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채워야 할 보물(2)
2022년 4월 일 / 요절 - 마태복음 22:36-40 / 새찬송가 564장
마 22:36-40 / `선생님, 모세의 율법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3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39) 그러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가는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40) 모든 다른 계명과 예언자들의 요구는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보물이란 / 금, 은, 보화 등을 말한다(단 11:38). 성경에서 보물은 하나님께 드리기도 했는데(삼상 6:8),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한 뒤 전리품들을 하나님께 드려 여호와의 곳간에 두었다(수 6:19, 24). 보통 성전의 보물들은 금은 대야, 은과 금 대접, 여러 가지 그릇, 제사장의 옷 등이었으며(스 1:9-11), 거둬들인 세금과 함께 성전을 수리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왕하 12:9-16).
왕이 소유하고 있던 보물들은 은, 금, 보석, 향료, 그릇들이었고 곡식이나 포도주, 기름, 가축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대하 32:27-29). 그러나 때로 히스기야 왕 같은 이는 자신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보물들을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보여주는 실수를 했는데, 결국 그 보물들은 바벨론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왕하 20:12-18).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보물들을 예수님께 드리며 경배하였다(마 2:11).
보물의 상징적인 의미 :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물이 귀했는데, 이를 반영하듯 이슬을 하늘의 보물로 보았다(신 33:13).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라고 하셨다(마 6:20-21; 눅 12:33).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선한 일에 물질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헌금도 하고 가난한 자나 병들 자를 위해 구제를 하는 것 등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딤전 6:18-19).
당신의 보물은 어떤 것들인가?
마 6:19-21 /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사야 39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낫게 되었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바벨론 왕 모로닥발라단의 사절단이 선물과 친서를 들고 히스기야를 방문했다. 히스기야는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서 기분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신흥 제국이었던 바벨론 왕이 선물과 친서로 들려 사절단을 보내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신이 난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다. 성경은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의 사절단 앞에서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병에서 나은 그의 마음속에는 단지 죽었다가 살아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있을 뿐,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세상적인 복들을 자랑하였다. 그러면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궁전에 있는 것과 나라 전체에서 가장 좋은 보물을 다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가 무심결에 한 고백이다. ‘내 궁전, 내 창고, 내 보물’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즉, ‘내 궁전, 내 창고, 내 보물’이 그의 자랑이었다. 이로 보건대 병에서 나은 히스기야에게 가장 소중했던 보물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었다. 죽을 병에서 나은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하나님이 베푸신 복에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사실 앗수르에게 많은 고생을 했던 유다와 히스기야 왕이었기에 바벨론 사절단에게 보여준 ‘내 궁전, 내 창고, 내 보물’이 보물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에 있어서 가장 귀한 보물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였나? 그것은 분명히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자랑이 아니라 자기 자랑이라는 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를 물리친 것은 다윗처럼 조약돌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히스기야 왕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왕하 19:32-35 / 이제 앗수르 왕에게 있을 일을 내가 네게 분명히 알려 주겠다. `그는 이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안으로는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성벽을 향하여 토성을 쌓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방패를 가지고 공격하지도 못할 것이다. 33) 그는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온 세계의 주인인 나 여호와가 약속한 말이다. 34) 나 자신의 명예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내가 직접 이 도성을 지키고 보호하겠다.' 35) 바로 그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군대의 진지 안으로 내려와서 18만 5천 명을 쳐죽였다. 그들이 아침이 되어 일어나보니 온통 시체투성이였다.
