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다산
- 다선 서제 176주년 탄생 250주년 기념
도올 김용옥 강연
(2012.4.7 다산 생가 옆 실학박물관)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날. 다산 서제 소식을 듣고 먼 길을 달려갔다. 50분 남짓 제를 올리고 진행될 도올 김용옥 선생님 강연을 듣고파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 실학박물관 내의 강연장은 말 그대로 송곳 하나 들어설 곳 없이 빽빽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연단에까지 사람들을 앉으라는 배려를 아끼지 않은 도올 선생의 강의는 명불허전 그 자체로 한 호흡이 멈출 여지도 없이 물처럼 흘러갔다.
먼저 박석무 다산 연구소장님의 인사말..
원근에서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너무 늦었다, 이런 관심이. 다산을 통한 사회개혁과 평등 세상의 꿈이..
맹자는 백성이 임금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한 사상가다. 중국에서도 1500년이나 금서였다가 송나라 주희가 사서집주를 쓰면서 사서에 들어가 복권되었다. 다산 또한 맹자의 뜻을 이어받아 개혁을 꿈꾼 사상가다. 좋은 강의 기대된다.
김시업 실학박물관장님도 한 말씀.
이곳에서 실학의 정신을 느껴보시라. 다산은 1800년 유배를 갔다, 18년 유배 생활 마치고 돌아와 다시 여기서 18년을 사셨다. 회혼례를 준비하면서 그 날 아침 돌아가셨고, 오늘이 그날이다. 유네스코는 2012년 세계문화 인물에 장 자크 루소와 헤르만 헤세, 드뷔시와 다산 정약용 선생을 지정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도올 강의
얼마 전 맹자를 우리 말로 풀어쓴 맹자한글역주를 완료했다. 맹자의 삶과 시대를 아우른 세계 최초의 번역서다(여기서부터 깔때기의 시작^^)
맹자를, 우리는 공자의 사상을 발현시킨 최대의 사상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는 <공맹(孔孟)사상>이라는 말이 없다. 그 말은 12세기 이후 이정, 주자가 맹자를 발굴하면서 나타난 말이다. 그전까지 맹자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백안시(白眼視) 되었다. 주석도 ‘조기’라는 후한말의 학자가 남긴 게 유일했다. 통치자들이 맹자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군(君)은 별거 아니고 민(民)은 가장 고귀하다고 한 사상가. 임금 니가 임금인 것은 민의와 민심을 얻어야 왕의 자격이 있는 거라고 했다. 군은 일부(一夫), ‘한 또라이’, 좀 심하게 말하면 ‘한 또라이 새끼’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맹자가 제선왕을 만났을 때, 제선왕이 ‘걸주같은 폭군이라도 왕을 시해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잘못 아닌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했을 때, 맹자는 ‘인을 해치면 도적이고 의를 해치면 잔학한 놈인데 내가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들은 적은 없고, 한 또라이를 죽였다는 말만 들었다’고 대답했다. .
왕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도 맹자가 살아난 이유는 무엇인가? 전국시대는 패도의 시대이기 때문에 국력 확보가 목적이라 맹자같은 현인을 존중했다. 당시의 군주들은 격(格)이 있었다.
맹자가 제선왕을 만나 이런 말도 했다.
- 여기 가족을 친구에게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난 신하가 있습니다. 그 신하를 저 먼 초나라 사신으로 보냈는데, 사신은 너무 멀고 오랜 길이라 처자식을 맡기고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처자식이 굶어 죽었다면 그 사신은 사신으로서 자격이 있습니까?
- 물론 자격 없으니 짤라야지.
- 군대를 통솔하는 참모총장이 군인에게 명령을 내리는데 안 듣습니다. 제대로 통솔하는 능력이 없는 참모총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야 자격이 없으니 짤라야지.
- 제나라 현실을 보시지요. 기근과 흉년에 노약자, 어린이 시체가 도랑에 즐비합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책임지는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널 짤라야겠지!)
