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늦봄답지 않게 낮 동안 뜨거운 태양이 내려쪼이다가 해지는 저녁이나 싱그러운 새벽녘이면 비단 같은 봄바람이 볼을 부드럽게 스치는 오월 하순이다.
며칠 전 부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다빈치코드를 짬을 내어 감상하였다. 원작의 복잡하고 현란한 구도와 재미에 비할 바 아니지만, 영화 한 편으로 압璿歐藪〈?무리가 많고, 감동이 적었다. 다만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다르고 대중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지 궁금해서 연중 한 두 편 볼까말까 하는 영화관을 찾았다. 참고로 나의 젊은 시절은 독서광, 영화광이라고 할 정도로 명작 소설이나 명작 영화는 빠짐없이 보아야 직성이 풀렸고, 영화에서도 깊은 인생철학과 교훈을 감동적으로 학습한 것이 적지 않다. 다빈치의 최고걸작이라 알려진 모나리자는 알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만큼이나 수백 년 동안 신비가 감추어져 왔다. 모나리자의 실존 모델이 누구라는 설이 분분했으나 정작 사실로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신비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성스러운 모나리자는 대체 누구인가. 다빈치 코드에서 작가는, 모나리자는 예수와 마리아의 합성한 그림에 불과하며 모나리자는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단정 짓는다. 그 근거로 외형적으로 너무 닮았으며, 도마복음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여섯 제자 중 한 명으로 되어있는데 예수의 사후 삭제되었고, 수제자 베드로의 질투 때문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는 591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강론했다.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1400년 동안 매춘부로서 기독교의 신성모독죄를 뒤집어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사도중의 사도라 복권시키고, 천한 신분을 해방시켰다. 내 생각으로도 수녀들이 받드는 성모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가 맞다. 역사속의 수많은 지식인과 과학자들을 단 한 가지 이단이라는 이유로 처형한 기독교가 과학의 발전과 인류지성의 진보로 더 이상 진실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의 진보는 절대 권력인 기독교에 저항하고 노예사상에서 해방된 순간부터 이루어졌다고 본다.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 전까지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성경을 볼 수 없었다. 만일 성경을 읽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예수의 가르침 뿐 아니라 보는 시각에 따라 위험천만한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기독교와 아무 관계없는 모세의 십계명을 기독교인들은 절대 윤리로 삼는다. 이스라엘인이 노예로 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비롯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의 각종 신화와 원시 신앙을 끌어들여 성경의 토대와 사상체계를 만들었다. 4세기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당시 로마의 태양신 미투라교를 기독교에 접목, 예수 탄생일로 정하고, 유일신 사상을 공의회에 선포하였다.(325년 니키아 공의회 밀라노 칙령)이후 인간예수는 신으로 만들어졌고, 이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면 모조리 이단으로 처형되었다. 기독교의 피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예수가 사랑과 구원을 상징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무서운 저주와 배타성을 지녀야 했는지 나는 오랫동안 종교적 진리가 아닌 정치적인 배경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기독교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학식과 인격, 사회적인 배경까지 가지고 있는 멀쩡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 왜 일그러지고 추악한 인물이 되는지 숙제가 풀렸다. 바로 기독교는 신과 인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종교적 권력의 실체인 창조주 하느님 신의 종속물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을 정신적 노예로 만드는 노예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기독교인은 말하기를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그리스도 외에는 저주이다, 여호와를 모르면 선행을 해도 가시만 거둔다, 바르게 잘 사는 길은 진리의 말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오직 성령밖에는 진리도 구원도 없다는 등 요약하면 이런 말들을 절대 진리라고 맹신하여 어릴 때부터 혹은 사물을 분별할 능력을 가진 성인마저도 교회에 나가고 겨우 몇 개월 성경을 읽는 순간, 자신들이 구원자가 되어 비 기독교인을 핍박하게 되는 세뇌교육에 빠진다. 한 번 맹신과 광신에 빠지면 부모형제의 인륜도 친구의 의리도 인간과 자연의 이치와 과학의 합리주의에도 눈감게 된다. 오직 예수천국이오 불신지옥이다. 대한민국을 전국방방곡곡 날마다 소음공해를 일으키며 외국인들이 이해 못할 행동을 보이는 것은 기독교 사상의 근본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후세에 조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카나다의 진보적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4월 14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와 그의 저서들에서 성경에 쓰인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은 현재 유럽에서는 사라졌고, 미국에서 30% 있으나 한국은 90% 이상이라 하였다. 