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끝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 열왕기상 2:1-4 / 이찬수 목사
오늘 살펴볼 본문 말씀은, 이제 다윗 왕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버지가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아들인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는 그런 참 비장한 그런 순간이 오늘 본문의 배경인데요.
열왕기상 2장 1절에 보니까,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리고 2절에서도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이 다윗 입장에서 뭐 너무나 비장하고 그리고 또 심각한 이런 순간에 남기는 유언이니까요,
얼마나 이 아버지의 마음이 거기에 농축되어서 그렇게 아들에게 당부하는 그런 메시지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번에 이 본문 말씀을 새로 묵상을 하면서
예전에 제가 느끼지 못했던 강력한 한 가지를 이번에 새로 깨닫게 됐는데요.
아들에게 남기는 이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쭉 살펴보다가 보니까,
하나님을 향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게 다 자기가 했던 것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새로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지금 아버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권면, 이 부탁의 유언의 말씀은 딱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걸어가던 그 길을 따라 행해라]
바로 딱 이렇게 요약이 되는 내용이더라구요.
3절 한번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아버지 다윗이 참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던 바로 모습이거든요.
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지금 이 4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버지 대에서 자손대에 이르기까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하여 그렇게 잘 행하고 하나님 원하시는 길을 가면,
계속 그 가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복을 누릴 것이다."
이런 내용을 4절에서 언급하는데요.
그런데 이제 바로 그 다음 나오는 12절에 보면, 너무나 감동적인 메시지가 나옵니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지금 이 말씀은, 앞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그 말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형통의 복을 주시겠다"는
이 말씀을 아버지 다윗이 잘 지켰기 때문에 지금 아들 솔로몬에게 이런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이런 바탕을 아들에게 물려주게 된 것, 이렇게 설명을 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
제가 이런 차원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을 하다가 보니까 마음에 어떤 소원이 생기는 것이지요.
저나 또 여러분들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자녀들에게 우리가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가?
아무 생각 없다가 죽기 5분 전에 생각 안 납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셔야 돼요.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어떤 권면을 던져줄 수 있을까?
여러분, 이렇게는 안 하시면 좋겠어요. 돌아가시면서 자식들한테 '이 애비처럼 살지는 마라 그럼 망한다.' 이것은 피해야지요..
이런 면에서 이 다윗의 유언이 저는 참 부러웠고요. 이게 저에게 도전이 됐습니다.
저도 제 인생이 마감이 되고 여러분도 여러분의 인생이 마감되는 날이 올 텐데요.
그때 참 부족했지만, "그러나 이 엄마가 걸어가던 그 길, 너의 아빠가 걸어가던 그 길로 너희들도 그렇게 가면 좋겠다."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산다면,
이런 차원에서 저는 요즘에 우리 젊은 목사님들한테 종종 이제 목회자들은 꿈을 가져야 된다. 어떤 꿈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이제 은퇴하고 또 60, 70이 됐을 때
우리 존재가 목회할 수 있도록 제가 이런 말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존재가 목회하게 하라' - 이건 무슨 뜻인가 하면, 이건 제가 젊은 시절부터 품고 있던 목회자로서의 어떤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존재가 목회하는 그날을 저는 기다리거든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제가 처음에 이제 사랑의 교회 부임할 때 30대 초반이었고요.
제 짐작에 아마 그때 담임 목사님이셨던 옥한흠 목사님이 한 50대 초반쯤 되지 않으셨을까? 그렇게 제가 추측을 해 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젊은 시절은, 딱 한마디로 광인론이에요.
미치지 않고는 미칠 수 없다. 미치지 않고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광인론이었거든요.
그래서 진짜 본이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여튼 오직 성도 섬기고, 목양하고, 제자교육 해서 사람 키우고, 여기에 목사님은 올인을 하셨거든요.
그랬더니, 제가 이제 거기서 발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이렇게 모범적으로 온 정성을 다하여 목회를 하면 이런 분이 연세가 드시면
하나님이 어떤 선물을 주시느냐 - 그 존재가 목회를 하게 만드는 거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제 옥한흠 목사님이 연세가 60이 넘어가시고
은퇴를 앞두시고 나중에 은퇴를 하시고 이런 과정에서 보니까 아무것도 안 하셔도
그분의 존경스러운 그 존재가 그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장면이 참 많은데요.
