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말 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항상 많은 은혜와 감사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산타클라우스의 존재를 믿던 어린 나이때는 평소 먹고 싶었던 동물 과자봉지를 기대 할 수 있어 좋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토끼털 귀마개나 딱총 같은 장난감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실제로 그 당시 나의 소지품들의 대부분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들이었다.
교회에서도 성탄절만 되면 생기가 돌았다. 어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유년부, 중고들부 학생들은 성극과 또 다른 수준의 연극과 찬양 준비하느라 교회당 불은 항상 늦은 시간까지 켜져 있었다. 성장하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과 꿈도 사라져갔지만 그렇다고 기뿜과 낭만까지 사라진 것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송하고 화려한 장식들 그리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 행인들을 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때 뿐이었으니까.
감사의 계절에 매서운 추위가 동반되어 그런지 어려운 이웃의 사연들이 평상시보다 더 가까이 와 닿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추억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우울한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사업부진으로 여느 때보다 오히려 쪼들리는 년말을 보낸 적도 있었기때문이다.
즐거웠거나 슬펐었거나 크리스마에 얽힌 추억은 좀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데 본인의 경우 미국에서 첫번째 맞이했던 크리스마스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족이 갓 이민 와서 입주해 들어간 곳은 나무로 지어진 삼층 짜리 아파트였다. 그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약 사십 세대용 규모의 아파트였지만 그보다 규모가 작은 이삼십세대 규모에서부터 간혹 백여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아파트들도 있었다.
기존의 콘트리트 아파트 만 못해보였어도 그래도 냉방, 난방 장치도 잘 되어있는 둥 거주하는데 있어야 할 것들은 모두 갖춘 아파트였다. 거기에 입주하고 있는 종족을 분류해 보면 대부분 한국인 가족과 아르메니언 가족들로 이루어졌는데 소수의 라티노 입주자들도 끼어있어 명실공히 다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듣기만 해도 금방 배꼽춤을 연상케 하는 알메니안 노래소리, 트럼팻 소리가 시끄러운 멕시코 노래는 듣기 싫었지만 누군가 노래방 반주에 맞춰 불러대는 우리의 가요소리는 식사 때마다 풍겨 나는 우리네 된장찌개 더불어 언제나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곤 했었다. 그런데 아파트 지배인은 돈 많다고 소문난 건물주의 친척으로서 오십대 중반이 넘은 미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사나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이사 왔던 첫날 밤부터 아이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위협에 더 가까운 주위를 주었던 그녀는 그날 이후 우리를 사사건건 들볶아대고 타박하여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이민 생활을 더욱 힘겹게 해주었다. 그녀의 과잉감시 행위는 우리가족에게 뿐만 아닌 모든 한인들에게 우리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여 동포들의 원성을 받았는데 한 몇 달 지내고 보니 반드시 관리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게 되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터져 나는 소란, 부끄러운 행위의 주역들은 모두 우리 동포들였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정겨운 한국말, 그리운 소리.
“야~ 빨리 문 열어라! 빨리 !빨리!”
“이X아! 지금이 몇 시라고 어디 있다 이제 들어와!”
“아이고 이 원수! 난 더 이상 못살겠어!”
도대체 열쇠는 어디에 두었는지 더벅머리 청년이 제 동생에게 악쓰는 소리, 말썽 많은 딸에게 보내는 속상한 어머니의 고함, 그리고 이민 오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와서 생고생 시킨다며 풀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래층 주부님의 통렬한 호통소리. 왜 들 그렇게 시끄럽게들 구는지 타인종들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는데 어느날 새벽, 드디어 큰 소동이 일어났다.