한국 기독교인이 불교 등 타종교를 박멸하자고 나서는 사람이 많은 것은 성격의 무오류성, 문자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과연 그럴까 기독교인의 거짓과 정신질환 한국 기독교인이 성경구절만 가지고 순수하게 판단하는 것이 사실일까. 불교학 박사를 받을 정도로 진지하고 순수한 입장의 기독교인 오 교수는 기독교의 왜곡을 문제 삼으면서 결국 한국 기독교를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후,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기독교가 인류에 끼친 범죄와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작년에는 한국 개신교 원로 목사들이 기독교의 친일과 반공, 독재 권력에 야합하고 불교 등 타 종교에 침해를 가한 사실 등에 사과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은 신 구교를 막론하고, 이번에 다빈치 코드와 기존의 역사서를 한낱 소설과 영화의 허구일 뿐이라 주장하면서 수백 년 동안 선구적이고 진보적인 사상과 이념을 무시해버리며 여전히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유아적인 정신분열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 바 자각이 없고, 맹신적이다 보니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는 탓이다. 16세기의 진보적 사상가 스피노자는 우주를 창조한 신은 없다고 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 권력을 부정했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때 1%의 가톨릭 사제가 10분의 1의 방대한 땅을 소유하면서 권력과 결탁한 끝에 혁명이 일어나자 1천여 명의 신부가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무너지며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피살되었는지 역사적인 성찰이 전무한 형편이다. 20세기 세계적인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 ‘신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라고 선포했으며 쇼펜하우워, 하이데커 등은 신이 아닌 인간의 실존에 대해 왜 고민했는가. 영국의 대석학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에서 ‘내가 바라는 세계는 집단적 적대감에서 해방된 세계 만인의 행복이 투쟁이 아닌 협력에서 나올 수 있는 깨달음 있는 세계이며 그런 뜻에서 유일신 신앙의 기독교는 갈등과 대립을 초래함으로써 인간의 정의와 평화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토인비 역시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이라고 했으며 ‘21세기에 맞는 종교가 있다면 독선, 배타의 자기중심적 종교가 아니라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난(무아, 무집착의 객관적 관용주의) 불교가 될 것’이라 설파하였고, 아인슈타인은 ‘현대과학의 결여된 부분을 메꾸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교이다’라고 지적했다.(박광서 서강대 물리학 교수의 저서와 하바드대 출신의 현각의 법문) 21세기의 성자라 일컫는 슈바이처 박사는 생명외경을 말했다. 백인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노예로 삼아 수천만 명을 학살(유대인들이 이집트와 로마에 노예로 있었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거나 또는 미국과 남미에서 원주민을 일억 만 명을 죽이고 땅을 빼앗은 사람들이 유색인종보다 더 무가치한 동식물 곤충까지도 생명의 존엄성을 말하는 불교의 생명사상을 펼치게 되었을까.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과연 국가 간의 분쟁이 원인이었을까. 절대 권력 기독교가 개입되지 않았을까. 그것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 언급한 가톨릭 극우 조직 오푸스데이는 나치스 당원이며 정신병력이 있는 에스크리바 신부가 1세기 전에 창립하였다. 엄격한 규율과 극단적인 금욕주의, 철저한 비밀과 세뇌교육이 특징이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게 복자시성을 내리고 추기경급이 아닌 주교급인 그에게 이례적으로 묘소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생전 히틀러를 찬양하였다. 히틀러 자신이 지독하고 광신적인 가톨릭 신자로서 2천만 명을 죽인 나치스의 만행은 가톨릭의 음모와 교황의 지원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소설이 아닌 역사적 진실이다. 인류 역사에 있어 극우 보수 세력의 뿌리는 가톨릭이라는 것이 정설이며, 다빈치 코드에서 초보수적이라 말한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이교도와 타민족을 침략 살해하고 사실을 은폐하며, 앞서가는 여성을 마녀사냥한 광기의 역사, 인간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온갖 잔인한 방법과 고문 장치를 만드는데 선구적인 그들, 성직자가 전쟁에 나가 피를 묻히고, 재판관이 되어 인간의 생사를 가름한 종교 권력의 만행, 강자에게는 굴종하고 약자에게는 가혹한 피의 역사, 여성 장애자 유대인, 유색인종을 학대하고 말살하려한 기독교의 어두운 과거는 히틀러의 세계 지배와 신의 심판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역사적인 범죄 개신교 역시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을 단죄한 후, 새 지배 권력으로서 인류 역사에 씻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루터와 칼빈은 청교도의 기치를 들고 반대 세력을 수없이 처형하였으며, 종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지배 억압하였다. 결정적인 것은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유럽이 남미를, 미국이 북미를 차지하고 200년 후 2차 대전의 최강자가 됨으로써 기독교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세계적인 지배자로 부활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밤낮 외우는 주문처럼 하느님의 은총이나 섭리, 성령의 가호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막강한 군사력과 침략의 야만, 사탄과 하느님보다 무서운 핵무기의 보유 및 사용 때문이다.