만일 히스기야 왕이 이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자랑했더라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만을 자랑했더라면 바벨론조차 하나님을 두려워했을 것이요, 최소한 바벨론도 하나님을 부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떠난 후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를 찾아왔다.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을 찾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중심을 보고 실망하셨기 때문에 그 실망을 알리기 위함이셨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했다. “그들은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때 히스기야는 그의 진심을 자신도 모르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이사야 39:4인데 개역 개정은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지 않고 개역 성경이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개역).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고 이사야가 묻자 ‘내가 궁중의 모든 보물과 이 나라의 모든 창고를 그들에게 보여주었소’하고 왕이 대답하였다.(현대어성경)
이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국의 환관이 되리라.” 이 말은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패망하여 유다 왕족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예언이다. 후일에 있을 일이기는 하지만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더 집착할 때 그 모든 복을 헛되게 만드실 수도 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보물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보물로 삼은 자들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바로 이런 사람이 복음을 깨달은 자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이 세상에서 귀중한 보물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도 반석과 같은 신앙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된다. 사무엘 선지자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나라의 왕을 구하자 하나님께서 책망하셨듯이, 히스기야가 보물과 무기고를 다 보여준 것은 남유다도 바벨론과 동맹을 맺을 만큼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였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물론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해는 가지만 누가 뭐라 하더라도 히스기야 왕으로서는 옥에 티가 아닌 커다란 실수였다.
히스기야는 잠깐의 교만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곧 뉘우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다. 평생의 믿음을 한순간의 교만으로 망칠 뻔했다. 여기서 우리가 또다시 배우는 교훈은, 항상 깨어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너무나 당연한 교훈임에도 너무나 자주 이스라엘 역사와 우리 삶 가운데서 교만의 죄악이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은 교만해지기 쉽다. 교만은 마귀가 즐겨 쓰는 공격수단이다. 그러므로 교만을 극히 주의해야 하고, 교만의 죄악으로 넘어졌을 때는 빨리 깨닫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겸손히 서야 한다.
히스기야 왕은 첫 번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바벨론 왕이 두 번째로 사절단을 보냈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다. 어떤 식으로 히스기야 왕이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하 32:31 / 바벨론 왕이 사절단을 보내어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돌아간 그 땅의 이적을 확인해 보게 하였을 때도 히스기야는 그들의 꾐에 빠지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였다. 더구나 그때에는 주님을 향한 히스기야의 마음이 온전한가를 시험해 보시려고 주께서 그를 떠나 혼자 내버려 두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가 그녀의 보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뒤를 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롯의 아내는 히스기야 왕처럼 일시적인 실수가 아닌 욕심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롯의 아내와 같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세상을 보물 삼은 자들이 다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태우시듯이 이 세상의 모든 보물을 다 태우실 것이다. 그때 세상을 보물로 삼던 자들은 한없이 울며 애통할 것이다(계 18:15-19).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인가?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보물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보물로 삼은 자라고 정의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바로 이러한 사람이 복음을 깨달은 자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이러한 믿음의 본으로 모세를 들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모세의 믿음을 설명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야고보 사도는 이 세상의 것들을 보물로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세상에 속한 것을 보물로 여길 때 그 마음에 욕심이 잉태하게 되면서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된다고 하였다(약 1:14-15). 나아가 야고보 사도는 세상을 보물로 삼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원수가 된다고 선포하였다.
약 4:4-6 / 이 세상의 쾌락이라는 하나님의 원수와 가까워지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한 번 더 말합니다만, 만일 여러분의 목적이 구원받지 못할 세상의 악한 쾌락을 즐기는 데에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5)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살게 한 영을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고 지켜 준다고 하신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나 있습니까? 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악한 욕망에 대항할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것으로 보물 삼은 자들을 탐욕에 속한 자라고 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엡 5:5).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보물로 삼은 자는 탐욕으로 인하여 우상 숭배에 빠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지 못할 것이다.
특히 돈이 보물일 때는 만 가지의 죄악에 빠지게 되어 있다.
