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心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4. 무심 배길관 충북대명예교수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무심이라는 말은 본래 심오한 뜻을 가진 불교 용어이다. 無心(무심) 無我(무아) 無常(무상), 三無(삼무)는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 이념이다. 우주 만물은 정신적으로 무심이라서 그 마음이 지극하게 깨끗하고, 공간적으로 무아라서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시간적으로 무상이라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석가모니의 본질적인 깨달음이요, 이 세 가지 근본 이념이 불교의 전통적인 세계관이며 자아관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맑고 깨끗한 것이나 몸(생명)에서 생기는 본능적인 욕심이 본래심을 가리기 때문에 어둡고 어리석게 되고, 그 無明(무명) 때문에 번뇌 망념이 생기고, 번뇌 망념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이 불교의 衆生觀(중생관)이다.
무심은 나라는 것이 없는 무아의 심경이다. 현실 인간은 몸에서 생기는 본능적인 욕심을 따라서 산다. 무심은 본능적인 욕심을 따르는‘현실적인 나’가 없는 무아의 심경이다. 나라는 욕심의 울타리가 없는 마음, 나와 남이 분별되지 않는 自他不二(자타불이)의 마음이 무심이다. 무심은 곧 잘못된 욕심이 없는 텅 빈 마음이요, 텅 빈 마음이란 아무 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이 아니라 자비와 지혜가 충만한 眞空妙有(진공묘유)의 빔(空)을 이른다. 불가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무심을 찾아가는 것을 ‘나를 버리고 나를 찾아간다’라고 한다. 현실적인 욕심의 나를 버리고 이상적인 무심의 나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공자는 ‘나라는 것이 없는 것’을 克己(극기)라고 하셨다. 극기는 현실적인 욕심을 극복하고 본래심인 어짊(仁)을 실현하는 것을 이른다. 유교의 극기와 불교의 무심은 각각의 핵심 실천 사상이다. 극기는 成仁(성인)의 길이고 무심은 成佛(성불)의 길이다.
무심은 내 것이라는 것이 없는 無所有(무소유)의 심경이다. 안으로 가진 것도 없고 밖으로 구하는 것도 없는 마음, 내 것과 네 것이 분별되지 않는 마음이 무심이다. 무소유의 구도자 법정 스님은 ‘무소유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설법하였다. 이는 곧 현실적인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심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무심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욕심이나 잘못된 망념이 없는 지극히 깨끗한 본래심을 이른다. 이를 ‘무심은 無念(무념)이다’라고 한다. 무념은 생각이 없음이 아니라 이치에 맞지 않는 잘못된 생각이 없는 無妄念(무망념)의 준말이다. 무심은 곧 마음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맑고 깨끗한 상태이다.
요컨대 무심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이다. 이 마음은 안으로 평정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나 두려움이 없고, 밖으로 허공 같아서 막힘이나 걸림이 없는 무애자재한 해탈의 경지이다. 욕망이 삶을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이란 다름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아무 걸림이나 막힘이 없는 자유자재한 경지이다. 선종에서 표방하는 見性成佛(견성성불)의 근본은 무심을 성취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無心是佛(무심시불), 무심은 곧 부처다’라고 한다.
맑은(淸) 고을(州) 청주에는 무심천이 있다. 청주와 무심천은 참 잘 어울리는 두 이름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무심천, 그곳에 기대 사는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그들을 기르는 하늘과 땅, 우리는 이들 모두를 통틀어서 자연이라고 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