
신문을 읽던 존이 떨리는 목소리로 신문을 제프에게 건네었다.
제프는 아무 생각 없이 신문을 받았고 존이 가리킨 기사를 보고 눈이 커졌다.
「로라가 영화 홍보 차 한국에 온답니다.
요즘 들어 할리우드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일본보다 한국을 더 챙깁니다.」
「이 기사 사실일까?」
「로라가 입국하는 날짜가 모레라고 밝혀져 있는데, 설마 거짓이겠습니까?」
제프는 기사 속의 로라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헤어질 당시보다 분명 더 성숙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단지 그뿐이었다. 더 이상 그녀는 제프의 사랑일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간 옛사랑일 뿐이었다.
「저하, 엘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엘리 역시 제프의 숙소로 들어왔다.
그녀도 로라의 방한 소식을 전해주려는 듯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로라가…」
「알고 있어.」
제프는 귀찮다는 듯 엘리의 말을 잘랐다.
언제부턴가 로라의 소식이 귀찮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 로라가 저하와 만나고 싶다고 연락 온 거 아십니까?」
「뭐?」
「로라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하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말 의외였다. 로라와 헤어진 후 그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물론 제프가 일부러 그녀를 피했다.
로라와 다시 만난다면 미련이 남을 거 같아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제프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여왕과 그의 최측근, 그레이스 공주 밖에 없었다.
어떻게 로라가 알고 있는 것인가?
「저하, 만나시겠습니까?」
「만나지.」
「괜찮으십니까?」
「응. 이미 내 사랑은 빈이고, 앞으로도 빈만의 남자로 남을 거야.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로라에게 보여주고 싶다.」
「귀여운 복수군요. 얼마 전 배우 주크 로와 헤어진 로라에겐 복수가 되겠습니다.」
제프가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 동안 로라 역시 할리우드의 여자 바람둥이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제프까지 포함해서 공식적으로 사귄 남자친구만 하더라도 무려 9명에 달하였다.
하지만 뛰어난 패션 감각의 평소 모습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로라였다.
얼마 전 할리우드 여배우 몸값 TOP10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로라와 만날 장소는 제가 조사해 두겠습니다.
어차피 로라와 한 번쯤은 다시 만나야 했습니다.
다행히 이 곳 한국은 미국과 유럽처럼 파파라치가 그리 설치지 않아 좋습니다.」
「서빈에 대한 마음을 밝힐 겁니다.」
「그것까진 말리지 않겠습니다. 만약 로라의 가벼운 입놀림이 있었다면
그녀 역시 할리우드 스타로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엘리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로라에 대해 그리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프가 바람둥이가 된 것은 엄연히 로라 탓이었기 때문이다.
로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지니게 된 고독한 왕세자 신세였던 제프였다.
「엘리, 미스터 크리스가 보고 싶지?」
「세자 저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엘리는 갑자기 애인 크리스에 대해 묻는 제프의 말에 순간 당황하였다.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얼굴을 본 지 반 년이 다되어갑니다. 물론 정말 보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역시 일 중독이야, 엘리.」
「스페아가 보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로라를 만난다는 생각에 빈이 더 보고 싶어져.」
제프는 탁자위에 있던 식은 홍자를 한꺼번에 음료수 마시듯 마셨다.
로라를 만날 생각에 목이 말랐고 서빈이 더더욱 보고 싶어진 것이다.
노을이 지는 덕분에 발코니에 있던 제프의 금발은 황금빛으로 빛났고
그의 푸른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고민 중인 제프의 모습에 엘리는 크리스가 궁금해졌다.
‘크리스, 너도 지금의 세자저하처럼 나 보고 싶니?’
아무리 일에서 냉정하기로 한 엘리였지만 그녀 역시 여자였다.
엘리는 이번 여행을 끝은 크리스와 결혼할 계획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19.
[w호텔의 자하에 있는 바(Bar)]
유명 인사들이 자주 온다는 바에 특별히 클럽같이 룸이 존재하였다.
