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마을>사백50호 : 한겨레 손바닥문학상 '아차상'
이천구년십일월십팔일물날,오래된미래마을,정풀홀씨
* 주 : <한겨레21>의 제1회 '손바닥문학상'에서 아차상(?)에 뽑혔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습작으로
단편소설로 보이게끔 수년전 끄적거려두었던 '자발적 유배'를
원고지 70매 분량으로 적당히 재활용한 '파산층'을 슬그머니 들이민 결과입니다.
물론 법적으로야
우수상과 가작 달랑 2편만 상과 상금을 주고 말았지만
그밖에 4편 정도를 최종심사평에서 특별히 언급한 것으로 보아
내 멋대로는 아차상 또는 장려상,
굳이 등수를 매기자면
공동3위 내지는 최소한 6위 안에는 든 것으로 우겨봅니다.
아니면 말고지요.
어쨌든, 못 믿겠거든
그 명백한 물증을,
이번에 나온 <한겨레21> 제786호25P를
들춰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로 아귀들이나 쪼다들과 각축하며
무기력하고 치욕스럽던 일상을 버텨내던
서울에서의 지난한 생활이 응축된
실화같은 소설 '파산층' 전문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파산층(破産層)
충청도를 넘어서자 차는 나아가기가 몹시 힘겨웠다. 앞으로는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나아갈수록, 산은 높았고 바람은 서늘했다. 같은 땅을 굳이 충청도 땅과 경상도 땅으로 갈라놓은 까닭을 서둘러 눈치챘다. 사람의 힘만으로 넘기엔 높디높은 고개, 사람의 힘만으로 파기엔 길고 긴 터널을 연이어 지나면서 땅을 가른 이유는 점점 뚜렸해졌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묻어둔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스치는 산자락마다 내려앉았다. 따뜻한 먼지 처럼.
1. 나는 너다, 황지우가 말했습니다
사실 난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좀 있었어. 어느 날 난 태어났고, 태어나보니 조상님들은 대대로 초라했어. 태어나기 직전,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사력을 다해 아버지에게 대를 물려주었지만 돈이나 땅은 전혀 물려주지 않았어. 물려줄 돈이나 땅이 없었대. 어쩌면 돈이나 땅을 물려줄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고 살아버렸을지도 몰라.
불행은 업친 데 덮치게 마련인가 봐. 돈과 땅이 수반되지 않은 그런 대를 잇자마자, 아버지는 용케 챙겨 둔 시청공무원의 밥벌이까지 강탈당했어. 내가 태어나기 직전, 5.16군란 직후에 벌어진 가족잔혹사의 서곡이야. 아버지야 몇 대에 걸친 독자라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건데, 군대에서 실컷 뺑이치다 민가로 뛰쳐나온 미친 군바리놈들이 “그놈 정말 주는 것 없이 얄밉네. 도저히 가족들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꼴은 두눈 뜨고 못봐주겠네”하며 군화발로 냅다 엉덩이를 걷어차 길거리로 쫒아내 버린거지.
사족이지만, 친척들도 전원, 일제히, 단 한명도 열외없이 돈이나 땅이 없었어. 모두 힘이 없었다, 이 말이야. 거 왜, 우리가 흔히 힘없는 백성들이라고 대다수의 민간인들을 싸잡아 말하곤 하잖아. 그럴 때, 그 힘없는 백성층을 대변하는 순도 높은 표본집단이 바로 내 친척들이야. 친척이래봐야 기껏 누가 결혼할 때 모이곤 했는데, 모여봐야 한줌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어. 큰맘 먹고 한줌으로 모여 기를 써봤자 되는 일도 하나도 없었어. 물론 안 되는 일도 거의 없었어. 우리 친척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살아가는 내내, 그저 살아가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나는 날, 이미 몸에 익은 의식대로 어머니는 서럽게 울었어. 아버지의 실직은 하염없었어. 형 둘, 누나 둘은 여전히 어린 애들이었고, 그날도 장난과 싸움으로 서로의 유년을 탕진해주며 기어이 하루를 또 놀고 말았어.
