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저것을 검색하다가 보니 이미 2월 말에 기호태님이 [버드 셀릭 '진정한' 월드시리즈의 꿈을 말하다]라는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이 espn과 가진 인터뷰를 올린 것도 읽을 수 있었고, 아마도 곧 있을 올림픽 예선 등에 또 한 번 한국 프로야구는 총력전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에, 과연 메이저리그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WBC를 비롯한 메이저리그의 세계화에 나서는지 등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해 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2006년에 제1회 WBC가 열리기 직전에 쓴 글이지만, 귀차니즘과 게으르니즘으로 인해 후속편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글을 뒤늦게 올리는 이유는 후속편을 쓰기 위한 개인적인 압박감을 가지기 위한 의도도 있고, 또한 앞으로 메이저리그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세계화와 관련된 상당히 많은 글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무관심 - 혹은 아직 발등의 불은 아니라는 듯이 방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는 WBC나 메이저리그의 진출 등만이 아니라 자국 리그보다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이벤트 경기에 몰두하고 있는 KBO와 신축구장 등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왜 메이저리그에서 흑인들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도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검색해 본 한도내에서는 위의 기호태님 글과 함께 몇 분이 세계화나 wbc 등과 관련된 좋은 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당연히 제가 다 뒤지지 못한 관계로 다른 주옥과 같은 글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메이저리그의 세계화, 혹은 그와 관련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마야구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쿠바와 프로야구선수들이 참가한 미국이나 일본, 한국, 도미니카 등이 진정한 세계최강자를 가리는 국제대회는 야구팬들에게 있어서 오랜 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부 야구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쿠바야구가 아마에서 거의 패배를 모르는 신적인 존재인 것은 프로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와 아마가 모두 참가하는 축구의 월드컵과 같은 국제대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야구관계자나 팬들 사이에 이야기되고는 했다.
하지만, 아마와 프로의 장벽은 철의 장벽 이상으로 굳건해서 야구의 세계화는 단순히 일부 야구관계자나 팬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축구의 월드컵처럼 국적 위주의 국가대항전이 진정한 의미의 야구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올림픽이나 축구에서와 같은 월드컵을 통한 국가간의 대항전은 단순히 애국심을 이용한 야구의 내셔널리즘이지 야구의 글로벌리즘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쨋든 철웅성과 같은 야구에서의 아마와 프로의 벽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면서 허물어졌다. 그리고 국제야구연맹(이하 IBAF)은 2001년 타이완에서 열리는 제3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야구 월드컵으로 개칭하면서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세계대회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에 올인한 한국을 제외하고는 마이너리거 중심의 미국이나 몇 명의 프로선수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일본 등을 생각하면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야구의 세계화 - 개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고 부른다 - 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다는 의미 정도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프로선수들이 참가한데다가, 결정적으로 마이너리거로 꾸려진 미국대표팀이 올림픽예선에서 멕시코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예선탈락하면서 메이저리거 등이 포함된 세계대회에 대한 논의는 급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IOC 간의 주도권다툼은 2005년 IOC총회에서 올림픽에서 야구퇴출이라는 결과물을 낳았고, 또한 메이저리그와 IBAF간의 이견은 야구월드컵을 어정쩡한 위치의 대회로 만들었다. 어쨋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퇴출된다는 것은 야구팬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또한 형식적으로 메이저리그와 IBAF가 손을 잡어면서 개최를 추진했던 야구월드컵이 한국과 일본 등이 반대하면서 무산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메이저리그는 한국과 일본 등이 요구한 수익금배분 문제 등을 수용하면서 2006년 3월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의 개최에 합의하였다. WBC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형식적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IBAF가 참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주도하고 있다. 결국 야구의 세계화를 내세우는 WBC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WBC는 한때 먼로주의의 신봉자였던 메이저리그가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팍스 메이저리그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먼로주의
흔히들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른다. 이 말은 세계 각지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서 온 이주자들을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갖도록 하는 미국식 다원주의를 상징한다. 미국이 자랑하는 프로스포츠인 메이저리그를 보면,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이 실감날 수밖에 없다. 로저 클레멘스와 같은 흰둥이를 비롯해서 배리 본즈로 상징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남미에서 온 페드로 마르티네스나 요한 산타나에 박찬호, 스즈키 이치로 등등 전세계에서 몰려온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1884년 플래트 워커를 끝으로 오로지 백인들의 잔치인 화이트리그였던 메이저리그가 다시 흑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 1947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메이저리그는 단 반세기만에 환골탈태적인 변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셔널리그는 미국의 동부지방에 한정된 프로리그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러다가 북부지역의 독립리그였던 웨스턴리그가 1901년 아메리칸리그로 확대 개편되었고, 또한 내셔널리그의 와해공작을 이겨내면서 메이저리그는 양대리그로 재편되었다.