이 때 제선왕 할 말이 없으니, 좌우를 돌아보며 딴청을 부린다. 당시 군주는 그렇게 귀여웠다(^^) 그 정도로 임금을 까도 비판의 목소리를 기울였다.
이렇듯 맹자의 핵심은 민본사상이다. 백성이 근본이고 군주는 그 종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보다 더 지독한 민주주의 사상이다. 다만 당시는 오늘날 같은 서건 제도가 없고 오로지 군주의 개혁에 기대던 시대였기에 군주를 설득하려 한 것이다.
성선설도 결국 군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것이기에 나온 사상이다. 군준가 인(仁)하면 백성도 인하고, 군주가 의(義)하면 백성도 의한 시대. 군주가 불인(不仁)하면 백성도 불인하고 군주가 불의(不義)하면 백성도 불의한 시대라서 백성에 앞서 군주를 이끌려 한 것이다.
공자에도 나온다
정치(政治)가 무엇입니까? 정(政)은 정(正)이다.
정치는 바름이다. 그대가 올바름으로 정치를 한다면 누가 부정부패 하겠느냐(공자)
맹자 첫머리에 양혜왕 편이 있다. 주유열국을 하던 맹자. 양혜왕을 만날 때 혼자 가지 않고 많은 제자를 데려간다. 왕이 맹자를 만나는데 수레 수십 대에 종자가 수백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벤츠 30대에 수행원이 300인데 그 비용을 양혜왕이 다 대주었다. 맹자 첫머리의 불원천리(不遠千里) 와주시니,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 추량과 양나라는 천오백리 거리다. 무려 두 달이나 걸리는 거리다.
- 불원천리 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나라가 어떻게 하면 이익을 얻겠습니까?
- 왕은 하필 이익을 말하는가(何必曰利!) 오로지 인의가 있을 뿐이오. 나는 이익을 주려 온 것이 아니고 인의 도덕을 가르치려 왔다.
당시로 보면 이 사람 맹자는 너무 오활(迂闊)한, 시세에 너무 어두운 사람이었다. 모두가 부국강병을 꿈꾸는데, 패도를 실현하려 하는데 맹자는 단호히 거부했다. 무력은 천하를 통일하는 길이 아니라고 믿었다. 천하통일은 도덕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가 전쟁 없는 시대를 바랬다. 하지만 모든 사상가들이 이진거진(以戰去戰-전쟁으로 전쟁을 없앤다)을 주장할 때, 맹자는 오로지 도덕의 힘만으로 가능하다 주장했다.
여기 이 책에 독서상우(讀書尙友)라는 휘호가 나온다.
오늘 다산 묘제 초헌관으로 중아일보 홍석현 회장님 오셨는데, 그분 아버님이 쓰신 책이다. 여기 오신다 하여 밑줄 그으며 다 읽어보고 왔다. 독서상우(讀書尙友)는 ‘책을 읽어 성현들과 벗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공자의 수제자로 우리는 안회를 꼽는다. 자로나 자공 같은 제자도 있지만 역시 안회다. 그럼 맹자의 제자 가운데 수제자는 누구인가? 바로 만장(萬章)이다. 이 만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주인공만 보아 와서 맹자만 대단하고 제자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맹자가 고자랑 논쟁일 벌이는데, 고자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고자를 우습게 보고 맹자만 높이는 편견을 갖고 있다. 고자는 맹자보다 나이도 많고 학식도 높다. 조심하고, 존중해서 바라봐야 한다. 양혜왕이 맹자를 만났을 때, 맹자가 큰 소리 치니 맹자가 더 어른이라 생각하는데 당시 맹자는 53세 양혜왕이 81세였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는 배경을 알고 읽어야 한다. 그 시대를 재구성해서 어떤 맥락 속에서 왜 그런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아야 한다. 나의 맹자가 그렇다(^^)
저 구라, 깔때기라고 해도 좋다.(^^)
만장이라는 제자는 당시 대단한 석학이었다. 공자의 논어 분위기가 동네에서 좋은 청년들을 데리고 논두렁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라면 맹자와 만장의 대화는 옥스퍼드 대학의 세미나 분위기다.