이웃들도 골고루 가난했어. 온 동네가 더불어, 획일적으로 가난했어. 사과괘짝이나 토굴같은 주택마다 집주인도 절대로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외관상 임대인과 임차인이 구분되지 않는 사례가 허다했어. 근본적으로 피차, 상호 차별은 곤란해서 도저히 누가 누굴 해코지할 틈도 없었지. 서로가 서로를 안심하고, 방심하고 살았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었어. 골고루 가난해서.
그리고, 나 오늘,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어. 내가 오랜만에 수도 서울에 나타났다 이말이야. 알지? 내가 지난 몇 년동안 서울에서 멀리 떠나있었다는 거.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를 거쳐, 지금은 경상도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거. 내 입으로야 차마 자발적 유배니 자발적 하방이라고 뻔뻔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혹시라도 누가 “걔는 왜 남쪽으로 내려갔대?”라고 묻거들랑 그런 식으로 표현해주는 게 좋겠어. 사는 마을도 예로부터 아웃사이더들의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고, 일단 자발적 유배라는 표현부터 썩 그럴 듯 하잖아. 그저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한 도시민의 일상탈출이라든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느 자연친화적 인간의 자연회귀, 심지어 땅 한평없는 내 입장에선 가당치도 않은 귀농이라고 부적절하게 둘러대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안 그래?
2.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 겠다, 뽈 발레리가 말했습니다
서초동 법원역 사거리엔 봄바람이 불었어. 바람은 말이지, 그냥 부는 게 아닌 것 같아. 어디선가 꼭 불어와서, 나를 기어이 살아가게 해줘. 아무리 사소한 일상에 매몰되는 날일지언정, 살아가는 일에 거룩한 고마움과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고. 바람이야말로, 내가 힘에 겨워 숨이 곧 넘어가려하는 순간에도 결국 다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의미심장한 조짐이야. 온갖 생명을 바둥거리거나 펄떡이게 만드는 외부로부터의 뚜렷한 파장, 그게 바람이야. 언제고 바람이 멈춘다면, 나는 죽고싶을지도 몰라. 죽고싶어진다면 그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고. 다만, 바람이 부는 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놓친 적은 없어. 단, 한번도.
전철역에서 법원으로 이르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야. 지형학적으로는 야트막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유독 가파르게 느껴지는 언덕이란 말이야. 그게 말이나 되는 말인지, 한번 가서 그 앞에 서보면 알아. 오늘 그 앞에 서니, 느닷없이 내가 한번도 믿어볼 생각조차 한 적 없는 하느님의 아들이 생각났어. 그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예루살렘의 작은 언덕, 골고다가 떠오른거지. 전설과 마구 혼동되는 여느 고대사의 유적들처럼 그 위치조차 불분명하다는 예루살렘의 골고다언덕과, 죄와 벌을 다투거나 따지기 위해 서울의 법원으로 오르는 언덕과는 어쩐지, 그 언덕을 통행하는 자들의 처지는 물론이고, 아예 언덕이라는 존재 자체의 사회적 용도와 가치가 얼핏 대동소이해보이거든.