아메리칸리그의 탄생으로 양대리그를 거느리는 메이저리그가 되었지만, 그들의 활동범위는 동부지역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1957년 시즌을 끝마친 10월 브룩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LA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메이저리그는 실질적으로 전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스포츠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골드러시로 상징되는 서부개척이 아메리칸 인디언의 퇴출을 가져왔다면, 메이저리그의 서부지역 진출은 무덤에 묻힌 니그로리그와 독립된 마이너리그를 부관참시하였다.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서부지역으로의 연고지 이전으로 메이저리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스포츠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면, 1969년 내셔널리그의 구단확장으로 탄생한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메이저리그가 미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양대리그가 정착한 이후로 60년간 16팀을 유지하고 있던 메이저리그는 1961년 아메리칸리그가 2개팀을 신설하는 구단 확장을 시작으로 해서 총 6번의 구단 확장을 통해서 현재와 같은 30개팀이 되었다.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 첫 메이저리그팀인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메이저리그의 (북미지역으로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구단확장으로 탄생한 15팀은 미국내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였다.
아메리칸리그의 탄생으로 양대리그로 재편된 메이저리그이지만, 1914년 페더럴리그를 시작으로 해서 제3의 리그를 향한 거센 도전을 받았다. 페더럴리그와의 격렬한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둔 메이저리그는 1946년에는 멕시칸리그의 도전을 [멕시칸리그에 참가한 선수는 5년간 메이저리그에 복귀할 수 없다]는 협박으로 손쉬운 승리를 기록하였다. 메이저리그는 이제는 더이상 도전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1960년 브랜치 리키 등이 중심이 된 [콘티넨탈리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콘티넨탈리그는 메이저리그의 틈새시장 - 메이저리그로부터 소외된 도시를 공략하였기에 메이저리그는 워싱턴 세네터스를 미네소타로 이전시키는 강수를 두었고, 또한 1961년부터 단계적으로 구단확장을 실시했다. 결국 메이저리그가 구단확장을 꾀한 것은 미국내 - 혹은 캐나다 일부까지 포함해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독자적인 리그를 가지고 있던 중남미에 스카우터를 파견해서 선수들을 수급하던 메이저리그는 야구아카데미라는 미국식 야구기계공장을 설립해서 메이저리그드림을 앞세워서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 인구에서 히스패닉계의 증가가 눈에 띄듯이 메이저리그에서도 중남미국적의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비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남미에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이 앞다투어 야구아카데미를 설립한 목적은 값싼 인력의 확보에 있었다. 그리고, 야구아카데미를 통해서 정치적인 목적도 이룰 수가 있었다.
독재와 빈곤 등에 시달리는 중남미 각국에 미국 정부의 개입이나 거대 기업의 착취에 가까운 활동에 당연히 반미감정이 삭트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중남미에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야구아카데미가 아메리카드림의 또 다른 형태인 메이저리그드림을 유포하였고, 게다가 야구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것은 야구만이 아니다. 야구와 비슷한 비중 - 그 이상으로 중요시하는 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상급자나 상부의 명령에 이의를 달지 않고 따르거나 각종 시시콜콜한 미국식 예절 - 식사 예절이나 성교육 등도 있을 정도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의해서 미국 아닌 미국인 푸에르토리코에서 메이저리그경기가 열렸듯이 몇 년 안에 중남미 - 특히 푸에르토리코를 본거지로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탄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꾸준한 구매력을 기대할 수 없기에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을 뿐이다).
