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0 주일 1부예배 / 김주원 목사
말씀 : 고린도전서 1:18-25
제목 :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우리 옆의 분들하고 이렇게 인사합시다.
"하나님이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하십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의로는 도무지 나아갈 수 없는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를 초청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주 앞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이 하나님 만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곤핍한 우리의 영혼이 충만해지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의 보좌 앞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 홀로 걸어가는 것 같았던 우리의 삶이
주님과 함께 다시금 힘 있게 동행하는 걸음으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우리 중에 운행하여 주시어서 사람의 미련함을 가려주시고
우리 예수님만 돋보이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제가 얼마 전에, 인천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 올해 1학년 입학생이 20명을 조금 넘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20명 - 1학년 한 반 인원이 아니고요. 1학년 전체 입학생이 20명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듣고 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국에 145개 학교랍니다.
신입생이 10명도 안 되는 학교는 1500개 이상의 학교하고 합니다.
여러분,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학교 1500개 이상이 신입생 10명도 못 받았대요.
여러분, 사회적으로 저출산에 대한 말을 많이 얘기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더 심각한 것은, 교회 내에 그리스도인들의 저출산 현상은 더 심각하고 아픈 일이다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은 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또 나누는 자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예수님으로 인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한국 교회 안에 점점 줄어갑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불임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다른 영혼을 품어보지 않고 나로 인해 누군가 태어나는 복된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명을 낳는 일은 수고스럽습니다. 힘듭니다.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고, 이것만큼 우리 주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없다라는 사실 여러분 잘 알지 않습니까?
예수사랑 큰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예수사랑 큰 잔치가 주리고 목마른 저와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흘러 들어가
우리를 먼저 살리는 예수 사랑 큰잔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예수사랑 큰잔치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므로
하나님과 천군천사들이 춤추며 기뻐하는 잔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예수사랑 큰잔치가 우리 주안교회에 또 다른 생명이 들어오므로
우리 주안교회 안에 생기가 충만해지는 복된 잔치가 되어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복음은 살면서 아픈 사람에게 그 아픔을 조금 잊게 하는 진통제 정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의 그 불안함을 조금 달래주고 잠들게 하는 신경안정제 정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현실을 외면하고 그냥 잠깐 기분 좋게 해주는 마약류 같은 그런 종류의 복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소유한 이 복음이
얼마나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얼마나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재발견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나한테 시시한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좋다고 얘기합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느 병원에서 '선생님, 이제 더 못 삽니다'라고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을 통해 자신을 살릴 수 있다는 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병원에 찾아가서 진짜 살았습니다.
그분은 그 의사 자랑을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지요, 왜 안 해요.. 하지요.. 당연히 하지요...
여러분, 예수님이 나한테 최고이지 않은데 어떻게 딴 사람한테 최고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 사랑 큰잔치를 위해 기도하고, 영혼 품는 동안 저와 여러분의 영혼의 입술에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최고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이 되살아나게 되길 축복합니다.
고린도전서를 받은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1년 반 정도 정말 힘쓰고 애쓰고 두려운 상황도 기도하며 눈물로 이겨내며 복음을 전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글로에'라는 사람의 가족 중에 누군가로부터
고린도 교회 안에 심각한 분열과 다툼이 생겼다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이제 다음 주에 분립 개척교회 파송예배를 드리는데,
1년 반 동안 복음 전하며, 외면 당하고, 박해 당하고, 두려움 속에 복음을 전해 세워진 교회가 싸운다는 얘기를 바울이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이렇게 싸웠습니다.
어떤 한쪽 사람들은 '우리는 바울파야' '아니야. 우리는 베드로파야', '아니야. 우리는 아볼로파야'
뭐 그렇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 나머지 모아서 '우리는 그리스도파야'
아마 이렇게 나뉘어졌던 거는 그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누구한테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나뉘어졌던 것 같습니다.
바울한테 세례받은 사람은 바울이 최고야 바울파,
베드로를 통해 세례받은 사람은 베드로가 최고야, 예수님의 수제자니까...
