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토의 밤 산책자
이전에 부피가 두꺼웠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때문인지 부담 없이 읽을 책을 찾던 중에 만난 책이 이 책이다. ‘여행수기’혹은‘여행안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자는 스스로 ‘작가’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여행에 미친 사람으로 보인다. 이름으로 봐서는 여자? 이다혜라고 이름이 참 예쁘다.
가산탕진을 부추긴 도시 1호 서울, 2호 교토라고 하면서 처음에는 걷기위해, 다음에는 쇼핑을 하러, 그 다음에는 계절을 즐기기 위해 거길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토를 여행하고도 아직은 서먹서먹한 분들을 위해 교토에 대해 공유하고자 글을 썼다고 했는데 참 그럴듯한 핑계다 싶다. 여행한 뒤에 후기삼아 기행문을 쓰기도 하는 나는 순전히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쓰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서 말이다.
나의 일본 여행은 2003년 꿈나무(생질 둘, 이종손자 둘)들과 처음 큐슈(九州)를 다녀온 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이 나던 그날 나고야에 있으면서 교토에 갔고, 2015년 11월 오키나와, 2017년 11월 두 번째 교토, 그리고 2019년 1월 홋카이도까지, 어쩌면 여러 번 일본을 갔다 왔기에 이 책에도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꽃이 예뻐 보인다는 말을 무시하고 싶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말 그랬다. 향이 강한 꽃들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여름의 치자와 겨울 끝의 매화, 둘 다 내게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특히 겨울 끝에 피는 매화가 그렇다.”고 하면서 “기억할 일들이 줄줄이 있는 겨울은 시작도 끝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모르긴 해도 겨울에는 누구나 한번쯤 황진이를 생각하고 매창을 기억해낼지 모를 일이다.
서늘한 계절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의 생명력에 경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지만, 2011년 봄에 우리가 찾았던 기타노텐만구(北野天滿宮)에서는 필총(筆塚-붓무덤)이라는 표지석 때문이었는지 여기에다 대고 빈다고 공부가 더 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천재성을 믿지 말고 노력하라고 한 에디슨이 생각난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당시에도 봄꽃은 만발해 있었지만 꽃구경보다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택시를 잡는데, 택시기사가 기계처럼 다가와서 짐 싣는 일을 도와주고 심지어 해당기사뿐 아니라 승객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택시기사까지 내려와서 짐 싣기를 도와주던 모습이 아연(啞然-놀라서 어안이 벙벙하다)했던 기억이 난다.
기타노텐만구에서
공부를 잘하게 해준다고 믿는 부적이나 소원지(오미꾸지,애마)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은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공부는 물론 행운까지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렬은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도, 다자이후 텐만궁(大帝候天滿宮)에서도, 나고야의 아츠다(熱田)신궁에서도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일본은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한국은 자연을 그냥 두고 그곳에 정자를 짓는다.’고 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은 일본 정원을 돌아보면서 한 생각이다. 성곽이 인공물이지만 너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삼년산성이나 견훤산성이 자연물을 이용한 성곽인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싶다. 아름다울지 몰라도 정원을 인공적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자연 파괴는 아닐까? 키가 큰 나무를 연못 뒤에 병풍처럼 둘러 심는 것도 그렇다. 이에 대해 작가는 중국은 자연에 근본을 두되 자연보다 나은 형태를 만들고자 하고(高于自然), 한국은 담양 소쇄원처럼 지형을 그대로 살려 정원을 조성한다고 했다.(因地制宜)
제주도와 영도 태종사 등 전국에 명소가 많은,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 꽃이 수국이다. “여름에 교토에 있다면 가야할 곳이 있으니 바로 미무로토지(三室戶寺)다. 미무로토지는 녹차와 보도인(平等院)으로 유명한 우지(宇治)에 있어서 하루코스로 방문해도 좋다. 오가는 수고를 생각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미무로토지는 한 해의 반 이상이 꽃으로 그득하다. 이른 봄에는 철쭉이 언덕 가득하고, 4∼5월에는 석남화 1천 그루, 5월에는 다른 종의 철쭉이 2만 그루나 피어난다. 계절이 바뀌는 6월에는 수국 1만 그루가 차례로 만개해 〈초여름 정원〉이라 할 만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6월말에서 7월중이라면 연꽃이 피기 시작해 여름의 끝인 8월까지 본당 앞에는 백 종류가 넘는 연꽃이 개화한다. 미무로토지의 굉장함은 규모에 있지 않고, 그 종의 다양함에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수국과 연꽃을 보지 못했으므로 가보고 꼭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보도인도 그렇다.
