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배우학교
개교 45주년 된 美 '배우 스튜디오'
- 뒤죽박죽 수업 분위기속서 폴 뉴먼,
마릴린 먼로 등 무수한 톱스타 배출
폴 뉴먼,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제임스 딘, 시드니 포이티어,
조안 우드워드, 마릴린 먼로, 셸리 윈터즈, 제럴딘 페이지, 로버트 듀벌,
로버트 드 니로..../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기조차 힘든 이들은 모두
미국의 배우 직업훈련원인 '배우 스튜디오'의 860명 졸업생 명단의 극히 일부분이다.
유명한 영화배우와 연극배우 및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를 배출한 45년 전통의
명문배우학교임에 트림없지만, '배우 스튜디오' 당국은 '학교'라고 불리기를 극구
부인한다. 이 배우양성소의 '제1과'는 절대로 '학교'나 '양성소'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뉴욕시 웨스트44번가 432번지에 위치한 '배우 스튜디오'입학에 관한
절차를 알아보려고 전화로 문의라도 할라치면
"저희 '배우 스튜디오'는 학교가 아닙니다.
연기 실험소입니다"라고 이름부터 정정시켜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슨무슨 학과가 있나요?" 하고 물으면 "학과는 없고 수업시간만 있습니다."고 답한다.
"어떤 선생님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중재사'라고 부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졸업생이라도 알려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저희 스튜디오에는 졸업생이란 없습니다.
한번 연수생으로 등록하시면 영원한 회원으로 남습니다." 하는 식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사실 지난 45년간 이
배우직업훈련원은 외부인들의 눈에는 좀 괴상한
곳으로 비쳤고, 때로는 우습게도 보였고, 오해도 많이 받았는데 그럴만도 했다.
이 배우학교가 자랑하는 수업방식인 '방법론'의 원칙도,
외부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다.
즉 어떤 역을 하기전에, 배우는 그 역을 충분히 느껴야 한다.
느낌이 온 후라야 비로서 연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 지망생들의
연기연습광경을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마치 미친사람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연기학교가 강조하는 '감가그이 기억화' '효과적인 기억법' '혼자 가만히 있기' 및
가상적인 '즉흥연기' 등은 잘 봐줘야 미숙한 자기도취로보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정신 병자로 보인다.
로렌스 올리비에도 그의 저서인 <연기에 관하여>에서
"방법론을 내세우는 '배우 스튜디어'에
가서 연기수업을 하느니, 차라리 건설현장을
찾아가서 막노동을 하는게 낫다"고 혹평 했다.
배우인 필립 보스코는 "배우 스튜디오에서는 '배로 느껴라' '연기의 감정은 뱃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기의 기술(연기력)은 2차적인 것이다' 라고 가르치는데 무척 당황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배우 스튜디오'는 백해무익해요.
연극의 정도를 벗어나고 궤도를 이탈한 연극집단입니다"라고 말한다.
유명배우·시나리오 작가·연출가 배출한 명문 '배우학교'
배우 스튜디오의 수업방식을 그렇다 치더라도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
그들 말대로 한다면 '회원'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는가 하면, 투덜대고
신경질적이며, 웅얼거리는 괴상한 생도들의 집단이다. "다른 배우들은
우리들의 연기를 보고 '찢어진 티셔츠 같은 연기'를 한다고 하지요.
그들은 또 우리들을 보고 '필요한 것은 연기수업과 목욕'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에요. 우리 학생들 중에는 목욕을 자주 해야 할 친구들이
많았거든요.라고 벤 가자라는 말한다.
그러나 이 스튜디오의 모범생들 -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제럴딘 페이지,
폴 뉴먼, 조안 우드워드, 로버트 듀발, 시드니 ㅍ에티어, 엘렌 버스틴, 셸리 윈터즈,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에스텔 파슨스, 샐리 필드 및 기타 등등 - 에게 44번가의 이
교회건물을 개축한 스튜디오건물은 '신전'이었고, 지도교사였던
고(故) 리 스트라스버그는 '신(神)'이었다.
이른바 소극장운동의 막내둥이로 태어난 배우 스튜디오는 1947년
유명한 극작가 겸 영화감독인 엘리아 카잔과 셰릴 크로포드 및
로버트 루이스에 의해 창설되었다.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와
그의 모스크바예술극장이 이끌던 기교적 자연주의 운동에 그 뿌리를 둔 것이었다.
