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 편/김 인 호
그 곳에는 아득한 그리움이 깔려 있었다. 한 줄 슬픔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선명한 기억으로 생생하게 추억하는 그 앨범의 역사에는 세월이 구름처럼 흘러가리라 몰랐을 것이다. 왼 쪽 눈에 백내장이 느닷없이 찾아왔을 때에도 근시로 흐릿한 일시 장애가 생겼거니 했다. 원래 수리에 밝지 않아 친구 전화번호도 정리되지 않고 아이들 생일도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슬프고 아름다운 드라마나 연극은 마음 속 깊이 쌓여 있었다. 책상다리에서 끙끙대며 무릎 짚고 일어날 때 이미 예측했어야 했다. 인생의 가을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너무 쉽게 다가섰다. 새치에서 백발로 넘어갈 때 "할아버지 의사선생님! 낫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할 때라도 깨달었어야 했는데 "애야! 할아버지가 아니고, 의사선생님이야..."기겁하는 환아 엄마의 표정에 내 황혼은 아직 하고 자위했다. 지하철 무료라는 카드를 받았을 때나 손자 손녀가 생일 축하카드에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할 때도 속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 하며 육신은 생리적으로 거부했다.
젊은이들끼리 폭소 터트리는 아재 개그나 카톡 약어를 비록 어눌한 음률로 알아채고 그냥 웃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세월이 흐른 탓이라고 하지 않았다. "요즘 DM(당뇨)이 말썽이네. 운동하고 야채위주로 탄화물 줄이고 약도 먹는데..." "무슨 약을 먹지 요즘?" "먹던 대로 메토포르민과 그, 그.... 약 있잖아? 설포닐우레아제재 말이야..." 오랜만에 만난 동료의사와 식사 중 그 깜빡증이 불쑥 나타났다. 늘 먹는 약인데 그 이름이 머리에 뱅뱅 구르며 떠오르지 않아 얼핏 50년 전 의대 시절 주입된 성분명이 떠올라 얼버무렸지만 그 상품명은 한참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소통은 대화이고 대화는 말을 해야 하지 눈짓으로 할 수 없다. 어제 만난 친구 이름도 퍼뜩 떠오르지 않는, 최근 더 자주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골반 청바지에 비비드 티셔츠를 걸치고 백팩을 매고 헐렁한 운동화 접혀 신고 활기차게 걸으며 꼰대형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모임에 가면 "요즘 점점 젊어 진 패션이야!" 던져주어 젊음은 가꾸기 나름 아니겠냐 하고 으쓱해 왔던 터였다. 애써 허세를 부려 가끔 썰렁할 때도 있으나 헬스장 트레이너의 근육을 내려 받으며 내 나이 또래보다 나름 영스터였다. 그러나 브런치 디저트 카페에서 젊은 카톡 질을 하려면 단어가 뱅글거리고 또 더듬으며 하얀 머리를 감싼다. 92세노인이 박사학위복을 입으며 "해 낼 수 있는지 도전했다" 는 아침 토픽은 이런 나를 주눅들게 했다, 그 나이에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다니 쓴웃음 짓는다. 안다는 것과 재태크와 사랑 마저도 쓰잘데없는 허깨비 짓으로 치부해버리는 요즘 감정의 흐름은 내가 변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구두에 낀 바지 빼시고 바지춤 자크 채웠나요?" 승강기 버튼을 누르며 확인하는 아내의 출근 인사가 일상이 되었다. 어색하지 않게 바로 점검하는 내 행동은 수 차례 창피를 당하고도 반복되는 상꼰대의 헛발질 때문이었다.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고 시동을 켜 둔 채 점심식사를 했다는 유능한 외과의사 친구도 최근 예상치 못한 깜빡 사고로 곤경에 처한다고 하소연하였다. 그의 건망은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요즘 진료차트는 디지털 시스템 프로그램이므로 PC가 자동 입력 처방 출력까지 처리 해결해준다. 의사의 기억력은 별 가치가 없는 셈이다. 단지 진찰 후 진단명을 결정하면 무슨 약물(상품명)을 처방하고 그 용량 연산은 데이터 클릭으로 하기에 내 역할은 처방전 확인 정도이다. 굳이 약명을 외워 둘 필요가 없으니 의사인 내가 늘 복용하는 당뇨 약명도 순간 떠오르지 않았던 것. 더욱이 칠십 노년의 기억 중추는 용량도 줄고 퇴행의 생리에 접어들어 기억과 리콜 신경망 센서가 퇴화되고 있는 중이리라.