메이저리그가 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난 것은 실질적으로 1995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 입단해서, 미국내에서는 발렌수엘라매니아에 버금가는 노모매니아를 몰고 왔고, 또한 일본에서도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1922년 이미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일본을 방문해서 토쿄 6대학 선발팀들과 경기를 가졌고, 1934년에는 메이저리그 선발팀과의 경기를 위해서 요미우리에 의해서 최초의 프로팀으로 조작된 [전일본선발팀(결국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체)]과 경기를 갖기도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선교류와 정치적인 의도 - 미일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것이지 현재와 같은 자본 - 비즈니스적인 측면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로서는 수학여행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리고 1960년에는 최초의 동양인 메이저리거인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데뷔를 했고, 또한 1961년에는 무라카미 마사노리를 내세워서 무라카미의 날이니 뭐니 해서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엿볼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이언츠구단 자체의 개별적인 시도였고, 게다가 흥행의 주대상은 미국내였지 일본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모 히데오의 메이저리그행과 그 성공이야말로 일본 열도에 메이저리그붐이 일어나는 계기였던 동시에, 메이저리그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라는 또 다른 시장에 주목하게 되었다.
MLB의 90년대 이후의 위기와 세계화
1980년대 메이저리그가 아메리카대륙에서의 독점적인 지위에 안주하고 있을 때에 반대로 미국을 벗어나서 세계화에 가장 발빠르게 나선 것은 NBA였다. 그 중심에는 바로 농구의 신이라고 말해지는 마이클 조던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를 앞세운 NBA는 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 드림팀을 파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2002년 이른바 움직이는 광고탑으로 불리는 야오밍이 휴스턴 로키츠에 입단하면서, 그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또한 중국방송국들도 앞다투어서 NBA방영권을 구입하였다. 야오밍은 NBA가 지구 최대의 시장이라고 말해지는 중국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최강의 병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라이벌인 NBA나 NFL 등이 적극적으로 세계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메이저리그는 철지난 먼로주의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1970년대 이후로 야구 아카데미와 메이저리그드림 등으로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중남미에서 온 선수들의 증가가 하루가 달랐지만, 그들에게 중남미 등은 어디까지나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이었지 비즈니스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1991년 12월 일본의 닌테도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매입하려고 할 때에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였던 페이 빈센트는 [우리들은 미국과 캐나다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투자를 받지 않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결과적으로는 부시정부의 개입(압력)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닌텐도에 매각될 수 있었다. 한 때 다저스의 오말리가 삼성에게 매입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삼성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해도 구단주 회의 등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결과적으로 오말리의 제안은 다저스를 조금이라도 빨리 매각하기 위한 압박용에 불과했다.).
1994년 샐러리갭을 둘러싼 노사대립은 결국 파업으로 이어져서 9월 14일 시즌을 조기에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파업의 영향은 1994년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쳐서 메이저리그의 인기 하락과 함께 관중의 감소로 이어졌다. 1997년에는 인터리그의 도입하는 등 인기회복을 위해서 젖먹는 힘을 다하던 메이저리그는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퍼레이드로 미국내에서의 인기회복에 성공하였고, 또한 메이저리그를 세계로 전파하였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에서도 찌라시나 바보상자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화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행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 수 있다.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경쟁과 배리 본즈의 원맨쇼에 일본산 사무라이 스즈키 이치로의 등장 등으로 서서히 1994년의 파업으로 인한 악몽에서 벗어나서 1994년에 이어서 다시 한번 양대리그가 평균관중 3만의 시대를 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수들의 연봉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것에 대해서 아메리카내에서의 마케팅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2년에 흑자를 보인 구단은 30개 구단 중에서 양키스, 자이언츠, 매리너스 정도에 불과하였다(하지만, 2006년 4월에 포보스지는 실제로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은 그들의 말과는 달리 대부분의 구단이 흑자를 누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2003년에 마케팅 컨설팅회사인 [TSE Sports & Entertainment]가 전미 스포츠의 마케팅과 관련된 회사의 간부 13인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에게 가장 유효한 스포츠]를 묻는 조사에서 메이저리그가 NFL, PGA, NBA에 이은 4위에 그것도 겨우 7%의 지지를 받았고, 게다가 조사 대상자의 과반수 이상인 60%가 더이상 메이저리그는 국민적인 스포츠가 아니라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 LA 다저스, 애너하임 엔젤스 등의 구단매각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대두하였고, 특히 미디어 재벌이 소유하고 있던 LA 다저스, 애너하임 엔젤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등이 재정 적자를 이유로 매물로 나선 것은 메이저리그가 더 이상 시청률의 상승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충격은 더욱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메이저리그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2~3개 구단의 퇴출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구단퇴출과 약물검사 등을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은 2002년 8월 또 한번의 파업으로 이어질 뻔했지만, 메이저리그 전체의 위기상황에서 파업은 공멸이 예상되었기에 극적인 타협 - 2006년까지 30개구단의 유지와 2003년부터 도핑테스트를 의무적으로 받는 것 등으로 합의점을 도출하기도 하였다.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메이저리그가 들고 나온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들이 언젠가부터 귓대기가 아프도록 듣고 있는 신자유주의에는 모순된 경향이 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세계화이지만, 세계화와는 모순된 내셔널리즘의 경향도 함께 가지고 있다. 결국 먼로주의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메이저리그에서도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이저리그가 미국을 벗어난 그들로서는 기념할만한 상징인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연고지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04년 10월 만성적인 적자로 메이저리그의 사관학교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1972년 워싱턴 세네터스가 텍사스의 댈러스로 이전한 후로 공백이던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컴백을 결정하였다. 33년만에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으로의 메이저리그의 귀환은 2001년에 벌어진 이른바 911테러 이후로 미국에 몰아치고 있는 애국주의에 편승하는 것이었다.
