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31.(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례를 시작하게 되는 날이 왔다. 아쉽게도 하진이는 감기에 걸려서 다 나으면 온다고 했다. 가뜩이나 시우랑 초면이어서 어색할까 봐 걱정이 되는데 하진이가 없어서 더 어색할 것 같아 매우 걱정이 되었다. 그럴리는 없지만 하루만에 완치돼서 밤에라도 오길. 겸이 오빠는 후반에 투입된다고 했는데 버스타고 백야도까지 가는 건 같이 하기로 했다. 초반에는 2~30분 동안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짐이 무거운데도 잘 걷는 나 자신을 보며 "어머, 하나도 안 힘드네?" 하며 잠시 우쭐해졌다. 그 우쭐함은 뒤로하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은 불쌍해 보였다. 사람들이 앞에서 대화를 나눌 때 나 혼자 넋이 나가 있었다. 열심히 걷다가 갑자기 앉으니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간 것 같다. 버스가 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짐이 사람만 해서 놀라웠다. 어떤 할머니께서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신 게 인상 깊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공감하고 계신 것 같아 작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니 점심을 먹으러 시장에 갔다. 사람들이 큰 가방을 메고 있는 우리를 마치 동물원에서 탈출한 원숭이 마냥 쳐다봤다. 그런 관심은 좀 부담스러웠다. 백반을 먹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를 만들고 오나 보다, 1시간 동안 기다렸다. 마음 같아선 길바닥에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러면 누군가 나를 밟을 것 같아 무서워서 그냥 서있었다. 무사히 버스를 타고 백야도에 갔다. 배를 거의 3년 만에 타는 거여서 영화 주인공처럼 감성 있게 바람을 쐬고 있는데 리키(내가 좋아하는 꽃미남 초 스페셜 아이돌)가 홍대에 지하철 광고를 보러 왔다는 소식을 봐버렸다. 오, 신이시여! 왜 나만 저 꽃미남을 보지 못하는 거지? 다시 배를 타고 홍대에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을 깨닫고 잠시 눈물을 훔쳤다.(진짜 울진 않았음) 이 순간 나에게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뿔ㅠㅠ 실내로 들어가서 앉아있는데 어떤 아저씨께서 말을 건네오셨다. 내가 노안이어서 그런지 학생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셨다. 예전 학교 친구가 나보고 삭았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노안이다. 아저씨께서 계속 말을 하시는데 말이 많으신 분이셔서 죄송하지만 좀 시끄러웠다. 아저씨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이 분은 길 위의 천사셨다. 캠핑장까지 차로 태워다주시고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다.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는데 텐트가 바람 풍선처럼 춤 솜씨를 뽐냈다. 덕분에 고생 좀 했다. 저녁밥을 하는데 요리를 잘하지 못해서 등신대처럼 서있었다. 뻘쭘했다. 밖에서 밥을 먹는데 비닐봉지가 자꾸 날아갔다. 내 멘탈도 함께 날아갔다. 밥은 맛있었다. 샤워를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텐트가 열심히 춤을 췄다. 텐트의 춤실력이 굉장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 계속 증명해내려고 하니깐 짜증이 났다. 뭐라 하고 싶었지만 그냥 텐트여서 뭐라 할 수 없었다. 바람 탓이지, 뭐..ㅠㅠ 텐트의 춤은 계속되었고 짜증에서 실성해서 웃는 것까지 넘어갔다. 정신없이 웃다가 잠들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바다 위에서 자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2023.4.1.(토)
아침 7시에 시우랑 빛나는이 열심히 나를 깨웠지만 더 자고 싶어 못 들은척하며 계속 누워있었다. 계속 누워있기엔 양심에 찔려서 결국엔 일어났다. 눈이 안 떠졌다. 집에서는 아침 7시에 일어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데 금오도에서 이러고 있다니! 나는 지금
갓(GOD) 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는데 웬 산적이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헤그리드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아침밥을 먹고 비렁길 1코스를 걸으러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어제 캠핑장까지 태워다 주신 말 많은 아저씨께서 얼음물을 주셨다. 아저씨가 이 글을 볼 일은 없지만 아저씨께 편지를 한번 써보겠다.
'아저씨.. 잘 지내시죠? 아저씨께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힘들어서 집에 갔을 것 같아요. 꼭 100살까지 사세요!'