세월 탓이라 여기기도 한다. 어쨋던 이런 얕은 기억 장애가 신경망(변연계) 내부의 해마(海馬 Hippocampus)와 두정엽의 위축으로 서서히 인지기능 장애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생겼다. 두려운 길, 그 길은 알츠하이머로 가는 길이고 회복되지 않는 길이다. 돌아오지도 못하는 슬픔이다. 이런 면에서 의사는 외롭고 불안하다. 오랫동안 성격 분석부터 알려진 질병 대부분 그 경과와 예후까지 꽤차고 내다보고 있으니 자신의 증상에 따른 불안과 공포, 안도감을 동시에 품게 될 수밖에 없다. 배운 것이 고독한 직업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던 그 단어와 이름이 한 순간 딱 떠 오르는 경이로운 환희가 일어날 때가 있다. 탁한 혈관에 새 피가 스며들 듯 전신이 맑아진다. 그토록 뱅뱅 맴돌고 소실(?)되었던 기억이 어떻게 한 순간 떠오를까? 언제 깜빡 했느냐 하는 듯 연관어까지 술술 연쇄적으로 쏟아진다. 기억회로의 접선 불량이 스파이크를 일으켰던지 우회로를 찾았는지 알 수 없다. 꼭 신의 작업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쉽게 드러내 놓지 못한다. 소프트웨어가 망가진 것으로 감정과 행동마저 별도 취급당할까 두려워 은연 중 숨기게 된다. 그래서 진을 뺀 그 순간들은 은밀하게 나만 알고 있다. 어느 순간 떠오르지 않을 아우라(AURA)가 보이면 에둘러 표현할 방안이나 단어로 모면하기도 한다. 더 이상 리콜하기 힘들어 포기할 때도 있다. 그 때는 일단 얼버무리며 상황을 패스시키고 곧 구글이나 연락처를 뒤지고 뒤통수를 치기 일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내 일상 중 일부를 회피하고 싶은 때가 있다. 특히 글 쓰기 때다. 원고 청탁서가 날아오면 예전에는 테마선정에 애를 먹었는데 이젠 어휘 선택으로 갈등하며 황당하기 때문이다. 그 많던 어휘들의 창고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 혼자 끙끙거릴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에 요즘은 적극적으로 예방의 길로 들어섰다. 뉴스 따라 발음하고 큰 소리로 시 낭송하고 사전 단어를 한 페이지 씩 반복하는 어학 실습생이 되었다.
옛 앨범을 뒤적이며 그 때의 대화를 회상한다. 특히 아이들의 키득거리던 웃음을 추억해 본다. 아직 내 감정의 뭉치들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헤어질 때의 아픈 기억도, 손자를 이국 땅 멀리 보낼 때 체취와 그 흐느낌과 아련한 그리움도 가슴 벅찬 행복감도 아직 말짱하다. 우려하는 내 신경회로의 퇴행이 어느 길로 얼마나 빨리 또 다양하게 나타날 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기억 저 편의 추억 편린들, 내 기억에서 더 잊혀지고 사라지기 전에 따로 보관함에 저장해두고 싶다
첫댓글 묵은 기억들은 저장 창고에
자주 꺼내 볼 기억들은 잠시 보관함에
자물쇠로 꽁꽁 잠가야할 기억은 아주 깊숙한 곳에
컴퓨터의 하드웨서처럼 우리네 일생의 창고에도 쉽게 저장하고 꺼내고 필요에 의해서 또 삭제 하고~이런 기능들이 죽을 때까지 명료한 기억공간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점점 잃어간다는 것 점점 뒤죽박죽 섞여버린다는 것 그것보다 더 겁나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일마저 ㅠ ㅠ
글쓰기로 나를 끝없이 세우는 일이 있어 다행으로 여깁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내 일만 같아서~~~~그러나 어쩌겠어요...
기억이라는 것은 억지로 붙잡고 있어야 되는 것인가 봅니다.
단도리 못하는 순간 스르르 빠져나가버리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