교회가 그렇게 갈등할 때, 여러분이 목회자 바울이라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교회 지도자들이 도대체 뭐하는 거야? 좀 잘 하지..' 혹은 그 분열을 선동하는 몇몇 사람들을 '당신들 뭐하는 거야?'
성급하게 이렇게 말할 것 같은데, 고린도 전서에 보니까
바울은 교회 공동체가 뜬금없이 분열되고 교회 공동체가 이상한 일로 시끄러워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뭐라고 얘기하냐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들이 받은 십자가의 복음과 멀어졌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이 소중한 십자가의 복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들이 이 파 저 파로 나뉘니까,
"여러분, 어떻게 예수님의 몸을 그렇게 여러분은 갈기 갈기 찢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저를 세워 놓고 사방에서 네 명이 양쪽 팔과 다리를 쫙 벌리면 얼마나 제가 고통스럽겠어요..
왜 예수님의 몸을 그렇게 찢고 나누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 공동체가 십자가의 복음과 멀어지면 교회 공동체는 이상한 일로 분열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십자가의 복음을 놓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될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앞에 두려워하고 나약해져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여러분, 이번 예수 사랑 큰 잔치가 찬스인 줄 믿습니다. 어떤 찬스냐 하면,
다시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를 살게 하셨던 그 복음으로 우리가 충만해지고,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금 믿음으로 붙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붙들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삽니다.
하나님이, 사람 줄어간다고 사람 좀 데려오라고 그렇게 영업시키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다시금 복음으로 충만케 하시려고, 저와 여러분을 능력 있는 그리스인으로 세우시려고,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려고 이 기회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정말입니다. 예수사랑 큰잔치로 먼저 재미 보셔야 될 분들은, 우리 VIP들 이전에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이 얘기는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하다가 그냥 합니다.
여러분, 이제 총선이 앞에 있습니다. 저는 정치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내가 선호하는 당, 내가 선호하는 당 서로 갈등하며 싸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몸입니다. 여러분이 싸우면, 예수님의 몸을 찢는 겁니다. 예수님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뒤에 뭐가 있습니까? 예배당 정면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십자가가 우리가 믿는 이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겠습니까?
십자가 말고 다른 걸로 상징을 삼으면,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이겁니다. 예수님이 굶주린 무리들을 남자만 5천명, 아이와 여자까지 하면 2만명 정도를 오병이어로 먹이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떡과 물고기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여러분에게 풍성함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병이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정성껏 씻기셨던 그 대야, 혹은 닦으셨던 수건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더 따뜻하지 않습니까? 현대인들에게 더 다가가기 쉽지 않겠습니까?
혹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했대요,
비둘기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비둘기는 또 평화의 이미지와 오버랩 되잖아요.
아니면,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게 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내어 쫓으시던 그 능력을 연상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며
예수님의 그 손을 이미지화해서 그걸 우리 기독교의 상징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현대인들에 맞게 좀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집에 십자가 걸어두고 계시지요? 차에 걸어두시는 분들이 있어요. 목걸이로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십자가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우리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초기 교회 당시에 십자가가 어떤 것이었는지 여러분 잘 아십니다.
십자가는 로마 당시에 사람을 죽이는 사형 방법 중에 제일 끔찍한 방법이었습니다.
왜 끔찍하냐 하면, 이것은 사람이 죽는 시간을 질질 끌어서 최고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그 고통의 시간을 늘려 가지고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형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당국에서는 로마 시민들에게는 이 형벌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적용하는 경우는 아주 심각한 국가 반역죄의 경우 같은 때만 로마인들에게 적용됐지,
이것은 노예들이나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적용되던 형벌이었습니다.
'히케로'라는 로마의 정치인이면서 변호사인 그분이 어느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다.'
그때 당시의 사람이 십자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십자가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말아야 되고, 듣지도 말아야 되고,
말하지도 말아야 되는 그렇게 꺼림찍한 단어다. 굉장히 혐오스러운 단어다''
여러분,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로마인들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무슨 메시아가 와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해방시켜야지. 십자가에서 저렇게 무기력하게 죽나?'
또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저주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무슨 메시아가 저래? 저건 말도 안 돼. 아니야.'