일본 절이나 넓은 정원 한쪽에는 대나무 통에 물을 흘려보내 그 통에 물이 가득차면 대나무 통이 떨어지면서 ‘통’소리가 반복되도록 한 장치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사슴이나 들짐승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호조정원(方丈庭園)으로 유명한 난젠지(南禪寺)에도 그것이 있는데, 한 겨울 산사에서 이 사시오도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공간을 가득 채운 고요를 역으로 느끼게 해 준다. 소리가 있어서 침묵을 인지하는 셈”이라고 했다.
난젠지의 본래 이름은 젠린지(禪林寺)이며, 본존인 아미타여래가 왼쪽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드문 형태이기 때문에 이 절의 상징과도 같다. 히가시야마(東山)기슭에 있는 이‘에이칸도’가 이름 높은 이유는 가을 단풍과 관계가 있다.“에이칸도(永觀堂-에이칸 율사가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아미타여래를 모셔와 젠린지에 봉안함으로써 에이칸도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단풍철이 되면 일본을 대표하는 절경을 자랑한다. 산 위에서부터 연못까지 수직으로 펼쳐지는 멋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고로움도 단풍철에는 호사라는 생각이 든다.”작가의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윤동주는 물론 정지용도 일본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유학했다. 정지용이 20년 먼저로 영문과를 다닌 정지용은 시 〈향수〉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유학 중에 쓴 〈압천(鴨川)〉이라는 시도 〈향수〉를 닮았다. 나라 잃은 젊은이의 슬픔과 간절함이 묻어 있는, 그 압천이 바로 여기 교토를 흐르는 가모가와의 한국식 독음이고, 그 시비는 도시샤 대학에 있다. 그 시를 보자.
가모가와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원치도 않어라.
역구름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떳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orange오렌지(탱자나무등)감귤류
가모가와 강
내친김에 시 한편을 더 보자. 일본 작가 ‘나카하라 추야’의 〈달밤의 해변〉이란 시다.
달 밝은 밤, 단추 하나가
물가에 떨어져 있다
그걸 주워서, 어딘가에 쓰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그냥 두지 못하고
소맷자락에 넣었다
달 밝은 밤에, 단추가 하나
물가에 떨어져 있다
그것을 주워서, 어딘가에 쓰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달을 향해 내던지지 못하고
파도를 향해 내던지지 못하고
나는 그것을, 소맷자락에 넣었다
달밤에 주운 단추는
손끝에 물들고 마음에 스몄다
달 밝은 밤에 주운 단추,
그 단추를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이 시는 교토에서 유명한 기온(祇園)의 밤풍경을 애수에 담아 노래한 것인데, 교토에는 기온 외에도 덴류지, 료안지 등 빼어난 정원이 많으며, 시센도도 그렇다. 시센도(詩仙堂)는 중국 시인 36명의 초상화를 벽에 걸어놓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택가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하지만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한다. 이 걷는 것에 대해 작가는 ‘더울 때는 걸어야 해서 괴롭고, 추울 때도 걸어야 해서 괴롭고, 지쳤을 때도 걸어야 해서 괴롭다’고 했다. 산문이 이런 서정을 담을 수도 있구나 싶다.