특히 VIP룸은 그 인사들의 사생활 보호에 주의를 기울여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제프와 로라는 VIP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이네.」
이별 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던 그들이었다.
역시 그 둘 사이에 몇 초간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이 로라였다.
「당신과 헤어졌어도 늘 당신의 행방이 궁금하고 관심을 가졌어.
그리고 비밀리에 아시아 여행 중이라는 것도 알았고 말이야.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된 거야?」
「3개월.」
「그렇게나 오래 있었어? 한국에 볼거리가 많아? 난 일주일 후면 다시 미국으로 갈 텐데…….」
로라는 제프가 한국에 오래있는 것이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제프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양주 한 잔에 얼음을 가득 담고 휘휘 저었다.
제프가 자신에게 무덤덤해진 것을 느낀 로라는 초초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
「…….」
「넌 나 안 보고 싶었어?」
「날 만나자는 이유가 뭐야?」
제프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로라는 순간 숨 막혔다. 제프를 만나려했던 이유?
로라는 할리우드의 매력적인 남자배우들과 데이트를 해오면서 제프와 비교했었다.
로라 자신도 모르게 제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마약 스캔들로 유배같이 아시아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에 로라는 제프의 행방을 조사했던 것이다.
「제프, 나 다시 시작하고 싶어. 몇 년이 지났지만 도저히 널 못 잊어서…」
「먼저 이별을 권한 사람이 누구지?」
「제프! 그래, 뻔뻔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우린 그 때 서로 너무 어렸어.
게다가 나는 왕세자비 자리가 너무 부담스러웠어.」
「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와 사귀고 있는 중이야.」
「뭐, 뭐라고?」
로라는 제프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당황했다.
하지만 제프가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한 사람이라 단순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 여겼다.
「거짓말 마. 사랑이라니? 네가 그 동안 데이트해오던 여자들…사랑한 거 아니잖아!」
「그 땐 그랬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
내가 3개월이나 한국에 있는 거 그녀 때문이야.」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로라는 제프의 눈빛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이미 없어졌음을 알았다.
「상대가 한국인이야?」
「그래.」
「후우,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지만 이건 아니다.
카샤르에서 동양인을 왕세자비로 인정해줄 것 같니?
가문과 명예를 중시하는 카샤르 왕실에서 유색인종을 잘도 받아들이겠어!」
로라는 자기 잠재적으로 숨어있던 백인우월 주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버렸다.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제프의 차가운 눈빛에 로라는
자기가 한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자각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저, 저기…제프, 그러니까 내 말은…….」
「너 내가 알던 로라 드렌 맞아?」
「제프, 그게 아니야. 그게…」
「결혼은 어디까지나 우리 둘만의 문제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유색인종? 하아, 백인우월적인 배우가 한국에는 왜 왔지?
그렇게도 돈이 궁했나? 그것도 드렌 호텔의 상속녀가 말이야.」
차갑게 변한 제프의 태도에 로라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제나 따듯하지 못해 뜨거운 남자였건만 저리도 차가운 모습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다.
「난 그거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평범한 동양인을 반려자로 생각하는 네가 걱정돼서…」
「네가 왜 날 걱정하지? 이미 너와 나 끝난 사이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평범하지 않아. 아시아의 톱 가수니까.
그럴 리가 없겠지만 설령 그녀가 세계적인가수가 되려고
날 이용하는 거라 해도 난 그녀를 사랑해. 물론 그녀 역시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하고…….」
끼어들 틈이 없다. 정말 사랑에 빠진 남자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한때 로라를 보호하기 위해 파파라치를 노려보던 그 차가운 눈빛이 현재 로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낀 로라는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제프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정말이구나. 정말 그녀를 사랑하네.」
「그래, 그러니까 너도 방황하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
그리고 더 이상 내게 미련두지 마. 그건 너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제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VIP룸을 빠져나갔고
로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프가 나간 문만 쳐다볼 뿐이다.
‘정말 나는 아니네. 제프, 어떡하니? 우리의 이별이 너무 길었던 거니?’
로라는 회의를 느끼며 술을 마셨다.
