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월 6일부터 열흘간의 인도차이나 비즈니스투어 시장조사’는
내게 여러가지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1차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방문하였는데, 이는 다낭에서부터 라오스 태국에 이르는
동서고속도로가 차관형식을 빌어 개통될 것이고,
베트남호치민루트가 무역로로 개발될 것이라고 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무역자유화가 가시화되면서
인도차이나시장에 대한 시장조사는 절실하면서도 반드시 해야만하는 숙제였던 것이다.
또한, 베트남시장에서의 한국소자본투자자의 투자가 한계에 부딪히는 일들이
점점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서 내 고객의 대부분인 소자본 투자자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개척이 필요불가결한 일들로 다가섬에 따라서다.
인.도.차.이.나.
벌써 십년하고도 몇 해전인가 보았던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의 영화’[인도차이나]의
선 노랑색 포스터는 아직까지 내 머리에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후에 보았던 연인이라던가 씨클로 등의 영화 또한 막연하지만 무엇인가 신비스런 땅으로
인도차이나는 내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그리 좋은 머리도 아니었지만,
인도차이나(미얀마, 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가 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베트남에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고, 글로벌시장을 개척한다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인도차이나’와 나와의 심상치않은 인연이 있다는 막연한 생각 위에 이제는
여러 사업분야를 반드시 진출시켜야하는 당면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인도차이나 방문에 대한 대단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기억하고자했던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잔상들과 감회를 소개해보고자한다.
캄보디아.
미처 비행기가 떠오르기도 전에 비행기는 착륙을 하겠다는 코멘트를 알리고 있었다.
언젠가 나짱으로의 여행길에 타보았던 ATR기종이 그러하듯이 낯선 프로펠러의 소음은
베트남 보다도 낯선 나라로의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승객들 중에는 관광차 가는 듯한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과 외국인. 그리고
대한통운에 근무하시는 옆자리에 앉은 교민이었는데,
착륙과 동시에 비행기는 휘뚱거려서, 불안해진 마음을 더욱 갈피를 못잡게 하였다.
여행사일로 수없이 방문하였던 앙코르와트와는 다르게,
프놈펜은 처음이라서 입국절차를 밟고 나섬과 동시에 혹여나 기사가 나오지않았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들었다.
마중나온 호텔기사는 캄코 미스터 박’이라는 POP를 가슴에 달고 흔들고 있었다.
별로 관계도없는 회사지만, 지인의 소개로 호텔을 예약해 놓아서인지 그렇게 피켓을 들고 있던 것이었다.
프놈펜 호텔.
시내에 위치해있는 프놈펜호텔은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사업가들로 만원이었다.
캄보디아의 스카이라인을 한국회사들이 독식한다는 말들이 나올만큼
한국기업들이 여기저기 사업하러 들어와서
미팅하고 돌아다니는 모습들이 쉽사리 눈에 뛰었다.
첫날.
미팅하기로 한, 캄보디아 기업의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로비에서 기다린다고 하여
내려갔더니, 그는 시커먼 복장의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총기가 쉽사리 유통된다더니, 순간적으로 치안이 많이 불안하구나 라는 생각이들었다.
베트남의 어느 친구들보다도 영어를 잘하는 그는, 베트남의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현지 캄보디아인이었는데,
그의 말씨와 눈동자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엿보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가 군 장성이라서 쉽사리 모바일 유통사업에 손을 대어 돈을 벌었다는 생각이들었다.
아~ 캄보디아도 군인의 입김이?#$#$%%
저녁에는 부동산개발을 하는 현지 박사장이라는 한국사장을 만났는데 그가 데려간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3월인가에 상주하기 시작했다는 그의 캄보디아어는 나름대로 능숙해보였다.
나이도 동갑이니 정직하고 신뢰할만한 궤도에 다다르면, 좋은 파트너가 될 성 싶어,
좋은 유대관계를 맺자고 서로 이야기를 맺음했다.
바뻐보이는 박사장보고 맥주한잔 할만한 빠에 데려다달라고하였다.
SHARKY’바’라는 곳은 2층에 위치해있는 외국인 전용바였다.
모두 서양놈들 틈새에서 동양놈 그것도 한국놈 혼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맥주를 시키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막 바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니,
베트남인들이었다. 베트남인들이 캄보디아에 많다더니, 그것도 부자들이 많다더니 그런가보다.