비렁길 1,2코스에 갔다. 주말이어서 산악회 분들이 많이 오셨다. 사진을 찍으시는데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정신이 없었다. 어떤 아저씨께서는 사진 찍으시는 아줌마분들이
사쿠라 잡지의 모델이라고 하셨는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아줌마, 아저씨분들이 나보다 더 소녀 같으시다. 금오도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나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거울을 가져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캠핑장에 가서 폰을 봤는데 리키랑 장하오가 홍대에 왔다고 한다. 오마이갓ㅠㅠ 금오도에 와주면 안되나ㅠㅠ 죽기 전까지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바람이 안부는 대신에 산악회분들의 소음이 찾아왔다. 캠핑장이 아니라 클럽에 온 것 같았다. 바람은 자연적인 것이어서 그냥 웃겼는데 산악회분들은 같은 사람이어서 신경질이 났다. "잠 좀 잡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소심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냥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순간 화난 고릴라로 변할뻔했다. 그래도, 2일차 무사히 완료!
2023.4.2.(일)
일찍 일어나서 비렁길 3,4,5 코스를 걸었다. 중간에 암벽등반도 하고, 내리막길 지옥에 빠지기도 했다. 복근이 생겼을 같아 살짝 기대가 된다. 3코스는 엄청 예뻤다. 동백꽃이랑 대나무숲이 인상적이었다. 해산물을 먹었는데 짱맛있었다!ㅎㅎ 원래 안도에 가서 자려 했지만 다리가 아픈 탓에 금오도 민박집에 가서 잠을 잤다.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밥이랑 반찬을 주셔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핸드폰을 켰는데 갑자기 줄이 생기더니 전원이 켜지지 않기까지 했다. 이건 뭐지??싶었다. 핸드폰은 고장이 나버렸고 내 삶의 낙은 사라졌다. "아하, 더 열심히 순례에 참여하라는 신의 계시구나! 핸드폰이 고장 난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어!" 하며 긍정적이게 생각하려 노력했다ㅠㅠㅠㅠ 씁쓸한 느낌에 밖에서 산책을 하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천혜향과 한라봉을 주셨다. 양치를 했지만 귤은 거부할 수 없어 맛있게 먹었다. 이게 뭔 일이지 싶은 일이 많긴 했지만 3일 차도 무사히 완료!
2023.4.3.(월)
오늘은 금오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비렁길 1~5코스를 완주했으니 오늘은 안도에 갈 예정이다. 안도에 흑염소가 있다고 블로그에서 봤는데 기대가 된다. 민박집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대교를 건너서 안도에 갔다. 블로그에 나온 것처럼 안도에는 흑염소가 많이 있었다. 어떤 아저씨께서 흑염소 3마리를 산책 시키는 걸 목격했다. 아기 염소 2마리가 있었는데 귀여웠다. 아기 염소 2마리가 인간들을 보고 겁을 먹자 엄마 염소가 눈빛으로 우리의 기선을 제압했는데 멋있었다. 나도 저 엄마 염소처럼 카리스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는 길은 그냥 평길이었고 금오도 비렁길보다는 덜 힘들었다. 근처에서 백반을 먹고 장도 보고 내 핸드폰도 용인에 보냈다. 무사히 도착할까 걱정이 되는데 자식을 기숙사에 처음 보냈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금오도의 버스기사분들은 천사이시다. 편하게 캠핑장까지 데려다주시고 "몇 시에 여기 앞에 나와있어달라!" 하며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챙겨주신다. 버스기사분들 짱!
피곤한 상태여서 바로 자려고 텐트 안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텐트와 함께 날아갈 뻔했다. 당황스러워서 5분 만에 탈출을 하였다.
아래 산책로에서 혼자 감성을 타며 걷다가 위로 올라가니 빛나는과 시우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느꼈는지 텐트 자리를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같이 텐트를 접는데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안쓰러웠는지 빵이랑 콜라를 주시고 펜션으로 옮기라고 방을 내어주셨다. 펜션으로 자리를 옮긴 건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4일차는 아슬아슬한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완료!
2023.4,4(화)
금오도에 정을 붙였는데 개도로 떠나야 되는 날이 왔다. 씁쓸하면서 기대가 된다. 배를 타고 개도에 갔는데 나의 프렌드 하진이가 마중 나와있었다.(+시우가 애타게 기다린 사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반가웠다. 하나로마트까지 걸어가는데 소를 봤다.