그때 사랑의 교회에 옥한흠 목사님 집무실이 마당에 있는 2층에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제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권사님들이 지나가시다가 그렇게 안도하시는 겁니다. "아! 목사님 계신다"
저희 부교역자들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이제 뭐 미국으로 집회를 가신다고 한 열흘 정도 자리를 비우신다, 그러면요
'목사님 오늘 떠나셨대. 김포공항에서 LA로 가셨대' 그러면요 우리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그때부터 풀어지는 거예요.
늦게 오고 일찍 가고, 아니 좀 과장스럽게 하는 얘기긴 하지만,
그러다가 이제 '옥한흠 목사님 귀국하셨대' 그러면 갑자기 또 긴장이 되는 겁니다.
사실 그때 이제 우리 주일학교는 상가 건물에 있었고요. 그래서 이제 옥한흠 목사님은 이쪽 정문으로 출입을 하셨고,
우리 교역자들은 저쪽 상가 쪽으로 다녔기 때문에 목사님이 미국을 안 가셔도 마주칠 일이 없습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마주칠 일이 없는데, 목사님이 집회 마치고 한국에 오셨다 사무실에 계시다 그러면
그게 우리도 모르게 우리 긴장하게 만드는 거죠. 이 존재가 목회하는 거예요.
제가 개척 초기에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목사님 곁을 떠나고
저도 담임 목사가 됐는데도 그 긴장은 안 없어지는 겁니다.
이 설교하면 여기 옥 목사님이 서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죠.
목사님이 저한테 여러 권면을 했던 것 중에 가장 강력하게 권면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거였습니다.
"설교 준비 부실하게 하면 강단에 서지 마라. 설교 준비 제대로 안 했으면 단에 설 생각을 하지 마라"
목사님이 지금 돌아가신 지가 지금 얼마나 오래 되셨냐고요..
그런데 지금도 그 말씀이 잊혀지지 않고 정신이 번쩍번쩍 들어요. 존재가 목회하는 거예요.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무것도 해 주시지 않는데도 여전히 저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젊을 때 이 꿈을 꾸게 된 거지요.
"하나님, 저도 청소년 사역 할 때, 중고등부 애들 열심히 제가 쫓아다니고
가출한 놈 잡으러 다니고 이러느라고 저도 정신없이 살았는데, 하나님, 이제 저도 나이가 들면 60이 되고 또 70이 되고 할 때
아버지, 저도 옥 목사님처럼 부족하지만 제 존재가 목회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이런 생각을 갖고 요새 후배 목사님들한테 종종 제가 조언을 하는데요.
제가 아끼는 최근에 담임 목사님이 되신 29교회 담임 목사님 중에 한 분인데요. 저를 찾아왔어요.
제가 또 "뭐, 도와줄 거 없느냐?" 그래서 이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런 고민을 얘기하더라고요.
이제 개척 2년이 됐는데, "아, 제가 분당 우리교회에서 배운 그대로 꿈을 가지고 그렇게 달려가고
이 꿈을 성도들한테 나누고 그러고 싶은데 목사님, 제가 초보라서 이게 잘 안 됩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랬을 때, 제가 정색을 하고 조언했던 게 이거예요.
"목사님, 이렇게 서두르면 안 됩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꿈꿀 때예요.
그래서 이제 목사님이 60이 되고 70이 됐을 때 존재가 목회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도들이 존경하는 그런 목회자가 되는 기초를 놓는 때이기 때문에
지금은 목사님이 더 하고 싶은 일에 달려갈 때가 아니라, 잘 들어보세요.