다산 철학 사상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대학 다니던 1960년대 조선왕조실록과 여유당전서를 다 사두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으나.. 다산은, 철학으로 보면 대단한 학자시지만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어 오늘날 읽으면 답답하다. 다산은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수학자였다. 머리가 아주 수학적인 분이다. 그의 철학은 웅장하지 않고 상당히 고증적, 실사구시적이다. 그런데 이런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책을 이렇게밖에 못쓰시나 하는 안타까움에 책을 읽으면서 다산을 꾸짖기도 하지만, <악서고존>이나 <주역사전> 등은 압도적이다. 연대 고등수학 풀듯 하는 기분이 든다.
철학이란 말은 일본 사람이 만들어낸 말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구 유학을 했다. 다산이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했다면 뉴튼 이후 최대 물리학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가 1936년 별세하고 1937년 동무 이제마 태어난다. 당시면 영국 유학도 갈만한 세상이었다. 최한기가 세계인문지리학, 세계인문지도를 그릴 때다. 학문적으로 이런 천재를 우리 역사가 키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퇴계도 얌전하고 내면의 깊이가 대단하다. 우리 나라 역사를 통틀어 진짜 천재는 율곡 이이다. 그는 진짜 무서운 천재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너무 좋았다. 오늘날의 영재나 신동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선조라는 임금을 만나 진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요즘 조순 전 시장과 율곡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이 분을 경제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진짜 한학의 대가시다. 선조는 왕위를 제대로 잇지 못해 콤플렉스가 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문예부흥기였고 위대한 선비가 많았다. 선조 자신도 글씨 잘 쓰고 학문도 좋은데, 율곡을 경쟁 상대로 여기는 야비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덕수 이씨 두 사람이 선조 때문에 피를 봤다. 이순신과 이율곡.
율곡은 평생을 울분 속에서 살았다. 십만양병설의 배경을 봐라. 이덕일류의 유치한 수준에서가 아니라... 율곡은 국가 체제를 이렇게 버려둘 수 있냐며 시무책을 올렸다. 선조는 무슨 개코같은 소리라며 철저히 외면했다.
“왕이여, 당신이 시무책을 올려도 듣지 않으시니 무조건 삼년만 제 말씀을 들으시고 맞지 않으면 제 목을 도끼로 치십시오. 그러면 기쁜 마음으로 제 목을 드리겠나이다. 제발, 귀를 기울여 민중을 살리시옵소서.”
선조는 율곡을 판서로만 돌리고 정승을 시켜주지 않았다. 율곡은 울화병 속에서 49세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런 율곡에 비하면 다산은 행복한 사람이다. 정조와 더불어 개혁을 논할 수 있었다. 정조께서 맹자에 대해서 물으셨을 때, 내 대답이 시원찮았다. 돌아가신 뒤에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고 했어요.
이런 정조가 돌아가시면 다산은 쌩피 보는 겁니다. 다산의 유배는 천주교나 서학 때문이 아닙니다. 어차피 왕이 바뀌면 다 가는 건데, 그게 다산에게는 축복이었다. 다산의 해남 강진 유배는 천운이었다.
다산의 어머니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증손녀시다. 나 도올의 친할머니가 그 집안의 종녀시다. 할아버지가 현감을 하셨는데, 그 옆집에 살았다. 그러니까 다산은 우리 집안과도 인연이 있다.(^^)
다산의 부인이 풍산 홍씨인데 도올 어머니도 풍산 홍씨다. 내 딸이 그림을 잘 그리는데, 그게 다 공재의 필을 받아서 그렇다.(이 엄청난 깔때기에 청중 빵 터짐^^)
정조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18년 유배 생활, 다시 돌아와 18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학자로서, 해남윤씨 집안의 도움을 받아 당대 최대의 장서를 가질 수 있었다. 규장각의 몇 배나 되는, 좋은 책들을 볼 수 있었다. 유배의 행복이랄까... 다산의 유배를 그렇게 비극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율곡에 비한다면 그렇다.