음메~~ 가서 장을 보고 민박집 사장님께서 민박집까지 태워다 주셔서 편하게 갔다. 하진이랑 같이 밥 선생이 되어서 라면이랑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뒷정리까지 했다. 비는 저녁부터 오기로 해서 먼저 걸으러 가기로 했다. 사람 길 2코스를 걸었는데 진짜 사나이 하루 체험을 한 것 같았다. 밧줄에 의존하며 걷다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빛나는이랑 나는 먼저 민박집에 가기로 했다.
빛나는이랑 클레오파트라와 영어판 끝말잇기랑 그냥 끝말잇기를 하며 걸어갔다. 영어판 끝말잇기를 하며 내려갈 때 잘하지도 못하면서 괜한 자존심 때문에 이뤠이저얼~, 이인터얼눼엣~하며 혀를 굴렀던 게 기억에 남는다. 가서 샤워를 하는데 보일러를 틀지 않아서 20분 동안 뻘쭘하게 서있었다. 나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계란이 30알 이상은 있어서 간장 계란밥을 해먹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주신 회랑 갑오징어도 먹었다. 나를 제외한 세분은 1시 반까지 영화를 보았다. 대단하다. 5일차 끄읕~!
2023.4.5.(수)
다들 늦게 자서 그런지 늦잠을 잤다. 시우는 오후 2시까지 잤지만 빛나는이랑 하진이랑 나는 오전 10시쯤에 일어났다.
빛나는이 꽁치김치찌개를 끓여주셔서 먹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어본 김치찌개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거짓말이 아닌 진심이다.(진지) 사실 김치찌개에 들어간 꽁치는 캔에 들어있는 거였는데 갓 잡아온 것 같았다. 맛있어서 셋 다 3그릇이나 먹었다. 시우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자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밖에 안 나가고 숙소에서 푹 쉬는 날이었는데 핸드폰을 용인으로 보내버려서 할 게 없다. 심심해서 일주일이나 밀린 일기나 쓰고 있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점심을 먹었다. 나는 분명히 저 김치찌개를 아점(아침+점심)이라 생각했는데.. 좀 무서웠다. 김치찌개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점심은 조금만 먹었다. 다 같이 보이즈플래닛을 봤는데(리키랑 장하오가 나오는) 나 빼고 다 재미없어했다. 왜지? 편집은 짜증 나지만 얼굴이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된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삼겹살을 주셔서 저녁으로 먹었다. 너목보를 보는데 살면서 한 번은 저런 프로그램에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넷이서 같이 출연하면 재밌을 것 같다. 오늘은 하루 종일 늘어져있었는데 오랜만에 안 걷고 누워만 있어서 좋았다. 6일차 굿~^^
2023.4.6.(목)
빛나는은 학교 일정 때문에 오늘 순천에 가고 이틀 뒤에 사도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화도는 나랑 시우, 하진이 셋이서만 가야 한다. 걱정되면서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배 타는 곳까지 태워다 주셔서 편하게 갔다. 아침 8시 55분 배를 타고 하화도에 갔다. 오후에 비가 오기로 예정돼있어서 그런지 안개가 껴있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하화도의 첫인상은 우중충하고 추운 섬이었다. 원래 정자에 텐트를 치면 안 되지만 평일이어서 사람이 없고 좀 있으면 비가 오기 때문에 하루만 정자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이장님에게 걸려서 하화도에서 쫓겨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홀로 깊이의 날이어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홀로 있기로 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꽃섬 다리를 건너보고 싶었다. 그래서, 꽃섬 다리를 건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시작했다. 식당이 3~4개밖에 없는데 블로그에서 봤을 때는 와쏘식당이 제일 맛있어 보여서 와쏘식당에 갔다. 혼밥을 해야 됐는데 혼밥은 많이 해봐서 오히려 좋았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백반을 시켰다. 멸치랑 김자반은 맛있었지만 나머지 음식은 다 짜고 차갑고 썼다. 사장님께 맛없게 먹는다고 한소리 들었다. 맛이 없는걸 어떡해요ㅠㅠ 속이 안 좋아져서 조금밖에 못 먹었다. 표지판에 가는 길이 다 적혀있어서 여유롭게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에 유채꽃이 있는데 생기있게 생긴 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계속 걷다가 드디어 꽃섬다리에 도착했다! 봤는데.. 아래가 보이게 조금씩 뚫려있었다. 안개가 껴서 잘 보이지도 않고 혼자 있어서 그런지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강한 여자!이기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냥 건넜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어지럽기까지 했다ㅠㅠ 다신 혼자 가지 않을 것이다.