그러니까, 골고다언덕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채 기어오르는 하느님 아들과, 두터운 파산신청서류가 든 가방을 짊어진 채 통곡의 벽처럼 버티고 선 법원청사를 향해 서초동 언덕을 기어오르는, 사람의 아들인 나. 좀 닮지 않았어? 어차피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일은 모두에게 고역이니까. 두 언덕의 경사도의 차이만큼, 그에 따라 소모되는 운동에너지의 차이 만큼, 힘든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하느님의 아들보다 사람의 아들이 덜 힘들라는 법은 없는거야.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법정에 도착했어. 복도에는 이미, 충분히 돈 한 푼 없어 보이는 표정과 행색을 한 서울특별시민들이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었어. 난생 처음 와본 특별한 법정에서, 난생 처음 보는 특별한 광경이었어. 세상에 그렇게 망한 사람들이 많은줄이야. 나도, 망한 사람들, 아니 법적인 신분으로는 파산신청인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 어쩌면 유유상종의 감흥이랄까, 일종의 동지애마저 느껴질 뻔 했다니까. 왜, 다수가 함께 저지르면 죄가 되지 않을 것같은, 죄는 되어도 벌은 받지 않을 것같은 그런 군중의 범죄심리같은 거 있잖아. 학교나 군대에서 단체기합이란 거 많이 받을 때 마다 들었던 그런 생각. 그러니까, 독립된 개체로서 나는 틀림없이 죄가 하나도 없어. 벌을 주는 사람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런데, 오로지 그 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죄가 전혀 아닌 죄로 벌을 받게 될 때, 오직 재수없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만 선명하지, 도저히 아무런 죄의식이 들지않았던 경험말이야. 그때 마치 벌을 달게 받고 회개하는 듯한 표정으로 겉모습을 관리하는 게 또 얼마나 힘이 들었게. 혀를 깨물거나 허벅지 살을 쥐어뜯어도 자꾸 키득키득 웃음만 나고 말이지. 그러다 발각되면 가중처벌되고. 오늘, 법정 앞에서 돈 한푼 없는 죄를 뒤집어쓴 한떼의 서울특별시민들과 마주치는 순간, 지난날 단체기합의 광경이 불쑥 떠올랐어. 하마터면 내 잘못이 아니라, 내가 소속한 서울특별시라든가,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의 거대하고 뿌리깊은 잘못 때문에, 그러니까 더럽게 재수없게도 내가 그런 구조악의 원죄를 많이 떠안은 집단의 구성원이 되는 바람에 그런 곳에 줄지어 서있게 되었다는 억울한 착각이 들었다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 아니냐고? 그런 것 같아. 그래도 너무 핀잔 주지마. 나도 그런 바보같은 나한테 충분히 화를 냈으니까.
그래. 그렇게 바보같은 생각을 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복도 여기저기에 몰려 박쥐처럼 웅크리고 있었어. 그런데 곧 바로 의문이 들었어. 수백명의 사람이, 불과 한시간 안에 재판을 다 받을 수 있나, 혹 내가 법정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시간을 잘못 본게 아닌가, 불안해진 나는 사방을 두리번 거렸어. 그러다, 한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어. 그리고 물어봤어.
“저, 아저씨. 여기가 2시에 열리는 파산법정이 맞죠?”
재수없게 눈이 마주쳤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 아저씨는 말을 최대한 아꼈어. 손가락질로 말을 거의 대신했어.
“저기.”
즉시, 그 아저씨의 손가락이 시키는대로 ‘저기’를 쳐다봤어. 짧고 명료한 그 아저씨의 답변 자세에서 추가질문의 여지는 완전히 봉쇄당했음을 직감했거든. ‘저기’는 법원의 공지문을 붙여놓은 게시판이었어. 벽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그 시간에, 그 곳에서 재판을 받을 망할 동지들의, 아니 이미 망한 파산신청인들 수백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어. 내 이름과 사건번호만 한눈에 가득 들어찼어. 그러자, 비로소 그곳에 서있는 현실이 서서히 안심이 되기 시작했어.
“맞아. 지금, 이 곳이 내가 서있을 곳 맞아.”
그리고, 도대체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결국 여기까지 오는지 궁금해졌어. 작명학적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나머지 게시판을 샅샅이 훑어내렸어. 정말, 달고 사는 이름들은 가지가지였어. 그속에서 어떤 질서있는 숙명의 규칙 같은 것을 발견해내기는 어려웠어. 결국, 사람의 이름과 사람이 패가망신하는 것과의 사이에 상호 유기적인 연관성은 추호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당한 결론을 내리며, 파산신청인 인명 탐구 작업을 막 마치려는 순간, 눈에 띄게 익숙한 이름 하나가 날라들어온 티끌처럼 눈속을 간지럽혔어.
‘팽채린’
그건,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초등학교 여자 짝꿍 이름과 같은 이름이었어. 그런 동남아시아의 중화권 시민같은 이름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상 쉽게 잊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야. 그런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가, 이 세상에 여럿일리도 만무하고.
“그래, 걔가 틀림없어.” 나는 마음으로 소리쳤어.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잣집이고, 성격도 밝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짓기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풍금도 잘 치고, 마음 씀씀이 까지 착해서, 모든 남자아이들과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팽채린’.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던, 보석같이 휘황찬란하게 온몸에서 광채가 나던 그 여자, ‘팽채린’. 걘, 어린 시절, 그 학교의, 아니 내 마음의 평강공주였어.