지금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한 때입니다."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의욕이 넘쳐서 무리수를 두고, 하면 안 되는 이런 일들을 하고 그러다가
또 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이게 전부 나중에 목사님에게 존재가 목회하는 것을 방해하는 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젊을 때부터 이 꿈을 꿨기 때문에요. 분당 우리 교회가 뭐 해야 되는 일을 엄청나게 잘했다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적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정말 이를 악물고 참아왔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남성주일을 맞이해서, 저는 우리 하나님께 우리 아버지와 우리 남편들이
오늘 많이 은혜 받고, 많은 깨달음이 있고, 특별히 우리 아버지와 남편들이 꿈을 꾸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꿈을 꾸어야 될까요?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될 때, 오늘 본문의 다윗 왕처럼 '아들아, 네 아버지가 걸어갔던 그 길로 가면 된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삶의 꿈을 꾸면서 그렇게 나아가자는 거죠.
이 꿈을 꾸기 시작하면, 적어도 하면 안 되는 것은 안 하게 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해서는 안 되는 걸 안 하는 게 중요하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본문의 이 다윗이 저에게 참 많은 메시지를 남겨주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고린도전서 4장 15절 16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저는, 분당 우리 교회에 이런 어른이 참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난 노력을 하고 애를 많이 쓴다
너희들은 그런 나를 본받아도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래서 분당 우리 교회 소그룹 다락방에 이제 이번 주부터 이제 개강을 하는데요.
이제 앞으로 우리 모든 순장님들의 구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
'야, 우리 순장님은 사실 나보다 나이도 더 어린데, 아니 어떻게 순장님은 저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참 반듯한 모범이 되나!'
이게 순장님이 보여줘야 될 모습이에요. 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이제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올 한 해 [거룩과 성숙]이에요.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안 해야 되는 것 안 하는 게 거룩이에요. 이 시대는요
하면 안 되는 것 안 하는 게 거룩이고요. 성숙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한 번씩 자랑하세요.
"네 아버지는 이래도 이 세상에 그런 악한 성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야.
나 그런 사람이야 왜 그래~" 아이들한테 막 자랑하세요. 오늘부터 시작하면 돼요.
'오늘부터 나 이제 은혜 받고 네 아버지는 이 세상에 뭐 그런 음란하고 이런데 나는 이제 담을 쌓기로 했어.'
그 아들이 '언제부터요?'를 묻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해서는 안 되는 것 안 하는 게 거룩이에요.
그래서 다윗이 이런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을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참 보여주는 게 너무 감사한데요.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럼 다윗은 솔로몬에게 어떤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까?
이걸 잘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도 우리 다음 세대 자녀들을 향하여 참 이런 본을 보이며 살면 좋겠다
이걸 두 가지로 제가 정리를 해 봤습니다.
[우리가 보여줘야 될 두 가지 본] 중에서
* 첫 번째 본이 뭐냐, 사명 감당에 필요한 담대함을 보여주자는 겁니다.
※ [사명 감당에 필요한 담대함]
2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여기 나오는 '대장부'는 히브리어로 '레이쉬'라는 단어예요. 이 '레이쉬'라는 단어는 '강한 남자'라는 뜻입니다. '강한 남자'
성경의 히브리어로 그냥 남자를 '아담'이라 그래요. 아담은 그냥 남자예요.
'남자와 여자가 있었더라' 할 때, 이 남자가 아담이면, 아담들 중에서 '강한 남자'가 그게 '레이쉬'예요.
아버지 다윗이 유언으로 아들에게 너는 '레이쉬'가 돼라 "강한 남자가 돼라" 이런 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당부를 할까요?
왜냐하면, 이제 그 솔로몬이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아서 나라를 다스리고 섬겨야 되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다윗이 경험한 그 왕으로서의 역할은, 성군으로 제대로 하려면 이게 상상을 초월하는 무거운 어깨의 짐이 지워지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이 유언이 전해지는 이 당시 솔로몬이 20살 전후의 어린 나이예요.
아버지가 안쓰럽죠, 그래 이 아들을 보고 너는 '레이쉬' - 강한 남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권면을 하는데요.
사실 이것도 아버지 다윗이 그 강한 남자의 모습을 먼저 자기가 살아낸 거 아닙니까..
여러분 다 아시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그렇게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냈지만,
그런 다윗에게 돌아온 것은 살해 위협밖에 없었습니다.
그 쫄짱부 같은 왕이 그 어린애가 놀라운 일을 했더니, 백성들이 다윗에게 열광을 하니까 참 쫄짱부 같은 사울 왕이에요.