다음날, 전날 만난 베트남친구와의 약속대로 프놈펜시내의 [베트남카페체인-쭝웬카페]에 갔다.
거의 모든 고객이 베트남인들이었는데, 낯선 한국놈이 베트남어로 무언가 찌껄여대니 기분이 나쁜지,
신기한지 고개를 두리번거려 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베트남친구들과는 여러가지 캄보디아사정에 대해서 한국’적 시선이 아닌,
베트남의 시선으로 여러가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캄보디아 한인회에 계신 분의 소개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화장품샾을 방문하였다.
베트남의 화장품시장에 비해서 아직 많이 개선되어야할 부분이 많았지만, 젊은 분이 열심히 하시고 계셔서 보기 좋았다.
같은 유통일로는 기존에 유통하던 베트남파트너의 소개로
캄보디아에서 화장품을 유통하는 베트남인을 만났으나, 느낌이 좋지않았다. 시간을 더 갖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의외로 교민잡지를 발행하는 강사장님의 소개로 현지 유통업자를 만났다.
젊은 친구가 제법 성실해보이고 괜찮아보였다. 어디 더 두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삼일간의 일정동안 위에 언급한 이외에 20여분 가까운 분들을 만났다.
열심히 자기 사업을 향해 돌진?하시는 분도 계셨고, 아이템이나 사업수완은 좋은데
투자가 없어서 고비를 맞고 계신분도 있었다.
베트남에 비하면, 여러가지 인프라나 시스템이 많이 모자라지만,
얼마되지않아 베트남을 향해 치고 올라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소규모로 할 만한 프로젝트나 사업아이템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베트남보다는 개인투자자나 소규모투자자에게는 제격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
아시아의 미소’로 불리우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의 란쌍호텔에 도착했다.
저녁늦게 도착해서인지 공항에 픽업나온 호텔직원의 미소는 그렇게 곱지않았다.
여느 동남아국가가 그러하드시 서비스마인드는 많이 개선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여장을 풀기도 전에, 시장기를 달래고 시내를 둘러보기위해
무작정 시내로 나섰다.
아싸~~~ 강변 광장같은데에서는 흥겨운리듬에 맞추어서 헬스댄스’가 한창이었다.
강단위에서는 댄스강사들이 리드하고 있었는데, 라오인이든간에 뒤쪽에서는 외국인들도
따라서 댄스를 추고 있었고, 이를 흥미로운 눈으로 외국관광객들이 취재?하고 있었다.
강변과 강변안쪽 시내에서는 짐작대로 외국인들을 상대로하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수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에서 깔끔해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사진이 곁들여진 메뉴들 중에서 괜찮아보이는 메뉴를 주문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 독참파라는 한국식당으로 해서 대장금이라는 곳까지 들러 온 시내를
도보로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가기로했다.
호텔 로비정문에서 한국주재원들을 만났다.
물론 첫마디는 [한국인이세요?]다.
낯선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면 반갑기 마련이라서
우리는 근처 팔레스호텔로 맥주 한잔 하러 가기로 하였다.
그나마, 시내에서는 제법 큰 빠라고 하는데, 안에는 고객도 한사람없고
너무 썰렁해서 돌아가려다가 그래도 왔으니 맥주한잔 하기로해서 비어라오’맥주를 주문했다
이동통신관련회사에 근무하는 두 한국인주재원들과는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개선문에서부터 기존에 알려진 여러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인구의 95%가 소승불교의 역사로 점철되었다더니, 시내의 곳곳에 사찰들이
즐비했다.
주요 사업별 업종별 조사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시내를 둘러보기만해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비해서 열악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한국인이 하는 킴스맛사지와 현지인이 하는 맛사지샾을 들어가보았다.
그나마 한국인이 하는 맛사지샾이 깔끔하고 오일맛사지후에 샤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비엔티엔에서는
옌사바이쇼라는
전통민속춤공연이 매일(일요일제외)공연되고 있다.
비엔티엔에서의 유일이다시피한 공연볼꺼리다.