평길을 걷는데 할아버지가 보이길래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께서 인사성 밝은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쑥을 캐가라고 하셨다. 쑥을 캐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만 심심하기도 하고 거절하기 민망해서 알겠다고 해버렸다. 할아버지께서 큰 바구니를 가져오시더니 꽉 채우라고 하셨다. 눈을 의심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캤다. 할아버지께서는 쑥 캐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자기 손자도 못 캐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섬에 있는 쑥은 귀하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쑥으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며 30분간 쑥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나는 섬에 있는 쑥이 귀한 줄 모르고 뭔 소린지 몰라서 그냥 허허 웃고 있기만 했다. 쑥 캐는 건 계속 앉아서 캐야 되는 노동이기 때문에 힘들어서 할아버지께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더니 끈기와 열정이 없어 보인다며 공부를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 손에 들고 있는 초록 식물(쑥)의 이름은 아냐고 하셨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캐고 30분 동안 얘기 들었던 주제가 쑥이었는데.. 모를리가ㅠㅠ 또 캐기엔 너무 힘들어서 비닐봉지에 담아주신 나의 쑥을 들고 신나게 밭을 나왔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나는 인사성이 좋기 때문에 마주친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데 내 귓구멍이 막힌 탓에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뭔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쑥에 대해 질문을 하시는 것 같아 쑥을 캤다고 말하며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나의 쑥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자기 밭에 있는 쑥을 캐가라고 하셨다. 귀를 의심했다. 홀로 깊이의 날이 아닌 쑥 캐는 날 같다. 쑥을 또 캐야 된다는 생각에 괴로웠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거부할 수 없어 할머니 밭에서 또 쑥을 캤다. 이때, 하진이랑 시우는 아래 카페에 있었다. 할머니의 손녀 분께서 카페에서 나를 바라보며 내가 할머니 밭에 무단 침입한 줄 알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다른 마을 주민분들도 모여서 나에게 내려오라 하셨다. 나의 귓구멍은 막혀있어서 할머니랑 둘이서 뭔 일이지 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입으신 옷이 바위색이랑 비슷해서 다들 오해한 것 같다. 시우도 옆에서 내려오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진이가 나에게 손을 흔들길래(왜 흔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나에게 인사하는 줄 알고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진지하게 나는 정말 눈치가 없는 것 같다. 할머니 손녀분 성함이 전소영이신데 할머니께서 시우가 외친 "서영아!"를 "소영아!"라고 알아들으셔서 할머니께서는 "어~"라고 대답하셨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할머니께서 손녀랑 이름이 똑같다며 무섭다고 하셨다. 카페로 갔는데 시우랑 하진이가 도대체 뭘 하고 왔냐며 잔소리를 했다. 우리 엄마인줄 알았다. 시우한테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손녀분께 싸대기를 맞고 섬에서 쫓겨날까봐 무서웠다. 쑥으로 할 건 없어서 카페 사장님께 선물로 드렸다. 좋아해 주셨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스페셜 요거트 젤라또를 먹었다. 요거트 맛이었다. 같이 연애 썰도 풀었다. 나는 풀 연애 썰이 없어서 허허거리기만 했다. 저녁으로는 전투식량을 먹었다. 진짜 살려고 먹는 맛이었다. 섬에서 살아남기 같다고 생각했다. 하진이랑 같이 2인용 게임을 하고 유튜브도 보며 놀았다. 하진이 첫 인상은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얘였는데 현 인상은 그 반대이다. 그 말투는 비즈니스 말투인가? 잘 모르겠다. 저녁에는 비가 왔다. 추워서 잘 자지도 못했다. 사람의 온기는 대단한 것 같다. 갑자기 텐트가 아닌 이글루가 되었다. 빛나는이 그리웠다. 어떤 아저씨가 와서 정자에 텐트를 치면 안 되는데 텐트를 쳤다고 화가 나서 텐트를 바다에 던져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 밖에도 많은 무서운 상상을 하다가 잠들었다.
