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신라 경덕왕10년(751)에 재상 김대성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불국사 사적기에는 신라 법흥왕 원년(514)에 창건하고 진흥왕때 중창한 후 다시 경덕왕대에 김대성이 3창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 남아있는 절의 가람배치의 양식이나 석조물들 그리고 극락전의 불상들을 보면 통일신라 시대 전성기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엽 석굴암과 전후하는 시대에 김대성이 세운 것이라는 설에 무리가 없다고 본다. 불국사는 신라인의 이상적인 불국세계를 하나의 사찰 안에 구상해 놓았다. 즉 불국사 건축에 나타나는 교리적 상징체계를 알아야만 불국사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불국사의 석축은 곧 천상의 세계로 오르는 벽이다. 즉 석단의 아래쪽은 속인들의 사바세계요 석단 위는 불부처의 천상세계인 극락을 표현했다. 그 정상이 수미산인데 범영루가 이를 의미한다. 그래서 범영루의 이름은 '수미범종각'이라 했고 범영루 정상의 누각에는 108명이 앉을 수 있게 했는데 108은 물론 백팔번뇌를 의미한다.
범영루(泛影樓)는 이름그대로 물위에 그림자가 뜬 누각이다. 지금은 앞이 마당이지만 예전에는 구품연지라는 연못이 있었다. 수미산은 중턱에 사천왕이 있고 꼭대기에는 제석천이 사는 곳이다. 수미산을 표현하면서 돌기둥을 쌓고 첨차를 쌓아올려 한껏 웅장하게 표현했는데 이것이 또한 불국사 석단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천상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23호)는 33계단으로 곧 33천을 의미한다. 백운교를 오르고 청운교를 오르면 천상세계인 자하문(紫霞門)이고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과 대웅전을 옹휘하듯 우뚝 선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다. 이 쌍탑의 설정은 묘법연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건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내용인즉 천상의 많은 부처 중 속세로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고 되돌아간 과거 7불 중 석가모니 바로 앞의 부처가 다보불이다. 앞으로 오실 분은 미륵이다. 이 세분이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이다. 다보불은 평소에 "내가 부처가 되어 죽은 뒤 누가 법화경을 설하는 자가 있으면 그 앞에 탑모양으로 땅에서 솟아나 '참으로 잘하는 일이로다' 하고 증명하리다". 라고 서원을 내었는데 훗날 석가여래가 법화경의 진리를 말하자 그 자리에 칠보로 장엄한 탑이 우뚝 솟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보탑의 내력이고 그래서 다보탑은 화려한 것이다. 불국사석가탑의 정식 명칭이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고 다보탑은 다보여래설법증명탑인 것이 여기에 연유한다
목조탑에서 석탑으로 가는 길목에서 백제의 익산미륵사탑 정림사탑 등이 창건되었고,모전석탑을 거쳐 신라석탑으로 정형을 이룬 것이 석가탑이다. 불국사 마당의 불국사석가탑(국보 21호)은 신라 문화완숙기에 이룬 더도 덜도 없는 가장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탑이다. 1966년 석가탑을 해체복원할 때 탑판 복판의 사방 41cm사리공에서 파란 녹으로 덮인 금동제 사리함이 나오고 그 주위에는 목재소탑,동경, 비단, 향목, 구슬 등이 가득한 채 둘레에 천년유향이 번졌다. 네모진 청동외함은 석가탑의 모습처럼 장중한 균형을 갖춰 국내외에서 발견된 사리장치 중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이 사리장치는 우리나라의 국보인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물로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할 만했다. 비단으로 싼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26호)이 나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목조경판이 세계최초 최고의 목판경이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최고의 다라니경은 일본의 770년경에 간행된 '백만탑다라니'였는데 석가탑의 목판경은 751년에 간행되었다는 것이다. 석가탑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다보탑(국보20호)은 단순우아한 석가탑과 달리 많은 장식과 기교를 부가했다. 계단도 사방에 설치하고 네마리의 사자상도 두었으며 다보여래의 앉음자리 전당도 화려하기 짝이없다. 누각앞에는 사각의 난간과 그 위에는 팔각의 난간까지 둘렀다. 보탑이라 더 이상 화려할 수없는 석탑으로 불국사에 장치한 후 나라 안밖에서 제조가 안된 전무후무의 이형석탑(異型石塔)으로 남았다. 지금 다보탑에는 돌사자가 한마리만 남아있다.