딤전 6:9-10 /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모아 부자가 되려고 서슴지 않고 온갖 악한 짓을 저지릅니다. 그러고는 낭패를 당하고 마음이 악해져서 마침내 지옥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10)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죄의 길로 빠지는 첫걸음입니다.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떠나 버린 탓으로 결국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어리석은 일을 하다가 결국 자신을 망치는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가정과 사회 속에서 모든 악의 뿌리가 될 것이며 돈 때문에 진실한 믿음에서 떠나 오히려 더 큰 근심과 고통만 당하게 될 것이다. 돈이 보물인 사람은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진실한 친구들도 다 잃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의 것을 보물로 삼을 때 그에게 남는 것은 평생 죄악을 범하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셨고, 바울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에 대해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권하였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미래를 위한 든든한 터가 되고 참 생명을 누리는 가장 보람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변화된 믿음이어야만 참된 구원의 믿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부귀를 보물로 여기던 마음을 버리고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되새겨보자.
마 19:21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에 예수님은 자주 천국을 보화로 비유하기도 하셨다.
마 13:44 /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 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
마 13:45-46 / 또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장사꾼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 가치를 깨달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비유 속 인물처럼, 2천 년 전 세상 속에 감춘 천국의 보화 곧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은 매우 대조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
가룟 유다(Judas Iscariot) /.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음에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있었던 자다.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누가복음 9:1-2). 그리고 금전 관리도 맡았다. 어느 단체든지 금전 관리는 깊은 신뢰를 얻은 사람들이 수행한다. 그는 세리 출신의 마태가 있었음에도 초대교회의 재무를 관리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고, 수리에 밝고 유능했다.
유다는 예수님과 3년의 공생애를 함께 하며 예수께서 이루시는 복음의 기적을 목도했다. 그는 예수님과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소유한 사람처럼, 세상의 일시적인 보화는 천국이라는 보화 앞에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룟 유다는 천국이라는 보물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천국의 대열에서 탈락하여 저주받았다(막 14:21, 행 1:18). 무엇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까? 이를 잘 설명하였다.
요 12:3-6 /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아 드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그러자 예수의 제사로서 장차 예수를 배반할 자인 가룟 유다가 5) `그 정도의 향유라면 큰돈이 될 텐데 왜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하고 나무랐다.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는 제자들의 돈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으면서 가끔 그 돈을 훔쳐내는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막 14:4-5 / 그러자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 몇 사람들이 화를 버럭 내며 `왜 향유를 그렇게 낭비하는가? 이 향유를 팔면 300데나리온(노동자의 약 1년 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음)은 받을 수 있으니, 차라리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고 나무랐다.
그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그 향유가 귀한 것임을 알고 이를 횡령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 그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채우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돈을 탐하는 마음은 그에게 치명적인 올무가 되었다. 이후 유다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비방하는 종교 기득권 세력, 곧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라고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그리고 스승을 파는 조건으로 은화 30냥을 받았다. 스승의 목숨값으로 받은 30냥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노예를 거래하는 금액에 불과했다(출 21:32).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안락과 영리를 우선순위로 여긴 유다는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보여주신 교훈과 가르침을 귀한 보화로 여기기는커녕 끝내는 예수님을 배반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유다가 배신한 이유를 물욕, 탐욕, 명예욕, 이기심의 결합으로 꼽는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둘 때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의리, 신념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Apostle Paul) / 반면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여 충성의 길을 택한 이도 존재했다.
골 2:3 / 이 그리스도 안에 모든 능력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빌 3:4-5 /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공동번역)
사도 바울(Apostle Paul)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학문과 철학이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그는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왕족 출신의 베냐민 지파이고,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 또한 바리새인으로 예루살렘에서 우수한 훈련을 받았다.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둔 문하생이었다. 바울 역시 자신의 배경과 학문적 지식에 대해 상당히 자부하고 있었다(행 22:3). 자타가 공인하는 심지어 총독까지 인정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화들을 배설물(쓰레기)이라고 표현했다.
빌 3:7-9 /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유대 사회에서 독보적 권력을 자랑하던 바리새인이라는 직함, 지위, 부 등 모든 것을 버렸다. 과거에 소중하게 여긴 그것들이 그리스도라는 고귀한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아닌 비교 대상도 되지를 않는 것이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죄악에서 구원해주시는 그리스도에 세상에 그 어느 것도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욥기 38-41편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 동방의 의인이었던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의인 욥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아뢰었던 말씀은 마음에 담아야 할 말씀이다.