2023.4.7.(금)
오늘은 하화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처음으로 길잡이를 하게 됐는데 어제 좋았던 길을 소개해줄 생각에 설렜다. 텐트는 빠르게 정자에서 잔디밭으로 옮겼다. 옆 텐트에 있는 강아지가 엄청 귀여워서 들고 튀고 싶었다. 시우랑 하진이가 수프 물 조절을 하러 간 사이에 심심해서 빼빼로를 먹었다. 빼빼로를 가방에 썩혀둔지 일주일이나 돼서 둘에게 나눠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나 혼자 다 먹게 됐는데... 시우랑 하진이는 배신감에 휩싸였고 나는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다. 수프를 내 텐트에서 끓였는데 잘못된 물 조절과 나의 방심으로 인해 텐트를 수프로 물들어버렸다. 다행히 수프가 다 넘친 건 아니고, 바로 조치를 취해서 텐트는 무사하게 됐다. 내 멘탈은 무사하지 못했다. 수프를 다 먹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설거지할 사람을 정했다. 시우가 가위바위보를 3번이나 져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그 뒤에 하화도 섬 1바퀴를 다 돌았는데 금오도 비렁길 3코스만큼 예뻤다. 시우랑 하진이는 사진 찍느라 바빴다. 둘을 보며 관광 온 한 쌍의 부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셋이서 꽃섬 다리를 걸었는데 아래가 절벽이어서 셋 다 무서워서 옆에 있는 벽을 의지하며 갔다. 식당에 가는 길에 10분 동안 말 안 하고 걷기를 했는데 재밌었다. 다들 말을 했는데도 뻔뻔하게 안 했다고 하는 모습이 제일 웃겼다. 꽃섬길식당이랑 와쏘식당이 있는데 어제의 와쏘식당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기 때문에 가기 싫었다. 꽃섬길식당은 카드 결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와쏘식당에 갔다. 어제 먹었던 백반이 맛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새로운 메뉴인 서대회무침 백반 2인분이랑 부추전 하나를 주문했다. 서대회무침이랑 부추전은 정말 환상의 맛이었다. 다시 하화도에 가게 된다면 부추전 10장도 다 먹을 수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셋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 서로 미래의 자식 이름 정해주기를 한 게 제일 재밌었다. 이야기 나온 건 아래 시에서 볼 수 있다. 어제처럼 잠시 홀로 있는 시간을 또 가지기로 했다. 샤워실에 차가운 물 밖에 안 나와서 간단하게 머리카락만 감았다. 특이한게 화장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데 우아하게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카페에서 리코타치즈 젤라또를 먹으며 일기를 썼다. 카페에 비숑이 있는데 매우 귀여웠다. 카페에 다녀오고 텐트에 있는데 나 혼자 있기도 하고 핸드폰도 없어 심심해서 30분 동안 옆 텐트에 쫑알쫑알 댔더니 하진이가 시끄럽다고 얼른 밥을 먹여서 조용히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저녁은 전투식량 3개랑 삼양라면 3봉지로 해결했다. 저녁 7~8시쯤에 저녁 모임을 했다. 저녁 모임을 할 때마다 항상 시우가 노래 2개를 틀어주며 하루를 돌아보라고 하는데 인상 깊었다. 그중에 일본 가수가 자기 노래에 일본어랑 한국어 2가지 언어를 넣은 노래가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다. 각자 쓴 시를 낭독하였는데 시우랑 하진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시를 썼는데 나만 장난스럽게 쓴 것 같아 좀 민망했다. 그래도 시우랑 하진이가 반응을 잘해줘서 시 낭독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텐트가 무너질 것 같이 흔들리길래 무서웠다. 빛나는이 보고 싶었다. 이틀 동안 하화도에서 빛나는 없이 시우, 나, 하진이, 이렇게 셋이서만 생활을 해봤는데 초반에는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가면 갈수록 즐거움만 남았던 것 같다. 셋이서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서로 편하고 가식 없는 모습으로 지내는 게 좋았다. 하화도는 아름다웠고 부추전은 맛있었다. 부추전 또 먹고 싶다. 8일차 끝~!