'그룹극장'의 창설멤버였던 연기지도자 리스트라스버그가 1948년에 적극
참여하면서부터 배우스튜디오는 활기를 띠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연극계와 영화계의 주요스타들이
모두 그의 문화생으로 이곳을 거쳐 나갔다.
아트스틱 디렉터 스트라스버그의 연기론의 원칙은 소위 '방법론'으로서,
연기자는 자신의 과거의 정서적인 경험 당시의 신체적이고 개성적인 상황을
히상하여 다시 끌어내고, 그때의 감정들을 재생시켜 자기가 연기하고자 하는
인물과 역할에 이입시킴으로써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상오 11시 정각부터 하오 1시까지 2시간에 걸친
수업시간에 스트라스버그는 위대한 연기자의 표본으로 엘레노라 듀즈와
토마소 살비니를 강의했고, 연기도구로써의 육체를 논했으며, 긴장을 해서는 안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론 실버에 의하면 스트라스버그는
연기실습 도중에 배우에게 다가가서 그냥 턱을 만지며 턱으 ㅣ긴장을 풀게 함으로써
더 좋은 연기를 이끌어 내기 일쑤었다고 한다.
또한 '방법론'을 강의했는데, 엘렌버스틴은
연기연습중 스트라스버그 선생님이 다가와서
"방법론대로 안하는군요!"라고 주의 줄때가
제일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에 임할 때에는 '정직'해야 한다며
'공연 정직론'을 폈다. "진실하지 못하면 연기동작은 있되,
참된 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즉 액션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스튜디오'의 현재 아티스틱 디렉터인 프랭크 코르사로의 설명이다.
스튜디오는 '신전' 지도교사 리 스트라스버그는 '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배우 스튜디오'는 일종의 연기하는 체육관이었다.
운동하는 체육관이 아니라 연기 연습하는 체육관 같았다. 배우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마음껏 연기를 연마하는 수련장이었다.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극중
인물의 성격을 창출하여 공연해 보이고, 세밀한 곳까지 지적당하고 수정을 가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커다란 실수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연기 도장이었다. 시설도 보잘 것
없는 허름한 창고 같았지만, 이곳에서 배우들은 실력을 연마하고 쌓아갔던 것이다.
"배우 스튜디오의 좌석 의자들이 너무나 낡고 초라해서, 브로드웨이의 어느 오래된
극장이 개축을 하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뜯어 내버리다시피 한 의자들 몇가지를
사다가 들여놓았지요. 그랬더니 엘리아 카잔이 전부 치워버리라고 해서 모두 도로
뜯어내어 버렸지요. 그는 그게 극장모양이지 어디 스튜디오냐고 하면서, 오히려
연습하는 데 걸리적거리고 다칠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셸린 윈터즈의 당시 회고다.
회원(졸업생)들은 아직도 마릴린 먼로가 '배우 스튜디오'에서 모리 스태플턴과
<안나 크리스티>의 한 장면을 공연하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있었지요.
사람들이 구경하느라고 서까래에 매달리기까지 했습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전기를 쓴 바 있고 이 스튜디오의 운영위원인 패트리시아 보스워
즈의 회고다.
스트라스버그는 벤가자라가 맥베스 역을 맡고 마릴린 먼로가 맥베스 부인역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일반극장에서 공연할 계획이었으나, 웬일인지 무산되었다.
동창들은 또한 무명시절의 폴 뉴먼이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엉기던 때를 기억한다.
처음 입교한 날 폴 뉴먼은 어리벙해 있었다.
"그때 폴 뉴먼은 컨디션이 안좋은 것 같았어요.
무대 뒤에서 그를 처음 만났는데, 그는 '방법론'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매우 곤혹스러워 했어요"
프랭크 코르사로의 말이다. 이곳에서 패트리시아 닐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했으며,
앤 밴크로포트는 <스페인의 비>를 노래했으며, 에드워드 앨비는 <동물원 이야기>를
시연했다.
케빈 배카시는 즉흥연기 도중 어찌나 열중했던지 휘두른 손길이 유리창을 깨고 뚫고
나갔다고 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여배우 앤 잭슨은 그와 공연중
폭력장면이 있을 때는, 그가 연기중에 실제로
살인을 할 것만 같아서 몹시 조심했다고 털어놓는다.