욥 42:5-6 /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 6) 이렇게 내가 꿇어 엎드립니다. 먼지바닥 위에 앉아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감히 하나님의 계획에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놀라운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눈 앞에 보이건만 불만 불평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약함이라고 해야 할는지? 무식함이라고 해야 할는지?
하나님만을 보물이 아니라 제일로 모신 욥에게 주어진 복은 욥기 42:7-17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욥 앞에 축복을 받았다고 자랑할 사람도 없거니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잘 났다고 고개를 드는 것은 불경죄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멋진 사도로 사는 삶을 보자.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도 반대하였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와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돌에 맞고,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수없이 죽을 고비를 겪었다’라고 전했다(고후 11:23-29).
당시 기득권층의 바리새인으로 있었다면 이 같은 고난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택했다. 고난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만큼 귀한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 감추인 그리스도 곧 천국의 보화였다(롬 11:33). 바울은 천국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했기에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에바브로 디도 등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이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배 삼기 원하는 것은 생명 없는 재물이나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물 삼기 원하는 것은 바로 영생 그 자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죽은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을 무한하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으로 삼는 자들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벧전 2:6). 예수님을 보물로 삼는 자는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에서와 야곱
에서(Esau)와 야곱(Jacob)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처럼 정반대의 인물로 조명된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장자권이었다. 장자권은 숨은 보화와 같았다. 가치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값진 것이었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림에 불과했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스스럼없이 장자권을 판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서의 관심은 당장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는 데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익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그의 눈에는 장자권보다 팥죽 한 그릇이 더 가치 있게 보였다. 또 장자권을 판다고 해서 당장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장자권을 판 에서의 행동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사고방식 곧 그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창 25:29-34).
반면 야곱은 달랐다. 장자권이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장자권 안에 ‘감추인 가치’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 이삭의 재산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관련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장자권을 늘 갈망했고, 마침 이를 가치 없게 여긴 형 에서에게서 샀다. 그리고 끝내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에서와 야곱의 기록은 단순히 장자권을 팔고 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의 기록도 비단 물질을 탐하고 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치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관점과 목적 그리고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밭에 감추인 천국의 보화인가? 아니면 그 반대의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세상 보화인가?’
결 론
■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의 모험소설 가운에 {보물섬}(Treasure lsland)이 있다. 소년 짐 호킨즈는 해적으로부터 보물섬의 지도를 얻어 지주(地主)인 트레로니와 의사인 라이브지와 함께 보물섬을 찾아간다. 그런데 함께 동행했던 요리사가 해적인 롱 존 실버였다. 그로 인해 소년 짐과 착한 사람들은 많은 고생을 한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결국은 착한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내고 만다.
보물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얻으려고 목숨을 거는 것일까? 보물은 희귀하고 또 희귀한 만큼 보존의 가치가 있고, 값이 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숨겨 놓은 보물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고 했고 또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고 했다. 여기서 보물이나 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물질적인 금은보석일까? 금은보석이나 진주 한 알이 과연 온 재산을 팔아 구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보물이 아무리 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이라 해도 목숨까지 걸만큼 소중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목숨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새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을 최고의 보물로 여긴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보라. 그 값이 아무리 크고 또 아무리 비싸도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살려고 할 것이다. 그만큼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서 모두 다 죽을 운명에 처해있다. 비단 육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원히 저주받아 불과 유황과 연기가 가득한 지옥에 내려갈 운명에 처해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을 이 저주받을 운명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값비싼 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 16:19-31)에 있는 25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세상에 살던 때를 생각해 보아라. 너는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가져 보았으나 나사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서 위안을 받고 있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는 상황을 예로 들으셨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보물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그 결과에 대하여 침묵을 지킨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외면한다고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설령 우리가 부인한다고 하여 되어질 상황이 비켜가는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살아생전에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라고 예외 없이 부자가 가는 지옥으로 가기 때문이다. 반면 남들이 가기를 싫어하는 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야 한다.