<동료>
동료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서로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동료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걷는 중에 계속 사진을 찍어대서 화는 나지만 하나의 메모리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동료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높은 곳에 위치해있는 꽃섬 다리에서 겉으로는 빨리 건너고 싶어 각자 걷지만
속으로는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료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미래>
미래 하진이의 아들 이름은 김밥
질리지 않고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딸의 이름은 김미김미 나우(Give me Give me now)
좋은 사람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으라는 뜻
미래 시우의 아들 이름은 손싸대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딸의 이름은 손톱
없으면 허전하고 계속 보고 싶다는 뜻
미래 서영이의 아들 이름은 정신
정신 차리고 살라는 뜻
딸의 이름은 정지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2023.4.8.(토)
배 시간이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정신없이 이동했다. 배를 놓칠 뻔했는데 선장님께서 유턴해가지고 태워주셨는데 감사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게 있었다. 하화도는 야생화 공원이 백패킹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거의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화도로 온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걸어서 10분이나 되는 거리를 뛰어서 간다. 얼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있는 사람들도 앞사람을 따라 뛰어간다.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데 무슨 런닝맨인 줄 알았다. 재밌었다. 사도에 갔는데 공룡 2마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공룡이 콘셉트인 섬이다. 실제로 사도에는 공룡 발자국이 있다고 한다. 사도는 그동안 가본 섬 중에서 제일 작은 섬이다. 병원이나 마트가 없는데 민박집은 많이 있다. 동네 주민분들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며 말을 많이 걸어주신다. 시우랑 하진이랑 같이 아침 열기를 하는데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큰소리로 욕을 하며 싸우시는 모습을 봤다. 내가 살면서 들어본 욕 중에서 제일 찰졌다. 민박집에 가기 전에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모세의 기적을 인생 처음으로 봤는데 신기했다. 바다 사이를 걷는데 모아나가 된 느낌이었다. 그 뒤에 시우랑 하진이랑 바닷길을 걸었는데 중간에 길이 막혀서 돌아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또 같은 길을 걷기엔 진부한 느낌이 들어서 풀밭으로 갔다. 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을 봤는데 큰 갈색 밧줄이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자세히 보니 뱀이었다. 셋 다 놀라서 얼른 탈출했다. 셋 다 교훈을 얻었다. 괜히 위험해 보이는 길로 가지 말아야겠다고. 셋 다 진이 빠져서 터덜터덜 민박집으로 향했다. 짐 정리를 하고 민박집에서 끓여주신 라면을 먹었다. 셋 다 너무 힘들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라면 그릇에 거의 얼굴이 들어갈 것처럼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조용하게 먹은 건 처음이었다. 다 먹고 방에 갔더니 tv에서 보이즈플래닛을 하고 있었다. 마침 폰이 없어서 저번 회차를 보지 못했는데 재방송을 하고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실행하였다. 그 순간, 시우가 사도에 오는 배가 없어서 빛나는이 오지 못해 우리가 지금 당장 배를 타고 백야도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짐을 1초 전에 다 풀었는데 다시 싸야 된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민박집에서 나와서 백야도로 가는 배를 타러 갔는데 선장님께서 배 타는 사람 정원이 다 찼다며 배를 못 탄다고 하셨다. 절망하며 서있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선장님께서는 표 끊어주시는 분이 오시면 얘기해 본다고 하셨다. 잠시 몇 분간 서있었는데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표 끊어주시는 분께서 다행히 타도 된다고 하셔서 탑승하게 되었다. 배는 다양한 섬을 거쳐서 백야도에 도착한다. 하화도를 거치게 되는데.. 주말에는 하화도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당일치기로 트레킹만 하고 바로 나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분명히 3명밖에 없던 인원이 100명 이상으로 꽉 차니 당황스러웠다. 역대급으로 기 빨리고 피곤했다. 사람이 많아서 좁기 때문에 다리도 편하게 하고 있지 못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옆에 앉아 계신 아저씨랑 잠시 얘기를 했는데 중간에 너무 심심해서 아저씨한테 같이 끝말잇기를 하자고 할 뻔했다. 나는 소심하기 때문에 끝말잇기하는 상상만 하고 끝났다. 무사히 백야도로 도착했다. 상율이의 산다라박 머리를 보고 바로 ‘빛나는네가 저기 있구나!’ 하며 알아볼 수 있었다.
빛나는네 차를 타고 낭도 캠핑장으로 향하는데 딱 노을도 지고 집에 가는 분위기였다. 이때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는 상율이 아버지께서 구워주신 바비큐랑 과자를 먹었다. 오랜만이어서 더 맛있었다. 사남매 모두 텐션이 높은데 빛나는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관율이가 계속 병아리처럼 쫑알쫑알 대면서 놀리는데 귀여웠다. 흰색 아기 강아지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관율이랑 10년 뒤에 만나면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대할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숙소 안에서 잤다.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다. 힘들긴 했지만 9일 차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2023.4.9.(일)
관율이가 코 고는 소리에 깼다. 몸집이 저리 작은데 코 고는 소리는 어마어마해서 신기했다. 아침을 먹고 걸으러 나갔다. 4남매와 함께 걷는데 에너지가 넘쳐서 부러웠다. 자꾸 내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났다. 낭도는 제주도 느낌이 나면서 이국적이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좋았다. 점심으로 서대회무침 백반을 먹고 카페에서 핫초코를 마셨다. 카페에 포스트잇이랑 펜이랑 포스트잇을 벽에 고정할 수 있는 고정핀도 있는데 기록 남기기에 딱 좋았다.