다산은 1813년 겨울 52세에 <논어고금주>라는 만고의 대작을 완성했다.
53세에 <맹자요의>를 완성했는데, 논어고금주의 여흥으로 맹자를 치밀하게 주석한 책은 아니다. 맹자 가운데 중요한 편만 골라서 고주(古注)는 고주대로, 신주(新注-주자의 주석을 말함)는 신주대로 연구를 했다. 청대고증학적.. 이 둘은 각각 하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다산은 이 자식들 둘 다 시원찮다 하고 당신 생각을 기록했는데, 이 도올이 보기에는 별로 대단한 것은 없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학자들은 주자학적 사고를 훨씬 뛰어넘었는데, 왜 당신은 그러지 못하셨나! 다산은 조기와 주자를 비판해도 신유학적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디테일한 문제점만 비판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해석만 해도 뛰어난 점이 있다.
측은지심을 보자. 우물로 아기가 기어들어가면(당시 우물은 턱도 없어서 아기가 가다가 그냥 빠져 죽을 수 있다) 덜컥 가서 아기를 구한다. ‘아기를 구하면 얼마를 받을까, 내 명예에 도움이 될까, 이걸 선거에 활용할까’ 이런 생각 없다는 말이다. 불인(不忍)인지심(人之心). 사람이기 때문에 참지 못하여 차마 그냥 둘 수 없는 마음 그게 측은지심이다. 측은지심은 인지단. 인간의 본성 내면에 인이라는 본성이 있어서 실마리로 드러난 것이다 그말이지.
한 마디로 인간의 마음 속에 인이라는 덕이 근원적으로 내장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걸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다산이 재해석 한다 이 말은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치 복숭아 씨앗처럼 인이 있어서 삐져나오는게 아니라는 거다. 측은지심이 발동한다는 건 인간 본연의 자세인데, 그런데 안 그런 놈도 있다. 그 마음이 발현될 때 인이지 마음 속에 인이 있어서 발현되는 게 아니다. 상당히 혁신적인 발상이지만, 거기서 그친 점이 아쉽다.
앞에서 홍석현 회장 부친의 독서상우를 이야기했다. 그 말은 어디 나오는가.
맹자와 만장이 역사를 논하는데 정말 대단해. 요순(堯舜)의 선양(禪讓)제도는 공산당이 권력승계방식이 그걸 따를만큼 대단한 점이 있다. 과연 요(堯)임금이 정말 대단해서 순(舜)에게 양위했느냐?
아는 대로 순의 아버지는 매우 악독한 사람이다. 순이 지붕을 고치러 올라간 사이 불을 질러 죽이려고 했고 생매장도 시키려 하고 하여튼 순을 죽이려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순은 극진히 아버지를 모셨다. 흉악한 계모와 그 자식 셋이 합작해서 순을 죽이려 했으나 순은 착하기만 했다. 이런 순이 요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나중에 요임금이 두 딸을 주고 아들 9명도 그 신하를 삼게 했다. 과연 그게 순수한 양위(讓位)일까?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라는 것이다. 만장의 이런 질문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묵자나 전국책 등을 보면 당대의 다양한 견해들을 고려하건대 순은 악질인데 왜 성군으로 모시냐는 거다!
맹자는 순임금이야말로 진짜 착하고 도덕적인 선왕이라 믿었다. 절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논의를 제자와 풀어가는 데 눈물이 난다. 어떻게 해서라도 고대 성왕의 자리를 복권하지 않으면 패자중심의 전국시대 역사해석 속에서 왕도정치는 죽어가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치열한 논쟁 마지막에 벗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데, 거기서 독서상우(讀書尙友)가 등장한다.
앞서 말한 기나긴 역사 논쟁 끝에 그 위대한 제자에게 타이르는 말로 벗 삼는 것을 묻는다. 맹자와 만장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나이같은 다른 뭔가가 낄 틈이 없다. 귀천의 관직 고하 이런게 낄 필요가 없다. 나는 왕의 신하가 아니고 왕과도 벗삼을 수 있다. 그 덕과 벗하는 자리에 누구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벗은 당연히 유유상종이다.