아래층 집 딸네미가 제 엄마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나갔다 새벽에 몰래 돌아오다가 발각된 것이다. 플라스틱 파리채를 거꾸로 거머쥐고 딸의 출현을 기다리고있던 엄마는 살금살금 들어오던 딸에게 회초리부터 날렸다. 야심한 밤에 터져 나오는 그집 딸네미의 비명소리와 때리는 자의 외침은 엄마 편드는 아빠의 준엄한 호통소리와 그래도 동생이라고 누나 감싸주기에 여념 없는 아들의 만류하는 소리들이 한 여름날 벽력소리 같이 울려퍼질적 마다 입주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불행한 일가족이 내는 소음은 현장 아파트의 난간을 넘어 건너길 주택단지까지 잘도 퍼져나가건만 신고해 본들 별 소득 없을 것이란 이웃 주민들의 체념 탓인지 전화 한 통화면 달려온다는 경찰차들의 모습은 볼수 없었다. 우리가 시끄럽고 지독하다며 흉보는 알메니안 사람들도 잠 잘 때는 조용히 자고 우리보다 못 배우고 못살고 못생겼다고 깔보는 라티노들마저 그런 민폐들은 안 끼치는것 같은 우리 동포들만 왜 그렇게도 다혈질이고 시끄러운지 예전엔 미처 모르던 일었다.
어리둥절했던 이민 초기의 몇 달은 그렇게 지나갔고 년말이 다가왔다. 아파트단지 작은 나무들에도, 길 건너 작은집 뜰에도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들이 하나 둘씩 켜지더니 어느새 성탄절 이브가 되었다. 정든 고향은 머나 먼 곳에 있고, 가까운 친구도 없는 외로운 크리스마스는 화려하고 들떠있는 고국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해 무척 적막했고 오히려 보통 날 보다도 더욱 조용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가족은 몇 가지 과일들과 각종 부럼과 땅콩, 그리고 작은 케이크로 조촐하고 조금은 외로운 가족파티를 막 시작할 때 어디서 아주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이십 여명의 한인 어린이들이 두 소년이 치는 기타반주에 맞춰 저마다 작은 촛불을 감싸 쥐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캐럴 송을 부르고 있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밤 어둠에 묻힌 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루돌프 사슴 코는....... , "흰눈사이로 썰매를 타고... "실버벨~ 실버벨~" "오 베들레헴`"등 무려 열댓 곡을 일절은 한국말로, 이절은 영어로 부르고 있었다. 적막하던 동네 길과 근처 아파트 베란다 마다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부부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애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래층 시끄러운 형제도, 말썽많고 탈도 많았던 처녀네 가족들, 그리고 부부 쌈 잘하는 부부도 다정한 모습으로 노래하는 천사들을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었다.
천사의 음성으로 기쁨과 깊은 감동을 선사한 케롤송의 주인공들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30대 한인 부부가 맡은 교회 학생들이었다. 고달픈 이민 생활 속에서도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선생님부부께 드리는 찬양이었지만 거주자, 아니 그 근방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최상의 선물이었다.
어린천사들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년말을 맞이하여 더욱 외로움 타던 우리가족들과 이웃들 가슴 속 깊은 곳 까지 울려주었고 심지어 그렇게 사납게 굴던 지배인의 마음마저 녹여주었을까? 그 밤 이후부터 아파트 지배인의 짜증과 불신 어린 눈빛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다시 이전의 고요함으로 돌아온 밤길. 몇명의 아이들이 케롤송을 부르며 지나갔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첫댓글 큐피드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을들으니...이젠 점점 다가오고있네요 ㅎㅎㅎ이제는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새벽송을 불러본지가 언제인지모를 정도로 오래되어갑니다 도심지에살고 아파트에서 살다가보니..이젠 공해라고 하며 노래를 불러주는사람이없어 크리스마스가돌아와도.. 교회에서 이브날 축하예배 행사가 끝이나면 새벽에는 저들밖에 한 밤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이노래를 들을수 없어 이젠 옛추억으로 남아있을것입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예쁜양초를 이틀동안 켜 놓은 답니다 저만의 분위기를내며 아기예수님을 축하해드리는날이기도 합니다 큐피드님 성탄절을 잘~~보내시고...축복받으시는가정이되시길~~~
저도 그밤 이후부터 천사들의 캐롤송은 못들어봤네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아마도 그러다 사고라도 생기면 인솔자가 책임져야 하는 엄중한 시법제도 때문인듯합니다. 아무 문제 없이 새벽송을 돌던 그시절 크리스마스가 새삼 그리워지는군요. 들꽃님도 기쁩과 평화가 충만한 성탄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로엘~로엘~~~로엘~로엘~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입니다~^^ 이러한 캐롤은 대부분 1700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역사는 바뀌고 변할지라도 이처럼 영원히 울려퍼지는 캐롤...하지만 들꽃님 얘기처럼 새벽녘에 성도님이 들려주시던 캐롤...산타클로스..등... 사라지는것 같아 아쉬운 부분입니다~ 큐피드님! 들꽃님! 글구 한마음 모든 회원님! 늘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올 한해도 좋은노래 들려주시느라 큰수고하신 천지님께 감사드립니다. 천지님. 부디 행복과 감사가 그득한 년말 되소서.