동창생들은 또한 지금은 연기파로 알려진
더스틴 호프먼이 '배우 스튜디오'에 들어오기 위한 오디션에서,어째서 6번이나(혹은
13번이라고도 한다.)
풀합격을 했는지에 대해서 지금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마 그가 역을 잘못 골랐기 때문일 겁니다.
" 라고 셸리 윈터즈는 그를 옹호하며 말한다.
전성기의 '배우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꿈과 열정으로
꽉 차 있었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우리는 마치 광신도 집단 같았어요. 우리들 자신의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밖의 모든 사람들은 이단자처럼 여겼지요." 엘리 윌러치의 말이다.
셸리 윈터즈도 "아주 진지했어요. 위대한 극장의 이상에 완전히 모든 것을 바쳤지요.
우리 모두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야 하며 결혼도 우리끼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그 어떤 도취감,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그 어떤 느낌이 감돌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제럴딘 페이지, 킴 스탠리, 제인 폰다, 스티브 매퀸이 있었다.
때로는 헬렌 헤이즈와 리처드 버튼같은 청강생도 앉아 있었다.
이 배우학교의 교장 겸 교사격인 리 스트라스버그에
관해선 두가지 엇갈린 견해가 있다.
그의 숭배자들에 의하면 그는 배우들에게는 위엄과 권위를 갖추어 주었으며,
연출자들에게는 좀더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그의 총명한 두뇌와 예리한 통찰력과 한치의 빈틈도 없이 허점을 찾아내 시정시
키는 능력을 지적한다.
"스트라스버그는 상대방의 재능을 정확히 재는 커다란 잣대입니다."고 극작가이자 연
출가인 피터 매스터슨은 말한다.
피터 매스터슨의 유명한 뮤지컬 <텍사스 최고의 작은 홍루>는 다른 작품<모자에 가득
한 빗물>
<이구아나의 밤> <장미문신> 및 <에덴의 동쪽>과 더불어, 바로 이 '스튜디오'의 극장
및 연출반에서
태동되었던 것이다. "뉴욕 연극무대나 할리우드의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스타들은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스타들은 항상
스트라스버그에게로 되돌아 오게 마련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의
근거지이기 때문입니다."고 매스터슨은 말을 잇는다.
엘렌 버스틴은 말한다. "리 스트라스버그는 금세기 연극의 천재입니다.
저는 이 지구상에서 그만큼 독특한 철할적 지성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아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배우 스튜디오 '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 - 폴 뉴먼, 샐리 필드, 다이안 래드 등 - 이면 누구나 다 '스튜디오'의 가치
를 압니다."
그러나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의 근엄하고(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90층을 올라가도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는 위인이라고 벤 가자라는 말한다.) 엄격한
지도방법, 편협한 연기이론, 즉흥 연기론('정신과 의사의 영역을 침범할 정도'라고 앤
잭슨은 말한다),
그리고 그만한 배우 훈련학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속극단 하나 만들지 못한 무능함 등을 열거한다.
후자에 대하여 코르사로는 "스튜디오가 그 이상의
영역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사실 입니다.
그리고 만약 스트라스버그가 극단과 각장을 만들었더라면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연기자라는 꽃을 가꾸는 온실을 창조해낸 것이지,
극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고 반박한다.
1982년 스트라스버그가 사망하자 한 사람으 지도자에 의해 운영되어온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배우 스튜디오'의 운영권을 둘러싼, 밀고 당기는 암투가 일어났다.
"문제는 그의 미망인인 애너 슽라스버그가 '스튜디오'의 운영권을 계승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는데, 우리 운영위원들은 그녀에게 전적으로 넘겨주는 것을 반대했고,
단지 일원으로 운영에 참여하기만을 바랐다."고 엘렌 버스틴은 말한다.
이에 심기가 뒤틀린 애너 스트라스버그는 법정투쟁 끝에 '스튜디오'의 실습을
수년간 녹음한 오디오 레코딩물만 가지고 스듀디오를 완전히 떠났다.
결국 버스틴과 알 파치노가 공동으로 '배우 스튜디오'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되었다.
2년 후 알 파치노가 사임하게 되자 버스틴 혼자서
맡게 되어 그녀는 본업인 배우와 감독
및 '배우공제조합'의 간사일 등을 보면서 연기지도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4년반 전에 '스튜디오'일을 프랭크 코르사로에게 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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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0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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