나는, 다시 한번 사방을 두리번거렸어. 어딘가 있을 그녀를 찾기 위해서. 최대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행여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야. 너같으면 그냥 “팽채린!”하고 불러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무지막지하게 비인간적인 짓은 그런 곳에서 하는 게 아니야. 나는 내 몸짓을 최대한 작게 하면서, 눈빛으로 그녀를 찾아보는 수 밖에 없었어. 30년 만인데, 그런 곳에서, 그런 몸으로, 공주와 왕자가 상봉하면 안 되잖아. 그런 장면은 슬프잖아. 아니, 웃기잖아. 슬프도록 웃기잖아.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팽채린은 보이지 않았어. 30년이 지났으니 겉모습이야 많이 변했겠지만 그대로 기본적인 골격이라든가, 무엇보다 사람의 육감이라는 게 있잖아. 척 보면 알아볼 수 있는. 아무래도 걔가 아니었나봐. 기가 막힌 동명이인이었나봐.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또는 있어서는 안 되는 별 일이 다 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봐, 그런 품질 좋고 집안 좋은 우수한 아이가, 커서 이런 데나 들락거리는 돈 한푼 없는 아줌마로 전락했겠어? 아무래도 그럴 확률은 희박하잖아. 걔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우등생, 모범생으로 태어나고 자란 아이야. 아예, 그런 무례하고 무모한 반항은 할 수 없게 원천적으로 설계되고 제조된 아이라고.
쓸 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흐트러진 정신자세와 생각을 가다듬느라, 나는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어. 밖은 여전히 봄바람이 불고 있었어.
“사건번호 4444번, 들어오세요.”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오자, 법은 나를 바로 불러세웠어. 법정 문이 열리고 안으로 한발을 내딛는 순간, 본능적으로 내 눈은 높은 자리에 앉은 판사를 힐끗 쳐다봤어. TV에서만 보던 판사라는 직업인의 첫 인상, 분위기, 그리고 인상착의가 몹시 궁금했던거야. 뭐랄까. 내 생사여탈권을 움켜쥔 판사는 젊어 보였어.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얼굴이 갸름하고, 안색이 건조해보여서 오히려 그게 믿음이 갔어. 지극히 사무적인 인상이었다는 말이야. 어차피 우리 둘은 인간적이 아니라 사무적으로 만난 거니까, 사무적이면 사무적일수록 나에게는 불리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 생각해봐. 자칫 인간적으로 나를 위한답시고, 또는 나를 가르친답시고 되지도 않는 조언이나 훈시를 하려든다면. 만일 그렇다면, 나는 도저히 그 ‘고시원에서 틀어박혀 값싼 국가의 권력과 값진 인간의 청춘시대를 맞바꿔버린 그런 수험주의자, 그런 국가제도주의자’같은 같잖은 자식의 태도를 너그럽게 견뎌낼 자신이 없거든. 왜, 법정모독죄라는 게 있다며? 나는 그런 죄를 저지르고도 남을만큼 넘치는 반골DNA를 함유한 무정부주의족이거든.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판사의 모습이 따뜻하거나 다정하다거나 촉촉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좀 이상하잖아. 판사는 판사같지 않고, 법정은 법정같지 않잖아.
판사도 고개를 힐끗 들어 약 1초 동안 나를 쳐다봤어. 쳐다보는 눈빛엔, 추호의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보였어. 그래. 바로 사무적인 눈빛이었어. 사실 할 말도 별로 없어 보였어. 어쨌든, 판사는 나를 불러놓았으니 우선 이름부터 호명했어. 나는 팔을 머리 위로 분명하게 올리며 신속하게, 내가 약속한대로 약속장소에, 약속시간에 맞춰 출석한 사실을 확인해주었어. 살면서 아버지나 선생님에게도 해보지 못한, 최대한 공손하거나 양심적인 가성으로 말이야.
“네.”
“왜 이렇게 카드를 많이 썼어요?”
“그게, 돈도 없이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며 주제넘게 벤처사업한다고 까불다보니…”
“됐어요. 심리 종결합니다.”
