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관한 시모음 30)
고향의 설날 /강경옥
울퉁 불퉁
정든 고향길
까치 설 맞이 굴뚝마다
기다리는 온정 피어나고
줄줄이 엮어놓은 자식들
저 멀리 발걸음
처마끝에 걸어 놓은 정
부모님 얼굴 주름 펴진다
아버지 푸짐한 미소로
곡식 보물창고 활짝열어
아버지 키 만한
싸릿 빗자루
마당 한가득 자식사랑 쌓아 놓으시니
까치 까치 설날
흥겨운 인심은
큰 잔치 열어
엄마의 부엌 봄 향기
가득 하여라
까치 까치 설날
고향 하늘 푸근해
우리 우리 설날
색동 저고리
부모님 사랑 복 주머니 한가득
채어진다
고향 가는 길 /김정호(美石)
뒤로만 밀려가는 세월
끝없는 그리움으로
슬며시 고개 드는 솜털구름 속에
바람이 되었다
고향 가는 길
홀로 남은 빈집에는
고향 떠난 사람들
한숨 소리 가득하여도
반쯤 무너져 내린 지붕 위 호박은
뎅그라이 익어갈 꿈이 영글어 있다
아들아, 딸아
서작골 바람이 불면
흰 구름 허리 휘어지고
네 아버지는 소를 몰고
내 아버지는 써레질을 하다 지쳐
별을 훔치던 방죽길에
부드러운 햇살 되어 누워보자
푸르디 푸른 하늘 몸살나
붉은 황토 토해 내고
들꽃 무리 지어
무지개로 피어나는 들판에
푸른 바람이 되어 보자
고향 /정삼조
골목 끝 같은 어느 시골역
변두리에 서 보고 싶다
거기에 서면 고향이라는 말이
생각날 것 같아
나는 어디서 왔을까
부질없는 말을 한 번 더 해 보고
낯선 곳에서 부는 바람을 만나고 싶어
그곳에 가면
똑같은 일의 반복
똑같은 욕망의 반복이
자세히 보면 똑같지 않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일의 기쁨이
살아간다는 일의 걱정을
이길 수 있을까
세상의 구석에 갇힌
마음을 풀어
너른 벌판의 가운데에 설 수 있을까?
아, 부질없는 줄 알지만
그 몇 시간의 마음 편한 여유가
내게 있을까?
나의 고향은 7 /김영호
나의 고향은
여름해의 지친 발을 씻겨주고
낮달의 땀이 밴 등을 밀어주던 물고기들
동산의 화초들 들어가 머리를 감고
누나들 가슴띠를 풀어주던 서쪽새
수줍은 얼굴의 냇물, 냇물 마을이었다.
흰구름에 악보를 그리며 날던 종달새 울음소리
논둑의 콩알들을 부풀리고
미루나무 키를 높이 키워
나의 두 귀는 그 끝가지에 올라서서
깊은 밤 귀가하는 어머니의 발걸음소리를 기다렸다.
풀을 뜯던 어미소를 몰고
마을로 들어온 저녁 종소리
손녀를 앞세운 몇몇 노파를 부축하고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던 보리꽃 마을.
교회 마당엔 늙은 개 한 마리 귀를 세워
울려 나오는 찬송가속 주인의 목소리를 헤아리고
약물내기 연못 개구리 울음소리 밤구름 열어
별들을 떨구던
밤이 더 환하던 은하의 마을이었다
나의 고향은.
텅 빈 고향 집 댓돌에는 /홍대복
어머니
저 왔어요
선물 꾸러미 가득 든 양손으로
사립문 열고
어머니를 부르던 그 날은 또 언제였던가
뒷동산에 올라
풀피리 불던 옛 동무의 소식도
어렴풋이 앞산 자락 바람으로 맴돌고
주인 잃은 텅 빈 방과
찌든 집기만이 덩그러니 나를 반겨 맞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이 추운 겨울에도
내 가슴에
따뜻한 사랑의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당신의 온화한 사랑이 없었다면
어찌
이 추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었으리오
당신의
자애로움으로 나를 꼭 품어 주시던 온정은
지금도 내 가슴에서
포근한 사랑의 꽃으로 자리하고 있답니다
어머니
오늘따라
더 맑은 햇살이 창가로 곱게 스며들지만
묵은 때 묻은 댓돌에는
겨울의 냉기가 절기를 부둥켜안고
못내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찬바람만 매섭게 나의 양 볼을 후려칩니다
어머니
당신 떠난 고향 집 댓돌에는
아직도 당신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 남아
가시고기 사랑 꽃으로 피어나듯
이 추운 겨울을 포근히 녹여주는 듯합니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향생각 /차성우
고향집에 가면 지금도 어머니가
싸리문 열고 내다보시면 좋겠다.
감나무 아래 두엄무더기
지금도 모락모락 김이 났으면 좋겠다.
눈부신 햇살 냇가에서
빨래하던 순이 지금 어디 있을까
향기로운 풀내음 꼴 베던 언덕에서
부자 되기 바라던 범식이
지금은 어디 무얼하고 있을까
아! 고향에 가면 고향집에 가면
무지개와도 같이 빛나던 얼굴
다 살아 돌아와 지금도 사랑에 모여
도란도란 옛날 얘기 들었으면 좋겠다.
고향 /정민기
낡아 한껏 삐거덕거리는 부엌문을 열어
저녁별을 한솥 지으시는 어머니
등 뒤로 아버지가 국자별을 들어 맛보신다
별미라면 별미였을까? 점점 맛을
잃어가는 하늘의 내 아버지 국자가 반짝!