2005년 메이저리그의 개막전 로스터에서 29.2%가 미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선수이며, 또한 마이너리그에서는 40% 이상이 미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점 등을 생각하면,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선수들의 활약과 비중은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국민적인 스포츠로서의 상징과 위기상황의 타개책으로서의 세계화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메이저리그는 수도 워싱턴으로 컴백함으로서 7회말이 끝난 후에 울려퍼지는 [God Bless Ameirica]와 함께 내셔널리즘과 결합해서 자국내 인기의 회복을 도모하였다.
또한 세계 3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몰려온 선수들을 앞세운 메이저리그는 그들을 앞세워서 시장의 확대에 나섰다. 1995년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노모 히데오를 앞세운 메이저리그는 그 전까지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미일야구대회를 1996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정기적인 교류전으로 격상시켰고, 또한 미국과 캐나다에 한정되었던 메이저리그 공식전을 해외에서 치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9년부터 해외에서 치루고 있는 개막전을 들 수 있다. 게다가 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올스타전의 인터넷 투표와 함께 90년대 말에는 캐나다,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으로 투표권을 할당했던 메이저리그는 2001년에는 일본까지 확대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에 메이저리그 사무소가 설치되면서 메이저리그의 아시아진출은 본격화되었다.
FA제도와 선수몸값의 상승, NBA나 NFL과 같은 자국내 타프로스포츠의 성장 등으로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1980년대 LA 다저스가 도미니카에 야구아카데미를 설치한 이후로 앞다투어서 중남미에 진출하였고, 또한 일본, 한국, 타이완 등의 동양 3국과 오스트렐리아 등으로 선수찾아 3만리를 떠났다. 메이저리그의 노동력이 세계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값싼 노동력의 확보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이었다.
20세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세계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LA 다저스였다면, 21세기에는 악의 제국으로 단지 명품수집가로만 말해지고 있는 뉴욕 양키스라고 할 수 있다. 노모 히데오와 스즈키 이치로가 몰고 온 일본 파워에 주목한 양키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존재인 마츠이 히데키를 영입하면서 일본시장을 공략하였고, 왕치엔밍 등 타이완 선수를 내세워서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내에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개별적인 세계화도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결국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는 메이저리그가 직면하고 있는 도핑파문이나 미국시장의 한계 등의 타개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는 크게 두 방향에서 세계화가 추진되고 있다. 첫째는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선수들을 메이저리그로 끌어모으는 것이고, 두번째는 세계각국으로부터 데리고 온 선수들을 앞세워서 메이저리그 팬을 전세계로 확대시켜서 시장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1876년 출범한 내셔널리그가 수많은 도전자를 물리치는 가운데 1901년 아메리칸리그를 동반자 삼아서 사실상 양대리그의 메이저리그가 정착된 후에도 도전자를 물리치면서 세력을 확대해왔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제국화한 메이저리그는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자체적으로 독립된 리그로 야구를 행하고 있던 리그를 황폐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산하의 마이너리그로 만들었다. 식민지화된 중남미로부터 값싼 양질의 노동력은 지금의 메이저리그를 이룬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또 한번의 위기를 맞이한 메이저리그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시장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계야구라는 것은 값싼 노동력을 충원할 수 있는 곳이거나 구매력이 있어서 자신들의 상품 - 공식전이나 TV 등의 방영권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일 뿐이다. 이미 2005년에 메이저리그는 중계료나 광고비, 각종 상품의 판매 등으로 해외에서만 1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현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이 지껄인 [야구는 미국에서 탄생하였지만, 이제는 세계의 것이다]는 말은 야구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가 지배하는 세계야구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WBC는 메이저리그의 세계지배의 끝이 아니라 그 시작이다.