그 다윗을 견제하기 시작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잘못도 없는 이 어린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혈안이 돼 있었는데, 이때 다윗의 나이가 20대였거든요.
자기가 그 20대에 겪었던 그 끔찍했던 많은 일들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에 이제 20대가 된 아들에게 똑같은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강한 남자가 돼라"
사실 오늘 우리 시대는 두려움이 많은 시대입니다.
제가 칼럼을 읽다가 보니까, 심리학에서 '쿠크다스 멘탈'이라는 걸 쓴대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만든 용어 같애요. 쿠크다스 멘탈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 그 과자 쿠크다스 혹시 아시나요?
저같이 모든 종류의 과자를 다 좋아하는 사람은 쿠크다스를 너무 잘 알아요.
이 쿠크다스는 굉장히 부드러워서 이거는 이렇게 뜯으려고 하면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져요.
그래서 저는 이 쿠크다스를 먹을 때 저 혼자 게임을 해요.
요거를 이제 '부스러기를 안 남기고 뜯는 것'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거는 건들면 툭 떨어져 버려요.
그렇게 연약한 게 이 쿠크다스라는 과자인데 이 '쿠크다스 멘탈' 하니까 뭔지 아시겠죠. 하여튼 뭐 그냥 건들면 상처예요.
이게 오늘 우리 시대에 마음이 너무나 여린 이 젊은이들, 또 중고등부의 아이들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래요.
이 쿠크다스 멘탈이라고 그게 뭐 그냥 건들면 상처받는 거죠.
오늘 예배 마치고 이렇게 가다가 어떤 분하고 눈 마주치면 상처를 받아요. 저 사람 왜 나 쳐다보느냐고, 이게 쿠크다스 멘탈이에요.
또 그런가 하면, 이건 여러분 아마 아실 겁니다. '유리 멘탈'
이 시대가 너무나 살기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뭐 이런 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드신 어른이나 할 거 없이
모두가 유리처럼 잘 깨어지고, 쿠크다스라는 과자처럼 마음이 부서지기 쉬운 그런 걸 이렇게 표현한 거 거예요.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요. 미국에서는 그게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눈송이 세대라는 게 있대요.
이 눈송이 세대는 뭐냐 하면, 지금 미국의 젊은 세대가 너무나 나약해서 쉽게 녹아내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눈이 요렇게 손등에 딱 떨어지면 없어져 버려요. 녹아 가지고, 이게 지금 미국 젊은이들의 멘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미국도 한국도 너무나 두려움이 많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이런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게 뭐 쿠크다스 멘탈이건, 유리 멘탈이건, 눈송이 시대건 어쨌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두려움이 많은 연약한 시대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했던 이 권면을 우리는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돼요.
"강해야 된다. 강한 남자가 돼야 된다. 강한 여성이 돼야 된다. 강한 크리스찬이 돼야 된다."
사실 여러분, 오늘 본문 2절에서 다윗이 아들에게 했던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이 권면은, 원조가 하나님이세요.
여기 나와 있는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할 때 이 "힘써" 이게 히브리어로 '하자크'인데요. 이게 원래 강하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힘써 대장부가 되라" 이건 번역이 썩 잘 된 거 아니고, "너는 강한 대장부가 되라" "강한 남자가 되라" 이런 뜻이거든요.
이 '하자크'라는 단어가 여호수아 1장에도 나옵니다. 여호수아 1장 아시지요.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이제 후계자가 됐는데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여호수아 1장 3절부터 9절에 이르기까지 계속 반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 이 말을 반복하잖아요.
맨 마지막에 9절만 읽어 드릴게요. 여호수아 1장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여기 나오는 "강하고 담대하라" 할 때 이 강하고 이게 '하자크'예요.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이 권면을 하신다 생각합니다.
"강하라,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근거가 있어요.
왜냐하면, 네가 영안이 어두워서 그렇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게 매 예배 때마다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시는 시편 18편 29절, 여러분, 이 다윗의 그 담대함의 출처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 18편 29절입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우리는 자꾸 결과에만 "적군을 향해 달리고 장애물인 담을 뛰어넘나이다"
여기에 관심이 많지만, 출처가 더 중요합니다.