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 선구적인 사상가, 평화주의자, 진보적인 과학자들처럼 다빈치 코드는 21세기 인류의 지향점을 밝힌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 21세기인류와 지구의 공존을 위해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 인류가 걸어온 길, 어두운 기독교 지배의 역사를 태양 앞에 드러내어 음습한 광기를 없애는 것이라 제시한다. 다빈치 코드가 단순한 소설이나 허구가 아닌 역사의 진실과 사실에 입각한 역사기록이요, 천년 왕국 기독교 고발 작품이라는 의미가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다만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이해하고 소화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건 몰락하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일 수 있으며(맹신도 및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데 불편이 별로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교의 인연, 인과론에 의하면 이 세상은 수직과 수평으로 자신과 그물처럼 엮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태평양 건너에서의 나비 날개 짓이 수만리 밖에서 태풍이 되고 황사와 오염물질이 수 천 수 만 킬로를 뒤덮으며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재앙이 되는 세상이다. 기독교의 우주 정복자이며 절대 우상인 여호와 하느님, 천주님은 이 세계의 수호자가 아니며, 파괴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짜 예수를 진짜 예수로, 가짜 하느님을 진짜 하느님으로 둔갑시켜 인류역사를 왜곡하고, 지배하는 것이 생명과학과 우주과학, 위성통신과 컴퓨터라는 첨단과학 문명 앞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다빈치 코드에 이어 최근 출간된 ‘예수 후 예수’는 기독교의 기원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인간의 아들이 어떻게 신의 아들이 되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기술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종말을 예고한다. 미국 우파와 바디칸, 중국, 러시아 등의 좌우파 세력으로 분열되어 마치 조선조 말이나 해방 정국을 닮아있는 한국은 표면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이고 부강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태풍의 눈을 안고 있다. 분열적이고 소모적인 좌파세력도 걱정이지만, 미국의 직간접 영향을 받고 있는, 특히 기독교의 역할은 절대적인 상황이다. 선악이나 인권과 진실, 신과 악마와 아무 관계없이 한국 기독교인은 대다수가 종교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최대강대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국이 로마제국처럼 멸망하거나 미국을 추월하는 강대국이 나타난다면 한국 기독교인은 틀림없이 기독교를 버릴 것이다. 말하자면 오강남 교수의 말처럼 한국 기독교인이 믿는 것은 성경이나 하느님 말씀이 아니고, 초강대국 미국의 돈과 힘인 것이다. 기독교의 종말과 그 대안 수많은 세계적인 지성인들, 종교 지도자, 과학자, 철학자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단연코 불교의 중도 사상의 가치관이라 본다. 이 세계는 신과 악마의 흑백논리가 아니며, 좌우 선악이념의 대립으로 평화가 오지 않고, 세계 지배의 종교 권력은 환상이며, 오직 신과 인간, 자연이 하나인 평등 세계, 생명 공동체인 화엄 사상이 그 해답이다. 한국 기독교와 미국 개신교, 바디칸 등이 과연 말로서가 아닌 실천으로서 세계역사를 창조적으로 바꿀만한 예지의 능력과 순수한 양심이 남아있을까. 21세기 초, 최대의 화두일 것이다.세계는 전쟁인가 평화인가 그것을 보면 그들의 앞날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바꾼다면 공산주의 권력도 호전적인 이슬람 세력도 평화적으로 바뀔 수 있지만 호전적인 막강한 기독교가 바뀌지 않으면 적그리스도 세력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신이 있으면 악마도 있지만 신이 없다면 악마도 없다. 이 세상은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무유정법無有定法) 상대적인 가치만 존재한다. 악마(악) 때문에 신(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궤변이며 세뇌교육의 결과이다. 나는 기독교인을 볼 때마다 예전에는 불쾌하고 탐욕스럽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불쌍하게까지 보인다. 인생의 진리에 눈감고 사는 이들, 교조주의에 빠져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 현실적인 욕망을 신의 은총이라 착각하는 이기주의자들, 부모조상의 전통을 모르는 사람들, 인간의 가치를 모르는 냉혈적인 사람들, 정신병자 같은 환상을 쫓는 사람들(다빈치 코드의 주교와 오푸스데이의 광신자, 암살자 같은), 지구와 태양계, 우주와 자연은 자연법칙에 따라 인과율에 의해 움직일 뿐인데 마치 인간을 닮은 거대한 신(수퍼맨, 사실상 괴물, 드라큘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 있어 조종한다는 착각이다. 서구인들이 불교와 명상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역사적인 기독교의 위대한 착각을 현실의 인간으로 인도하는 이유에서다. 눈 감은 인간에서 눈 뜬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인간이(또는 예수) 영원하고 전능한 신이 아니라 자연계의 고등생명체라는 자각이 아닐까. |
첫댓글 2중으로 글쓰기가 되어있네요!
땡큐! 처리 햇슴다.
고쳤습니다.모두 끝까지 읽어 주세요~~~
다빈치코드 빌려 봐야 겠네요..우~~빨리 보고 싶어~~~
궁금하네요.영화도 보고 책도 봐야겠습니다.
영화 같이 보러 가요..윽 끝났나?
불굔데..;; 이걸 왜보는거죠?? ㅋㅋㅋㅋㅋ 뭐 유명한 책이자 영화니까안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종교의 진실?도 보고 싶지 않겠니? 뭐..하도 유명하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