시센도에는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가 방문했을 때의 사진도 있으며, 액자정원, 단풍, 시시오도시 등이 유명하기도 하지만 한여름 뙤약볕에도, 한겨울 으스스함에도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면서 시센도는 규모로 말하는 곳이 아니고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보일 것이고,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교토의 절일뿐이라고 했다.
애초에 산장이었던 시센도는 에도시대 문인이자, 도쿠가와의 가신이며 무사였던 이시카와 조잔이 59세 때 완성해 90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그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런 곳에 올 때면 한밤의 풍경을 알 수 없다는 데 눈물이 날 것처럼 서운함을 느낀다. 그것만큼은 살았던 사람만 아는 것이다. 별이 어디까지 보이는지, 물소리는 어떤 다른 울림을 갖는지, 시시오도시의 소리는 밤이 되면 더 커지는지,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툇마루에 누워서 한여름 밤을 보내는 일은 어떤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고 한다.
이제부터 내가 일본을 여행하게 된 계기랄까, 동기는 무엇인지 더듬어 보고자 한다. 어느 듯 15년이 지났지만 딸아이가 일본어를 배우더니 일본회사에 취직했다. ‘산토리주식회사’라고 술과 음료를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다. 산토리위스키는 내가 젊은 시절 - 그때는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위스키가 없던 시절이었다. - 부터 유명했던 술이다.
책에서는 교토 남쪽에 ‘주당들을 위한 놀이터’라며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와 산토리 맥주공장 그리고 아사히맥주 오야마자키 산장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야마자키 중류소와 맥주공장에서는 술을 마셔볼 수 있지만 사전 예약해야 한다. 그런데 공짜 술을 마시러가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다. 야마자키 와인들이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게 된 현실까지 떠올리면 견학 코스에서 위스키를 준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했다.
산토리 야마카지 증류소는 1923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술 야마자키·히비키·하큐슈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홋카이도(北海島)의 오타루(小樽)에 있는 니카(にっか)요히치 증류소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한다. 오타루에 갔을 때는 딸아이 혼자 찾아갔던 곳이다. 여름에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오크통을 보는 좋지만, 맥주를 좋아하면 맥주공장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면 중류소로 가면 된다. 다만 예약인원이 함께 견학을 출발해서 마지막에 시음하기 때문에 시음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일정이다. 1차로 맥주, 2차로 위스키 이런 코스로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위스키 시음은 스트레이트와 물을 섞은 미즈와리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견학을 마친 뒤에는 1층 바에서 원가로 위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2억3천만원을 호가하는(2018년) 야마카지 위스키
책에는 매화와 벚꽃의 명소로 기타노텐만구, 고다이지, 마루야마공원, 료안지, 닌나지, 닌젠지, 에이칸도, 미무로토지, 요시노산의 풍경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고다이지(高台寺)는 우리에게 결코 달가운 이름이 아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아내 ‘기타노만도쿄로’가 출가해 1606년에 세운 절이라 했다.
고다이지 앞 도로는 돌로 포장되어 있으며 이 길을 ‘네네의 길’이라 하는데 이것은 정실부인의 호칭에서 따온 것으로 헤이안 시대에는 정실부인이 북쪽의 방에 머물렀으므로 ‘북쪽마님’정도인‘기타노카타’라고 불렀으나, 이후 고위관료의 정실부인에게 ‘기타노만도코로’라는 존칭이 사용되었고 다시 관백부인에게 ‘네네’라는 존칭을 더했다고 한다.