만20세 아가씨인' NOY가 하는 과일카페에서는 매일같이 주스를 마셨는데, 알고보니 2층에서 하숙을 하고있는
호주인아저씨가 과일카페의 기술을 전수시켜주었다고 하는데,
머지않아 2호점 3호점을 런칭하겠다는 포부가 야무져보였다.
[간판은 노이의 과일천국'이다]
교민들은 대체로 공장운영과 지사근무, 혹은 식당운영등의 기본 분야에서 일하고 계셨고
어떤 면에서는 라오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처럼 변하지않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소음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경제가속화되어가지않고 조용히 남아야되지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을 보니, 대부분이 언어가 비슷한 태국의 영향을 엄청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태국관광객들도 많이 보였고, 화장품등 생필품도 거의 태국과 중국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해마다 7만여명씩 지원금을 주어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이주시키고 있었다.
자국내에서 아웅다웅하는 것보다는 아프리카와 후진국들로 진출시켜서 잠재시장을 개발하고
기득권을 갖겠다는 야망이 보였다.
방비엥.
방비엥은 비엔티엔에서 북쪽으로 250킬로 떨어진 도시인데 길이 다듬어지지않아 4시간여만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관광도시로 현재처럼 개발되면 퍽으나 아름답고 좋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의 강물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조그마한 도시였는데,
관광리조트사업등은 매우 전망이 있어보였다.
하루동안의 카약킹과 튜빙 그리고 트렉킹은 매우 흥미로왔고 재미있었다.
반사나호텔그룹이 운영하는 반사나 방비엥호텔은 경관이 너무 아름답고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호텔이라서
여러가지 시스템을 벤티마킹하였다.
루앙프라방- 유네스코가 지정한 아름다운 도시.
루앙프라방은 방비엥에서 거의 6시간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는데,
이것만 뺴면 루앙프라방으로의 여행은 참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루앙프랑방은 왕정시대의 수도로서 지금도 여러 문화유산들이 볼만하다.
시내 중심의 호텔인 푸시호텔에 묵었는데, 호텔에 비해서 직원들의 서비스가 거의 내 인내를 테스트하는 것 같았는데,
베트남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로서는 귀엽게 봐주기로 했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묵고싶지않았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첫날치고는 빠르게 뚝뚝(쎼옴비슷한 오토바이트럭)기사’하는 리’라는 놈을 만나서
저녁늦게까지 이름난? 빠를 돌아다녔다. 물론 리’라는 놈이 요금을 갖고 장난치기는 했으나
그 덕분에 NIGHT LIFE’를 섭렵할 수 있었다.
BIG TREE CAFE
네덜란드 사내를 남편으로 둔 한국인이 사장인 카페겸 레스토랑으로서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난다.
강변에 위치해있는데, 한번가면 반할 만한
아름다운 멋이 있는 곳이다.
2층에는 그의 남편인 아드리씨가 운영중인 갤러리가 있어서
루앙프라방과 메콩강의 자연을 사진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아드리씨는 베트남에서도 알아주는 사진작가였는데(그는 호치민에 산적이 있고 현재에도 에이전트를 두고있다)
그의 사진들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루앙프라방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몽족 신년맞이축제.
엊그제 [슬픈 몽족]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기사가 나왔다.
미국을 도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인도차이나 몽족이 전쟁종료후 미국의 도움없이 베트남과 라오스의 공산정권에 쫓겨서
정글에 아직도 숨어살고 있나는 내용이었는데,
올해초 사파를 방문하였을 때 베트남교사들이 몽족아이들을 잘 가르치지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뻤는데 …
아무리 힘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소수민족이라 할지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소수민족을 돕고 키워나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이미 [디어텀이나 엑쏘티시모] 같은 유럽 최대여행사들이 자리잡은지 오래다.
한국여행사들은 적당한? 투자없이 비싼 투어패키지만을 공급하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본받아야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느나라나 그러하듯이 대체로 관광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약어빠지고 바가지를 쒸우기도하며,
때로는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서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럴수록 귀엽게 봐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당분간은… - 그들은 서비스마케팅에 대해서 배운적도 가르친적도 없다.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린다면,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아름답게 발전시키리라는 생각을 한다.
캄보디아는 캄보디아식으로
라오스는 조용하고 신비한 컨셉으로
사이공은 사이공대로
그렇게 조바심없이 신의 섭리로 허락받은 그대로
놔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