단맛에서 쓴맛으로 변하는 술이 마치 제프와 함께했던 사랑과 같아 로라를 더 슬프게 했다.
**
할리우드랑 친해지라는 최 사장님의 명령 아래 결국 나는 안무 연습까지 미룬 채
할리우드 영화 <GT>의 시사회장에 왔다.
<GT>의 주연 배우들이 웬일로 방한했다는 소식이 있던데, 하필이면 여자주연이 로라 드렌이었다.
불안해할 이유 없다! 지금의 제프는 엄연히 내 남자니까.
「들인 제작비만큼이나 볼거리도 풍성할 겁니다.
한국에 처음 와보는데 정말 좋은 경험을 쌓고 갑니다.」
감독의 말처럼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들은 한국에 처음 와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을 모르고 있다가 한국방문이 스케줄로 잡히자 인상을 쓴 배우도 있을 수가 있다.
그 생각이 들자 괜히 미국 진출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해졌다. 아직 나는 목이 마른 것이다.
영화는 꽤 재미있게 본 듯하다.
스크린 속의 로라 드렌은 정말 아름다웠고 연기력 또한 일품이었다.
분하지만 제프와 같은 백인끼리 잘 어울리는 여자라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 현재가 문제다.
이 시사회의 주인공인 할리우드 배우보다 단지 관객으로 온 나에게
기자들이 더 많이 모인 것이다. 덕분에 그 배우들의 눈치까지 살피게 되었다.
“스페아 씨, 3집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언제 컴백하십니까?”
“아시아의 톱 가수로서 서울 돔에서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그에 대한 소감은?”
“스페아 씨!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로라 드렌이 널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왔어.
지금 로라 드렌의 전용 리무진으로 가는 길이다. (속닥)”
“뭐? 영민 오빠!”
“자, 길 좀 비켜주십시오. 스페아는 자금 안무 연습하러 가야 합니다.
공식적인 입장은 BEST에서 말할 겁니다. 비켜주십시오!”
로라 드렌이 날 만나고 싶어 한다? 내가 제프의 여자친구라는 것을 안 것인가?
그렇다면 로라가 벌써 제프를 만났음에 틀림없다. 기분 나빠지는 건 당연했다.
「스페아, 안녕하세요? ‘아시아의 톱 가수’라고 불리는 여가수가 스페아 맞죠?
설마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시아의 톱 가수’라는 수식어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아시아가 하등하다는 듯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였다.
“네. 남들은 그러더군요. 설마 한국말을 못하는 건 아니겠죠?”
순간 당황하는 로라의 표정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물론 영어가 세계 공통 언어로 널리 통용되긴 하지만
막상 로라에겐 그것이 미국의 우월 주의적 사고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영어로 말해요!」
「한국에 왔으면 간단한 회화정도는 하는 줄 알았죠.
어쨌든 세계적인 스타 드렌 씨에게 ‘아시아의 톱 가수’라는 수식어를 들으니까 쑥스럽군요.」
「그렇겠지. 당신은 고작 아시아에서만 스타니까.」
뭐, 뭐야? 이 여자가…생각보다 건방지다. 아니, 최악이다!
과연 제프의 옛사랑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백인만이 가지는 자연스런 쌍꺼풀의 큰 눈과 오뚝한 코, 새하얀 피부까지는 매력적이지만
나를 표독스럽게 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 짜증났다.
「드렌, 저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습니까? 설마 세계적인 여배우가
고작 아시아에서만 이름 있는 가수를 질투하는 건 아니겠죠?」
「젠장!」
정곡을 질렀는지 낮게 욕을 중얼거리는 로라였다.
이미 헤어진 지가 몇 년인데 다시 제프를 만난 이유가 뭔지 뻔뻔하게 느껴졌다.
「제프를 만났나 봅니다. 그가 드렌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지
지금의 당신 태도에서 알겠습니다. 그답지 않게 차가웠군요?」
「카샤르 왕실에서 유색인종을 잘도 받아들이겠어.