출처가 어딥니까? - 내가 주를 의뢰하는 겁니다.
출처가 어딥니까? - 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쿠크다스 같이 여리고 여린 그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뭘 내가 해보겠다고, 내가 해보겠다고 돌아오면 깨지는 것밖에 없잖아요.
이 시편 18편 그 관주성경 맨 앞에 보면, 이 시편 18편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붙여 놨더라고요.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오늘 여러분, 이 유리 멘탈, 그 쿠크다스 멘탈처럼 부서지기 쉬운 과자와 같이
여리디 여린 우리가 맨날 그렇게 두려워하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의지해야 돼요. 여호와를 의뢰해야 돼요.
그래서 시편 18편 1절에서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요셉을 한 번 보세요.
그 어린애가 인신매매 당해 버렸잖아요. 그것도 형제들의 배신에 의해서...
남의 나라에 지금 그렇게 인신매매 당해서 종으로 팔려갔는데, 거기에서 또 이상한 여자를....
하여튼 가는 길목마다 이상한 여자들이 하나씩 서 있어요.
건강한 여자들은 교회에 와 있고, 그 이상한 여자가 그냥~ 그것도 있는 집 여자 아닙니까..
그 어린애가, 요셉이 그렇게 또 인물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유혹을 하고
거기에 거절했다고 해 가지고 성추행범으로 그냥 감옥에 넣어 버리잖아요.
요즘 같은 이런 쿠크다스 멘탈을 가졌으면 요셉은 우울증 와서 자살하고 인생 끝났을 거예요.
요셉 한 번 보세요.
왜 요셉은 그 끔찍하고도 끔찍한 이런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데도 그는 왜 거기에 무너지지 않는 강함이 있었느냐고요..
나중에 자기가 말하잖아요. 의미 부여가 거기에 있었거든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고]
하나님은 오늘도 아버지 다윗의 입을 통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듯이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의 설교자인 이찬수 목사의 입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세요.
"너는 강한 남자가 돼라"
"너는 강한 크리스찬이 되라"
왜? - 네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 나라를 통치하게 될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약해 갖고는 안 된다고...
저는 분당우리교의 담임목사가 돼 가지고 저는 대박 난 인생이에요.
복이 터져도 이렇게 터진 게 없어요. 아, 터지면 다 흘러가고.. 아마 복이, 복이... 저는 그냥 감당이 안 돼요.
저도 그렇게 뭐 담대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아담이에요. 그냥 평범한 남자예요.
그래서 개척하고 처음에는 좀 힘들었습니다. 맨날 상처받는 거죠. 뭐.. 하여튼 뭐 세상에서 사람 상대하는 게 제일 힘들고요.
그 중에서 예수를 대충 믿는 사람 상대하는 게 진짜 힘들어요.
무늬만 크리스찬이 돼 가지고, 그래 가지고 개척 초기에는 뭐 상처를 엄청 받았고요..
나중에 교회가 좀 알려지고부터는 이제 또 뭐 바깥에 있는 그냥 하여튼 뭐 별의별 이단성 교회들이 포장해 가지고 공격하고
없는 걸 만들어내서 올리고 이러는데, 제가 보니까 악플을 달고 하는데 아무도 내 편은 안 들어줘요.
그거 진짜 희한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구했지요..
"하나님, 아무도 내 편 안 들어주니까 내가 강해지기를 원한다고,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담대함을 구하고, "하나님, 제가 무너지면 분당 우리교회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요즘에는 정말 제가 아담으로 시작을 했는데, 하나님 앞에서 제가 이제 '레이쉬'가 됐어요.
저, 강한 남자예요. 우습게 보지 마세요. 어지간하면 저 상처 안 받게 됐어요. 너무 너무 제가 신기해요 진짜..
어떤 가슴 아픈 일을 만나고도 잠을 못 잔 적이 없어요. 잠을 못 잔 적이 한 두 번인가 있었던 것 같긴 해요.
그리고, 뭐 참 이 어리버리한 저지만요, 저는 담대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 저는 성적인 죄 짓지 않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면서
(기도해 주세요.) 인간이니까 뭐 자신할 수 없지만요, 그러나 저는 비결을 알아요.