그게 우리가 그날 법정에서 나눈 대화의 전부야. 아마 심리 개시부터 종결까지 10여초쯤 소요됐을거야. 시원섭섭했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는데. 100페이지가 넘는 신청서류를 만드느라 얼마나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는지 판사가 조금이라도 알아주었다면, 그리고 판사가 그 짧은 시간동안, 그 수많은 망한 사람들의 출석을 다 점검해야할 정도로 바쁘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사연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오늘은 봄바람이 계속 살랑살랑 불어 살맛도 많이 났고.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어 내 기분이 아주 좋았던 날이었거든. 그래서 어떤 말이라도 좀 하고싶었던 날이었거든. 이렇게 공손하면서도, 진솔한 내 진짜 목소리로 말이야.
3. 들판의 빈집이로다, 정진규가 말했습니다
“판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 뵙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판사님의 심정도 피차일반이겠죠? 에, 저로 말씀드리자면 ‘저’라고 합니다. 밖에서 제멋대로 상상했던 것보다 그리 인상이 차갑지 않네요. 길거리나 술집에서 마주치면 판사인지, 일반 시민인지, 심지어 피고인인지 잘 몰라뵙겠습니다. 이런 모진 데서, 모진 일을 하며 밥 먹고 산 지 얼마 안되신 모양이예요. 나름대로 그 바닥에서 좀 놀았다고요? 에이, 그렇게 안보여요. 나이도 얼마 안돼 보이고요. 이거, 칭찬이예요. 칭찬하는 방법이 좀 서툴죠? 자칫 비꼬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거예요. 제가 원래 말투가 이래요. 원래 살면서 칭찬할만한 남이라곤 거의 만나보지 못해서 남 칭찬에는 많이 서툰 편이죠. 굳이 그렇게 높은 곳 올라가, 아래를 굽어 살펴보고 계신 분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주세요. 원래 이렇게 낮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심사가 편치 않아서 그래요.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앉아보세요. 악담 아니예요. 그냥, 못 들은 척 넘어가세요. 자, 어디부터, 무슨 얘기부터 해볼까요. 그냥 처음부터 얘기할게요. 얘기가 늘어진다 싶으면 알아서 가차없이 끊어주세요. 그게 직업이시잖아요.
1997년 여름이었을거예요. 홀연히, 무작정 벤처 판에 뛰어든 게. 그전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7년동안 여기저기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어요. 일 잘했어요, 기동력이 뛰어난 갑충같이. 제가 나서서 달려들지 않으면, 누군가 그 일을 다 망쳐놓을까봐 조바심을 칠 정도였어요. 기존의 비효율적인 질서나 세상의 빛바랜 통념 따위를 깨부신다고 기세등등하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나는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어요. 그토록 남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내가, 나보다 못한 남이 시키는 일이나, 못난 남이 만들어놓은 구조 속에서 묵묵히 일해야한다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억울하다기보다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겠네요. 오로지 굶어죽지 않기 위한 밥벌이를 위해서, 나같이 뛰어난 일꾼이 고작 그런 곳에 매어있었다, 이 말이죠. 아, 평생 국정교과서나, 고시수험서, 그리고 육법전서나 수구보수의 표상격인 상관들이 시키는대로만 행동하고 살아온 반듯한 판사님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 세상에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자꾸 변하고 좋아지는거죠. 그런 이치도 모른 채 감히 사람을 심판하고 세상을 살아가시는 거예요?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던 어느날,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웠어요. 그, 너무도 안정되고, 너무도 안락해서, 알만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모두 ‘신도 입사하고 싶어하는 직장’이라고 떠받드는 그런 직장을 말이죠. 뒤 돌아보지 않았어요.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안 했지요. 아버지한텐 회사에서 노조 한다고 말썽을 하도 피워서 쫓겨날 지경이라고 둘러댔어요.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죠. 아버지가 내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는지는, 한숨소리만 가지고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밖에는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앞날이란 아무 것도 없었어요. 대신, 난생 처음 빚이란게 만들어졌죠. 회사에서 집 얻어살라고 빌려준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나와야 했거든요. 큰 돈이었어요. 갑충같은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는 순간, 매달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갑충같은 채무자로서의 고행이 시작된거죠.
그즈음 뚜렷한 인생의 지상목표가 구체적으로 정해졌어요.