제프를 이용해서 미국 진출해보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입 조심하세요! 그 말은 저와 제프에 대한 모욕뿐만 아니라 카샤르 왕실에 대한 모욕입니다.
로라 드렌 씨, 정말 제프의 옛사랑인지 의심스럽군요.
그 백인우월적인 사고로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뒀는지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제프에 대한 내 마음을 깎아내리는 저 여자가 정말 못나게 보였다.
매력적인 얼굴 뒤에 질투로 이성을 잃은 듯이
날 노려보는 저 여자…한 때나마 매력적인 여배우라고 팬이었던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후우, 그래. 내가 이성을 잃었어요. 스페아, 잘 들어요.
당신은 절대 미국진출을 할 수 없어. 설령 해도 실패할 거야.
아시아에서 통했는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동양인을 스타로 여길 만큼 관대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제프가 날 떠났어도 당신은 아니야. 가문과 명예를 목숨같이 여기는 카샤르 왕실에서
동양인을 왕세자비로 맞아줄 턱이 없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저 여자의 입에서 나오니 머리가 다 아팠다.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민주주의가 정착했다고 하나
여전히 인종차별은 남아있었다. 정말 미국진출은 어려울지 몰라도
나는 아시아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미국에서도, 아니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가수가 되고 싶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제프에게 자랑스러운 여자이고 싶으니까.
「그건 나와 제프의 문제지,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함부로 입 놀리지 마십시오.
당신 이미지가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르니까.
잠시나마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만 바빠서 먼저 실례하죠.」
영어로, 그것도 조용하게 대화한 덕분에 밖에 서 있던 영민 오빠는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궁금한 눈치였다.
“별 말 한 거 없으니까 궁금할 것도 없어. 운전이나 해!”
“저…저 싸가지! 오, 그래, 운전이나 하…너 로라에게 무슨 말 들은 거니?”
영민 오빠 순간 화를 삼키고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나는 못들은 척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아버렸다.
이렇게 기분이 나쁠 때는 시끄러운 음악 감상이 제일이었다.
**
결국, 연습실에서 밤을 새버렸다.
푸석한 내 피부로 메이크업 담당 언니가 뒤집어질 거라는 상상 덕분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하룻밤 동안 나의 3집 타이틀곡 ‘韓사랑’을 미친 듯이 부르고 또 불렀다.
아시아에 대해, 아닌 한국에 대해 비웃는 백인들에게 발악하는 심술이었다.
[빈, 보고 싶습니다. -재준]
휴대폰을 켜니 어젯밤에 온 제프의 문자가 나왔다. 로라를 정말 만났을까?
역시 궁금했다. 새벽 5시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내 전화라면 어떤 시간이라도 받아줄 거라는 자신감에서 누른 것이다.
[빈!]
“재준 오빠, 자고 있었어요?”
오늘은 고집스럽게 국어로 말했다. 왠지 영어로 말하기가 싫은 날이다.
[아닙니다. 깨어 있었습니다.]
“또 술 마시고 있었죠?”
[들켰네.]
내가 제프와 사귀면서 알게 된 제프의 버릇이다. 심란한 일이 있으면
그날 밤새도록 술마시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잘 마시는 거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무튼 로라를 만났음에 틀림없다. 아니면 왜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우리 오늘 오전에 데이트 할래요? 나도…나도 재준 오빠 보고 싶어요.”
[정말이요?]
“네!”
[이런 지금부터 술 깨야겠는데!]
“재준 오빠, 술 냄새 풍기지 말고 와요. 후후후! ‘Flower’에서 10시에 만나요!”
[OK! 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가면 갈수록 닭살 커플이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도 데이트를 위해 잠 좀 자야겠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20. <번외-제프의 이야기Ⅱ>
너무 매력적인 여자 강서빈…지금 내 여자친구다.
백인보다 더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깊고 맑은 검은 눈동자, 오뚝한 콧날,
그리고 만날 때마다 나를 유혹하는 탐스런 입술을 가진 여자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리지만 지적이고 성숙한 탓에 오히려 누나 같은 면도 있다.
그녀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 고백을 했지만 차였다.