아까 제가 머릿말로 말씀드렸잖아요. 사명 감당에 필요한 담대함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명을 갖고 있는 한, 그 사명을 인식하는 한 그런 시시한 데에, 유혹에 넘어지지 않아요.
제가 뭐 요셉급은 아니라 하더라도요, 이런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강한 남성 그러면, '마초맨'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진짜 강한 남성은, 그렇게 중심을 갖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에요.
※ [사명 감당에 필요한 담대함을 가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보여줘야 될 본이 뭐냐, 삶의 기준을 놓치지 않는 삶이에요. 이 삶의 기준을 갖고 있는 거죠.
2절에서 아버지 다윗이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이렇게 권면을 하고는 그 강함을 3절과 연결을 시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힘써 대장부가 되기 위해서 3절을 연결을 이렇게 시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새번역) "그리고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고"
여러분, 다윗의 삶을 돌아보면, 혼미함 혼란한 자체 아닙니까..
정신 나간 왕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고는, 세상에 자기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요.
이건 뭐 다윗의 삶을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요. 너무너무 혼미한 삶인데, 그런데 여러분 다윗의 귀함이 뭐냐 하면,
다윗은 그런 혼란스러운 삶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삶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 시편의 문을 여는 너무너무 중요한 시편 1편이요.
그 중에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예요. 근원이 없다 보니까, 열심히 사는데 맨날 제 자리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너무너무 혼란한 일을 많이 겪고 이게 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그 와중인데,
왜 그렇게 그에게는 혼란이 없느냐, 이 시편 1편에 그 답이 있더라고요.
다윗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예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뿌리를 여호와 하나님에게 뒀어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공급을 받아요.
풍족한 물을 공급을 받아요. 그리고 요동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보여줘야 되는 남자다움이라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 우리가 너무너무 혼란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이런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도 삶의 기준을 갖길 원합니다."
"아버지, 저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 싫습니다."
"하나님, 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기 원합니다. 요동하지 않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아들이 여러분의 딸이 세상살이 하다 보면 혼란합니다. 지금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이게 뭐 동성애부터 시작해서 모든 가치관을 다 뒤흔들어 놓는 그런 세상은 이제
대학만 가면은 여러분 자녀들이 살게 될텐데 하루 온종일 혼란하다가
집에 와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엄마를 보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아빠만 보면 안심이 되는
이 역할이 부모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그런 역할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일본 규슈에 '심수관가'라는 도자기 명가가 있답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요.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심수관가'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옛날에 임진왜란 때 이런 전문가들을 많이 끌고 갔다는 기록은 다 아시잖아요.
그때 끌려갔던 심단길이라는 분이 이제 일본에 끌려가서
거기서 가마를 짓고 도자기를 구워내던 그 장소래요. 그게 심수관가인데요.
이후에 그의 12대 후손인 심수관 선생 대에 이게 꽃을 피워서
이제 심수관가라는 그 가문은, 일본의 3대 도자기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그런 도자기를 만드는 가문이 됐다는 거죠.
심수관 선생이 이런 놀라운 대가가 되었는데, 이분이 어린 시절을 회고를 하는데요.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쳤는데, 아버지가 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작업실로 갔어요.
그리고는 그의 아버지가 "이거 잘 한 번 봐라"
물레 위에 진흙 한 덩이를 거기에다 놓고 이제 도자기를 빚는 거지요.
그리고는 물레를 돌리는데, 아버지가 진흙 한가운데다가 바늘을 꽂았어요.
이제 물레를 돌리는데, 이 바늘이 요동하지 않고 딱 중심을 잡고 있는 거죠.
아버지가 물었어요. "뭐가 느껴지니?"
이 어린애가요, 이게 하여튼 좀 비범했던 것 같아요.
이 어린애가 보니까, 물레를 돌리는데 아버지가 꽂아 놓은 바늘이 요동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돌아가는 물레의 중심에 바늘이 움직이지를 않는데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봤다. 돌아가는 물레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 이게 네가 추구해야 될 인생이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씀이 이거였습니다.
"우리가 일본 땅에 와서 우리가 지금은 비록 일본 말을 하고 살지만,
우리는 조선 도공의 얼을 이어받은 조선인이다.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너는 놓치면 안 된다."