“돈을 벌자.”
돈을 많이 벌어서, 제발 돈의 억압과 폭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돈을 벌어서, 앞으로는 멍청하고 사악한 남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똑똑하고 착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겠다는 야욕을 품었어요. 책 읽고 책 쓰기, 텃밭 농사 짓기, 멍하니 밝은 방이나 마루, 평상에 누워있기, 그냥 하염없거나 정처없이 걸어 다니기, 높고 너른 산에 천천히 마냥 기어오르기, 새파란 먼바다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래 앉아있기, 돈의 일부는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 엄선해 나눠주기… 이런 게 제가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이거든요.
눈에 잡히는 앞날을 염원하던 어느날, 디지털의 도도한 흐름을 감지하고 자발적으로 그 강물에 휩쓸리게 됐어요. 순간, 나는 소리쳤어요.
“그래, 디지털이다!”
잠시 호구지책 삼아, 또는 현장체험 삼아 컴퓨터 전문지 기자로 취재를 다니다가, 디지털 대한민국을 이끄는 벤처선구자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돈도 왕창 벌고 세상도 확 바꿔나가는 용맹스런 벤처용장들을 만난 게 결정적이었어요. “남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나 정도면 당연히 저들처럼 할 수 있다. 아니 저들조차 내가 이끌어야 한다.”는 질풍노도같은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얼굴부터 시뻘겋게 달아올랐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심각한 과대망상이고 자격지심이었지만 그때는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인줄 알았어요. 문제는 시간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아마, 그때 잠깐 돌았었나봐요.
그런 생각에 이르자, 지체없이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그전에는 사회변혁을 위해 노동현장으로 투신하는 386들이 대세인 적이 있었는데, 저는 사회변혁을 위해 바로 벤처현장으로 뛰어들어간 386이 된 셈이예요. 노동현장의 386들이 벤처현장으로 따라들어온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어요. 제가 많이 빨랐어요. 믿어주세요. 사실은, 어차피 사실이니까요.
“이 땅의 30~40대 오피니언리더들을 정보화하는 대안공동체 회사를 세우자!”
이런 가공할만한 구호를 내건 인터넷벤처 창업프로젝트에 끼어들게 됐어요. 그날 이후, 6년여 동안의 지난했던 전업벤처인으로서의 역정이 시작된 거죠. 아마, 그때 판사님의 지인들중에도 그 벤처에서 정보화된 사람이 있을거예요.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경제계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다종다양한 오피니언리더들을 구색에 맞게끔 다 망라해서 정보화서비스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오늘날, 파산의 단초가 그때, 그곳에서 발아됐어요. 아, 그 벤처도 이제 세상에는 없어요. 어디 갔냐고요? 가긴 어딜 가겠어요. 수년전 벤처대몰살 때 동반파산했어요. 그때 얘기를 좀 더 해줄까요? 짧게 요지만 함축해서 얘기하라구요? 지금, 그러고 있어요. 남의 개인사라서 좀 지루하신가봐요? 담배라도 한대 피우고 쉬다가 다시 할까요? 그냥 하라구요. 그래요. 그냥 할게요. 짧게.
그 벤처에 들어간지 몇일이 지났을 때예요. 사장이 방으로 저를 불렀어요. 그때 기획관리팀을 맡고 있던 저는 사내 서열 3위 정도의 고위간부였어요. 회사의 중대사를 긴밀하게 의논할만한 위치였던거죠. 방에 들어서자 사장은 다짜고짜 물었어요.
“이번에 팀장의 능력을 보고 싶은데요.”
“제 능력이요? 종류가 많은데, 어떤 능력을, 어떻게, 얼마나 보여드릴까요?”
평소 재미나 재치가 없는 농담을 즐기는 사람이라, 나도 재미없는 농담으로 받았어요.
“어디, 팀장이 개인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한번 다 끌어와봐요.”
“아니, 막 창업한 회사에 돈이 하나도 없나요? 사장님이 투자한 자본금이 10억 정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 돈은 있지, 있어. 그런데, 주거래은행 계좌가 올해말까지 묶여있어서 그 돈을 당장 빼서 쓰기가 좀 그래서 말이죠. 잘 알잖아요. 중간에 빼쓰면 원금도 까지는 그런 금융상품이 있다는 거.”