헬라인들에게는 '아니, 무슨 하나님이 사람이 돼? 하나님이 사람이 됐는데 저렇게 죽는다고? 에구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데 저와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피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예수님 당시의 사람, 로마 시민 한 사람을 여기 예배당에 앉혀 놓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일까? 할 것입니다.
아니, 십자가를 놓고 저렇게 좋아하고 십자가를 놓고 저렇게 기뻐하고, 십자가 앞에서 저렇게 울다니...
오늘 본문의 말씀 18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3절과 24절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여러분, 십자가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맞습니까?
정직하게 대답하셔야지 됩니다.
돈 많은 게 능력 아닙니까! 힘 있는 게 능력 아닙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똑똑해지는 게 능력 아닙니까!
도대체 저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형벌, 사형 방법 중의 하나였던 십자가가 뭐가 도대체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집에 걸어두면
안 믿는 사람들이 집에 붙여두는 부적처럼 액운이 우리 집에 안 오기 때문에 그래서 능력 아닙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우리에게 능력인 이유는
십자가가는 당시 로마인들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굉장히 불편한 사형 방법이었지만,
저 십자가가 저와 여러분에게, 믿는 자들에게 가져다주는 결과(효과)와 선물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먼저, 십자가는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길이 없고
죄책감과 죄의 결과를 맛보면서 죽음을 향해 우울하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므로, 예수님이 대신 벌 받으시므로 저와 여러분이 살게 된 줄 믿습니다.
죽을 사람 살게 하면, 죽은 사람 살게 하면 이만한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가족 중에 누가 죽는다 그러면, 있는 돈 다 갖다 줘서라도 살리려고 그러지 않습니까?
여러분, 십자가는 깨끗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표백제로 절대 깨끗해지지 않는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효력으로 깨끗해집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와 죄의 형벌이 지워지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기억에서도 깨끗해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인과 하나님을 화해시켜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어마어마한 능력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두려움 속에 갇혀 살아가는 자를 자유하게 해주는 능력이며,
도무지 웃을 수 없는 자로 웃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오늘도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이 그 인생에 주어지면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다운 삶을 얻고 누리게 될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진짜 마음 깊이 웃을 수 없던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면
그는 영혼으로부터 웃게 되는 그런 행복을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서 가진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학벌과 지위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외모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눈에 가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내어 주고 싶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다라고 우리의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놓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예수님 믿다 돌아가신 분, 죽고 장례식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도 갈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십자가의 복음이 그분을 옮겨 놓으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 모두 그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의 주인공이 될 테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붙드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이 받으셔서
우리를 영원하고 복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으실 줄 믿습니다.
능력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 예수사랑 큰 잔치, 이 기간 동안 다시 십자가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시게 되길 소망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을 살게 하고, 저와 여러분을 깨끗하게 했고,
저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두려움에서 건지고, 또 웃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VIP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경험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 속에, 또 죄의 결과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우리 VIP들을 자유하게 하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결국 죽음 앞에 허무하게 한숨 쉬며 굴복하는
우리의 VIP들을 영원히 살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그냥 교회 한번 와라 우리 교회 영업한다. 생각하시면 큰일 납니다.
우리를 살게 한, 돈으로도 힘으로도 할 수 없고, 온갖 수를 다 써도 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VIP들에게 은혜로 주어지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저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가 될 수 있으려면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재판합니다.
그 재판할 때, 예수님이 빌라도와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도록 탁월한 지혜로 변론하셨으면,
그래서 십자가 형을 면하시면, '아, 역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야' 뭐 덧붙이면 모르겠습니다.
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조롱합니다.
'메시아라며, 거기서 뭐 하냐? 내려와 봐' 그럴 때, 예수님이 가만 듣고 있다가 진짜 내려오시는 겁니다.
