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다시 시작됩니다.
어떤 날이든 한결같이 주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자존심 때문에 낮은 마음으로 섬기지 못하고
간사함과 이기심 때문에 주님의 선한 길을 놓칩니다.
생명으로 저를 섬겨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회개합니다.
기도 제목이 쌓여 갑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본문 주해)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주님을 가르치시는 장면과 베드로와 제자들이 호언장담하는 장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22~25절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에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자신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신다.
구약에서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언약을 체결한 것(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등)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예표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이다.
예수님은 본문 25절에서 하늘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기 전에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고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신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28~30)
예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나라를 여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신다는 것은 십자가 이후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자들로서 새 것이 된 자들이다.
이로써 구약의 제사, 유월절 제사는 이제 종결된다. 구약의 유월절 예식이 마감되고 새 언약에 따른 성찬 예식이 새롭게 제정된 것이다.
26~31절 :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신다.
예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고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신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이다. 올리브 나무가 많은 동산이기에 그곳에 기름 짜는 틀이 있었다.
올리브가 으깨어져서 기름이 나오듯이 예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 것을 말씀하신다.
‘나를 버린다’는 것의 각주를 보면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는 것이 실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족해야만 하는 이유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13:7)
주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자신은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한다.
그러나 주님은 매우 구체적으로,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다.
그래도 베드로는 ‘죽으면 죽었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진심을 말한다. 다른 제자들도 따라 말한다.
이 대화 중에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은 부활 후 갈릴리로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28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부르시고 예루살렘까지 오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할 줄 알았던 예수께서 잡히시는 것을 보고서는 다 버리고 도망가게 된다.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림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게 된다. 죽기까지 헌신 충성하겠다는 말도 못하게 된다. 완전히 바닥에 내려간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갈릴리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의 묵상)
주님께서 제자들과 먹으신 마지막 유월절 식사가 오늘날 성찬 예식의 기원이 되었다.
복음을 알기 전의 나는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그 예식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연중 몇 번 치르는 교회 행사로만 알았다.
복음을 알게 된 이후 이제 주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인해 내가 새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놓으신 하나님 나라에서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자,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 성찬 예식은 참으로 소중한 예식이 된다.
그런데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이 식탁이 연중 몇 번 차려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는 매일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말씀의 자리가 바로 그 식탁이다.
이 자리에서 말씀을 받아먹으니, 매일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행하기를 말씀하셨고, 또 그 예식을 할 때마다 제자들에게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나도 매일의 말씀의 자리에서 나를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이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서 새롭게 된 새 언약 백성은 호언장담을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은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결단의 말들이 거짓이 아니었듯이, 내가 했던 수많은 결심과 결단도 그 당장은 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예상치 않은 대로 흘러가면 곧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자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맥없이 붙잡히고 또 십자가에 죽게 되었으니 다 그분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것이다.
도망쳐 버린 제자들이 너무도 이해가 된다.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나는 나.....
내가 다치는 무서운 상황이 더 겁나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을 버린 그들을 부활 후 주님은 갈릴리에서 만나 주신다.
제자들은 ‘부활’이나 ‘주님이 갈릴리에 먼저 가실 것’ 등의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 말씀 앞에 앉아 이것을 알아들으니 얼마나 복이 되는지!
나의 호언장담은 필요 없다.
나의 결단과 결심도 필요 없다.
오로지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다 이루어내시는 것을 믿게 하신다.
주님을 버리는 그 자리까지 가게 하시고, 다시 불러모아 주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호언장담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언약의 피 안에 거하며 주님만을 신뢰하는 자로 이끌어내시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상황에 따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주님을 버릴 자입니다.
그런 자를 매일 주님의 식탁에 불러 주셔서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제 주님의 언약의 피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배신을 회개와 충성으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을 더욱 기대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