나는 그런 금융상품이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듣도보도 못했어요. 그러나, 이미 수상해지기 시작한 사장이 당황해할까봐 그냥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넘어가 줬어요. 그 순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 사람이 10억원을 정말 회사에 투자했는지 안했는지, 사실 여부가 더 중요하고, 사장이 진실을 얘기하는지, 진정한 사람인지를 재빠르게 눈치채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심증을 굳히기 위해 나는 사장이 하는 얘기를 계속 경청해줬어요.
“그래서 말인데, 왜 팀장이 잘 알잖아? 대출 받는 거. 받을 수 있는대로 받아와봐요. 그 돈을 내가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팀장의 자금조달 능력을 한번 테스트해보려고 하는거니까. 바로 돈은 돌려줄거야. 쓰지않고.”
어떠세요? 그때 저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듣고 앉아있으려니 귀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말을 하는 사장의 면전에서 대놓고 의심하지 않는듯한 눈망울을 하려니 동공이 다 경직되는듯 했고요. 이만하면 판사의 직업적인 육감과 직관으로 그자의 정체를 대충 짐작하시겠죠? 그 자는 지난날 건설업으로 수십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기소 중이면서 벤처사업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던 허섭쓰레기 같은 놈이었어요. 맞아요, 사기꾼.
심증에 나름대로의 정보원을 가동해서 얻어낸 확실한 물증이 더해지자, 이번에는 내가 그 사장이라는 자를 방밖으로 불러냈어요. 대화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그저 이렇게 통보하려는 목적이었어요.
“당신은, 알아보니, 당신이 주장하는 그런 당신이 아니더군요.”
서로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었어요. 그 자는 어서 보따리를 싸서 도망치듯 회사에서 사라지는 것 말고는 회사에서 더 이상 할 직무가 없었어요. 재미있죠? 왜, TV뉴스 같은 것을 보면, 멀쩡한 사람들이 왜 바보같이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진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하곤 하는지 도저히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경우가 많잖아요. 잘 아실 것 아니예요. 사기꾼들을 많이 보실테니까. 그런 일을 당해보니까, 나같은 사람도 사기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같이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난 사람도, 불행중 다행으로 그만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기를 당할 뻔했잖아요.
사장을 쫓아낸 저는,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 벤처를, 사장의 뒤를 따라 떠나고 말았어요. 서열상, 사업구조상 이제 제가 사장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지가 사장하고 싶어서 사장을 쫓아냈다는,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그 버러지같은 자식의 음해공작에도 놀아나기 싫었고, 무엇보다 저는 한 회사의 사장을 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무척 겸손했다고요? 그게 아니예요. 저는 돈이 한푼도 없었어요. 그건 치명적인 결격사유였어요. 저는 모름지기 한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하는 사장의 최우선 덕목을 자본이라고 믿는 사람이거든요. 리더십? 카리스마? 기획력? 영업능력? 판단력? 그거 다 강아지한테나 줘버리세요. 돈이 있어야 해요. 돈이 있으니까 사장을 하는 거예요. 돈이 있어야, 직원들이 사장을 사장으로 본다고요. 사장이 돈이 없으면, 회사는 망해요, 망해. 너무 단순하고 극단적인 사고 아니냐고요? 뭐 좀 아세요? 사업을 잘 모르시잖아요? 평생 법전만 달달 외우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 뭘 아는 척을 하세요. 그 아는 척 하는 거 못고치는 못된 버릇 아니예요? 그러니, 판사님은 제가 그렇다면 그냥 그런줄 아세요. 아, 글쎄, 가만히 듣고만 계시라구요. 이런, 미안해요. 그때 그놈 생각만하면 화가 나서…
그 와중에 날로 빚은 증식해갔어요. 아, IMF의 국가적 난세를 타개할 구국의 선도적 벤처를 창업해본답시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어놓은 돈도 없이, 먹고 쓰기만 하니 빚이 늘어날 수 밖에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꼴이지만, 저는 애써 그 재수없는 불길한 예감을 무시했어요. 저는, 모든 남들과 다르니까요. 모든 면에서 뛰어나니까요. 하지만, 제 정신이 돌아오기 까지는 그로부터 6년이라는 가혹한 시간이 더 필요했어요.