놀다 저녁밥 먹으러 오는 아들처럼
마음 어디 기댈 곳 없어 삐거덕거리기도 했었다
주름은 늘어가고 허리를 가지처럼 숙이고
동구 밖 꽃향기를 데리고 가셨을까? 이맘때면
불어오던 꽃바람이었는데 소식이 없다
비 오는 날인 듯 차츰 흐려진 기억
문구멍 뚫어놓은 듯 빛처럼 새어 나간다
쓰디쓴 울음 뱉어내는 새의 소리 달지 않다
향수에 젖은 손수건 봄바람에 말려 놓고
툇마루에 서 있으니 구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음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기억을
발로 냅다 차 버릴 수 없어 한숨만 푹푹 삶는다
하늘 강 떠가는 아버지의 쓸쓸한 국자별
손때 묻은 자국이 볼 때마다 반짝거리고 있다
고향아 고향아 /은석 김영제
손바닥만한
작은 땅덩이지만
지역마다
흙냄새가 다 달라
눈을 감고도
내 고향의 흙냄새를
알 수가 있다.
어쩌며는
그 냄새가 역겹다
말하겠지만
난 그 냄새를 맡으며
성장했듯이
도시의 화장품냄새보다
훨씬 나으오.
그 냄새는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 온
토박이들의
땀내와 분뇨내가
어우러진
세상에서 가장 짙은
향기를 가진 향수이리라
고향아 고향아
나 가는 곳마다
동행을 하며
무덤까지 함께
같이 가자
은은한 풀피리소리
음에 맞춰
내 주위서 꽃이 항상
춤출수있게
고향집 /장은정
능구렝이 초가 지붕 우로 넘나들적에
빈대 베룩 냄시 땜에 밤 재우따 아이가
비 내리는 밤 양푼이 냄비만
제자리 맹코로 차지한 방구식
도깨비 몽달구신
양말 속 전구에 담긴채로
살모시 꺼지 내리는 호롱불
옥수수 풀되죽 한 사발
눈물에 흔들어 마시고
꺼이꺼이 설움 푼 새미물
비틀거리던 양동이
상기 아니 할라카던
기억 저 편
언저리 맴돌았을 그 날들
어메 그림자 땜시 운다 오늘
쑥꾹새 /김소미
앞산 뻐꾸기 뻐꾹 뻐꾹
뒷산 쑥국새 쑥국 쑥쑥국
아지랑이 밭고랑에 달래 냉이 씀바귀
찔레순 꺽어 물고 풀 피리 불며 달린다
보리피는 언덕에 종달새 휘바람 소리
안지골 가시나들 봄 바람이 난다네
진달래꽃 화관 쓰고 대소쿠리 옆에끼고
노랑나비 흰 나비 훠월훨 쑥 캐러간다
영자야 순자야 옥이야
부르시는 엄니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가시나들 노을 속으로 달음박질 친다
그날 저녁 쑥 된장국 밥상에 달님도 별님도
초가지붕 처마 끝에 새하얗게 자지러졌다
옛 고향에서는
뻐꾸기를 쑥꾹새라 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신성호
나의 살던 고향은
단풍자랑이 으뜸인 정읍에서도
먼지나는 시골 버스타고
덜컹거리며 한시간 쯤 달려가면
동학의 본고장 고부를 지나
면소재지의 중살리 읍내에서도
꼬불꼬불 오리길 걷다보면
물 맑기로 유명한 고부천이 흘러가고
새만금 변산의 개암산이 멀리 보이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동네 주촌이라네
안떰 밤나무떰 덕성리
모탱이떰 건너떰이란 자연지명 중에
우리집은 모탱이떰에서도
대나무가 울창했던 688번지라네
저 고향의 길섶에 /정세훈
나를
떠나 보낸 고향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마모된 기계소리 만큼만
추억을 깔고 누워라
바람 부는 길가에서
시냇물 소리
흐르지 않아도 좋아라
슬픔처럼 다듬어진
저 고향의 길섶에
다만
되밟고
돌아가야 할
내 옛 발자욱 같은 흰 눈발만
조금 조금 나리어라
고향 집 /문창갑
나 지금 아우라지 정선에 와서
임종 직전의
폐가 한 채 문병하는 중입니다
억새와 거미줄, 그리고
함부로 살 찢고 다니는 바람에 점령당한
스산하고 가련한 폐가지만 이 집도 예전엔
한 가족이 슬어낸 하나한 추억을 머금고 있었을
심줄 푸른 고향 집이었습니다
무조건 받아주고, 무조건 안아주던
고향 집, 아버지와 어머니 선산에 누우신 후
사람 냄새 사라지니
빠르게 폐가 되었지요
제 몸의 문이란 문 죄다 열고
집은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저리 습기 잦아지는 쇠잔한 몸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요
폐가 된 고향 집은 애면글면 버티어보지만
결국은 와르르 무너지며 집의 일생 마칠 것이니
타관 떠도는 자식 놈들 훗날엔 필경
저녁놀에 울먹울먹 얼굴 묻고
고향 집의 살 냄새 사무치게 그리울 것입니다
그러다 그러다
어둠이 밀물지는 생의 오후 어느 날엔
불현듯 돌아가고 싶겠지요 돌아가서
버리고 온 고향 집 식은 아궁이에 다시금
군불 지피고 싶겠지요
고향 집 없는, 너무 늦은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