내려와서 '암행어사 출두요' 하는 느낌으로 거기 있는 군병들과 예수님을 조롱하는 모든 이들을 순식간에 멸하시면,
'야! 이런 반전! 역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야'
뭐 이렇게 얘기하면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다라는 것이 더 와 닿을 것 같은데,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그런 얘기는 아니고,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인 이유는,
(눈 감고 중보해 주시는 분들이 조금 늘어나고 있습니다.) - 조는 사람 있어요..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똑똑하다고 소문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공부해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까? 사람 많이 만난다고 자신을 알게 됩니까?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가장 정확하게 진짜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십자가 앞입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는데, 십자가 앞에 서면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이고 추악한 자인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또, 십자가 앞은 우리가 그러한 자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얼마나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는지
우리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자리가 십자가 앞입니다.
또 따라 합시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좋은 대학 나온다고 자기 머리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생의 경험 많다고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관심이 있으신지, 그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우리의 눈높이로 발견하고 알아갈 수 있는 장이 십자가인 줄 믿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인생이 만나는 수많은 다양한 문제들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도대체 해결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담대하게 우리 주변의 VIP들에게 [예수님께 길이 있다]라고 외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오면 답이 있다]라고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양과 같이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길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또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향해 어떤 마음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알려주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하십니다.
그냥 십자가 저거 안 하고, 그냥 저와 여러분을 넓은 품으로 그냥 다 품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면 안 됩니까?
'아유, 그냥 없는 걸로 해. 나는 마음이 넓으니까 다 괜찮아. 십자가 없이...'
여러분, 십자가는 하나님이 '너희가 내 아들 죽였어. 두고 봐' 평생 죄책감 갖고 살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시려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요.
여러분, 하나님 입장에서 너무 아픈 십자가 없이 온 인류를 그냥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거 좋지 않아요.
안 됩니다. 여러분, 공의로워야 할 재판관이 보니까 자기가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이 죄수로 와 있어요.
법전을 덮어버리고 '저 사람 용서합니다. 용서합시다.' 그러면 됩니까? 그 재판관은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혹은, 재판관이 죄수는 여기 있는데, 엄한 사람 딴 사람 하나 불러놓고
'이 사람에게 대신 죄값을 담당하게 합시다.' 하고 넘기면 해결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반역한 우리의 죄는 그냥 하나님이 덮으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옆에 있는 누군가가 아무나 대신 짊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죄를 홀로 능히 담당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 한 분이 죽으셔서만,
우리의 죄가를 짊어지셔야만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게 십자가가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말로 하면, 머리를 짜내서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가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저 십자가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도 결국은 충족시켰고,
십자가는 죄인들을 향해 자꾸 고소하는 악한 사단의 입도 막아버리고,
저 십자가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요구 조건도 충족시킨 하나님의 지혜가 완전하게 농축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이 외쳤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영혼에 다시 회복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짧지만 제가 이제 교회 사역하는 동안 경험한 건
희한하게 우리 성도님들이 제일 많이 조는 설교는 어떤 설교인지 아십니까?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 담임 목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십자가 설교입니다. 제가 그거 알고 오늘 여기 왔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한번 생기로 충만하게 하고, 소생케 하고, 진동함으로
여러분, 십자가 얘기 들을 때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생기 있어지고,
가슴 뛰고, 감사하고, 더 행복해지고, 더 담대해지는 은혜가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 요즘 전도가 안됩니다. 아시지요..
우리가 전도하면, 우리를 벌레처럼 봅니다. 혹은 이단하고 동급 취급합니다. 속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우리를 살리시고 건지시고 자유케 하시는 이 능력,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의 지혜, 이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저절로 구원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내가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는 일에 순종하지 않는데, 누군가 예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진짜 굉장한 믿음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복음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예수님께 돌아오길 바래요. 이상한 믿음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전도가 미련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미련해 보이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누군가를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겁없이 하나님의 심판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생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신분도 바뀌어지고 인생이 유턴하는 은혜가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용기 내서 순종하며 말하고 나누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어떤 것으로도 자유할 수 없었던 결박 속에 놓인 인생들이 자유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가 불렀던 찬양인데, 그 가시를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 목적도 없이 난 방황했네 소망도 없이 살았네
그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나에게 새 생명 주셨네
험한 십자가에 능력 있네~ 거기서 나의 삶이 변했네~
찬양하리 주 이름 영원히 주의 십자가 능력 있네~ 아멘!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