일향지선사는 일향지선사와 같이 놀 수밖에 없다. 일국지선사, 한 나라의 뛰어난 인재는 그 나라의 뛰어난 인재와 놀 수밖에 없다. 천하지선사는 또 천하지선사와 놀 수밖에 없다. 내가 미국에 가면 미국 최고와 놀아야지 저질 학자랑 놀 이유가 없다.
만장아! 너같이 위대한 제자는 천하지선사를 만나도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구를 벗할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성현을 벗 삼아라. 그 사람이 쓴 책과 시를 읽어야 한다.
독기서 부지인(讀其書 不知人), 그 책을 읽고 나서 그 사람을 모른다면.. 쓴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려면 그 시대를 알아야 한다. 사람과 시대를 알 때, 비로소 상우(尙友)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友)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 벗한다는 동사다.
생생한 상상력으로 인생을 살아라(이건 누구의 말인지 모름.. 맹자인지 다산인지 도올인지^^)
일향지선사는 사우 일향지선사
일국지선사는 사우 일국지선사
천하지선사는 사우 천하지선사
(孟子謂萬章曰 一鄕之善士아 斯友一鄕之善士하고 一國之善士아 斯友一國之善士하고 天下之善士아 斯友天下之善士니라)
以友天下之善士로 爲未足하야 又尙論古之人하나니 訟其詩하며 讀其書호되 不知其人이可乎아 是以로 論其世也니 是尙友也니라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옛 사람을 논평하여 벗으로 삼을 것이다. 그들의 시를 일고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인물됨을 모른다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 시대를 논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그를 숭상하여 벗으로 사귀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보고 다산은 주자가 답답한 사람이라며 확 까놓았다. 그런 걸 보면 다산과 나는 같은 핏줄이야(하하)
마지막 역사 이야기 하나 더. (찾아보니 맹자 진심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순임금에 대해서 제자가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순임금의 탁월한 신하 가운데 고요라는 사람이 있다. 순이 천자가 된 뒤 고요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는데, 아까 나븐 놈이라 했던 순의 아버지 고수를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순임금이 어떻게 했을까요? 천자의 아버지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고요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맹자는 법대로 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법대로입니까?
- 나는 법대로라고만 했는니라(^^)
- 그럼 순은 어찌 처신해야 합니까?
- 사람들은 다들 권력에 대해 바당바당! 하는데, 바당바당! 그는 권력에 욕심이 없는 분이니 점잖은 분이니 아버지가 살인을 하셨다면 기꺼이 그 지위를 내놓을 것이다. 단 감옥에 갇힌 자기 아버지를 업고 도망칠 것이다. 저기 발해나 북해 같은 먼 곳으로 가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누리고 살겠지.
다산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맹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의 제자가 오독해서 끼워넣은 것이라고 맹렬히 깐다. 왕이 자리는 내놓는 무책임이 어디 있으며, 옥리를 매수한다니 이건 불법이고 옥리 또한 누군가를 봐주는 것은 범법이니 이치에 안 맞는다!(역시 다산다운 해석이다) 이건 제자가 끼워놓은 이야기다.
그러나 나 도올의 생각은 다산과 다르다. 법은 집행하고 유가의 대가인 맹자의 문제의식은 유가의 도리를 따른다. 맹자는 어머니의 장례도 엄청난 후장(厚葬)를 치러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묵자는, 죽으면 썩는 시체인데 뭘 그리 낭비하면서 장사를 치르는가! 국가재정 낭비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치스런 경쟁만 조장하다고 비판했다. 맹장는 어머니가 죽어 땅속에서 추우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두꺼운 석회를 사용하고 몇 년이라도 더 육신의 모습을 유지하길 바랬다.