도요토미를 밀어내고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치적 배려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므로 고다이지의 화려함은 놀랄 일이 아니며, 그 앞을 네네노마치라고 부르는 것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했다. 이 고다이지 경내는 여느 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본당으로 들어가는 자갈정원을 마주하는 순간에 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거대한 시다레자쿠라(처진 벚나무)가 다가온다. 봄에 이것이 더 특별한 이유는 자갈정원 한쪽에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만개한 시다레자쿠라 때문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고다이지에서도, 기요미즈테라(淸水寺)에서도 봄과 가을에 라이트업을 하는데 봄이든 가을이든 둘 중에 한곳을 택하라면 솔직히 작가는 열 번 중 열 번 모두를 고다이지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7년 가을 우리가 기요미즈데라에 갔을 때 라이트업 하는 것을 보았지만 고다이지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2017년 당시에는 대신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있는 이총(耳塚)을 참배했는데, 그 때 썼던 기행문을 옮겨본다.
이총참배
기요미즈데라 라이트업
‘야간개장을 한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도후쿠지(東福寺)로 갔으나 야간개장은 하지 않았다. 이번 교토여행에서 반드시 찾아서 참배하고 싶었던 귀무덤을 찾는다고 한참을 헤매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셨다는 도요쿠니신사(豊臣靖社)앞에 귀무덤이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도요쿠니신사를 찾자 귀무덤은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무덤 앞에 서자 상념에 잠기고, 마음은 심란하여 초저녁 상현달마저 울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안내판에는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조선인이 희생되었다’는 기록만 있었고 반성의 글이나 몇 명이나 묻혀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일본측 자료에 따르더라도 21만 명 이상 묻혔다는데 말이다.
귀 무덤을 참배한 뒤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여행의 가이드격인 딸아이 말대로 교토를 대표한다고 하는 후시미 이나리신사(伏見稻荷大社)를 답사하러 갔다. 그런데 들어가면서 언뜻 안내판을 보니 히데요시가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1572년부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그 해까지 공사를 했다고 쓰여 있어서 한층 더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나이고, 우리 아니겠는가? 참자고, 참아야 한다고 속으로 외며, 일본을 극복하고 이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연구해서 언젠가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엄하면서 화려하기까지 한 후시미 이나리신사 꼭대기까지 갔다 내려와 후시미 이나리역 근처 식당에서 라면인지 우동인지 맛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되는 저녁을 맥주 1병에 곁들여 먹었는데 배는 불렀지만 조금 전에 본 것들로 인해 마음은 배부르지 않았고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진짜 야간개장을 한다는 기요미즈테라(淸水寺)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서부터 길이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는 이전에 답사한 적도 있고, 일본에서 제대로 부처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절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느낌도 조급함도 없었다. 하지만 밤에 보는 하늘의 낭만과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교토의 모습을 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다.’ (2017.11.24.)
책은 이후부터 처음에 작가가 말한 대로 쇼핑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별 관심사항도 아니고 또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 같아서 이쯤에서 줄일까 생각한다. 다만 작가가 말한 대로 “일본 그릇을 한두 개 사서 놓으면 집의 다른 그릇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좋고 비싼 그릇일수록 투박한 질감을 살린 경우가 많은데, 집의 매끈한 그릇 사이에 한두 개 덜렁 놓여 있으면 영 맛이 안 산다.”그래서 세심히 고려해서 쇼핑하라는 것이겠지만 그냥 취미로거나 아니면 나중에 전시회라도 열 심산이 아니라면 고가의 기념품은 사기는 나로서는 좀 그렇다 싶다. 세월이 지난 뒤에 여행 당시의 감흥이 조금씩 식어갈 무렵에는 기념품도 퇴색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나라 물건, 특히 일본 것을 귀하다고 해서 그것을 보물 삼아 보관할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고...
맛있는 음식과 고급스런 카페를 찾는 것도 그렇다. 한국도 좋은 음식, 품격 있는 카페가 많지만, 특히 일본은 화과자라고 하는 빵종류가 많은데 그것을 만든 장인의 이름과 가게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것 같은데 그만큼 자신감을 내 보이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여행가서 맛집과 고급카페에 가고 하는 것도 좋지만, 여행지에서는 그냥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소박한 곳을 찾아 자신만의 낭만을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맛 집과 잘 되는 집만 찾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