그리고 큰 절망감에 하룻밤을 술로 지새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 아니란 것을 알자 너무 기뻤다.
나에게 비록 두 번째로 온 사랑이지만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자신할 수 있다.
그녀는 내 운명이다.
서빈과 나는 정말 다르면서도 똑같은 점도 있다.
인종, 국적, 자라온 환경, 문화 등등 서로 다른 것이 너무 많지만,
유명인이라는 점과 첫사랑의 아픔이 유독 크다는 게 같았다.
서빈의 첫사랑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인내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운 강한 여자가 바로 서빈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마음은 어둡고 우울했던 그녀였고
내가 그녀의 고통을 알았을 때 그녀를 꼭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첫사랑의 추억…그것을 어찌하지도 못하고 나의 고백에 당황한 약한 여자이기도 했다.
서빈과 새 사랑을 시작한다는 기쁨과 반대로 불안함도 생겼다.
로라와 헤어진 이유…바로 ‘결혼’이었다.
“제프, 우리…이제 사귀는 거죠?”
“당연하죠!”
“그럼 언론에는…”
나와 달리 그녀는 언론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 다른 어느 커플보다 큰 걱정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난 그런 것을 이겨내고 싶었다. 물론 서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건 걱정 마세요. 서빈 씨 가수생활에는 지장 없도록 할 테니까.
한국에서 입지를 다시 다지는 중요한 시기에 제가 서빈 씨의 꿈을 꺾을 순 없잖아요.
천천히 밝혀요. 서빈 씨가 나의 부인이 될…마음이 생긴다면…그 때 밝혀요.”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입에서 내뱉고 나서야 알았다.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더 큰 골치를 떠넘기는 발언을 해버렸다.
부인이라니! 왕세자비가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어?
“그래요. 제프의 말대로 해요.”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내 품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녀의 미소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팔찌를 선물하였다.
깨끗한 진주와 백은으로 만들어진 팔찌는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였다.
그녀는 왕세자로서의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를 제프 베킨데일이라는 한 남자로서, 강서빈의 남자친구로서,
또 카샤르의 왕세자로서의 나를 거부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불안해할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졌다.
단지 비아냥거릴 언론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할 일만 남은 것이다.
서빈의 콘서트는 과히 최고라고 칭송받을 만했다.
내겐 그저 사랑하는 한 여자였지만, 무대 위에서의 그녀는 수만 명의 우상인 가수 스페아였다.
한국 나이 19살, 하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 17살이 소녀가
수만 명을 상대로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카리스마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이었다. 노래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즐거워보였다.
서울 돔(Seoul Dome)은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스포츠문화시설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곳에서 여는 콘서트 표가 두 시간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스페아의 인기는 엄청났지만 그로 인해 콘서트 표를 구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뒤져도 표를 산다는 사람이 있지, 판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콘서트 표를 서빈에게서 선물 받았고 덕분에 나는 최고의 콘서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빈이 열창하는 모습을 지켜볼수록 내가 그녀의 꿈을 꺾는 것이 아닌지 고민되었다.
가수가 천직인 서빈에게 ‘카샤르의 왕세자비’라는 직위로 누르게 하는 건 아닌지…….
물론 서빈과 결혼해도 당장 ‘왕세자비’로서의 직무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직무에 대한 교육 기간이 5년 정도 걸린다고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 이후로는 가수로서의 활동이 무리일 것이다.
「저렇게 훌륭한 가수와 사귀는 거…빈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내 옆 좌석에 자리 잡은 엘리에게 물었다.
「제프, 오히려 냉정하게 보자면 스페아에게 더 좋은 일입니다.」
「엘리, 그 무슨…」
「미국진출뿐만 아니라 유럽진출의 활로까지 열리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카샤르에서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일단 카샤르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이 커지고 그에 따른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더 활발해질 겁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와의 교역은 카샤르의 국익에 좋을 겁니다.」
선경지명이라는 말은 엘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엘 리가 나의 연애를 말리지 않는 이유가 이런 계산적인 생각으로 비롯된 것일 수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내가 서빈을 사랑하고 서빈이 나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반려자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할 수 있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서빈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재치 있는 입담까지 구사할 만큼 지적인 여자다.