맹자는 묵자(墨子)와 치열하게 대립했다. 묵자는 원시공사사회를 꿈꾸는 평등주의자다. 또 맹자는 양주와도 대립한다. 양주(楊朱)는 자기의 털 하나 뽑지 않겠다고 한 그 양주다. 내 털 하나를 뽑는 일이 천하를 위한 일이 된다 할지라도 자기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열자 양주편에 나오는 이 양주는 그냥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지독한 아나키스트다 모든 권력을 부인한 사람이다. 맹자는 묵자라는 무차별 평등주의자나 양주같은 지독한 에고이즘을 까고 도덕의 마음을 설파했다. 도덕이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이다. 자기 자식과 부모를 섬기는게 선업과 정치의 근본이며 가장 도덕적인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순임금으 행동은 정당하다는 게 맹자의 입장이다.
앞으로 박석무 선생님과 1, 3주 수요일 4회에 걸쳐서 나 도올이랑 여유당전서를 놓고 다산 공부를 할 것이다. 내가 배우는 자리가 될 거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산을 실학의 테두리에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실학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성대교수들이 미워하는데(^^) 여기가 또 ‘실학’박물관이다. 여기 관장이신 김시업 교수님은 의성 김씨의 꼬장꼬장한 지조와 무서운 도덕의식을 가지고 계신다.
실학이란 말 자체가 우리에겐 없었다. 반계나 다산이 실학이라는 개념으로 학문을 말한 적이 없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그냥 실사구시 학문이라 하면 될 것을 실학이란 말로 규정하고 간 것이다. 물론 실학은 중용의 장구서에 나온다. 정이천의 말이다. 허학(虛學)의 반대로 그냥 일반 용어이다. 일본 학자들이 자기 유학을 규정하는 말이 없어서 실학이란 말을 썼는데... 실학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그냥 실사구시 학풍이라 하면 된다. 문제는 조선왕조사의 정약용을 실학자로 규정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당대의 탑 스칼라십을 가진 경학자였다. 조선 주자학이 아니라 주자학을 포괄해서 조선의 미래, 조선의 개혁을 꿈꾼 사람이다. 독서 범위가 대단하고 문장력이 장난이 아니다. 함부로 조선왕조의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격이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유감이 많다(^^)
이상 도올 강의 끝.
80년대 대학에 다니던 시절,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와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고 강렬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 카프카가 말하는 책이 도끼가 되어 내리치는 충격이랄까! 당시 남성중심 기독교적 사고에 적어있던 내게 동양학, 여성학 책은 김지하의 ‘밥’과 ‘애린’ 등의 책들,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과 더불에 내 세계관을 틀 짓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도올을 흠모한지 약 20년 만에 처음 도올의 육성을 들었고, 역시 도올이구나 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연을 마치고 잔디밭에서 점식식사를 하시는 도올에게 차 한 잔 올리고 왔다. 이 흐뭇함^^
아직 공부가 부족해 방황이 계속 되는 지금, 강신주와 김수영과 더불어 도올 또한 비틀거리는 내 삶에 작은 나침반이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이상 끝.
첫댓글 현장에서 도올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다산을 비롯한 많은 분을 만나셨군요.
감회가 남달랐겠네요.^^
국학(國學)의 발전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첨부 파일 받아갑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애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귀하게 읽어주시니 저의 영광입니다^^
현장에서 중계를 하시듯 생생한 목소리 전달,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러 정보 잘 얻엇습니다.
도올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는 한 사람으로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감탄하지만 궁금도 해요. 어떻게 빠짐없이 전달하실 수 있는지요? 속기? 꼼꼼한 전달에 감사드립니다. ^^*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부러움으로 마음 한 편이 싸~합니다.^^
그냥 발품팔아 움직이고, 현장에서 부지런히 받아 적고, 모르는 것 찾아보고..그러면서 저도 공부하고, 이렇게 벗님들하고도 나누고 그러지요... 헤르메스의 피를 타고난 저의 사명이라 생각하면서요...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보람이 느껴집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족장님 안내로 저번에 도올 선생님 특강 들으러 갔었어요. 그 때 이런 이야기도 살짝 하셨었지요. 현장에 있는 듯한 세심한 녹취록, 거저 퍼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