성경은 이 보물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 영생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생명보다 더 귀한 영생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마음에 모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며 또 가장 기뻐할 일이며, 전 재산을 팔아 살만한 보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시다. 생명보다 더 귀한 보물이시다. 그분을 섬기는 믿음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열심히 찾고, 또 보물을 캐듯이 예수님의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신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예수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세상 것에 빠져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 24:37-39 / 인자가 올 때도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이다. 38) 노아 때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갈 때까지 흥겨운 잔치를 벌이며 장가 가고 시집가고 하였다. 39)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휩쓸려 갈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올 때도 그럴 것이다.
■ 1986년 11월에 미국 애리조나주에 사는 스미스라는 보석상인이 우연히 수석 전시회에 들렸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15$짜리 가격표가 붙은 돌이 실은 사파이어였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전시회장의 주인을 불러 이게 정말 15$이냐고 물었다. 그 주인은 15$이 비싸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듯 오히려 5%를 깎아 주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스미스씨는 10$을 주고 사파이어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돌을 쪼개서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무수히 만들어 팔았다. 그가 그 돌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228만$(29억 6천 4백만 원)이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과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도 이와 같다.
■ 고사성어 가운데 화씨지벽(和氏之璧)이란 말이 있다. 전국시대, 중국 초(楚)나라의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은 산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아주 귀한 것인 줄을 알고 곧바로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는 감정이 나왔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다시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란 이름을 붙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과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도 이와 같다. 보물을 찾고, 그 보물을 손에 넣고, 그 보물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천국이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 북아메리카 서북쪽에 있는 넓은 알래스카주는 1867년까지는 러시아의 땅이었다. 다 아시다시피 알래스카는 에스키모들이 이글루(igloo)를 만들어 원시생활을 했던 버려진 동토(凍土)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별 가치가 없는 땅으로 여겨 720만$(93억 6천만 원)을 받고 미국에 팔아버렸다. 그러나 미국은 알래스카를 산지 13년간의 조사를 통해서 무진장의 황금과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아냈다. 이밖에도 알래스카는 풍부한 어장과 산림을 갖고 있는 보물단지였으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과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치를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도 이와 같다.
여러분 자신은 아직 발견되지 아니한 무진장한 가치를 꽁꽁 언 땅속에 감추고 있는 알래스카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찾아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치는 마치 땅속에 감춰진 보물과 같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놀라운 것이다. 이 신앙의 능력을 찾아서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이 천국이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값지고 귀한 것은 희생을 치러서라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값진 것을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사라고 하셨다. 그렇다. 값진 것을 얻으려면 희생을 치러야 한다. 시간, 돈, 나의 손과 발,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야곱은 장자권이 귀한 줄 알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는 형을 물리치고 자기의 것으로 삼았고, 라헬이 귀한 줄 알았기 때문에 그녀를 아내로 맞으려고 14년간이나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창 31:40). 베드로와 요한과 안드레와 야곱은 예수님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포기하지 않고서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다. 버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귀하고 아무리 좋은 것도 자기 것이 아니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노는 것도 희생하고 때로는 잠자는 것 나아가서는 먹는 것도 희생해야 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치 없는 무익한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자신의 가치를 땅속에 파묻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악하고 게으르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장 값비싼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란다.
지켜야 할 보배와 같은 계명 / 마 22:36-40 / 경천애인(敬天愛人)
❶ 예수께서 오실 때 귀중한 그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시리
<후렴>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❷ 정한 보배 빛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거두시리
❸ 주님의 길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 사랑 안에 영원히 빛나게 살리라
❹ 주를 사랑하는 아이 이 세상에 살 때 주의 말씀 순종하면 참 보배로다
다음 주일 설교 / 성젼을 보물로 채우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