그 요동하지 않는 바늘을 보면서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어린애가 뭐 아버지의 그 뜻을 얼마나 알아 들었겠냐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분이 백발 노인이 되어서도 그날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이 심수관가의 후예들은, 일본에 정착한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뿌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고요.
그리고 그 가문에서 조상에게 물려받은 도예 기술,
이것을 기반으로 한 명품 도자기를 그래서 아까 3대 중의 하나라고 그러잖아요.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이 교훈을 줘야 돼요.
'팝콘 브레인'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팝콘이 튀듯이 성적의 충동이 올라오면,
어떤 욕구가 올라오면, 누구에게서 뭘 내가 빼앗아서라도 저거를 갖기를 원하면,
그거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브레인으로 지금 너무 이 세상이 그렇게 아이들을 망쳐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아무리 이 물레가 요동을 치고 돌아가도 중심을 잡고 요동하지 않는 이 바늘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돼] 이게 교육 아니겠습니까?
결론을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가 살아나야 돼요.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져야 돼요.
제가 남자기 때문에 아는데요, 참 우리나라 이 시대의 남성들은 참 안쓰러워요.
저는 솔직히 제가 목사로서 이제 많은 분들이 상담을 하잖아요.
여성분들은, 이건 하나님 주신 은사, 선물이에요. 여자분들은 자기 오픈을 너무 잘해요.
그래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목사님, 정말 30분만 시간 내 달라'고
그러고 이야기하러 들어가면 이분은, 제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한 시간 자기가 말해요 그냥..
내가 이것 때문에 아프고, 저것 때문에 힘들고, 그리고 수건 꺼내서 한참 울고, 또 코 한번 풀고, 또 얘기 다 계속해요.
내가 이래서 힘들어 죽을 뻔했다고 다 이야기하고는, 다 해결이 됐다 그러면서 그냥 가요.
여성의 위대함이에요. 여성들은 그 아픔, 기쁨, 슬픔,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는 은사가 있어요.
그래서 여성들이 수명이 긴 이유는 그거예요. 우리 남자들은 그걸 못 해요.
남자 성도 만나서 상담하자 그러면, 뜸 들이는데 한 20분 가요.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내 대장부가 감정을 이렇게 드러내면 어떡하냐'고 이런 교육을 받고 살았고, 또 태생도 쫌 그래요.
그래서 남자들은, 자꾸자꾸 안으로....
여러분 아버지들, '아, 우리 아버지는 왜 집에 와서 이렇게 재미가 하나도 없냐'고,
그리고 어떨 때 아버지들이 집에 와서 화를 낼 때가 있을 거예요. '아, 우리 아버지 성격이 이상하다'고 그러지요.
그게 아니고요. '아, 낮에 또 뭔 일이 있었구나' 그렇게 보시면 돼요.
이거를 해소를 못 하니까, 집에 와서 뭐 강아지라도 차야지 어떡해요.. 아, 이건 동물학대고, 그냥 하여튼 뭐 풀 데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남성주일을 준비하면서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교회를 출입하는 우리 남성들이 이곳이 그들의 울 곳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마음을 토해 놓는 곳...
저는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 이 찬양으로 말씀을 좀 정리하기 원하는데요.
본 헤퍼 목사님 아시지요? 그 끔찍한 독일 나치 히틀러의 핍박 앞에 결국은 순교하게 되는데요.
끝까지 굴하지 않아요. 진리를 붙잡아요. 여기에 돌아가는 중심이 그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우리 오늘 이 찬양을 같이 부르면서
하나님, 저희에게도 이제 언젠가 다윗처럼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할 말이 있기를 원합니다. "너도 아빠처럼 그렇게 살면 돼!"
우리가 이 꿈을 꾸면서 하나님 앞에 같이 찬양 부르기 원합니다.
♬ 주 선한 능력으로 안으시네
그 크신 팔로 날 붙드시네~
절망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는 주 얼굴 구하리~
선한 능력으로 일어서리
주만 의지하리 믿음으로~
우리 고대하네 주 오실 그 날
영광의 새 날을 맞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