석단의 서쪽 영역으로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 영역이 따로 있는데 여기로 오르는 계단이 칠보교와 연화교(국보 22호)로 극락세계의 정문인 안양문(安養門)에 곧장 연결되고 있다. 안양문 안에는 아미타여래가 주석하는 극락전이다. 칠보교의 계단에는 연꽃무늬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안양문을 오르는 길은 칠보와 연꽃으로 장식되고 극락전 뒤쪽으로는 대웅전 3열의 돌계단이 각각 16단으로 모두 48단을 이루고 있다. 이는 아미타여래가 48가지 서원을 내어 극락세계를 건립한 것을 상징한다. 불국사에는 이렇게 묘법연화경(법화경)의 상징성을 건축에 나타냄으로서 불국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불국사는 왕실의 비호아래 건축된 사찰이라 왕궁처럼 회랑으로 연결된다. 경덕왕은 통일 신라의 문화적 난숙 속에 왕실의 견고한 전제정권의 확립을 위해 왕권강화를 표방하며 관제정비와 개혁조치를 취하고 아버지 성덕대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엄청난 대종인 에밀레종을 만들었고 아들을 얻기위한 대불사를 일으켰다. 이런 대대적인 토목공사는 재상 김대성이 총감독을 맡아 진행하였으니 모든 건축물은 위대한 것으로 잘 만들어야만 했다. 이때의 절들은 대개 시내에 있었고 건물에는 회랑이 없었다. 불국사는 회랑을 설치하였는데 그래야 성속의 영역이 확실히 구분 되었고' 왕즉불(王卽佛)' 이라 했으니 절도 왕궁처럼 엄정한 기품을 갖추어야 했다.. 훗날에는 대웅전, 극락전 같은 전당 안이 예불공간이 되었지만 불국사는 중문을 들어선 회랑 안이 곧 성역이었다. 석가모니의 분신인 사리를 모신 탑이 곧 성역이요 예불대상이었으니 안마당에 당탑(堂塔) 이외엔 어떤 장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불국사는 우리나라를 통털어 여러 가람배치 중 가장 귀족스럽고 독특하여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라하대로 들어서면서 사찰은 산지로 옮겨가고 절집은 선종의 개방성이 요구되어 회랑은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자연과 어우러져 갔다.
불국사 석축은 누구에게나 벅찬 감동을 준다. 전장 300자,약 90m의 이 석축은 대단히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석단은 복잡하지만 정연한 인상을 준다. 경사지를 2개의 단으로 조성했는데 아랫단은 자연미나고 윗단은 다듬은 돌로 인공미나게 쌓았다. 아랫쪽은 사바세계를 윗쪽은 불국의 세계를 상징한다. 석단을 2단으로 분리하여 단순한 가운데서 변화를 주며 또 자연미로부터 인공미로의 체계적 변화를 가져왔다. 반듯하게 다듬은 장대석으로 네모칸을 만들면서 열지어 가는데 그 직사각형 속은 제각각 다른 크기의 자연석으로 꽉 채우고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에서 인공미를 최대한 구가 했는가 하면 크고 잘 생긴 듬직한 자연석을 그대로 기단부로 삼는 대단한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자연석 기단위로 인공석을 얹으면서 목조건축의 그랭이법을 본받아 그 자연석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인공석 받침돌을 거기에 맞추어 깍아낸 것은 그 기교의 절정을 나타낸다
그런가하면 반듯한 석축이 열지어 가다가 범영루에 이르면 화려한 구성의 수미산(須彌山)모양 축대가 누각을 번쩍 들어올린다. 최순우선생의 표현을 보자
~~ 크고작은 자연괴석들과 잘 다듬어진 장대석들을 자유롭게 다루면서 장단맞춰 쌓아올린 이 석단의 짜임새를 바라보면 안정과 율동, 인공과 자연의 멋진 해화(諧和)에서 오는 이름모를 신라의 신비스러운 정서가 숨가쁘도록 내 가슴에 즐거운 방망이질을 해주는 것이다. 불국사의 이 대석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범영루 발밑에 쌓인 자연석 돌각담이었다. 우람스럽게 큰 기둥이 의좋게 짜여서 이 세상 태초의 숨소리들과 하모니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이 세계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누가 원형그대로의 지지리도 못생긴(사실은 잘 생긴) 돌들을 이렇게도 멋지게 다루고 쌓을 수 있었을 것인가.
불국사석단에서 극락전 바깥의 측면 축대쌓기를 따라가보면 또 한번 자지러지게 놀란다. 곧게 세운 세로줄 장대석을 가로지르는 허리춤 걸림돌이 수평으로 뻗어나가다가 오르막에서 급격한 꺾임새를 나타내는 동세(動勢)는 천하의 일품이다.수직수평으로 교차하는 장대석을 마치 목조건축의 가구인양 동틀돌로 조이면서 입체적으로 돌출시킨 아이디어도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즉 비탈을 타고 오르는 석축은 필연적으로 긴 세모꼴이 되고 마는데 그 수평선과 사선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이런 구성은 불국사 건축기교의 최고 절정을 이루어 놓는다. 불국사를 참관한 세계건축가들의 한결같은 찬사는 이 대석단의 구성부터 시작된다. 세계문화유산에 아무런 이의없이 등재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복원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많다. 경루를 복원하지 않은 점, 석가탑의 상륜부를 너무 장식적으로 모방한 점(상륜부는 실상사를 모방했는데 실상사는 장식성이 강하여 석가탑의 단순 우아한 아름다움을 벗어났다고 함) , 구룡연지의 존재를 발굴했으면서도 광장의 나무와 관람객의 수용기능을 위해 복원하지 않기로 한 점, 구품연지(九品蓮池)에 수미산 같다는 범영루가 화려한 축대와 함께 거꾸로 비치게 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그렇지만,그래도 불국사는 위대하다. 서라벌 해뜨는 토함산 기슭에서 만고의 성전이 된 사찰이다. 우리가 잠시 이런 불국사를 감상하기는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더욱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해서 짧은 글이지만 나름대로 주워 모았다. 아는 자의 눈에만 보이기에.
첫댓글 불국사 도 많이 가 보았지만 횟수만 거듭할분 깊이있는 공부는 뒤로하고 겉 훌기만한 나는 또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후회
하지않게 열심히 보고 느낄것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