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외로운 한부모가정의 풍성한 한가위
고향으로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한달 전부터 추석기차 예매가 시작되고,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면
기차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연안부두에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땅을 밟고자 하는 귀성객들로 긴 장사진을 이룬다.
금년 추석연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귀성 및 귀경객들로 전국토는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특히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2~3배가 넘는 이동시간으로 파김치가 되다시피 하였다.
매년 이러한 불편이 반복되지만 추석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수 는 여전히 수 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하고, 그 풍요로움을 그리운 가족과 함께 나누어 기쁨을 배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발길을 가족의 품으로 이끈다.
한가위는 흩어졌던 그리운 가족을 모으고,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을 확인하는 특별한 시간임이 분명하다.
가족과 단절된 한부모
민족의 대이동 앞에서도 고향을 향해 발길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부모가정의 한부모들이다. 이들은 명절은 물론
경조사나 특별한 날이 되어도 부모, 형제와 교류가 뜸하다.
한부모가정연구소의 “서울시 한부모가정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부모가정의 상당수가 한부모가정이 된 이후 가족과의 관계가 변했다고 응
답하였다. 이들은 가족의 결혼식, 장례식, 환갑잔치 등 경조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왕래를 한다고 해도 고작 1년에 1~2번 정도에 그쳤다.
가족들은 한부모가정 아동의 생일, 입학식,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가족은 가족이되 교류 없는 이름뿐인 가족이었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한부모
백조(가칭)님은 이혼 후 초등학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한부모이다.
그녀는 이혼 후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살면 어려울 때 의지도 되고 아이를 키우는 데도
도움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빗나갔다.
“이혼 후 친정근처로 이사를 했어요. 제가 부모님과 오빠집 근처로 이 사를 한다고 하니 가족들이 뭐 하러
이 동네로 이사를 오냐고 하더군요. 반대를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집 근처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 언니들도 모두 그 근처에 살지요.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눈치 없이 명절이 되면 오빠집, 언니집에 들렸어요.
그런데 반가워하지 않더군요. 아이도 외삼촌과 이모들이 싫다고 했어요.
외삼촌집에 가면 혼나기만 한다고 가기 싫어해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몇년간 전혀 교류를 하지 않고 살아요.
아이 생일에도 케익 하나 사오는 사람들이 없어요. 가족이지만 남남이나 마찬가지지요.”
환갑잔치에서 느낀 배신감
희망님(가칭)은 이혼한 후 어린 자녀 1명을 두고 있는 한부모이다.
그녀는 부모․형제와의 교류를 끊은 지 2년이 되었다.
그녀가 명절이 되어도 가족을 찾지 않는 것은 가족에 대한 섭섭함 때문이다.
“제가 이혼하고 한 두 해가 지난 뒤였을 거예요. 그해가 아버지가 환갑을 맞으시는 때였지요.
환갑잔치가 있는 날, 아이를 데리고 뷔페식당으로 갔습니다.
이날 아버지 친구 분들이 많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다 나오라고 하시며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이 애들은 장남과 며느리입니다.
우리 장남은 모 회사의 과장입니다. 이 애는 장녀지요. 그리고 큰 사위입니다.
우리 사위는 사업가지요. 이 애는 차남입니다... 그렇게 가족을 한사람 한사람 소개를 하다가 제 옆에 있는 동생까지 왔어요.
전 동생 옆에 서서 제 소개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동생을 소개하던 아버지가 제 차례에서 소개를 멈추더군요.
전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가족에게 배신감을 느꼈지요.
아버지는 이혼한 딸이 창피했던 겁니다.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내심 아버지가 원망스럽더군요.
그래서 그 후로는 집에 한 번도 가질 않았어요. 물론 집에서도 저를 오라고 한 적도 없구요.”
외로운 추석 명절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부모가정 중에는 명절이 되어도 찾아갈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다.
황은숙 소장(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은 “한부모님들 중에는 가족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그 외로움은 극에 달해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
한부모가정 추석행사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에서는 매년 추석이 되면 가까운 친지를 찾아가지 못하는
한부모가정을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금년 추석명절도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한부모가정을 위해 9월22일(토) 한부모가정 한가위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명절을 외롭게 보내는 한부모가정의 부모와 자녀를 초대하여 다른 한부모가정과 친교하며
한가위의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혼가정 한부모와 자녀들 약 4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들 중에는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형 윷놀이, 투호 등의 전통놀이를 하면서 모처럼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국화님(가칭)은 자녀와 전통놀이에 참여하면서 “평소에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
이 많지 않아요. 언젠가는 아이가 자신은 불행하다고 하더군요.
추억이 없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한테 무척 미안했어요. 오늘 이렇게 추
억을 만드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아빠가 생긴 것 같아요
이날 진행을 맡은 오종인 회장(한울타리 한부모회)은 개량한복을 입고 사회를 봤다.
놀이마당은 참석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엄마와 자녀, 아빠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들이 서로 그룹을 만들면서 한 가족이 되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은 한부모의 자녀가 되었다.
아빠가 없는 가정에는 아빠가 생기고, 엄마가 없는 가정에는 엄마가 생겼다.
아이들은 떠나간 부모에 대한 빈자리를 다른 한부모를 통해 가득 채웠다.
수정이(가명)는 몇 년 동안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아빠의 사랑을 잘 모른다.
수정이는 “아저씨들이 응원도 해주고 함께 놀아줘서 신났어요. 저에게도 아빠가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요
전통놀이 후에는 주최 측이 마련한 잡채와 전, 과일 및
야채샐러드, 포도 등 정성이 깃든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즐겼다.
한부모 바람님(가칭)은 이날 모임에 대해 “명절에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고독하지요.
이번 추석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무척 즐거웠어요. 새 가족을 만난거지요”라고 말한다.
소망님(가칭)은 “아이가 친척집에 가자고 하는데 갈 곳이 없었어요. 이곳이 있어 이제 외롭지 않아요.
아이도 이렇게 좋아하고요”라고 말한다.
이 행사의 사회를 맞은 오종인 회장은 “한부모님들이 함께 추석을 보내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하면서도
“추석모임같은 행사가 한부모가정연구소 등에 한정해 이루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정 추석행사를 주최하는 한부모가정연구소의 황은숙 소장은
“전국에 한부모가정지원센터가 세워져 한부모님들이 행복한 명절을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였다.
한부모가정의 풍성한 한가위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바라며 달맞이를 간다.
이번 추석에도 해운대 등 유명 달맞이 장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붉게 떠오르는 만월 앞에서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금년 추석, 한부모들은 둥근 만월을 보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가족의 건강, 가족의 행복, 물질의 축복, 취업, 승진, 좋은 배우자, 미래의 성공 등 수많은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커다란 둥근 보름달의 정기가 좌절감에 빠져있는 한부모가정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삶의 힘과 용기가 되기를 빌어본다.
대담 및 정리 강은주 기자
월간 아름다운가정 2007년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