집집마다 해논 크리스마스 데크레이션이 불빛을 반짝이며 나의 마음까지 설레게하는 요즘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남편과 함께세례를 받읍니다 ..아주 오랜 기다림이 현실로 다가와 너무도 감사한마음 이예요 ..아이들도 아빠가 세례받는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답니다
그러시군요 ㅎㅎㅎ 축하 드립니다 청자님! 늘~~행복하세요
청자언니 축하드립니다. ^^
들꽃님,청자님,능소화님 감사해요 축하해 주셔서 ..딸과 사위가 가족 대표로 세례식에 온답니다 ~~ㅎㅎ
뜻깊은 성탄과 함께 세례까지....청자님! 축복의 날...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청자님과 낭군님. 축하 축하합니다. 주님의 평화와 축복이 청자님 가정에 가득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탄절에 받으시니..더욱 의미있는 날이 되겠네요..축하드립니다..항상 주님의 평화와 축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벌써 ...이런 음악이 흘러나오는군요....좋은글 올려주셔서 잘 읽어보았습니다..올크리스마스는 왠지 더욱 고요한 크리스마스가 될듯도 함니다..! 감사합니다..!
기적소리님 안녕하십니까. 성탄절, 감사의 계절을 맞이하여 더욱 충만한 나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강건하소서. 감사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다닐때 글속의 작은 천사들처럼 새벽송을 부르며 이집 저집 다녔지요 ^^ 추워서 손을 호호불면서도 즐겁게 불렀던 기억만 납니다.성도님들께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도 꿀맛이였구요......큐피드님의 글에서 어린시절 뜬 눈으로 꼬박새운 아름다운 밤이 연상됩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기쁨에 찬 크리스마스가 되시길바랍니다. ^^
세벽송 돌던 어린 유하천사님의 모습... 천사가 따로 없겠습니다. ^^ 기쁨 그득한 성탄절 되소서....
행복한 아기천사들의 노랫소리에..오랫만에..성탄 분위기입니다..새벽송 부르며 다녔던 유하님도 얼마나 즐거웠을까요..즐건 성탄을 오랜만에 맛보는 느낌입니다..종소리도 무척 좋습니다..아름다운글 또한 잘 읽었습니다...울 님들, 행복한 크리스마스되시구요...^^
하룻밤 자고 들어와 보니 초록색 향기가 제 이야기에 배어있군요. 재미없다 않으시고 일일히 답글을 보내주신 초록님께 감사드립니다. 해피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이 찬송가 캐롤은 아마 거의 모두가 이 때 쯤 되면 많이 따라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합니다.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 촌에서 하나 있는 예배당이 집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년에 딱 한번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되면 친구들하고 가던 일이 생각나는 군요. 꽁꽁 언 강을 2개나 건너서 한참을 뛰어 가면 성극을 하고 있곤 했는데.. 오로지 관심은 마지막 끝나고 나서 주는 하얀 떡 1조각하고 사탕 몇 개.. 그거 받아 먹으려고 그 추운 날에 먼길을 찬바람 맞아 가면서 갔다가 또 나올 때 보면 신발이 없어져서 다른 아이들 신발 중에 대충 발에 맞는 것 있으면 아무 거나 신고 오곤 했지요..
곰배님 안녕하셨어요. 그때 맛보셨던 하얀떡과 사탕의 맛.. 그리고 성극을 보며 느끼셨던 감동은 지금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찾지 못하시겁니다. 동심의 세계에서만 느낄수 있을 맛과 감동이기에..^^ 즐겁고 풍성한 년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