그 6년 동안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려면 있어야 할 돈을 벌어보려는 욕심과 행적으로 일관했어요. 고만고만한, 지금은 모두 패망한 인터넷 벤처에서 전략적, 기획적 경영노동에 매진했어요. 주로 판을 그리고 짜고, 세우고 굴리는 일이었지요. 나름대로 잘 그리고, 잘 짜고, 잘 세우기는 했다고 자만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굴리는 데는 실패했어요. 돈을 벌기는 커녕, 빚만 한탕 크게 모았죠. 테헤란밸리를 제압하려다 되려 호되게 당한 꼴이예요.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알아요, 저도. 제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까불었으니 백번 당해도 싸다는 거. 결국 더 이상 빚도 얻을 데가 없게 되는 찰나, 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돈 버는 재주가 없을뿐더러, 살아가는 기술도 하등 나을 게 없다는 명백한 진실을 이성적으로 깨달았어요. 나락으로 떨어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말이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출석해있는 저의 꼴이 된거죠.
자, 이쯤에서 그만하죠. 그만 할래요. 지난 얘기를 이런 자리에서 담담하게 떠올리면 재미도 있고 속도 시원해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답답하고 우울해지는 건 마찬가지네요. 다시는 이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어요. 끝, 끝이예요, 이제. 자, 이제 봄바람이나 쐬러 나가야 겠어요. 어서 저 지리산자락 아래 놓인 들판의 빈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제, 저 일어나서 나가도 돼죠? 고마워요, 판사님. 수고하세요. 아, 그리고, 참 좋은 일 하시네요. 판사님치고…“
4.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이 말했습니다.
법원 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참았던 담배부터 꺼내물었어. 유체를 이탈한 묵직한 담배연기가 봄바람에 두둥실 실렸어. 담배연기는 이내 산발하더니 햇빛으로 따스해진 공중으로 도망치듯 흩어졌어. 담배연기는 하늘 위로, 나는 골고다언덕 밑으로 향했어. 터벅터벅 걷고 싶어서, 나는 터벅터벅 걸어내려갔어. 그때, 언덕 밑에서 한 사람이, 어느 사람에게 쇳소리같은 고함을 치고 있었어.
“어이, 아줌마!“
한눈에도 사채업자의 해결사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 둘이 파마한 아줌마를 다급하게 쫒아가며 부르는 소리였어. 그리고는 큰 손으로 아줌마의 작은 어깨를 낚아채 휙 돌려세웠어.
그녀였어, ‘팽채린’. 사색이 된 그녀를 본 순간 터벅터벅 걷던 내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어. 맞아, 그녀. 그런데, 아까 법정에선 보지 못한 걸까. 필시 내가 담배피우러 밖에 나갔을 때 들어왔겠지. 아니, 봤어도 못알아 봤을지 몰라. 그래, 네 짐작이 맞아. 그녀는 이제, 내가 한눈에는 알아볼 수 없을만치 그렇게 늙고, 낡아있었어. 마치 하녀의 모습처럼.
나는 얼른 법원 안으로 몸을 숨겼어. 그때, 왕자였던 내가 공주였던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어. 그녀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도록, 나를 그녀가 볼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 나는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충분할만큼, 영원처럼 긴 시간동안 그렇게 몸을 숨기고 있었을거야. 담배를 하나 더 꺼내 피워야겠다는 익숙한 충동마저 완전히 제압당한 채.
그런데, 참, 부탁이 하나 있어. 그녀를 만날 일이 전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훗날 어떻게든 그녀를 만나게 되거든, 아니, 만의 하나말이야, 기적적으로, 또는 작위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말이야, 이런 시를 나 대신 그녀에게 꼭 한번 읽어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야.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녀를 다 잊어도, 너만은 그녀를 잊으면 안돼. 그녀에게 이런 시를 읽어주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내가, 이렇게 간절히 부탁할게. 자, 시를 받아. 꼭 이렇게 작고 낮고 천천히 읽어줘야 해.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경상도로 들어서자 차는 힘들어 죽겠다는 듯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산과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산은 높았고 바람은 서늘했다. 그쯤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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