그녀가 영리했기에 지금의 ‘스페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저의 첫 콘서트…만족하셨습니까?”
“네에!”
그녀의 물음에 수만 명이 대답하였다. 역시 그 또한 장관이었다.
“제가 데뷔한 지 어느 덧 4년째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가수활동을 되돌아보고 제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하고 다짐도 했습니다.
우선 제가 이 세상에서 태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서빈은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의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리가 완전히 반대편이라서 그녀의 가족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우리 서훈 오빠랑 서영이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내가 가수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최 사장님 이하 BEST 식구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 혜미와 리연 언니,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영민 오빠, 재준 오빠, 춤추는 데 언제나 도움 주는 NICE팀,
저의 음악에 기를 팍팍 넣어주시는 선생님들…아, 그리고 지금의 스페아가
이 콘서트를 할 수 있게 해준 우리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스페아! 짱!”
설마 했지만 ‘재준’이라는 이름을 쓰면서까지 나에게 감사를 표할 줄 몰랐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빈과 나는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 때 서빈의 가벼운 미소 한 방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서빈이 질투를 느꼈다는 것이다.
내 옆에 잇던 엘리를 보고 질투를 했는지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언짢아보였다.
그래도 내가 선물한 모자를 보고 언제 기분 나빴냐는 듯 금방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늘 성숙한 여자로 인식되었는데 그날은 서빈이 정말 10대 소녀였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파파라치가 있듯 한국도 적지만 분명 파파라치가 존재했다.
그러했기에 서빈은 외출하기 쉽도록 변장이 필수였다.
하지만 175cm의 여자로서 꽤 큰 키를 가진 서빈이라서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띠었다.
그런 사정으로 그녀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가려야 하지만
오히려 더 튈 수 있어서 간편하게 모자만 쓰고 나오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서빈은 패션 감각이 좋았다. 물론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옷차림은 정말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
난 그녀가 패션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튀지 않는 옷, 튀는 옷, 섹시, 청순, 발랄한 스타일은 물론이고
보이시한 스타일까지 섭렵하는 무한 매력의 소유자가 바로 서빈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매력을 더 잘 느꼈던 적은
그녀가 3집 앨범 자켓 촬영 때 보내온 셀카로 알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 분주한 촬영장 모습, 3집의 스타일로 입은 의상 등등
수많은 사진을 보낸 것이다. 당장 그 촬영장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마음을
꾹 누른 채 나는 그녀에게 문자만 보낼 뿐이었다.
서빈의 사진에 넋 놓고 있을 때 존이 로라의 방한 소식을 알렸다.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큰 줄은 알고 있었지만
로라가 영화홍보를 올 줄은 몰랐다. 물론 약간의 반가운 감정이 들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로라는 더 이상 내 마음에 상처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로라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하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엘리의 말에 당황했다.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데다
내가 한국에 체류 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 되었다 로라를 만나야 할 것인가?
「저하, 만나시겠습니까?」
엘리는 다시 한 번 더 나를 재촉했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쯤은 다시 만나야 할 사이라면 만나야겠지.
로라와 한 번 만난다고 해서 내가 서빈에게 향하는 마음이 변할 리는 없을 테니까.
「만나지.」
「괜찮으십니까?」
「응. 이미 내 사랑은 빈이고, 앞으로도 빈만의 남자로 남을 거야.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로라에게 보여주고 싶다.」
「귀여운 복수군요. 얼마 전 배우 주크 로와 헤어진 로라에겐 복수가 되겠습니다.」
복수? 그래…어떻게 보면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하는 로라에게 복수가 될 것이다.
**
오랜만에 만난 로라는 할리우드의 섹시한 배우로서 유명해질 정도로
성숙한 여인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과거 그녀의 순수하고 맑았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후우,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지만 이건 아니다.
카샤르에서 동양인을 왕세자비로 인정해줄 것 같니?