오른쪽 커튼에다가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 4남매랑 상율이 아버지와 헤어지고 등산을 하였다. 오르막길 지옥+내리막길 지옥에 미칠뻔했다. 정상에서 소리도 좀 질러줬다. 내 다리는 남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서 샤워를 하려고 샤워장에 가서 물을 틀었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5분 동안 서있었다. 지난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찔했다. 다행히 5분 뒤에 따뜻한 물이 나왔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다가 잤다. 하진이랑 시우의 케미는 아주 좋았는데 이러다가 둘이 결혼하는 건 아닐까 싶다. 10일차 끝!(이제 5일 남았다~!!)
2023.4.10.(월)
오늘은 고흥으로 향하는 날이다. 드디어 섬을 다 돌고 고흥으로 가다니! 설렜다. 오전에 어제 갔던 카페에 가서 내가 원하는 보이즈플래닛 데뷔조를 적어서 ‘기원’이라며 커튼에 고정해놨다. 아이스초코도 마셨다. 꿀맛! 장사하시는 아저씨 피셜 설탕보다 달다는 고구마를 사고 있는중인데 갑자기 버스가 와서 놓칠 뻔했다. 버스를 따라가며 “아저씨~!!”라고 외치니 멈춰 주셨다. 큰일 날뻔했다. 버스를 타고 걸어서 야영장까지 갔다. 사람도 별로 없고 고요한 숲속에 있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텐트를 치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수월하게 칠 수 있었다. 웬일이지 싶었다. 겸이 오빠는 오후 4시에 오기로 했고 빛나는은 쪽지시험을 봐야 돼서 나랑, 시우, 하진이 셋이서만 걷기로 했다. 걸으러 가야 되는데 두 분께서 자꾸 말미잘 찾기, 게 찾기 같은걸 해서 뭐하는거지 싶었다. 지붕 없는 미술관까지 체감상 1시간 동안 걸어갔는데 그냥 전망대였다. 사진 하나 찍고 내려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새로 투입된 겸이 오빠랑 인사를 나눴다. 저녁이 완성되는 동안 텐트 안에서 일기를 썼다. 저녁으로는 카레를 먹었다. 저녁 모임을 하기 전 쉬는 시간에 혼자서 바닷가를 걸었는데 감성 있고 좋았다. 저녁 모임을 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2023.4.11.(화)
드디어 보성에 간다!(야~호) 고흥 역에서 기차를 타고 보성역까지 갔다. 기차를 오랜만에 타는 거여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를 타고 보성 녹차밭까지 갔다. 정말 오랜만이다. 초록 초록하고 연두 연두 해서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았다. 친구들 중에 녹차를 사랑하는 두 친구가 있는데 나중에 같이 오고 싶었다. 녹차 우유(반반, 콘)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은 아이스크림 top3 안에 들어갈 맛이었다.(1. 블레스롤, 2. 백미당, 3. 보성 녹차밭) 기념품 숍에 녹차가 있는데 엄마가 차를 좋아하니깐 나중에 엄마 선물로 사가도 좋을 것 같다. 버스를 1시간 동안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 와서 그냥 걸어서 역까지 가기로 했다. 비렁길을 3~4시간 동안 걷는 것보다 아스팔트 길을 1시간 동안 걷는 게 더 힘들었다. 중간에 비도 와서 더욱더 지쳤다. 분식집에 가서 과식을 하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지졌다.
사우나에 젊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탕 안에서 할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칭찬을 받았다. 앞으로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목욕탕에 가야겠다. 기차를 타고 다시 고흥으로 갔다. 다들 과식을 해서 배불러서 그런지 저녁은 간단하게 먹었다. 어제처럼 감성 있게 바닷가를 걷고 저녁 모임을 한 뒤에 잠에 들었다.
