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9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15장 16절 - 23절 - 주가 당하신 고난의 의미와 복음에 연합되는 상급을 누리며 감사하며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비가 오는 월요일 아침을 시작하며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따뜻한 날씨가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처럼 주께로 향한 발걸음이 은혜를 기대하게 합니다.
주어진 하루의 삶이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통해 성도가 나아갈 길을 찾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살길 소망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바른 길을 감으로써 삶의 자리에서 풍성한 주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지체들도 기억해 주시고 하루의 삶이 감사와 찬양으로 풍성하게 하옵소서.
함께 해 주시고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본문 해설
빌라도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형에 처하기로 선고되자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도리온(총독의 본부, 관정)이라는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님께 자색 옷(왕족이나 총독이 입다 버린 옷으로 추정)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며 경례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하며 조롱하게 된다.
또한 갈대(왕의 홀을 상징)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고 꿇어 절하면서 예수님을 왕처럼 분장시킨 후 조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희롱을 다 한 후에 자색 옷을 벗기고 다시 예수님이 입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관정에서 나가 예루살렘 성 밖의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가게 된다.
성문으로 가던 중 마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부터 왔다가 병정들에 의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 예수님은 밤에 잡히신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시고 잠도 못 잤으며 희롱과 채찍질로 인해 온 몸에 상처가 났기에 무거운 십자가를 질 힘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병정들은 근처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보고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이다.
마가는 시몬을 소개하면서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를 언급하는데 이는 마가가 복음서를 로마에서 기록하면서 로마에 거주하던 그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무엇보다 당시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시몬에 의해 그의 가족들도 동일한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졌으며 바울도 로마서에서 루포를 언급하며 그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부르기도 했다(롬16:13).
병정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해골을 의미)라 하는 곳에 이르렀는데 골고다는 아람어 명칭이며 헬라어로는 해골을 뜻하는 크라니온(라틴어로는 갈보리)로 번역되었다.
이때 사람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고통을 무감각하게 하는 진통제로 사용)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마시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잔을 온전히 마시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 십자가형이 언도되자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왕족들만 입는 자색 옷을 입히고 왕이 쓰는 왕관을 빗대어 가시 면류관을 씌웠으며 왕의 홀을 상징하는 갈대를 가지고 머리를 때리는 일을 하게 된다.
또한 왕에게 인사를 하듯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며 침을 뱉고 꿇어 절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예수님을 웃음거리로 여기며 조롱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조롱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들의 조롱을 다 받고 인내하신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왕으로써 대우받지 못할 이유도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조롱을 그대로 받으시고 매질과 모욕을 그대로 참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 영생을 주시기로 한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나가시기 전에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1~13)
악한 자들은 이 목적을 무너뜨리기를 원했고 예수님의 고난과 조롱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 모든 상황이 철저히 심판을 받고 죄와 허물로 죽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그리고 하나님은 철저히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 모든 책임을 지우시게 된다.
당시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예수님의 고난에 공감하면서 조금이라도 고난에 동참해 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자신을 따르던 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들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철저하게 외로운 상황과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 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조금의 자존심만 있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나의 모습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에 이런 상황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인내하면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상상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무식한 것이 용감한 것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으며 예수님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진리가 무엇이며 영생이 무엇이고 인생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배만 채우며 사는 짐승과도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도 조롱하며 때리고 욕하면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행동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자기의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짐승에 불과함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짐승보다 못한 모습으로 죄악을 행하는 심판받을 자로 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은 나의 모습이 그들과 다르지 않고 무지함으로 행하던 일이 너무나 많았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신을 살피지 않고 살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욕심을 위해 주를 조롱하고 외면하면서 짐승과 같은 삶을 사는 자가 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주를 아는 것,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 영생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능력이고 지혜이며 지식인지를 고백하게 만드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기를 소망하면서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상급을 얻는 것임을 제시한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0~14)
주의 고난을 안다는 것,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보다 놀라운 것이며 온전한 것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을 바울은 부름의 상이라고 선포하면서 그것을 잡기 위해 달려갔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님은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 복음에 연합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며 상급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됨을 가르쳐 주신다.
여전히 미련함으로 살아가며 연약함으로 고난이 동참하기를 주저하기도 하지만 주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요 진리이며 생명이요 능력이 되는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은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지식이요 지혜이며 능력이요 생명임을 다시 한 번 말씀을 통해 고백하게 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고통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영광의 복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마음에 담고 감사함으로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 진리를 얻고 누리며 전하기 위해 기꺼이 땅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자로 서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진리를 따르는 길로 나아가도록 친히 이끌어 주옵소서.
로마 군병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이 다른 이의 모습이 아닌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비참한 자로 살아가지 않도록 지혜와 지식의 영을 더해 주시고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진정한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께서 내 삶의 진정한 왕 되심을 선포하게 하시고 주를 따르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