가문과 명예를 중시하는 카샤르 왕실에서 유색인종을 잘도 받아들이겠어!」
「저, 저기…제프, 그러니까 내 말은…….」
「너 내가 알던 로라 드렌 맞아?」
내가 한때나마 사랑했던 로라는 사라져 버렸다. 내가 알던 로라가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로라는 나를 버리고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면서까지 배우로서의 성공을 갈망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할리우드에서 알아주는 스타가 되자 로라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서 탐욕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서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로라에 대한 미련이 남았을지도 몰라도
지금의 로라를 보면 절대 아니다.
이제 또 다른 사회적 신분, ‘카샤르의 왕세자비’ 자리를 쟁취하려는
탐욕스러운 여자가 되어서 만난 것이다.
「결혼은 어디까지나 우리 둘만의 문제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유색인종? 하아, 백인우월적인 배우가 한국에는 왜 왔지?
그렇게도 돈이 궁했나? 그것도 드렌 호텔의 상속녀가 말이야.」
「난 그거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평범한 동양인을 반려자로 생각하는 네가 걱정돼서…」
「네가 왜 날 걱정하지? 이미 너와 나 끝난 사이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평범하지 않아. 아시아의 톱 가수니까.
그럴 리가 없겠지만 설령 그녀가 세계적인가수가 되려고 날 이용하는 거라 해도
난 그녀를 사랑해. 물론 그녀 역시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하고…….」
내가 로라에게 이토록 차가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라에게 있어서 나는 한없이 따뜻하고 보디가드같이 보호하고 감싸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젠 내가 로라를 보고 화가 치밀다니…….
「정말이구나. 정말 그녀를 사랑하네.」
로라가 깨닫듯 나는 서빈의 남자였다.
어느 누구든지 서빈을 얕보고 모욕하면 용서하지 않는 서빈의 남자가 되어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방황하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
그리고 더 이상 내게 미련두지 마. 그건 너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몇 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지만 너무 변해버린 로라를 보자 무서워졌다.
더 이상 로라에게 할 말이 없었다.
[빈, 보고 싶습니다.]
서빈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그 무거운 마음이 싹 가실 것 같았다. 서빈은 나에게 청량음료같이
시원하고 산초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서빈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연락 온 것은 새벽 5시가 넘어서였다.
3집 준비로 밤을 샜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피곤한 것처럼 들렸다.
[우리 오늘 오전에 데이트 할래요? 나도…나도 재준 오빠 보고 싶어요.]
‘재준’이라는 이름에 이제 익숙해졌지만
서빈의 데이트 신청에 몇 초간 시간이 멈춘 듯 멍하게 있었다.
“정말이요?”
잘못 들은 것 같아 겨우 되물었다.
“네!”
그녀의 확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이 한 방에 깨는 느낌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
“이런 지금부터 술 깨야겠는데!”
[재준 오빠, 술 냄새 풍기지 말고 와요. 후후후! ‘Flower’에서 10시에 만나요!]
서빈에게 부끄러운 버릇은 바로 이 버릇이었다.
마음이 심란한 하루는 꼭 그날 밤에 술로 지새운다는 것이다.
서빈은 이 버릇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이 따위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인데 결국 오늘도 술로 밤샌 것이다.
“OK! 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사귄 지 한 달도 채 안되었지만 그녀를 향한 내 진심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요즘 수시로 서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굉장히 부끄러워하던 서빈이었지만
점차 그녀도 사랑한다는 소리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녀도 날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매일같이 서로를 생각하고 존경하며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신시키기 위해 정말 좋은 말이라고 본다.
강서빈, 사랑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력셔리에 초환상적인 하루♥
첫댓글 제프 한테 완전 반했어요~~~~~~~
이런남자가 실제론 존재하겠는지의문입니다만..ㅜ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제프라는 이름은 멋있는데 재준은 별루 맘에 안 들어요ㅠ.ㅠ 왠지 약간 촌시러운<<<ㅈㅅ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봤어요~~
재밌게 잘봤어요^^,와와,제프랑 서빈이랑 잘어울려요>,< 히히,이쁜사랑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