2023.4.12.(수)
낭도 해수욕장은 일출이 유명한 곳이다. 어제 잠을 잔다고 일출을 보지 못해 오늘 보기로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없다.. 안개가 껴서 해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삶은 달걀 하나가 떠올랐다. 정말 야속하다! 시우는 일출(?)을 보다가 그냥 자러 간다고 했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어서 텐트 접는데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이미 금오도에서 단련이 된 상태였기에 이 바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노라네 집으로 향했다. 집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의 한옥 같았다. 살고 싶었다. 핸드폰이 도착해서 열흘 만에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4시간 동안 핸드폰과 사랑에 빠졌다. 노라랑 나마스테가 오셔서 소고기도 구워주시고 닭볶음탕도 해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마스테랑 경원이랑 똑같이 생겨서 유전자에 놀랐다. 저녁에 두더지도 오셨다. 13일차는 여유롭게 완료~!
2023.4.13.(목)
오전에 두더지랑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질문을 하면 두더지가 답해주는 식이었다. 나는 한 질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더지는 왜 두더지에요?” 두더지는 이 질문에 두더지의 위대함에 대해 알려주셨다. 나도 별명을 짓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돼지띠이기도 하고 아기돼지가 귀엽다고 생각해서 나를 돼지라 불러달라 했다. 잘못 말한 듯.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저를 리키나 장하오라고 불러주시길.
오후에는 도로를 걸었다. 길이 가도 가도 계속 끝나지 않길래 좀 무서웠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저녁 모임 때 3번이나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끝이라는 게 안 믿겼고 금오도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1달 전에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가는 게 좋으면서도 아쉽기도 하다. 이제 내일 집 가는 일만 남았다. 14일차 무사히 완료~!
2023.4.14.(금)
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다.(홍홍홍~><) 신이 난다. 버스를 타고 그 뒤에는 쭉 걸어갔다. 중간에 짜장면 가게 다 뭐시기에 갔는데 탕수육이 예술이었다. 또 먹고 싶다. 학교에 도착을 해서 사랑 어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에 순례자들을 반겨줬을 때 뭔가 부끄러우면서 에너지가 넘쳐서 좋았다. 은서 언니랑 민지 언니랑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관율이가 오랜만인데 나한테 아저씨라 했다. 이 병아리 녀석, 숙녀한테 아저씨라니! 둥굴레에 가서 거울을 보는데 웬 커피콩이 서있었다. 심각했다. 선크림 바를걸ㅠㅠ 내 몰골을 보니 관율이가 아저씨라고 부를만했다. 빨리 원래 내 피부색으로 돌아갔으면.
<총소감>
14박 15일이라는 짧으면서 긴 시간 동안 순례를 하였다. 내가 관심 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여러 섬에서 텐트를 치며 자고 먹고 생활하였다. 서로 본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빛나는과 하진이, 그리고 아예 초면인 시우와 함께 순례를 가게 되었다. 제일 걱정되는 건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아닌 어색함이었다. 시우의 첫인상은 냉담해 보였다. 하진이랑 빛나는 이랑은 막 엄청 친한 사이도 아니였어서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같이 한 배를 타고 있어 의지할 건 서로밖에 없었다. 시우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뽀짝 하면서 생각이 깊은 사람이고, 하진이랑 빛나는 이랑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 너, 우리라는 세 가지 단어가 있는데 순례를 통해서 나와 너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게 되었다. 서로 가식 없고 편한 상태로 지내는 것도 좋았고,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며 본인이 직접 하겠다며 나서는 모습이 좋았다. 순례하는 동안 열흘 동안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오히려 난 이게 더 좋았다. 핸드폰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핸드폰과 노는 게 아닌 사람들과, 자연과 노는 게 제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깨닫게 되었다. 서로에게 쌓인 점이 있다면 참지 않고 말하고, 서로 존중해 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좋은 경험한 것 같아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2차, 3차 순례도 잘 마무리됐으면!
첫댓글 캬~~~ 좋았겠다가 먼저 입에서 나오네요.. 읽으며 키키 하하하 했네요... 민지도 함께 읽고 있는데~~ 고흥엔 역이 없다는데(민지는 고흥고등학교 다님)~~어쨌든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킄,ㅋ,ㅋ, 부러웡
🥰
저도 너무~ 잼있게 읽었어요.마을인생학교 친구들 짱 👍 멋있음.자유롭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시길요.♡♡♡
감사합니다!🥰🥰
서영아~ 코믹 시트콤 작가 도전??!! ㅎㅎ 우릴 유쾌하게 해주는 매력덩어리😄
😁🥰