WBC가 개최되기까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분간은 올림픽에서 야구를 볼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야구는 소프트볼과 함께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퇴출이 결정되었다. 사실 현 IOC회장인 자크 로케는 이미 3년 전인 2002년에도 야구를 포함한 소프트볼, 근대5종 등을 퇴출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일본, 쿠바 등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IOC는 야구퇴출의 표면적인 이유로 저변의 취약성과 그에 따른 흥행부진, 그리고 철저한 도핑테스트 등을 내세우고 있다. 국제야구연맹(IBAF)의 가입국이 110개국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야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미국, 한국, 일본, 타이완과 쿠바,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등에 불과하다. 게다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입장권이 53.2%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야구가 인기가 없는 나라로서는 흥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야구장건설도 만만치 않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야구가 올림픽의 종목이 된 것은 IOC가 거대 스폰서인 미국의 미디어들과 기업들을 위한 특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선수 - 메이저리거들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으므로 미국내에서도 야구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IOC는 예전에 FIFA에게 압력을 행사하였듯이 퇴출을 무기로 메이저리거의 참가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서는 올림픽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의 흥행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즌 중에 열리는 올림픽에 메이저리거들의 참가를 허용할 경우에 시즌이 파행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올림픽 때마다 올인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기간동안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그 답은 쉽게 나온다.
NBA가 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 이른바 드림팀을 파견해서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메이저리그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가 비시즌인 NBA와는 달리 시즌 중이기에 NBA와는 처지가 다르다. 결국 마이너리그 중심으로 올림픽에 파견할 수밖에 없는 메이저리그의 입장으로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같이 금메달을 메고 금의환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처럼 의외의 복병에게 한방러쉬를 당할 경우에는 야구의 종주국임을 내세우는 그들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만을 입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로서는 올림픽은 계륵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어차피 외국선수의 증가와 함께 멕시코와 일본,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경기를 갖는 등 NBA나 NFL 등에 비해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들만의 세계화에 뛰어들은 메이저리그로서는 메이저리거를 포함한 모든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국가대항전의 개최로 방향을 결정하였다. 이미 프로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IBAF가 주도하는 야구월드컵과 인터컨티넨탈컵이 있었지만, 메이저리그가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를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세계화전략의 일환이기에 야구월드컵이 아닌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대회 - (가칭) 슈퍼 월드컵을 2005년 3월에 개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메이저리그가 대회개최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무리수를 둔 것은 도핑파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면도 있었다.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이 UN을 언제나 들러리로만 내세우거나 다른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일방주의를 관철시키듯이 메이저리그 역시 IBAF를 대외명분으로서의 들러리로, 또한 세계대회에 참가가 예상되는 국가와는 어떤 협의도 없이 [내가 결정하면 따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등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하는 것에 반기를 들면서 제대로 된 독립된 대회조직을 요구하면서 반대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대회조직위라는 형식을 이유를 들었지만, 이익분배를 둘러싼 돈문제 등이 실질적인 이유였다.
뒤늦게 협의에 나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새로 대회운영조직의 창설과 아시아예선의 이익을 아시아 각국에게 배당하는 것 등으로 타협하면서 2006년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WBC에는 총 16개국이 지역별로 4개조로 나뉘어서 예선리그전을 치룬 후에, 상위 2개팀이 본선인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해서 우승을 다투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2006년 3월에 제1회 대회가 열린 후에 올림픽과 월드컵과 시기를 다르게 하기 위해서 제2회는 3년 후인 2009년에 열릴 예정이고, 그 후로는 4년에 1번씩 개최될 예정이다.
그리고 중요한 대회 주체는 형식적으로 WBCI라는 조직위원회와 IBAF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모양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공동으로 출자해서 만든 WBCI가 주도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IBAF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사실상 야구의 세계화라는 WBC는 메이저리그가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가 주도하고 있는 WBC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